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87화 (287/425)
  • 머신건 잭 (10)

    증쇄.

    120만부인가, 130만부 이후로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가, 최근 삼사라와 절망의 페르소나가 끝날 즈음해서 다시 발행부수가 떨어질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단다.

    물론, 출판사와 팬들 모두.

    그런데 신작 머신건 잭의 연재가 결정되고 홍보용 기사가 나간 뒤로 반응이 뜨거워지고, 결국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초판발행이 일찍 완판 되면서, 증쇄가 결정된 것이다.

    20만부.

    지로에게 들은 얘긴데, 시골에 사는 중학생 팬은 책을 사려고 40Km나 떨어진 시내의 서점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산 일도 있었단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아무튼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시작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 소년 히어로의 입지도 상당히 높아져, 이젠 3대 소년지란 말보단, 4대 소년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4대 소년지라.

    미래의 나도 3대 소년지는 익숙해도 4대 소년지라는 말은 처음이다.

    그것도 애초에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던 소년 히어로가 말이다.

    일단 첫 번째 연재 이후 반응도 나쁘지 않았던 탓인지, 다음 소년 히어로 출간 때도 140만부 이상이 초판으로 발행되었는데, 그것도 뭐 완판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애매한 시점에 완판이 된 탓에 추가 증쇄는 없었고.

    그렇게 9월 중순이 지나가며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 무렵.

    김포공항에서는 폭탄테러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뉴스가 나왔고, 며칠 후 그렇게 전 국민이 고대하던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나야, 원래 올림픽도 관심 없던 인간이라 아시안게임은 더더욱 관심 밖이었지만, 방송에선 온통 아시안게임의 금메달 소식이었고, 화실 식구들도 출근하면 금메달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최윤희 수영 정말 잘하더라. 방송에서 아시아의 인어라고 하더니 거짓말이 아니더라니까. 엄마는 경기 내내 응원하고 난리였어.”

    “저도요. 금메달이 확정 되었을 땐 제가 막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이틀 후엔.

    “유남규가 장자량을 이겼을 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니까. 탁구가 그렇게 재미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탁구에서 스타가 나왔다니까.”

    “유남규 고등학생이라며?”

    “네. 부산 출신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디라더라? 반성공고?”

    “광성공고!”

    다시 이틀 후.

    이번엔 화실에서 TV로 육상경기를 직접 보며 사람들이 응원했다.

    그리고 마른 여자애가 우승하자 어시들은 화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 3관왕! 3관왕이에요!”

    “임춘애! 임춘애!”

    “어머, 난 몰라! 어떡해!”

    “울지 마요!”

    “너도 울지 마!”

    몇 명은 눈물까지 펑펑 흘리며 감격한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런 감성은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이곳에서 몇 년 살다보니 이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물론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이런 것도 애국심 중 하나겠지.

    요즘엔 별로 없지만, 재작년까진 동사무소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이 진짜로 길가다가 경례를 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었는데.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한국이 복싱 12체급 전부 금메달을 따버린 일이었다.

    결국 종합순위도 중국보다 금메달이 1개 적은 93개로 준우승.

    덕분에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다.

    아무튼 보름동안의 아시안게임 기간은 정말 온 국민의 축제라는 것을 실감하듯, 원고 작업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물론 미리 해둔 원고 덕분에 마감에 펑크 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온 국민이 이렇게 열광하는 걸 직접 겪어보니, 2002년 월드컵 때도 얼마나 대단했을까 싶다.

    어쩐지 2년 후에 열릴 88올림픽도 슬슬 기대가 된다.

    *

    조그마한 도시를 둘러싸며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개미떼처럼.

    펑! 펑!

    수차례 공격을 받은 도시는 이미 성벽의 기능을 잃어버린 돌무더기를 방패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구형 대포가 그들을 향해 쏘아댔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단순 숫자로만 봐도 10배는 될 것 같은 병력의 차이.

    도시 안의 사람들 눈은 공포로 물들고 있었다.

    밀려드는 병사들 사이로 많은 수의 방패바이크도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돌무더기에 모여 있는 세 명의 모습이 보인다.

    그중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몽! 아직 멀었냐?”

    잭의 외침에 몽이 짜증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다그치지 말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소리친 몽이 공구로 기계를 빠르게 손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잭이 인상을 팍 썼다.

    “젠장, 그냥 머신건으로 상대할 걸. 괜히 네 말을 들어서는.”

    잭이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평소였다면 머신건으로 변형시켜 놈들을 상대했을 것이다. 물론, 이정도 군대를 상대하기엔 좀 많이 부족할 테지만.

    그때 뒤에서 조크가 큰소리로 잭을 불렀다.

    “야, 잭! 나 좀 도와줘! 무거워 죽겠다!”

    어디서 구했는지, 낡아빠진 대포를 낑낑대며 끌고 온다.

    딱 봐도 어디 창고에 처박혀 있던 고물이다.

    그 모습을 본 잭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뭐야? 그건 왜 가져왔어?”

    “이거라도 있어야 싸울 거 아냐!”

    “그거, 발사는 되는 거냐!”

    “실험은 안 해 봤지만, 아마 되겠지.”

    “화약은?”

    그 순간 조크의 표정이 굳었다.

    “어?”

    “뭐야?”

    “어째 뭔가 빠졌다했더니.”

    “젠장, 화약도 안 챙겼냐!”

    “대포알만 챙겼어.”

    “네가 그거 던질래?”

    “아, 미안.”

    그때 방패가 달린 바이크 한 대가 잭이 있던 진영으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잭이 거대한 통나무로 사정없이 후려치자 바이크의 뒷바퀴가 파괴되며 바닥에 구르더니 폭발했다.

    콰앙!

    “야! 아직 멀었냐?!”

    “다, 됐어! 어서 가져가!”

    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잭이 거대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몽의 앞에 있던 기계를 움켜쥐자 순간적으로 손과 기계가 결합하며 변형이 일어난다.

    그렇게 경쾌한 기계음이 퍼지며 어느 순간 그의 오른손이 개틀링포로 변해있었다.

    그 순간 여러 대의 바이크가 코앞까지 근접해 와 있다.

    잭이 그것들을 향해 개틀링포를 겨냥했다.

    그와 동시에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이제까지의 머신건과는 수준이 다른 빠르기로 엄청난 양의 탄을 쏟아낸다.

    그러자 달려들던 방패바이크들이 순식간에 벌집이 되며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총구를 다른 바이크 쪽으로 돌린다.

    그러더니 잭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역시 기다리길 잘했군.”

    그렇게 말하며 다시 그의 캐틀링포가 불을 뿜었다.

    그 때문에 주변을 빠르게 달리던 바이크들이 걸레처럼 변하며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몽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깐,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아주 신났구만, 신났어.”

    “와, 엄청나다. 야, 몽! 나도 저런 거 만들어줘!”

    “헛소리 하지 마! 네가 저걸 들고 쏘면 그 반동에 몸이 산산조각 날걸?”

    “아, 그, 그러니?”

    그 와중에도 적군의 바이크가 하나둘 파괴되며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었다.

    *

    슥슥슥

    두 페이지짜리 웅장한 스케일의 전장이 연필로 빠르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머신건 잭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이면서, 처음 머신건이 업그레이드되는 장면이다.

    장면의 디테일을 위해서 적군의 전투복이나 파트별로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들어갔다.

    그중 방패바이크의 디자인과, 스피어바이크들의 디자인들도 기본형태만 같을 뿐 전부 다르게 그려져 있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나였다면 저 많은 바이크들의 디자인을 다 구분하며 그리는 건 불가능했을 텐데, 선희는 용케도 하나하나 작은 것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하다못해 어떤 바이크는 여러 번 파괴되면서 조금씩 망가져가는 것을 일일이 다 표현하기도 할 정도다. 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장인정신인데,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그리는 게 선희라 그저 괴물이라고 밖에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그런 장면, 장면들이 모여 거대한 전장이 표현되고 있을 정도라, 아마도 그런 것을 찾는 덕후가 있다면, 은근 깨알 같은 재미도 있겠지.

    특히나 대규모 전투는 앞으로 더 큰 스케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 어시들의 작업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전투신의 데생을 본 김달부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물론 정작 배경이가 메카닉을 맡은 사람은 김기철이었지만.

    “저 오늘부터 잔업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기철도 데생을 보며 호들갑을 떨 정도니.

    아무튼 나 역시 머릿속으로 구상한 모습을 선희에게 자세히 알려줘서 최대한 디테일한 만화로 완성하고 있었다.

    이정도 디테일이면 베르세르크에 밀리지 않을 정도니, 일반 만화가였으면 정말 목숨 걸고 그려야 할 그림인건 분명하다.

    아무튼 스토리 전개상 처음부터 여러 개의 국가와 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과거에 일어났던 각종 사건들에 대한 얘기까지 등장시키면서 스케일도 점점 키우고 있다.

    특히 동쪽 사막지대에서 생겨나는 변종몬스터의 얘기도 중요한 에피소드라 공을 들이고 있는데, 팬들도 이 동쪽지대의 이야기에 대해 토론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 * *

    편집부 직원들이 미리 샘플로 찍은 소년 히어로를 둘러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우와! 이번 화 장난이 아니다! 이거 진짜 손으로 직접 그린거야?”

    “미치겠다. 잡지의 인쇄가 디테일을 따라가지 못해. 이거 정말 어떻게 그린거지? 써니도 써니지만, 어시들 죽어나가겠다.”

    “디테일보다 더 무서운 건 속도야, 속도. 어떻게 이런 퀄리티로 주간연재가 가능하지?”

    “그러게.”

    “이거에 비하면 삼사라는 그림이 좀 단순했었는데.”

    “데포르메 하면서도 그림이 눈에 잘 들어오잖아. 그만큼 센스도 좋아진 거야.”

    “우리 선생님한테 이렇게 그리라고 하면 당장 도망쳐 버릴걸?”

    “이 정도 퀄리티를 주간연재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만화가들 중 얼마나 되겠어요?”

    “하긴, 이정도면 오토모도 힘들겠다.”

    이런 반응은 키도화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적으로 써니 선생님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그려요?”

    “어시들은 집에 안가고 계속 화실에서 살고 있겠지.”

    “이게 화실에서 산다고 할 수 있는 퀄리티가 아닌데요, 뭐.”

    “하긴, 우리 수준에서는 불가능하긴 하지.”

    “불가능이라고 하니까 어쩐지 서글퍼지네요. 우리도 어디 가서 꿀리는 실력도 아닌데.”

    “그야 그렇지만, 이쪽은 차원이 다르니까.”

    “그래도, 우리가 써니 선생님 화실에서 일하지 않는 건 행운이죠.”

    “그러게. 이정도면 그냥 과로사야, 과로사.”

    “과로사해도 못 만든다니까요.”

    “아, 그렇겠다.”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그때 화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키도가 화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아하하핫! 역시 써니야, 써니! 이 정도는 해 줘야, 활활 타오르지.”

    그 순간 어시들의 표정이 싸해졌다.

    그리고 서로들 돌아보며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설마 하던 게 현실이 되었다.

    “자자, 오늘 컨디션 제대로다! 우리도 써니와 전쟁을 한번 치러볼까!”

    “네? 저, 전쟁이요?”

    “그래. 이런 퀄리티 그림을 보면 막 흥분되는 건 당연하니까, 안 그래!”

    “······.”

    “······.”

    “······.”

    “자자, 우리 오늘부터 힘내보자고!”

    “서, 선생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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