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86화 (286/425)
  • 머신건 잭 (9)

    “어? 두 분도 오셨네요? 같이 오신건가요?”

    출판사가 있는 곳에 들렀다가 온 지로가 키도와 니시다를 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을 같이 만난 것도 신기할 텐데, 거기다 둘 다 잭과 조크의 복장을 하고 있으니 더 신기했겠지.

    뭐, 나도 마찬가지고.

    “뭐, 여기서 우연히 만났지.”

    “우연히요?”

    누가 봐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묘하다.

    일단 키도가 잭의 복장, 그리고 니시다가 조크의 복장을 하고 있으니.

    그러다가 지로가 몽의 복장을 한 경희를 돌아보고는 ‘아!’하고 감탄을 했다.

    정말 우연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한 우연이긴 하다.

    이렇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같은 만화의 세 캐릭터를 나눠 코스프레하고 나타나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이.

    “이정도면 우연히 아니라 인연 같습니다.”

    그래, 이정도면 인연이지.

    그런데 그때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여럿이 근처에서 기웃거리다 쭈뼛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중 약간은 어설퍼 보이는 몽의 복장을 한 여자가 지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네?”

    “혹시, 키도 선생님이랑 니시다 선생님 아니세요? 그리고 이쪽은······ 써니 선생님?”

    그 말에 우리들이 움찔하고 놀랐는데, 그때 키도의 부인이 나섰다.

    “어머,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데도 잘 알아보시네요.”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다가왔던 여자가 확 밝아진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동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감격한 얼굴로 다가온다.

    “저희 팀이랑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저희가 세분의 팬이거든요.”

    “와아, 써니 선생님! 너무 예쁘세요! 옷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맞아요!”

    사람들이 경희에게로 달려든다.

    그러자 당황한 경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저기. 전 그러니까, 써니가······.”

    그때 키도가 그런 경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뭐, 어때? 그냥 네 동생 행세 한 번 해봐. 그것도 재밌잖아.”

    “아······.”

    그 모습을 보던 검은 뿔테의 선희가 내 곁에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언니인데.”

    아무튼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키도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핫핫, 좋지 좋아!”

    그의 대답에 다가왔던 사람들이 좋아라하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같은 복장의 두 개 팀이 한곳에 어울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새 소문이 퍼져나갔는지 다른 코스프레 팀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다른 캐릭터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실제 만화가들이 팀을 이룬 코스프레라는 것이 특이했던 탓인지 일반인들도 몰려들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경희는 온갖 포즈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선희가 내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 배경으로 사진 찍어줘.”

    “응? 코스프레 하는 저기?”

    “응.”

    그렇게 말하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으로 몰려있는 사람들 쪽으로 다가가더니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고는 날 향해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한다.

    찰칵.

    *

    “와, 사진 엄청 많이 찍었네. 부럽다.”

    이대봉이 코믹마켓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어시들도 같이 사진을 돌려가며 보고 있다.

    “와, 만화 속에 있는 주인공의 옷을 입는 행사를 진짜로 하네요. 사진으로 보니까 엄청 신기하다.”

    “진짜로 보면 더 신기해요.”

    경희가 잔뜩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1박 2일짜리 일본방문이었지만, 이번엔 완벽히 추억을 위한 방문이었다.

    첫날 코믹마켓에서 코스프레 행사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둘째 날엔 ‘천공의 성 라퓨타’를 극장에서 봤다.

    특히 선희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인 나우시카를 인상적으로 봤던 탓인지, 이번 작품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물론 경희도 좋아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코스프레 쪽이 더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제가 써니인줄 알고 계속 써니, 써니 하면서 다가와서 좀 당황스럽긴 하더라고요.”

    “뭐, 어때. 얼굴도 똑같은데, 왕자와 거지 흉내를 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그럼 제임스 오빠는 지금 날 거지라고 말하는 거야?”

    “어휴, 비유하지면 그렇다는 거지, 비유하자면. 너 화났니?”

    “누가 화났데?”

    “화났구나?”

    “······.”

    그렇게 경희가 이대봉에게 놀림을 받는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던 실버가 작은 소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인간보다는 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응? 뭐라고?”

    “아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실버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웃자, 경희 놀리는 재미에 빠져있던 이대봉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뭐가?”

    “너, 방금 실버를 보면서 실실 웃었잖아.”

    “그게 왜?”

    “재미있는 거 있으면 말해줘. 얼른.”

    “실버 형 놀리려고?”

    “······뭐, 꼭 그러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맞네.”

    “아, 진짜. 눈치하나는. 그러니까 얼른.”

    그러자 내가 히죽거리다가 방금 실버가 중얼거렸던 말을 슬쩍 말해줬다.

    그랬더니, 이대봉이 개구쟁이 표정으로 쿡쿡거리며 실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실버에게 뭔가 작은 소리로 말한다.

    그 순간.

    실버의 표정이 굳더니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아악!”

    곧바로 실버에게 멱살을 잡힌 이대봉이 비명을 질렀다.

    이런 재미있는 장면엔 그게 필요하지.

    팝콘.

    * * *

    만화연구회 모임이 있는 날 저녁.

    도쿄 시내의 한 카페.

    “써니가 코믹마켓에 왔었다고?!”

    모임에 있던 사람 중 한명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남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나도 설마 했는데, 진짜더라고. 자, 이거.”

    그렇게 말하며 사진 몇 장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수십 여장의 사진들이 테이블 위에 놓이자 사람들이 몇 장씩 집어가서는 그것들을 살펴본다.

    “여기, 이 여자가 써니야?”

    “그래. 이번 신작 홍보 차 온 모양이더라고. 전에는 가면라이더 가면을 쓰고 나타나더니, 이번엔 머신건 잭에 등장하는 몽의 캐릭터의 옷을 입고 왔더라니까.”

    “와, 이렇게 보니까, 엄청 예쁘다. 전에 잡지에 난 기사 속 사진보다 더 예뻐.”

    “그러게. 아이돌 같다야.”

    “아이돌은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일반인 치고는 상당한 미인이긴 하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어째 얼굴이 익숙한데?”

    “알아차렸냐?”

    “어? 누군데?”

    “진심의 남자를 그린 키도 죠타로랑 에스퍼 존의 니시다 유키야.”

    그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진짜! 그 두 사람은 또 왜?”

    “잘은 모르는데, 서로 사이가 엄청 좋아 보이더라고. 그래서 아마 이번에 이벤트를 같이 마련한 모양이지.”

    그 말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원통해 했다.

    “아, 어쩐지 가고 싶더라니.”

    “나도. 너무 더워서 그냥 집에 있었더니, 이런 엄청난 이벤트가 있는 줄도 모르고.”

    “요나가, 이거 몇 장 팔아라.”

    “나도.”

    “난, 이거 크게 확대해서 뽑아줘. 돈은 낼 테니까.”

    “자자, 줄을 서라고. 줄.”

    * * *

    드디어 머신건 잭이 실린 소년 히어로가 출간되었다.

    첫 연재 기념으로 20페이지 풀 컬러와 함께, 추가 30페이지의 엄청난 분량이 연재되었고, 일러스트는 표지를 장식했다.

    도쿄의 유명 서점에선 아침에 책이 비치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책을 집어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소년점프의 소진율이 가장 높았을 테지만, 오늘은 이변이 벌어졌다.

    소년 히어로가 소년점프의 판매량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전에 한정.

    오후부턴 원래처럼 소년점프의 판매량이 가장 높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 소년 히어로의 열성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사건이었다.

    이번 일로 소년 히어로 편집부에선 난리가 나버렸다.

    “오전동안 뿐이었지만, 소년점프의 판매량을 앞섰다고 하더라고요.”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직원들도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정말?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아까 얼핏 듣긴 했는데, 진짜였어?”

    “나도 영업부 쪽 얘기를 들었을 때 농담인줄 알았다니까. 일본 최고의 소년지인 소년점프를 출간당일 오전이긴 하지만, 판매량이 앞섰다는 게 말이 되질 않으니까. 물론, 우리 잡지가 100만부 이상 팔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상대는 소년점프라고.”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소년선데이를 이겼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데.”

    “소년선데이 발행부수가 얼마지?”

    “250만부 가까이 될걸요?”

    “소년점프는?”

    “400만부 넘고, 슬슬 500만부도 갈 거라던데.”

    “그러니까, 400만부의 초 괴물을 잠시지만 이겼다는 거네?”

    “그렇죠.”

    “히야, 이런 날이 다 오네.”

    “그러게요.”

    “역시 써니는 난 인물이긴 하다. 이름도 없던 그냥저냥 한 잡지를 이렇게까지 끌어올렸으니까.”

    “솔직히 전 존경하고 싶다니까요.”

    “나도. 실력 있는 사람은 존경해야지.”

    그렇게 모여 떠들고 있는데 누군가 한명이 급한 걸음으로 편집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서둘러 편집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 저 친구 출판부의 사사키 씨 아니야?”

    “네. 그러네요.”

    “저 사람 왜 저렇게 바쁘지?”

    “글쎄요? 혹시 반품 건으로 저러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렇게 말한 남자가 인상을 팍 썼다.

    그런데 잠시 후 사사키라 불린 사람이 다시 편집부를 빠져나갔다.

    모두가 그 모습을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곧바로 부편집장이 팀장들을 불러들인다.

    “아. 어째 불안하네.”

    “그러게.”

    그리고 곧장 팀장들 중 한명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설마, 반품이에요?”

    “이번엔 누군데요?”

    “전, 아니죠?”

    대부분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하자, 팀장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 반품?”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헛웃음을 짓고는 다시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좋은 소식.”

    “좋은 소식요?”

    “뭔데요?”

    “소년 히어로가 증쇄를 결정했단다.”

    “네? 증쇄요? 책 엊그제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

    “100만부 넘기지 않았어요?”

    “130만부였어. 그런데 그게 다 팔려버렸단다.”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진짜요?”

    “그래. 추가로 일단 50만부 더 증쇄하리고 결정했는데, 인쇄공장이 여유가 없어서, 너희들이 좀 도와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들을 순간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당장, 출판부로 10명이 지원 갈 거야.”

    “여기서 누가 가는데요?”

    “너희들은 전부. 그리고 몇 명 더 추가될 거야.”

    “아······.”

    “······.”

    모두의 얼굴이 똥 씹은 얼굴로 변한다.

    이제야 출판부 직원이 급한 걸음으로 달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던 것이다.

    “오늘 퇴근 못하는 거 아니야?”

    “아, 오늘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데.”

    “이건 금일봉. 일 끝나고 나면 소고기 먹으러 간다.”

    그 순간 모두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까짓것, 일하다 죽는 게 제 소원이었다니까요!”

    “이 한 목숨 불태워 볼랍니다!”

    “소고기는 어떤 걸로······.”

    순간 모두의 시선이 팀장에 쏠렸다.

    그러자 팀장이 입 꼬리를 쓱 올리며 말했다.

    “초고급!”

    “과로사가 제 꿈이었습니다!”

    “내가 평소에 얘기했지? 난 회사를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던질 수 있다고.”

    “나도!”

    소고기 소리를 들은 직원들이 모두 헛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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