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85화 (285/425)
  • 머신건 잭 (8)

    순간 두 사람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상상도 못한 장소에서 절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만난 덕분에.

    그것도 의외의 인물을 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몰려들고 있었다.

    “이번에 써니 신작인 머신건 잭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맞지? 진짜 잘 만들었다.”

    “그러게. 바느질도 좋고, 거친 느낌도 잘 만들었어.”

    “그런데 이름이 뭐였지?”

    “잭이랑 조크.”

    “맞다.”

    “뭔가 예고편에서 보던 거랑 느낌도 비슷하고.”

    “출판사에서 준비한 이벤트인가?”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 중 여자 한명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저기,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없자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때 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컨셉인가 봐. 그냥 배경으로 사진 찍어줄게.”

    “응. 좋아.”

    두 사람이 대치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여자가 손가락에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와 옷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한다.

    “와, 진짜 섬세하다. 나도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은데.”

    “근데, 이 사람들 정말로 안 움직이네.”

    “컨셉이라니까, 아마도 인형처럼 보이려고 하나봐.”

    “뭔가 재미있어 보여.”

    그렇게 한참동안을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들고 나서야, 굳었던 키도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니시다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 너는 여기 어쩐 일이냐?”

    그 순간 곁에 있던 여자가 움찔거리며 놀랐다.

    “어머나, 깜짝이야!”

    “이제 이벤트 끝났나보다.”

    “아쉬워.”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이 키도의 사나운 표정을 보며 움찔하더니 주변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니시다도 키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이야 말로 여긴 어쩐 일로.”

    “그야······.”

    “역시 코스프레가 취미······.”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있냐! 그저 집사람이 옷 만드는 게······.”

    “사모님이요?”

    “그래.”

    “그러니까, 사모님이 이런 옷을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는 겁니까?”

    “······그렇지.”

    그때 사람들 사이로 눈부시게 하얀 원피스와 하얀 리본이 달려있는 흰 비치 모자를 쓴 여자가 다가왔다.

    이런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 묘한 분위기에 주변 사람들도 알아서 길을 비키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니시다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니시다 씨. 여기서 뵙네요.”

    “어, 사모님! 안녕하세요.”

    다가온 여자가 키도 부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키도도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절대로 만날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그녀였기 때문에 더 놀란 것이다.

    그런 니시다를 보며 특유의 미소를 보이던 키도의 부인이 그의 옷을 기웃거렸다.

    “어머, 이거 굉장히 잘 만들어졌네요. 이거 마크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아뇨,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옷가게 장인들에게 직접 주문한 겁니다. 돈이 좀 많이 들었어요.”

    “어쩐지, 특유의 화려한 느낌을 잘 살렸다 싶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니시다의 옷을 만지작거리며 호기심을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헛기침을 했다.

    “크음, 뭐 집사람이 옷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음식 말고, 옷 만드는 것도 취미세요?”

    그 말에 키도부인이 손바닥을 딱 붙이며 말했다.

    “어머나, 저 원래 요리보다 코스프레용 옷 만드는 게 취미였답니다. 이이도 코미케에서 만났고.”

    처음 듣는 얘기에 깜짝 놀란 니시다가 키도를 돌아봤다.

    그러자 벌게진 얼굴로 시선을 돌린 키도가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했다.

    “내, 내가 얘기 안했었나?”

    “전혀요.”

    “하기야, 너하고는 별로 안 친했으니.”

    “친했어도 안했을 것 같은데.”

    “······.”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키도부인이 눈웃음을 치며 키도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다시 니시다를 보며 말했다.

    “이이를 처음 만났을 때, 오키타 선장님(우주전함 야마토의 선장)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어요. 흰 수염에 검은 피부가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하지만 제복이 너무 이상해서 제가 여러 곳을 고쳐주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정말 그때의 모습은 멋졌답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듯 시선이 먼 곳을 향해있다.

    그런 그녀의 행동 때문에 키도는 더 무안해 하며 얼굴을 돌린다.

    어쨌거나 키도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식으로 인연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보다 그 시절, 키도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역시 코스프레 취미는 있었던 모양이다.

    “취미가 맞네요. 코스프레.”

    “그때는 친구의 부탁으로······.”

    “지금은요?”

    “지금은 집사람의 부탁으로······.”

    “원래 하기는 싫었다?”

    그 말에 키도가 부인을 슬쩍 보더니 다시 시선을 피한다.

    “그런 건 아니고.”

    그 말에 니시다가 피식 웃었다.

    그런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지 곧바로 키도가 니시다를 쏘아보며 말했다.

    “너도 코스프레가 취미인 것처럼 보인다만.”

    “예전엔 그랬습니다만, 최근엔 아니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냐?”

    “당연히 지금의 전 써니 선생님의 팬이니까요. 실은 이전 작품들에 등장하는 옷들도 몇 벌 의뢰로 만들었고요.”

    그 말에 키도부인이 반갑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나, 저도 그런데.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옷은 다크 프린세스의 칼파나 복장이에요. 하지만, 모델이 없어서 그냥 집에 모셔두기만 하고 있답니다.”

    “칼파나 복장도요? 전 그것까지는 아직 의뢰를 못했습니다. 장인들도 쉽지 않다고 해서요.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어머, 아니에요. 어설프답니다.”

    그렇게 웃으며 말하던 키도부인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살짝 기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이렇게 두 사람만 있으니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에요.”

    “부족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음, 중요한 캐릭터 한명이 빠져 있잖아요.”

    머신건 잭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한명이 몽을 떠올린 키도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소. 몽이라는 캐릭터는 여자아이니까. 거기다 당신도 시간이 부족했으니.”

    “그래도 아쉬워요.”

    그렇게 말하던 키도부인이 멈칫했다.

    그들 쪽을 다가오는 익숙한 복장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머!”

    그 때문에 키도와 니시다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 끝엔 자그마한 덩치의 여자가 머신건 잭의 캐릭터인 몽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복장을 한 사람의 얼굴이다.

    “어? 써니?”

    “써, 써니 선생님.”

    “어머나!”

    세 사람이 제각각 놀라고 있었다.

    * * *

    “나, 정말로 일본에 온 거지?”

    공항 밖으로 나온 경희가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더니 곧장 감격한 얼굴로 물었다.

    “벌써 그거 몇 번째 묻는 건지 알고나 있냐?”

    그러자 경희가 내 등짝을 찰싹 때리며 웃었다.

    “아하하, 너무 좋으니까 그러지. 선희 너도 그렇지?”

    “······.”

    “그런데, 오늘 일본에서 하는 행사 그거. 이름이 뭐랬지?”

    “코믹마켓. 코미케라고 하기도 해.”

    “아, 맞다. 코믹마켓.”

    실은 휴가가 끝나고 신작인 머신건 잭을 작업하다가 문득 코미케가 열릴 때라는 것을 떠올리고 일본으로 온 것이다.

    이번엔 경희도 함께.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추억도 만들어 줄 겸해서.

    물론 머신건 잭의 데생원고 몇 화분을 미리 만들어 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선희는 경희에게 볼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뽀뽀를 받았고.

    아무튼 공항 입구에서 계속 펄쩍거리는 경희를 제지했다.

    “자자, 그만 떠들고 얼른 택시나 타자.”

    그렇게 말하며 택시를 잡아탔다.

    여전히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신기해하며 경희가 먼저 탔다.

    택시가 출발하고 나서 행사가 열리는 도쿄 주오 구의 도쿄 국제견본시 회장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지로와 만났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카시 씨.”

    “······.”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난 뒤 지로가 보자기로 쌓인 것은 내밀었다.

    “이건, 전에 써니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디자인으로 만든 옷입니다.”

    그 말에 경희가 펄쩍뛰며 좋아하더니 그것을 냅다 받아들었다.

    “이거, 진짜로 그거에요?”

    “네. 맞습니다. 특별히 도쿄에서 유명한 곳을 찾아가 직접 컬러를 비교하며 만든 겁니다.”

    그 말에 전시회장 주변을 둘러보던 경희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거 맞죠?”

    그곳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한눈에 봐도 만화 캐릭터의 복장, 즉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다.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 말을 들은 경희가 이번엔 선희를 붙잡고 막 흔들며 흥분해 소리쳤다.

    “나 어쩐지 TV에 나온 모델이 된 것 같아서 심장이 막 뛰어!”

    “······진정해.”

    “이거 화장실에 가서 갈아입으면 되는 거예요?”

    “아뇨, 탈의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어디, 어디에요?”

    “저쪽입니다.”

    “야야, 진정 좀 해라.”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경희가 우리에게 왔다.

    “어때?”

    옷을 입은 채로 한 바퀴 빙그르 돌았다.

    냉정하게 본다면 낡은 갈색의 군복을 연상케 하는 복장이지만, 이것도 엄연히 코스프레다.

    바로 머신건 잭에 나오는 몽의 복장인 것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옷과 어울리는 고글도 눈에 띈다.

    만화보다는 체형이 좀 더 크긴 해도, 원래 경희 본인을 기본으로 만든 모델이었으니 진짜 옷이 진짜 주인을 만난 것이다.

    어쨌건 그 덕분인지 옷은 확실히 어울리는 느낌이다.

    물론, 연재분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디테일까지 살린 덕분에 원작에 등장하는 옷보다 더 좋아 보인다.

    팔 주변에 만들어진 복잡한 문향이 더 그렇다.

    “무늬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지로가 웃으며 말했지만, 보나마나 그걸로 고생깨나 한 것 같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희는 만족한 표정으로 경희가 입고 있는 옷을 쳐다보고 있다.

    “어울려.”

    그런 선희의 말에 경희가 폴짝거리며 좋아한다.

    “그렇지? 네가 봐도 그렇지? 나 거울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다니까.”

    너무 좋아한다.

    그나저나 경희가 코스프레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면 선희도 가면을 쓰는 걸 좋아했었지.

    쌍둥이라 그런가, 이런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자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이나 하자. 그리고 선희는 이거.”

    따로 구해둔 뿔테안경이다. 물론 안경알은 없는 거.

    “왜?”

    “너도 이제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때 경희가 슬쩍 끼어들었다.

    “얼굴이 안 걸리려면 마스크랑 선글라스지.”

    “일단 마스크는 더워서 안 되고, 선글라스는 오히려 눈에 더 띈다.”

    “아, 그런가?”

    “아무튼 이걸로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 말에 선희가 뿔테 안경을 받아쓴다.

    “자, 그럼 가 볼까요?”

    *

    정말 놀랐다.

    설마 여기서 키도와 니시다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리고 키도의 부인 역시.

    “써니, 너냐?”

    “나 경희야, 경희.”

    “경이?”

    “경희!”

    “어머나, 너무 잘 어울려요.”

    경희의 모습을 본 키도 부인이 양손을 모은 채로 자신의 볼에 갖다 대고는 밝게 웃었다.

    그나저나 저런 동작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데 그게 의외로 어울린다는 게 함정.

    “그럼 써니는?”

    “저기 우리 오빠 뒤.”

    그 순간 우리를 쳐다보던 세 사람이 흠칫 놀란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여자에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아, 써니는 그쪽에 있었군.”

    “안경 하나로도 눈에 덜 띄는 느낌이네요.”

    무슨 클라크 켄트냐?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안경 하나로 완전히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는 생각 안했는데, 의외로 잘 먹힌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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