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건 잭 (7)
아직 연재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 일본 유명게임회사에서 머신건 잭의 만화를 게임화 하고 싶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기대감이 있는 건 아니다.
“스토리가 아직 공개된 것도 아닌데, 이상하군요.”
- 저희도 그 점이 의아해서 물어봤습니다만 역시 차기 게임 타이틀 중 하나로 계획만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찜 같은 거다.
뭐랄까, 유명세에 얹혀보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 일단 계약 후 스토리가 게임과 맞지 않거나 혹은 내용이 별로라 인기가 떨어진다면 계약이야 제작지연등을 이유로 철수할 수도 있는 거니까.
어쩌면, 젤다의 전설로 너무 대박을 쳐서,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일수도 있고.
결론은 너무 흥분할 만한 게 아니라는 거다.
- 그래서 일단은 선생님과 상의를 한 뒤 결정을 내릴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선생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뇨. 한참 연재중이면 모를까, 시작하기도 전에 게임 타이틀로 나가는 건 별로 바라지 않아요.”
사실, 게임으로 나와서 대박을 치면, 나름 만화책 판매에도 도움이야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좀 곤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 그렇다면, 일단 그 부분은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 아, 그리고 이번 신작홍보용 기사가 나가자마자 독자들도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연재가 시작되는 정확한 날짜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편집부로 꽤 많이 오고 있습니다. 일단 그 부분은 정해진 게 없다는 얘기를 해두고 있습니다.
“연재는 일단 잡지에 자리가 나는 대로 시작하시면 될 것 같네요.”
- 그럼 2주 동안은 신인작가 특별단편이 있으니까, 그 다음부터 제가 가지고 있는 원고부터 연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이며 지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뭔가가 귀 근처를 간지럽힌다.
뭔가 해서 돌아봤더니, 경희가 ‘무슨 통화를 하고 있나 궁금했는지 가까이 다가와 귀를 쫑긋 거리며 전화기에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다.
내가 슬쩍 물러났지만, 그래도 계속 다가와 귀를 기울인다.
- 텐겐 선생님?
“아, 네.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지로와의 통화를 끊고 나자 경희가 눈을 말똥거리며 물었다.
“게임은 뭔데? 혹시 오락실에 나오는 그거? 야잇! 야잇!”
오락실을 몇 번 가 봤는지 제법 익숙한 동작으로 손을 까닥거리는 흉내를 낸다.
전에 듣기론 ‘마계촌’이랑 ‘원더보이’라는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니, 그거 말고. 비디오 게임기.”
“비디오 게임기? 컴퓨터 말고?”
“텔레비전에 연결하는 게임기가 있어.”
경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때 실버가 넌지시 물었다.
“어느 회사?”
“닌텐도래.”
“오, 슈퍼마리오?”
“어. 역시 형은 알고 있네.”
“알지. 내가 슈퍼마리오랑 동키콩 고수거든.”
그렇게 말하며 꽤나 자랑스러워한다.
예전에도 오락실에서 신기록을 세웠다더니, 아마 그 게임인 모양이다.
“유명한 게임회사에서도 관심을 받을 만큼이라는 거군.”
“거절을 했지만.”
“그래.”
실버가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인다.
역시 휴가 후유증이 만만하지 않은 모양이겠지.
하긴, 실버 같은 표정은 다른 어시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휴가를 끝내고 와서 수다를 한참 떨더니, 이내 모두 피곤한지 축 늘어진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 * *
이글거리는 8월의 뜨거운 여름.
도쿄 국제견본시 회장.
이곳에서는 30회(C30) 여름 코믹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 든 이번 행사엔 예전에 비해 삼사라 관련 동인지와 다크 프린세스 코스프레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나 삼사라가 끝난 시점이라 그것을 아쉬워하는 삼사라연구회들이 모여 커다란 부스를 통합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곳엔 각종 동인지와 개인들이 만든 개러지 킷도 상당수가 판매를 위해 전시되고 있었다.
그런 통합부스 안에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번에 홍보기사로 나온 신작 ‘머신건 잭’의 잭과 몽, 그리고 조크의 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왜 이렇게 허술한 거야?”
잭의 복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투덜거리자, 곁에 있던 여자가 그의 머리통을 툭 쳤다.
“야, 홍보용 기사 나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래? 안 그래도 시간에 쫓겨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만들었구만.”
“아, 그러냐?”
“한번만 더 잔소리하면 콱 때려줄 거다.”
“미안.”
그렇게 말하며 잭의 복장이 웃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이더니 어물쩡거린다.
“왜? 머신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 뭐. 그건 아니고.”
사실, 옷보다 이게 더 어설프다.
그렇지만 눈이 퀭해있는 눈앞의 여자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 정도면 잘 만들었지.”
“당연하지. 이 정도 시간에 이만한 퀄리티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때 몽의 복장을 한 조그마한 체형의 여자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고글을 만지작거리며 여러 가지 포즈를 취했다.
“어때? 나?”
“엄청 귀여워.”
“그렇지? 나도 이거 너무 마음에 들어. 끝나고 나서 나에게 주면 안 돼?”
“죽을래?”
곧 조크의 복장을 한 남자도 등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다 좋은데, 한 가지가 좀.”
“뭔데?”
“얼굴.”
“젠장! 어쩔 수 없잖아. 조크는 너무 잘생겨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제대로 소화하긴 힘들어. 그나마 우리 중엔 내가 제일 나으니까.”
“에휴, 그건 그렇지.”
옷을 만들었던 여자가 한숨을 쉬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버럭 했다.
“그렇게 한숨 쉬면 우리가 더 비참해지잖아.”
“맞아! 우리는 모델이 아니니까.”
“누가 뭐래? 왜 단체로 난리야!”
“네가 너무 크게 한숨을 쉬니까 그러지.”
그렇게 투덜거리며 있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응? 무슨 일 있나?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저쪽.”
남자 하나가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들의 비명소리도 들려오자 모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그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뭐야, 아이돌 가수라도 온 건가?”
“에이, 그런 사람들이 여길 왜 오겠어.”
“그럼 저 반응은 뭔데?”
“그건 나도 모르지.”
그렇게 말하며 계속 쳐다보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얼핏 보이는 게 있다.
뭔가 화려한 복장.
뭔가 익숙한 디자인과 컬러다.
그리고 곧 조크의 복장을 한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어? 나랑 복장이 같네.”
“정말!”
“진짜다!”
그러다가 다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비슷하긴 한데, 전혀 다른 수준의 복장이야. 진짜 전문가가 만든 것 같아.”
그의 말처럼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화려한 조크의 복장을 똑같이 만든 코스프레였다.
“와! 진짜 조크다!”
“얼굴도 괜찮아. 잘 생겼어. 누구지? 배우인가?”
“고글을 써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배우는 아닌 것 같은데.”
“맞아. 배우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긴 하지. 그래도 복장은 진짜 엄청나다.”
“짧은 시간에 절대로 우리가 입은 거보다 더 잘 만들 수는 없다고 누가 그랬지?”
조크복장의 남자가 말하자 옷을 만든 여자가 인상을 팍 썼다.
“입기 싫으면 벗어!”
“아니, 누가 입기 싫데? 그냥 말이 그렇다고.”
“죽을래!”
“그나저나 저 남자 어째 얼굴이 익숙한데.”
그들 사이에 있던 남자 중 한명이 고글을 쓴 조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익숙한 인물이면 대부분 만화가잖아. 그런데 저런 얼굴의 남자가 있나?”
“······익숙해. 아주 익숙해.”
그러다가 이내 생각이 났는지 손바닥을 짝하고 쳤다.
“아, 맞다! 에스퍼 존, 니시다 선생님이야!”
“뭐? 진짜?!”
“어디, 어디. 에이, 설마.”
그러다 한 명이 헛소리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니시다 선생님이 얼마나 깐깐한 스타일인데, 전에 사인 받으러 갔을 때도 얼굴에서 냉기가 풀풀 흐르더라.”
“나도 그렇게 알고는 있는데······.”
“비슷한 사람이겠지.”
그 말에 처음 말을 꺼냈던 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던 것이다.
“그, 그런가?”
“당연하지!”
“그나저나 옷은 진짜 잘 만들었다. 전문가의 솜씨야.”
그 말에 모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코스프레 복장을 한 그들이 자신이 입은 옷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버럭 하며 소리쳤다.
“입기 싫으면 입지 마!”
*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리자 조크의 복장을 한 남자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일단 분위기를 보니 몰려든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눈치다.
하긴, 보통이라도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이 없으니, 이런 복장이라면 더더욱 알아차리기는 힘들 것이다.
니시다 유키.
에스퍼 존의 만화가였다.
그는 써니의 신작 만화가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잡지에 실리기 전에 컨셉용 아트 몇 장을 담당인 오오타케를 통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선생님, 지로 씨가 알면 저, 엄청나게 욕을 먹을지도 몰라요.’
‘담당을 위해 욕을 먹을 수도 있지. 그리고 덕분에 내가 더 원고를 열심히 한다면 좋은 거고.’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럼 저 얼굴 철판한번 깔아보죠.’
처음엔 반대하던 오오타케도 원고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에 나서준 덕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일찍 그림을 손에 넣은 니시다는 곧장 그것을 친분이 있는 수제옷가게 장인들 몇을 만나 조크의 옷 제작에 들어갔다.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옷이기도 했지만, 일단 자신의 체형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과 동시에 잭과 몽의 옷도 조만간 제작 의뢰를 할 예정이었다.
아주 오래전 동인지를 만들 때 이후로 처음 이런 복장을 하는 것이지만, 뭔가 기분이 새롭게 설렌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고.
역시 독보적인 완성도 때문에 계속 주목을 받는다.
“저기,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물론.”
“어머, 고마워요!”
여자들이 기뻐하며 같이 사진도 찍는다.
그도 여전히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느긋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맞은편 쪽에서 이곳처럼 사람이 몰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몰려있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곧 그들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커다란 덩치에 모자와 목 아래에 있는 구멍 뚫린 마스크, 그리고 낡았지만 멋들어진 롱자킷과 한쪽 손에 달려있는 금속성 물건.
바로 기관총이다.
“······!”
놀란 니시다가 그의 복장을 살폈다.
완벽한 잭의 복장이다.
만화책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완벽한 복장.
물론 덩치는 실제 잭에 비해선 조금 부실하지만, 그래도 덩치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그때 잭의 복장을 한 남자가 멈칫했다.
그리고 그의 눌러쓴 모자가 위로 올라간다. 덕분에 그의 얼굴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
“······!”
잭의 복장을 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니시다가 깜짝 놀랐다. 물론 상대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곧 입을 벌리고 있던 니시다가 잭의 옷을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키······도 선생님!”
“니, 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