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80화 (280/425)
  • 머신건 잭 (3)

    이대봉이 연식 눈알을 굴리며 있자, 모두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잠시 후.

    “뭐? 신작?!”

    이대봉이 깜짝 놀라며 묻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거기에 등장할 캐릭터인데, 실버 형의 의견을 따라서 추가할 캐릭터를 구상 중이었지. 그리고 그 캐릭터를 대충 만들어 봤는데.”

    “그게, 나와 비슷하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실버의 아이디어란 말이지.”

    “콕 찝어서 너라고는 안했다.”

    “뭐, 결론은 나라며.”

    “······.”

    “윤환이 너도 그 캐릭터가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니?”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이대봉의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미간을 찌푸린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다.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저 만화에 등장시킬 캐릭터일 뿐인데.”

    실버가 다시 끼어들자 이대봉이 그를 쏘아봤다.

    “야, 그래도 날 기반으로 만들겠다잖아. 기본 모델인 내가 고민하는 건 당연한 거지.”

    “네가 고민할게 뭐 있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머리만 끄덕이면 만사 오케이지.”

    “나의 분신 같은 캐릭터야. 그렇게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분신은 개뿔. 그리고 손 놓고 있지 않으면, 뭐. 네가 직접 만들기라도 하게?”

    그 말에 이대봉이 씨익 웃었다.

    “그럼 더 좋지만.”

    그렇게 말하며 날 슬쩍 바라보다가 내 표정을 보고는 시선을 피한다.

    내 표정을 심상치 않았던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살벌하게 쳐다보니?”

    그렇게 말하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뭔가를 생각했는지 이내 머리를 끄덕거렸다.

    “뭐, 대충 나 같은 캐릭터가 활약할 이야기라면 보나마나 명작이겠지?”

    “아직은 스토리가 만들어지진 않았는데.”

    그 말에 이대봉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설마 대략적인 것도?”

    “그래. 그냥 배경설정이랑 캐릭터 정도만. 그리고 방금 얘기했던 세 번째 캐릭터는 대봉이 형 스타일로.”

    “끄응, 스토리가 궁금했는데.”

    손톱을 깨물더니 선희자리에 그림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림들을 한 장씩 넘겨보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엄청 재밌겠다.”

    “스토리는 아직 이라니까.”

    “배경만 봐도 재밌겠네. 그냥 단순히 모험하는 이야기라도 재미있겠어.”

    “오빠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거 선희가 떠올린 거야?”

    그때 이대봉처럼 자신의 그림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선희가 머리를 쳐들었다.

    “아니. 오빠가 생각한 거. 나는 주문대로 그냥 그렸어.”

    “아, 역시. 상상은 윤환이가 한 거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내가 다 뿌듯하다.”

    그때 선희가 날 툭툭 건드렸다.

    “왜?”

    “이제 세 번째 캐릭터 그릴까?”

    그제야 떠오른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 참. 그래야지.”

    “어? 난 완전히 허락한 게 아닌데.”

    그때 잠자코 있던 실버가 이대봉의 목을 양팔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서서히 힘을 주어 목을 조인다.

    그 때문에 이대봉이 죽는다며 난리를 쳤다.

    “악! 캑캑! 뭐하는 거야!”

    “적당히 해라 망할 놈아.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내가 그냥 넘어가 줬지만, 이번엔 정말 안 되겠다. 넌 좀 맞아야 될 것 같다.”

    그렇게 말한 실버가 묘한 웃음을 보이자, 이대봉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크엑! 사, 살려줘! 유, 윤환아! 이놈이 날 죽이려 하고 있어!”

    하지만 난 못들은 채하며 선희에게 말했다.

    “일단 세 번째 캐릭터의 외형은······.”

    “끄엑, 윤환아!”

    “가만있어!”

    “사, 살려줘요! 실버 선장님.”

    “이미, 늦었다. 반란선원 제임스.”

    “악! 아아악!”

    그렇게 이대봉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에도 모두는 선희 주변에 모여 새로운 그림에 관심을 보일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

    세 번째 캐릭터는 이대봉을 기반으로 만들어서인지 외모도 많이 참고했다.

    일단 날씬한 체형에 인물은 반반한 스타일.

    하지만, 특유의 똘끼가 있는 캐릭터다보니 복장은 좀 눈에 띄는 스타일로 요란한 편이다.

    능력은 처음 구상대로 대화, 인맥, 지형에 밝고 상황파악이 빠르다는 것.

    그렇게 캐릭터 셋이 준비되자 그럭저럭 구색은 갖춰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캐릭터를 만들고 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매드맥스처럼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배경으로 무법천지의 인간들이 설치는 이야기로 예상이 됐는데, 그보다는 게임 적 느낌이 강해져버렸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영화가 아닌 만화의 장점인 제작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이상, 굳이 상상에 제한을 걸 필요는 없으니까.

    마법사가 나오는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위협적인 괴물, 즉 몬스터도 몇 가지 디자인을 주문했다.

    삼사라에선 별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다크 프린세스에선 종종 등장하는 게 몬스터인지라 선희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런 마계세상의 몬스터가 아니라, 실제 동물들을 기반으로 디자인하는 거라, 사막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들을 몬스터로 변형시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도마뱀, 전갈, 뱀 같은 것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은 디젤펑크와 스팀펑크를 적당히 섞은 설정으로 만들었다.

    적당한 수준의 총기류도 존재하고, 거대한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구형모델의 기차가 있다.

    거기다 드물긴 하지만, 촌스럽고 기계가 덕지덕지 붙은 디젤엔진의 배나 잠수함도 존재한다.

    그렇게 조금씩이지만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쨌건 이제는 대략적인 세계관도 만들었으니 이야기를 이끌어갈 주인공에게 목적을 부여해야만 한다.

    물론 주인공은 덩치 큰 사나이 잭이다.

    그리고 한쪽 팔이 기관총으로 되어있는데, 이 기관총은 사실, 시대를 초월한 무기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석궁 아니면, 미국 남북 전쟁 때나 썼을 법한 머스캣 소총, 나름 부호들이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리버액션 소총정도다.

    물론 기관총도 있는데, 그것도 비슷한 시절에 나온 것 같은 낡은 회전식 게틀링 기관총 정도가 다다.

    물론 드물게 구형 대포도 있다.

    이것들은 일단 남북전쟁에 관한 일본잡지를 부탁해 받은 것으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이렇게 설정하다보니, 지구와 비교하면 다른 과학에 비해 총기류의 발전이 좀 더딘 것 같기는 하다.

    이 때문에 이곳 세상에서는 잭이 사기캐나 다름없다.

    거기다 탄환의 경우도 특이한 것이 따로 탄피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냥 기본재료인 화약과 탄두만 따로 만들어 주입해주면 된다.

    한마디로 인간병기.

    그리고 오른손에 기관총을 포한 어깨와 한쪽 가슴까지가 기계로 만들어져 있다.

    설정 배경 상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과학력이 사용된 캐릭터다.

    덕분에 어지간한 군대와도 싸울 수 있는 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잭인 것이다.

    아무튼 남북 전쟁 때 사용되던 무기를 조사하기 위해 지로의 도움을 받았다. 그 덕분에 지로가 이렇게 묻기도 했다.

    - 차기작을 준비하십니까?

    “아, 뭐. 일단 구상중이긴 합니다.”

    - 1800년대 배경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무기를 디자인하는데 참고하려고요.”

    -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알려드릴게요. 그때 여유가 되시면 한번 들러주세요.”

    -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가서 뵙겠습니다.

    제목도 일단은 ‘머신건 잭’으로 정해두었다.

    스토리의 중심인물이고, 잭을 아는 사람들도 그를 ‘머신건 잭’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아서 그렇게 지었다.

    잭을 중심으로 있는 두 명은 기술자 캐릭터인 여자애 ‘몽’ 그리고 1차 대전쯤에 만들어졌을 법한 철갑으로 쌓인 탱크를 운전하는 남자 ‘조크’, 이렇게 세 명이 중심인물들이다.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부터 설정을 먼저 해 두고, 스토리는 이미 그들이 함께 팀을 이룬 시점부터 시작될 것이다.

    일단 여행을 잭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이상 목적은 잭과 관련이 있다.

    전쟁터에서 큰 부상으로 반쯤 죽어있던 기억을 가지고 다시 깨어났을 땐 자신의 몸 일부가 기계화가 되어있었고, 자신이 싸웠던 전쟁은 200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과연 그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잭이 그것을 알기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목적은 세상의 중심에 있는 도시다.

    그곳은 세상 어느 곳보다 발달한 과학을 자랑하는 도시.

    하지만,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도 없고, 그곳으로 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음······.

    대충 이야기의 형태가 잡혀가고 있다.

    그럼 이야기의 시작은 어떻게 할까?

    *

    넓고 넓은 모래사막.

    그곳을 털털거리며 이동하는 조그마한 오픈형의 낡은 탱크의 모습이 먼 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이내 탱크의 바퀴부분을 보여준다.

    몇 군데 나사가 빠졌는지 덜그럭 거리는 탱크의 표면.

    그리고 뭐가 즐거운지 룰루랄라 거리며 운전 중인 조크.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는 잭이 안경을 쓴 채로 자고 있다. 그 옆에선 우산을 쓰고 컵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고 있는 몽의 모습.

    그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들 주위로 몰려드는 낡은 오토바이 부대들.

    말이 오토바이지 그냥 바퀴 두 개 달린 철근덩어리처럼 볼품없다.

    하지만, 그곳에 타고 있는 것은 흉악한 헬멧이나 가면을 쓰고 있는 악당들.

    그런 그들을 느긋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몽이 빨대를 쪽쪽거리며 옆에 자고 있는 잭을 툭 건드린다.

    “잭, 날파리.”

    “······.”

    전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잭.

    그런 와중에도 오토바이 악당들이 몰려들고 있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잭.”

    몽이 한 번 더 툭 건드리자 잭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곧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드르륵 하며 갈긴다.

    그러자 다가오던 오토바이들이 우당탕하며 모래밭에 넘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서둘러 오토바이를 낑낑거리며 일으키고 먼저 일으켜 세운 놈들부터 도망치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며 탱크 벽에 손을 턱 올린 몽이 실실 웃었다.

    그때 운전 중이던 조크가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저놈들 바이크 몇 개 뺏으면 이거 고칠 수 있지 않니?”

    “흥. 저런 고물로는 고쳐봐야 다시 부서질 뿐이야. 도시로 가서 제대로 된 부품을 구입해야 한다고.”

    “아, 그런 거니?”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그러다가 조크가 탱크를 세운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보호 안경을 들어올렸다.

    “왜? 뭔데?”

    뒤에 있던 몽이 물었다.

    “응. 도시가 보인다.”

    그 말에 자고 있던 잭이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빨을 쓱 드러내며 웃었다.

    “모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볼 수 있겠군.”

    그러자 몽도 몸을 긁적이며 말했다.

    “난 목욕. 온몸이 땀에 쩔었다고.”

    그렇게 말한다.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조크가 다시 탱크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자, 저기까지만 더 버텨줘. 조라탱.”

    그렇게 탱크가 털털거리며 도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

    음.

    이정도면 초반부분은 대충 어떻게 진행이 될지 알만하다.

    아무튼 이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며 선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선희야 이제 콘티 시작하자.”

    그 말에 한참 낙서인지 일러스트인지를 그리던 선희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응. 알았어.”

    무표정한 얼굴 사이로 묘한 반가움이 보인다.

    모처럼 신작을 제대로 작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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