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75화 (275/425)
  • 어쩔 거냐? 실버 (1)

    삼사라의 연재가 드디어 끝이 났다.

    원고야 진작 넘겨주긴 했지만, 공식적인 마지막화가 소년 히어로에 나오며 마무리가 되었다.

    그동안 던졌던 떡밥은 다 마무리 했지만, 선희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냈다.

    완결을 축하하는 독자엽서가 많았는데, 그보다 더 많았던 건 역시 후편을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말이 좋아 기대한다는 거고, 대부분은 애원 아니면, 협박이다.

    -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 인정하지 못합니다. 당장 속편을 만드세요.

    - 유일하게 삼사라 보는 낙으로 사는 독자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렇게 연재를 끝내시려 하는 겁니까.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 인정 못합니다. 당장 그려주세요. 재미없어도 무조건 살게요. 그러니까 제발······.

    - 삼사를 계속 그리시던가, 아니면 절망의 페르소나를 멈추지 마시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하세요. 뭐 둘 다 계속 이어가시면 더 좋고요. 사랑합니다, 써니 선생님!

    - 지금 뭐하시는 거죠? 독자를 우롱하시나요? 이렇게 재미있는데 겨우 11권으로 끝내는 만화가가 어디 있어요? 기본 50권인 거 모르세요?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그리세요. 네? 제발요.

    - 어머니께서 위독하십니다. 유일하게 나을 수 있는 방법은 삼사라가 다시 연재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 가족을 위해서라도 꼭 좀 다시 연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 존경하는 써니, 텐겐 선생님. 속편 연재 부탁드립니다. 혹여 스토리는 있는데, 써니 선생님께서 그리기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가 그릴 테니, 스토리만이라도······. 참고로 전 얼마 전에 소년매거진 신인상에 도전했으나 아깝게 떨어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만간 붙을 예정이니 저를 믿으시고······.

    에휴.

    참 협박도 다양하다.

    어떤 건 엽서에 아기자기한 사탕이 붙어있기도 하고.

    내가 애냐? 사탕으로 달래게.

    하지만 이런 독자들은 귀엽기나 하지.

    좀 과격한 인간들은 엽서에 면도날이 붙어있기도 했단다.

    물론 그건 지로가 알아서 차단한 덕분에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거 뭐라고 하지?

    사생팬 맞나?

    아무튼 그런 종류는 아니겠지?

    뭐, 이럴 때 보면 화실이 일본에 없다는 게 다행한 일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다양한 반응을 보는 것도 특별한 기분임에는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삼사라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구나 싶기도 하고.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좀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당장 속편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기는 하는데.

    그동안 작품 하나를 수년 동안 한 작품만 연재하는 인기 만화가들이 왜 계속 딴 작품을 하려고하나 싶었더니, 이젠 이해가 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말하기엔 이미 파시엔시아라든가, 다크 프린세스, 그리고 조만간 끝나게 될 절망의 페르소나를 연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물론 절망의 페르소나의 경우엔 이미 콘티까지 다 끝나있는 상황이라 내 입장에서 끝난 거나 다름이 없다.

    아, 그리고 만화가들에게서 축전그림도 상당히 많이 받았다.

    내가 평소 즐겨보던 만화의 작가들도 많았지만, 생소한 이름의 신인도 많았다.

    그 사이엔 나름 인연이 있었던 토가시도 있고.

    아무튼, 덕분에 레이템급의 축전 그림을 복사품이 아닌 진품으로 잔뜩 받은 덕분에 덕후의 본능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다.

    모조리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었다.

    이미 화실 내엔 걸어둘 자리가 없어서, 2층에 따로 자리를 만들었을 정도다.

    이럴 때 보면 나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난 역시 덕후라는 걸.

    아무튼 요 며칠 동안 잡다한 일이 이렇게 많았다.

    그리고 한참 연재중인 절망의 페르소나는 두 권짜리 책이라는 것 때문에 처음부터 고급 책으로 출간했으면 어떻겠냐는 지로의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건 반대였다.

    “역시 만화책은 값싸게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양장본이 되는 건 후일에 봐서 결정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요. 아, 그리고 전권이 두 권이라 마무리 되면 단행본을 출간하는 건 어떠십니까?

    “그건 괜찮네요. 여러 권이면 몰라도 한꺼번에 하는 게 보는 사람에게나 일하는 사람에게나 모두 좋겠죠.”

    - 잘 알겠습니다.

    대충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어쨌거나 절망의 페르소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일본인들이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면 한다.

    미래에 일어날 불행을 이것으로 막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때 내 망상을 깨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촛불잔치를 벌여보자~ 촛불잔치야아아~! 촛불잔치를······.”

    아, 진짜.

    무슨 노래가 하루 종일 촛불잔치만 부르짖고 있는 건지.

    아까부터 경희는 귀에 자그마한 헤드폰을 끼고 허리엔 워크맨을 매단 채 들썩거리며 화실바닥을 밀대걸레로 닦고 있다.

    토요일 오후다보니 어시들도 각자 자리를 정리하며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

    선희는 그런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다.

    쟤는 그림이 일이자 취미인 애라 그림을 쉬라고 하기도 뭐하다. 거기다 그림을 그릴 때의 표정을 보면 절대로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없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있으니.

    그때 청소하던 경희가 허리에 차고 있던 워크맨을 플레이를 멈추더니 자그마한 헤드폰을 목에 걸고는 날 보며 말했다.

    “이 노래 정말 좋지?”

    “촛불잔치가 어쩌고 하는 그거?”

    “제목이 촛불잔치야. 이재성 꺼.”

    “제목도 촛불잔치냐.”

    이건 뭐, 제목을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겠다.

    “얼마 전에 나온 신곡인데, 우리 반 애들한테 최고 인기야.”

    “그렇구나.”

    “전주곡도 얼마나 좋은데.”

    “그렇구나.”

    영혼 없이 대답했는데도 혼자 신났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어시들이 킥킥거린다.

    “저도 그 노래 좋던데. 이재성은 대학가요제때부터 좋아했어요.”

    차미정이 끼어들자 경희가 화들짝 놀라며 좋아라한다.

    “악, 정말요? 언니.”

    “네. 이거 촛불잔치가 3집이거든요. 잠깐만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며 다른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도 꺼내 내민다.

    “여기 1, 2집도 있잖아요.”

    “와, 언니는 진짜 이재성 완전 팬인가 보다.”

    “그럼요.”

    그렇게 경희와 차미정이 떠들고 있는 사이 대부분의 어시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변 정리를 하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실버는 자신의 책상에 엎어진 채 축 늘어져 있다.

    “실버 형. 왜 그래? 어디 아파?”

    “······.”

    죽은 것처럼 말이 없다.

    자는 건가?

    나중에 알아서 일어나겠지 싶어서 몸을 돌리려는데, 실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쩌냐.”

    “······.”

    “아, 진짜 어쩌냐.”

    “뭐라고?”

    그런데 내 물음에도 여전히 머리를 책상위에 처박은 채 꿈쩍하지 않고 비슷한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귀찮은데, 어쩌지.”

    “왜 무슨 일 있어?”

    “······.”

    잠꼬댄가?

    아무튼 이 인간은 자면서도 투덜대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진짜로 몸을 돌리려는데, 그때 갑자기 실버가 몸을 번쩍 일으켰다.

    “앗, 깜짝이야!”

    “야, 윤환아.”

    “왜?”

    “개인면담.”

    “뭐?”

    그 순간 거대하고 묵직한 실버의 손이 내 팔을 덥석 잡더니 끌어당겼다.

    “어, 어.”

    무슨 크레인에 끌려가듯이 저항도 할 수 없이 홱 끌려갔다.

    그리고 2층에 있는 테라스로 가더니 그곳 의자에 털썩 앉았다.

    “너도 앉아라.”

    “뭐, 할 말이 있어?”

    실버가 붙들었던 오른쪽 팔이 저릿저릿해서 왼팔로 주무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표정이 왜 이래?

    나라 잃은 백성마냥.

    “내가 몇 살이지?”

    “뭐?”

    “내가 지금 몇 살이냐고.”

    “그걸 나한테 왜 물어? 설마 나이가 생각 안나?”

    혹시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말해보라고.”

    “······.”

    잠시 멍한 얼굴로 실버를 쳐다봤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스물아홉 아니야?”

    “그래, 내 나이 스물아홉. 아홉수다.”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쉰다.

    오늘따라 이상하네.

    평소엔 무뚝뚝해도 이런 모습은 정말 처음이다.

    “왜, 그래? 혹시 20대의 마지막 해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래? 내년이면 계란한판······.”

    “내가 바보냐?”

    “······뭐?”

    “이딴 20대가 저물든 말든 별로 관심 없어.”

    “그럼 왜 그래?”

    “젠장······.”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쓰더니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몸을 기대로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는다. 그리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올라오신다고 해서.”

    “어머니?”

    “어.”

    “아들이 어찌 사나 궁금해서 올라오시는 가보네. 그럼 한 이틀정도 쉴래?”

    “내가 이틀 동안이나 어머니랑 뭐 하라고.”

    “뭘 하긴, 서울구경 시켜드리는 거지. 고향이 부산이랬지?”

    “부산이긴 한데, 강서 쪽이라 시골이나 다름없어.”

    “아무튼 형이야 서울 지리에 빠삭하잖아. 이참에 제대로 구경시켜드리면 되지.”

    내 말에 한 번 더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혼자 오시는 거면,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긴 한데······.”

    “그럼 누가 같이 오는데? 형제 없다며. 친척?”

    “아니, 여자랑.”

    “여자? 누구 설마 여자친구?”

    “여자 친구는 무슨, 그냥 저번 추석에 한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여잔데······, 나랑 결혼하라고.”

    “정말!”

    이번에 내가 깜짝 놀랐다.

    실버랑 결혼할 여자라고?

    그럼 축하해 줘야 할 일이 아닌가?

    아니, 가만······. 그럼 정미자는?

    두 사람 사이가 좀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시 실버가 입을 열었다.

    “홀어머니에다 내가 형제가 없어서 어머니를 모셔야하는 건 맞는데. 어머니는 서울로 오기 싫다셔서, 그냥 돈만 보내고 있었는데. 저번 추석 때 갑자기 여자를 소개해줘서.”

    “그래서, 형은 어떤데?”

    “나는 관심 없어. 그런데 어머니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문제지.”

    덩치 큰 실버의 저런 모습은 처음보긴 하지만,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거기다 지금은 정미자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 부분도 묘하게 걸리는 것 같고.

    “하아, 어쩌다보니 벌써 서른이 눈앞에 있구나. 이럴 땐 대봉이 놈이 부럽다니까.”

    “뭘 그런 걸 부러워 해!”

    “······그래, 맞다. 이번 말은 내 실수야.”

    금방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이대봉은 사실, 부모와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는 얘기를 실버에게 들은 적이 있다.

    늘 바보처럼 시시덕거리고 있지만, 집안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어머니와 어쩌면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여자가 찾아온다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 언제 오시는데?”

    “몰라, 내가 쉬는 날에 맞추려면 토요일쯤일 것 같기는 한데.”

    “오늘 토요일인데.”

    “그래도 오늘은 아닐 거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

    그때였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 위층나무계단을 뛰어올라오는 모양이다.

    뭐, 대충 누군 지는 짐작이 가지만.

    “오빠!”

    경희다.

    “오빠!”

    소리를 지르며 2층 마루를 뛰다가 테라스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더니, 커다란 창을 휙 열어젖혔다.

    “오빠! 여기 있었네.”

    “또 무슨 일인데? 혹시 일본에서 전화 온 거야?”

    “아니, 오빠 말고, 실버오빠!”

    그 말에 실버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왜? 무슨 일인데.”

    “밑에 제임스 오빠가 왔는데.”

    “난 또 뭐라고. 대봉이 그놈이 날 왜 찾아?”

    “그게 아니고, 대봉이 오빠가 실버오빠 어머니를 모시고 왔어. 거기다 여자 한명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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