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나누면 반 (2)
“왜 그렇게 보세요?”
니시다의 물음에 키도가 멈칫했다.
“네 녀석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게 의외라서.”
“어? 제가 왜요? 저 제법 의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키도 선생님도 아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 말에 키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 날이 갈수록 뻔뻔해 지는 것 같은데.”
“왜 그러세요. 저 키도 선생님의 생각만큼 나쁜 놈은 아닙니다.”
그런 반응을 본 키도가 코웃음을 지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놈이 아닐지는 모르겠는데, 좀 이상하긴 하지.”
“아, 진짜.”
“아무튼 감탄했어. 욕을 나눠 듣겠다는 건 좋은 아이디어니까. 이참에 나도 그 일에 끼어 볼까?”
그 말에 니시다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정말이요?”
“그래. 너처럼 따로 단편을 만들 여력은 안 되고······. 이참에 진심의 남자 스토리도 꼬이고 있는데, 여기에 방사능 위험에 관한 에피소드를 넣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네? 진심의 남자에 갑자기 방사능 이야기가 왜 나와요? 너무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거 아닙니까? 작품을 그냥 내던지시려고요?”
“무슨 소리! 이제까지 진심의 남자는 직관적으로 써오고 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 말에 니시다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별다른 계획 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무슨 스토리를 그렇게 대충 하시는 겁니까?”
“대충이라니, 당장 떠오르는 가장 좋은 이야기, 따끈따끈한 그 이야기를 살리는 게 내 원래 스타일이라고. 어차피 계획해서 만들어봐야 재미도 없고.”
“······.”
“아무튼 네가 그 이야기를 해준 덕분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머릿속에서 펑펑 쏟아지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키도의 얼굴엔 아까와는 달리 생기가 넘쳐났다.
눈 밑에 있던 다크서클도 어느새 사라진 모습이다.
“들어보라고, 주인공 키시 야마토가 말이지, 체르노빌로 가는 거야.”
“네? 갑자기 왜요?”
“왜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지. 수많은 피해자가 생겼을 거 아니야.”
“너무 뜬금없는데요?”
“뭐, 아무튼 그 때문에 치바 료도 그를 따라 가는 거야.”
“······그, 그런 식으로 진행해도 되는 겁니까? 대상은 방사능이라고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밀어 봐야 그냥 죽는다니까요.”
“괜찮아, 괜찮아. 키시 야마토는 그리 쉽게 죽지 않으니까.”
“무슨 슈퍼맨입니까? 방사능에도 죽지 않게. 그거, 보호복을 입어도 위험하다고 하던데.”
“어떻게든 죽지 않게끔 이야기를 전개하면 되는 거지.”
키도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쳤다.
사실 진심의 남자도 열혈이라는 특징을 빼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억지스런 전개가 특징인 만화이니 이번 편이 크게 특별한 건 아니다.
이제까지 이야기도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수십 번은 죽었어야 할 상황에서도 멀쩡히 살아있는 캐릭터이니.
어떨 땐 톰과 제리만큼이나 끈질긴 생명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우크라이나 관련 자료는 구하셨어요?”
“아니,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
할 말을 잃은 니시다가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키도는 혼자 신나 있었다.
“흐음. 그래 좋았어.”
그렇게 말하더니 노트를 꺼내 열심히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의욕적으로 변한 키도를 보며 니시다가 피식 웃었다.
뭐, 어쨌건 이런 식으로 그를 참여시켰다는 것에 만족한 것이다.
그리고는 어시가 테이블에 올려둔 비닐봉투에서 캔 음료수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곧장 캔 뚜껑을 재거한 뒤 그것을 키도의 책상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글을 쓰던 키도가 반사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고는 입에 털어 넣는다.
그때 어시 중 한명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어! 서, 선생님! 그거!”
그 순간 음료수를 내려놓던 키도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는 아직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던 음료수를 보며 인상을 팍 썼다.
“이, 이런 망할! 너 이 자식!”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니시다를 노려봤다.
“응? 왜요?”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니시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키도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러더니 서둘러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둘러 화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무슨 상황이냐며 어시들을 돌아보자, 모두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어시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지금 키도 선생님 탄산음료 드시면 설사를 하시거든요.”
“진짜요?”
“네. 사모님께서 해주시는 음식을 하루만 드시지 못해도 저러셔서······.”
“······.”
* * *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 손오공을 인조인간 8호가 구해줬어. 화이트장군은 이 못된 녀석! 근데 인조인간 얘 귀엽네.”
경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소년점프 최신호를 뒤적거리며 실실 웃고 있다.
말하는 걸 보니, 드래곤볼인 모양인데.
내용은 레드리본 군대와 첫 싸움 이야기가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아무튼 모두가 퇴근한 시간이라 화실은 한산했고, 선희와 경희,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오빠, 방금 통화 토리야마 선생님?”
“어.”
“뭐라셔?”
“아, 단편 때문에.”
“단편? 지금 연재중인데, 왜? 드래곤볼 연재가 끝나?”
“아니, 그건 아니고. 조만간 동료들이랑 단편을 하나씩 하기로 하셨대.”
중요한 단편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구체적인 건 모른다.
뭐, 내게 그 내용을 꼭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무슨 이벤트 있어?”
“글쎄, 난 모르겠는데. 뭐, 슈에이샤 계열에서 하는 이벤트 인 모양이지.”
“아.”
머리를 끄덕인 경희가 곧 다시 소년점프를 뒤적거린다.
그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내가 받을게.”
그렇게 말한 경희가 전화기로 달려간다.
“여보세요.”
- ······.
“아, 키도 오빠! 오랜만이네.”
- ······.
“요즘 시험 때문에 바쁘긴 하지. 그나저나 오빠 요즘 성적이 많이 떨어졌던데, 좀 열심히 하지.”
- ······!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경희가 실실거리며 웃는다.
“알았어, 알았어. 오빠 바꿔줄게.”
그렇게 말하더니 경희가 날 쳐다본다.
“오빠, 키도 오빠에게서 전화.”
전화기를 건네받은 내가 입을 열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 하하하, 나다 키도 형님.
“어. 오랜만이야 형.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
- 며칠 전에 니시다가 찾아왔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시작하더니 그와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니시다가 했다는 말의 내용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뭐? 방사능 관련 단편?”
방사능 관련 단편을 만들겠다니.
그것도 내가 먹을 욕을 조금 나누겠다는 의도로.
최근 에스퍼 존이 앙케이트에서 삼사라 다음인 3위에 안착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삼사라가 마무리되면 2위로 올라설 것이고, 절망의 페르소나까지 끝난다면 단독 1위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참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뭐 여러 단체에서 공격하고 있다고는 해도 솔직히 여기 한국에서 그런 것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도 별다르게 힘들다거나 하는 건 없는데, 그래도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니까 고맙기는 하다.
- 그래. 그 녀석 요즘 순위가 올라가더니 철도 한 단계 올라간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며 웃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래서 나도 비슷하게나마 참여하려고.
“형이 단편을?”
- 아니, 단편은 그렇고, 그냥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볼까 해서.
“새로운 에피소드? 진심의 남자 스토리에 방사능 관련 에피소드를 넣겠다고?”
- 그렇지. 니시다 덕분이긴 하지만, 재미난 에피소드가 떠올랐거든.
“하지만, 굳이 형까지 그런 에피소드를 만들 필요가 있나?”
- 꼭 너 때문만은 아니니까,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부담스럽네.
- 그런데, 말이야. 재밌는 게······.
“······?”
- 니시다가 시작한 이 단편을 다른 만화가들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만화가들도?”
- 그래. 듣기론 소년매거진이나 소년점프 쪽에서도 무슨 단편 이벤트를 시작한 모양이던데.
그 순간 아까 토리야마 아키라랑 통화한 내용이 떠올랐다.
그도 만화가 여러 명이 단편을 만들어 그것들을 이벤트로 잡지 하나를 만들어 싣는다고 했었지. 그런데 설마 그게 그건가?
“형은 어떻게 알아?”
- 니시다 그 녀석이 알려줬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만화가들을 얼마 전에 만난모양이더라고. 거기서 이번 체르노빌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만화가들이 나서야한다고 했다나 뭐라나. 물론 결과적으론 너에게 쏟아질 화살을 분산하겠다는 심보겠지만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 뭐, 그렇게 시작한 것이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고. 하여튼 그 녀석, 너랑 써니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보다 더 나선다니까.
* * *
편집부 직원 중 한명이 에스퍼 존의 담당인 오오타게에게 물었다.
“이봐 오오타케. 니시다 선생님 단편 정말 괜찮은 거야?”
이번 니시다의 단편이 나온다는 얘기는 진작 편집부내에 퍼져있었다.
편집장에게 단편을 허락 받은 뒤, 완성된 원고를 받아온 참이었다.
“네. 니시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에스퍼 존이 아닌 다른 만화를 그리는 거니까, 담당으로 응원 해야죠.”
“하지만, 방사능에 관한 이야기라고. 이거, 시끄러울 수 있을 텐데.”
“뭐, 써니 선생님도 하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그 때문에 니시다 선생님도 하신 거고.”
그 말에 놀란 표정을 지은 직원이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저기,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건데 말이야. 니시다 선생님이 써니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설마······.”
“그건 맞는데, 정확하겐 써니 선생님보다는 텐겐 선생님을 좋아하세요.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존경한다는 의미고.”
“아, 그런 거였어?”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실망했다는 그런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본 오오타게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오오타케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직원은 헛기침을 했다.
“아, 참. 영업부에 가봐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가방을 챙겨들고는 편집부를 나섰다.
그런 그를 슬쩍 보던 오오타케가 곧장 원고를 꺼냈다.
봉투가 테이프로 봉인되어 있다.
담당으로서 콘티를 보지 못한 최초의 원고.
자신도 단편의 내용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절망의 페르소나에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다는 니시다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테이프를 뜯어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원고를 조심스럽게 꺼내 한 장씩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에스퍼 존의 작가답게 내용은 SF로 보인다.
그리고 본 내용은······.
지구가 온통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먼 미래의 사회.
일본부터 시작된 오염이 결국 다른 나라들로 번지고, 그동안 소련과 미국에서 폐기한 핵폭탄의 우라늄까지 외부로 노출되는 바람에 이제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는 내용.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이 지구를 탈출하기까지의 내용을 다룬 단편이었다.
그런데, 남은 인간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추한 욕심으로 결국 모두 멸망을 해버린다는 꿈도 희망도 없는 내용이다.
“······이거 괜찮은 건가?”
모두 읽은 오오타케가 멍한 표정으로 원고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