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72화 (272/425)
  • 욕은 나누면 반 (1)

    팀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로는 여전히 식자를 부지런히 붙이며 조용하게 말했다.

    “부패한 정부라는 설정이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부패해도 국민을 죄다 위험에 빠트린다니 말이 안 되잖아.”

    “의외로 이런 정치인들 많아요. 자신의 권력만 유지된다면 미친 짓도 결코 마다하지 않는.”

    지로의 말에 팀장이 인상을 구긴다.

    “그래도 이건 좀······.”

    “저도 이 장면은 좀 불편하긴 하더군요.”

    “그렇지?”

    “네. 하지만 뭐랄까, 이야기 진행상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서.”

    “하긴, 나도 요즘 이거 읽는 동안 진짜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싶기는 하더라. 체르노빌사고 같은 게 정말로 일본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진짜 최악이잖아. 솔직히 만화 속에서 말한 정도의 피해라면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특히나 일본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다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때와는 전혀 다른 수준일거야. 애초에 그런 일이 생기면 죽음의 땅으로 변할 테고, 결국 그곳을 중심으로 일본이 남북으로 나뉘게 될 테니까.”

    “······.”

    “그렇게 되면 경제고 뭐고 엉망이 되겠지.”

    그렇게 말하더니 양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만화일 뿐인데, 너무 심각해서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어쨌거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건 아니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네.”

    그 말을 들은 지로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왜?”

    “아, 글쎄요. 팀장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든 생각이긴 한데.”

    “······?”

    “어쩌면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로 정치인들이 이러지 않고 국민을 우선 순으로 생각 해줄까 싶어서요.”

    “······.”

    잠시 말이 없던 팀장이 묘한 표정이 되었다.

    “글쎄······. 별로 그럴 것······.”

    그렇게 말하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설마.”

    그 말에 지로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제가 너무 나갔나봅니다.”

    “그래, 너무 나간거야.”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아카기 선배!”

    모모코가 머리를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묘하게 흥분한 표정이다.

    “무슨 일인데?”

    “전화에요, 전화. 방송국에서 온.”

    “방송국?”

    고개를 갸웃거린 지로가 작업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원고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어. 내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갔다 오라고.”

    팀장이 손을 휘적거리며 말하자 지로가 서둘러 모모코를 지나쳐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모모코는 곧장 지로를 따라가려다가 멈칫하더니 회의실 실내를 바라봤다.

    “왜?”

    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모모코가 배시시 웃었다.

    “저기, 그거요.”

    “이거? 원고?”

    “네. 그거, 절망의 페르소나 맞죠?”

    “그런데? 왜?”

    “그거 좀 봐도 되죠?”

    모모코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팀장이 묘한 눈빛이 되었다가 곧 미간을 좁혔다.

    “아카기 허락은 받았고?”

    “저, 그건 아니지만.”

    “미안한데. 그럼 곤란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아카기 선배의 일을 도와드리게 될 건데도요?”

    그 말에 팀장이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미소 지었다.

    “그럼 내일 아카기에게 물어보든가.”

    그 말에 모모코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자 그 광경을 보던 팀장이 히죽 웃었다.

    “예쁘긴 한데······. 아카기가 피곤하겠다.”

    전화를 받은 지로가 입을 열었다.

    “방송 출연요?”

    - 네. 요즘 ‘절망의 페르소나’가 관심을 많이 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책 소개도 할 겸, 작가님을 꼭 출연시키고 싶은데. 어떠세요?

    “죄송하지만, 그건 좀 곤란한데요.”

    - 네? 왜요? 만화책이나 출판사 홍보에도 도움이 될 텐데요.

    “작가님이 원하시지 않으셔서요. 그래도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 저, 저기······.

    전화를 끊고 나자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카기 씨. 방송국 출연 섭외전화였어?”

    “네. 뭐.”

    “TV방송에 나오면 엄청나게 홍보도 될 텐데. 왜 거절해? 정말 써니 선생님이 싫대?”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럼 왜?”

    “지금은 두 분이 일본에 오시는 게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서요. 아무래도 요즘 이 만화 때문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고.”

    “아.”

    그때 여자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방송국에 출연하면 써니 선생님뿐만 아니라, 출판사에게도 도움이 되잖아요. 너무 아쉬워요.”

    언제 왔는지 모모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출판사에게 도움이 되자고 두 분 선생님에게 폐를 끼칠 순 없어. 그리고 편집장님도 그런 건 피하라고 하셨고.”

    “에이, 그래도 우리는 출판사 직원인데, 우선순위는 다르죠. 담당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고.”

    그런 모모코의 말에 지로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미안한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내 일을 돕겠다면, 그냥 혼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왜요?”

    모모코의 질문에 지로는 대답 없이 그녀를 지나쳐 회의실로 돌아갔다.

    그런 그를 보던 모모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른 직원들을 돌아봤다.

    그러자 모두가 모모코의 시선을 피하며 자신들의 일을 시작했다.

    그때 편집부 내에서 커피를 나르고 있던 미치코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갑자기 모모코가 그녀를 쏘아보더니 곧장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한 미치코가 어리둥절해 하자 근처에 있던 남자직원 한명이 그녀에게 뭔가를 소곤거렸다.

    그러자 미치코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눈이 초승달로 변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쟁반을 들고 모모코의 자리로 다가갔다.

    “이즈미 씨도 커피 드려요?”

    싱글거리며 묻자 모모코가 인상을 팍 썼다.

    “됐거든요!”

    “그럼, 우롱차라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요!”

    “아, 그렇구나.”

    그렇게 말한 미치코가 다른 직원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구 또 커피 타다 드려요?”

    “나!”

    “나도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미치코가 발걸음에 리듬을 실으며 총총 뛰듯이 다용도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모모코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정말, 짜증나.”

    * * *

    타앙!

    총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의원님!”

    남자의 주위로 검은 복장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쓰러진 남자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 사이로 측근으로 보이는 남자 몇이 다가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빨리! 구급차를 불러! 어서!”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테러다! 테러야! 테러범 미야기가 나타났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조만간 벌어질 중의원 선거를 위해 유세 중이던 제1야당인 ‘국민자유당’의 대표가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던 사람으로 그가 이끄는 국민자유당의 의석도 90석 이상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방송은 일제히 이번 테러범은 그 유명한 ‘미야기 신테루’라고 밝혔고, 경시청에서도 그를 반드시 잡겠다는 기자회견까지 열리며 일본열도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지하도 안.

    그곳에 있던 몇 명의 남자 중 하나가 말했다.

    “또 자네가 지목되었군.”

    그 말에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피식 웃었다.

    “뭐, 어차피 하나 정도 더 얹어진다고 달라질건 없지.”

    “이번엔 좀 다른 분위기야. 아예 작정한 분위기라고.”

    “상관없어. 모두에게 진실만 알릴 수 있다면, 감옥에서 영원히 썩든, 사형당하든.”

    “······.”

    그때 다른 남자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저거 자작극 아닐까요? 여당 놈들에겐 솔직히 위협적인 사람이었으니 이참에 제거해버리고 미야기 씨에게 뒤집어씌운 것 같은데.”

    “미야기 혼자가 아니야. 우리 모두지. 이름만 미야기라고 할뿐 실은 우리 전체를 잡겠다는 수작이라고.”

    “······아무튼 이렇게 되면 활동 폭이 더 줄어들게 되어서 방송국에 침입하는 것도 쉽지 않겠어요.”

    “영상은 제대로 보관하고 있겠지?”

    “그럼요. 여기 이렇게······.”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방을 들어 올리려 하던 그때였다.

    삑삑삑.

    “젠장, 누군가 침입했어!”

    - To Be Continued -

    “와, 감질 맛나게. 이렇게 또 끝나네.”

    만화책을 보던 마츠다가 인상을 팍 쓰며 투덜거렸다.

    그때 주변에 있던 다른 어시들이 낄낄거렸다.

    “진짜, 이번 써니 선생님 작품은 장난 아니게 재밌다니까요.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나기 전까진 눈을 뗄 수가 없어.”

    “야야, 그래도 키도 선생님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마. 안 그래도 요즘 슬럼프신데.”

    “그래야죠. 이번 앙케이트에서 5위까지 밀리셔서 신경이 날카로우실 테니까요.”

    “맞아. 니시다 선생님한테만 밀려도 난리신 분인데. 지금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분위기잖아.”

    “아무튼 화실에선 어지간하면 다른 만화 보는 모습 보이지 말라고. 아무리 써니 선생님 작품이라도 말이야.”

    “그래야죠.”

    “알겠어요.”

    어시들이 그렇게 떠들던 그때 퀭한 얼굴의 키도가 화실로 들어왔다.

    화장실로 갔던 사람이 기를 죄다 뺏긴 몰골로 들어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어시들이 화들짝 놀라며 책상에 머리를 처박았다.

    “끄응. 이러다 말라 죽겠네. 설사가 멈추지를 않아. 이러니까 컨디션도 엉망이고.”

    그 모습을 힐끔 거리던 어시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모님이 빨리 돌아오셔야 될 텐데요.”

    “저기, 전화라도 걸어 보시는 게······.”

    “됐어.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지내고 있을 텐데, 내가 괜히 전화하면 불편해서 금방 돌아올 거야.”

    “그래도 사모님이 안 계시니까, 선생님이 금방······.”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어시 한명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저, 저기. 니시다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는데요.”

    “뭐?”

    키도가 눈을 부릅뜨며 말하는데, 그때 니시다가 화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양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키도 선생님, 저 왔습니다.”

    “이 바쁜 시간에 자네는 왜 온 거야.”

    “별로 바빠 보이지는 않는데요.”

    “시비 걸려고 온 건가?”

    그 말에 니시다가 웃었다.

    “시비는요. 요즘 키도 선생님 컨디션이 안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왔는데.”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든 봉지를 들어 보인다.

    그때 어시 한명이 다가가자 그에게 봉지를 주고는 곧장 소파에 앉았다.

    편안해 보이는 니시다의 표정을 보니 키도의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좋은 거는 잘 먹을 테니, 그만 가봐.”

    “에이, 너무 야박하시네. 모처럼 왔는데 얘기나 하고 갈게요.”

    “바쁘다고 방금 말했는데.”

    “잠시만 있으면 된다니까요.”

    “······.”

    키도의 표정을 살피던 니시다가 곧 입을 열었다.

    “요즘 그거 보시죠? 절망의 페르소나.”

    “당연하지. 내 동생 작품을 형이 안볼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 작품 때문에 요즘 많은 단체들에서 시끄럽잖아요.”

    “늘 있어왔던 일인데 새삼스럽긴.”

    “그래도 써니 선생님 혼자만 집중으로 공격당하니까, 좀 그렇잖아요.”

    그 말에 키도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데?”

    “저도 이번에 방사능 위험에 관한 단편을 한번 만들어 볼까해서요. 이번 기회에 그 욕 저도 좀 나눠서 듣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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