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71화 (271/425)

이렇게 막장일리 없다 (3)

이대봉의 말이 끝나자 박상식이 다시 내게 물었다.

“이건 뭐 원자폭탄보다 더 나쁜 거 아니야?”

“어떤 면에서는 더 나쁘지 인근지역을 완전히 오염시키면 몇 백 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테니까.”

“······.”

박상식이 말을 잇지 못하자 이번에도 다시 이대봉이 끼어들었다.

“그럼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니.”

“물어봐.”

“절망의 페르소나를 보니까, 과거에 있었던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었다고 하던데.”

“맞아.”

“내가 알기론 일본은 건물을 지을 때 기본이 내진설계야. 그런 곳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금세 파괴되고 그러진 않을 거 아냐. 물론 해일도 덮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방비가 되어있을 것 같은데. 어이없이 당했다는 게 내 상식으론 납득이 되지 않는데.”

이대봉의 말에 실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만화에 나오는 설정을 일일이 물고 늘어지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될 것 같냐. 당장 중원요리왕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천지면서.”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리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 나는 원래 중원판타지 만화고, 절망의 페르소나는 현실적인 만화니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 누가 얘네 들을 지적할 수 있겠냐? 지적 할 때마다 ‘너는 저렇게 만들 수 있냐?’라고 할 거야?”

“억지를 부리지 말라는 말이다. 멍청한 놈아. 그리고 이 만화는 현실적이라고 표방한 적 없어. 일일이 따지지 마!”

“뭐, 멍청! 이런 해적 불량배가!”

그때 내가 입을 열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는 맞아.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고 생각해.”

내 말에 두사람이 멈칫했다.

“······.”

“거봐. 내말이 맞잖아.”

이대봉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머리를 추켜세운다.

“원자력발전소는 오래 사용할 경우 노후화가 되면 이런저런 허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래서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지. 만화 속 원전도 바로 그런 케이스고. 또 다른 문제는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듣고 보니 말 되네.”

이번엔 박상식이 말했다.

“2011년 정도면 원자력발전소가 아닌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어차피 30년 정도면 석유도 바닥날 텐데. 미래소년 코난처럼 태양에너지라든가, 혹은 혁명적인 에너지가 개발될지도 모르고.”

TV에서도 저런 이야기를 하길래, 미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나로썬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러진 않을 거야. 그리고 석유는······, 음. 아니야. 지금 것을 대체할 에너지가 그렇게 빨리 개발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애초에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현재 사용 중인 것들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게 더 쉽기도 하니까.”

그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묘하게 설득력 있네. 솔직히 나도 미래에 뭐 차가 날라 다닌다거나, 화성에 도시가 건설된다는 건 좀 어렵다고 본다. 미국이 달에 간 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얼마 전에 우주왕복선 폭발사건이 생겼잖아. 아마도 지금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

이대봉이 실실 웃으며 가볍게 말하지만, 실제로 대부분 맞는 말이다.

확실히 재능만으로 본다면 이대봉은 대단한 인간이다.

물론 저런 재능을 썩히고 한량처럼 사는 게 문제지만.

“어쨌거나, 너 답네. 이런 세세한 것까지 만들어 뒀다니. 하긴, 전문가들까지 검증을 할 정도였으니 오죽 꼼꼼하게 했겠니. 역시 우리 윤환이라니까.”

“우리 윤환이는 좀 빼지.”

그때 거실 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오셨다.

양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점심찬거리 용으로 사온 식재료일 것이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유, 우리 대봉 씨네. 오랜만이야.”

“제임스라니까요, 제임스.”

“아, 그래 맞아. 만날 까먹어서, 미안해.”

“오늘은 제가 요리를 좀 도와드릴까요?”

“그럼 나야 좋지. 우리 대봉, 아니 젬스 씨는 요리도 잘하잖아.”

“젬스가 아니라, 제임스요.”

“알았어, 알았어. 젬스.”

“에휴.”

*

며칠 후.

“여엉차!”

커다란 가방을 낑낑대며 힘들게 들고 들어온 미치코가 거실에 턱하니 내려놓았다.

“어머나, 그게 다 뭐예요?”

박소미가 놀란 눈으로 묻자 미치코가 웃으며 어색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책이랑, 선무르, 그리고 편지 이무니다.”

“와, 엄청 많은가봐요.”

“조무 히무 드렀스무니다.”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뒤적거리며 안에 든 것을 꺼내놓는다.

미치코가 꺼낸 책은······, 삼사라 마지막 단행본이다.

대충 스무 권정도.

아직 연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이벤트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따로 제작한 책이라고 한다.

바로 사인을 해서 선물로 줄 책들인 것이다.

물론 표지도 금박을 입혀 고급화 시켰고, 소량만 찍은 책이라 아주 특별해서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편지는 복사된 것인데, 이번 결말 예측 이벤트에 보내진 독자들의 것들이다.

당연히, 정확히 맞춘 12명의 것이고.

그리고 선물은 이벤트에 나온 것들인데, 신형 워크맨이 여러 개다.

“화실에 계신 분들을 위해 저희가 따로 준비한 겁니다.”

워크맨을 본 어시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런 그들에게 미치코가 워크맨을 하나씩 나눠주자 대부분 감격한 모습이다. 물론 실버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쌍둥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때 주기위해 따로 책상서랍에 넣어두었다.

“이번엔 편집부가 무리를 했네요.”

“아, 편집부가 아니라 회사에서 주는 겁니다.”

“회사에서요?”

“네.”

아, 그러고 보니 미치코가 출판사 사장님의 조카라고 했었지?

어쩌면 그녀의 입김이 작용했을지도.

“왜, 그렇게 보세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너무 빤히 쳐다본 모양이다.

“역시, 선생님도 미인을 알아보시고······.”

“아닙니다.”

“아니구나.”

그렇게 말하며 미치코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나는 먼저 이번 이벤트에 보냈다는 편지부터 확인해봤다.

얼마나 비슷한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것들을 읽어보며 상당히 놀랐다.

생각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제대로 예측했다는 것과 함께, 굉장히 괜찮은 아이디어가 포함된 것도 있어서, 오히려 내가 만든 결론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도 있다.

물론 선희의 아이디어인 후편을 기대하게 하는 부분은 대부분 예측하진 못했지만, 기본적인 건 결말부분이 굉장히 유사했다.

생각보다 재능 있는 사람은 과거에도 이렇게 많았구나.

이건 나중에 선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로 보여줘야지.

* * *

“아카기 선배.”

미치코가 다가와 말하자, 지로가 머리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어? 카와다. 어쩐 일이야?”

“저 원고 가져왔거든요.”

“아, 그렇지.”

지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미치코가 건넨 원고를 받아들었다.

“요즘 선배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지. 인기가 많은 작품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좀 쉬엄쉬엄해요. 그러다 쓰러지겠어요. 그나저나 제가 계속 도와드려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내일부터 신입이 내 일을 도울 테니까.”

“신입이요? 누구요?”

미치코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지로가 옆으로 턱짓 했다.

“저기, 쟤. 여기로 오는.”

지로가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보자,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하얀 블라우스 차림의 여자가 다가온다.

얼핏 봐도 미치코보다 큰 키에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저 여자가 신입이에요?”

“응. 며칠 전에 들어왔는데, 편집장님이 내일을 도우라고 명령하신 모양이야.”

“······.”

그때 여자신입이 다가오더니 미치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타부서에서 오셨나요?”

“핑크걸에서 온 친구야.”

지로의 대답에 신입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 핑크걸.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묘하게 경계하는 시선으로 물었다.

“아카기 선배, 심부름 때문에요.”

“어머, 타부서에서 왜요?”

그때 지로가 머리를 들지 않은 채로 미치코 대신 대답했다.

“아, 예전에 여기에서 일했는데, 내가 바빠서 가끔 도와주고 있거든.”

“아, 그러시구나.”

그렇게 말하더니 싱긋 웃었다.

“앞으론 잘 부탁드려요. 이즈미 모모코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아카기 선배를 곁에서 도울 거예요.”

묘한 톤으로 ‘곁에서’라는 말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미치코도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카와다 미치코에요. 아카기 선배 대신, 한국에 대신 외근을 가고 있어요. 너무 바쁘시니까.”

“저는 그럼 선배 곁에서 도와드릴 테니, 외근은 잘 부탁드릴게요.”

“······.”

그런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곳에서 묘하게 불꽃이 튄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로는 미치코에게서 받은 원고를 가지고 회의실로 향했다.

“선배, 제가 도와드릴까요?”

모모코가 지로에게 따라붙으며 말했다.

“아니, 됐어. 넌 내일부터 도와주면 돼.”

“괜찮아요.”

“아니, 이건 중요한 원고라서, 혼자 해야 되니까.”

“······네.”

지로가 원고를 들고 가자, 다시 두 여자의 시선이 부딪친다.

회의실로 들어간 지로가 원고를 확인하며 미리 프린트 해둔 식자용지 뒷면에 접착 스프레이를 뿌려 하나하나 잘라 붙이기 시작했다.

그때 회의실문이 열리더니 팀장이 들어왔다.

“와, 눈빛들 장난 아닌데.”

“무슨 소리에요?”

“쟤들 말이야, 쟤들.”

“누구요?”

“신입 말이야. 신입. 이름이 이즈미라고 했던가? 걔랑 카와다. 쟤네들 살기가 엄청나.”

“······.”

팀장이 회의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지로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식자붙이는 일에 여념이 없다.

“아, 진짜. 나는 왜 저런 예쁘장한 여자후배를 안 붙여주는 지 몰라.”

“팀장님은 혼자 하셔도 여유만만 이잖습니까.”

“어이, 여유만만이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나 상처 받는다고.”

“······.”

“아, 진짜. 부러운 녀석.”

“바쁜 게 부러우시면 열심히 하시면 될 텐데.”

“그거 말고.”

그렇게 말하더니 곧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지로 곁으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나, 그거 좀 봐도 될까?”

원고를 가리키며 묻자 지로가 식자를 칼로 잘라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오, 땡큐.”

다른 팀장이라면 모를까, 직계라서 보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다.

아무튼 지로의 허락을 받은 팀장이 눈을 반짝이며 원고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 절망의 페르소나는 최고의 인기 만화다.

덕분에 샘플 책이 나오면 직원들도 가장 먼저 보는 게 이 만화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렇게 오리지널 원고를 남들보다 먼저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로의 직계 팀장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를 행운의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원고에 손때라도 묻을까봐 조심스럽게 원고를 하나씩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30페이지나 되는 파격분량에 기분 좋은 콧소리까지 냈다.

“오오, 재밌네. 재밌어. 이번 주도 놀라운데.”

그렇게 말하며 읽어가다 어느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머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지로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뭐가요?”

“방사능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그것을 전국에 판매한다고? 이건 뭐, 다 죽자는 얘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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