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7화 (267/425)
  • 유명해지면 피곤하다 (1)

    솔직히 ‘절망의 페르소나’ 스토리를 구상할 땐, 다소 충동적이었다는 건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의 반응이 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일본이라는 사회에 영향을 줬으면 하는 기대정도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일본에선 이것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으니 좀 당황스럽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절망의 페르소나’도 연재량을 계속 30페이지로 유지중인 것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벌써 반 권 이상의 이야기를 진행시켰는데, 지금 현재 소년 히어로의 독자 앙케이트 순위에서 독보적인 1위라는 얘기를 지로로부터 전해 들었다.

    - 삼사라 때보다 더 반응이 뜨겁습니다. 이슈 자체가 아무래도 현실적인데다가 일본인의 입장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스토리도 좋구요.

    “짧고 굵게 타다가 꺼지게 될 이야기라 그런 걸지도 모르죠.”

    -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지금 분위기라면 연재를 조금 더 이어갔으면 어떨까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요. 실제로 지금 삼사라의 단행본 판매가 다시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길게 빼서 좋을 게 없다. 그렇게 된다면 본래의 의도가 퇴색될 것이니까.

    “끝날 때가 되면 끝나야죠. 괜히 끄는 것도 좋지는 않고요.”

    - 다행스럽게도 팬들은 이번 작품이 삼사라가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짧게 끝난다면 충격이 더 클 지도요.

    “지금은 두 권으로 계획하고 있으니까, 미리 말씀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끊겼다. 그리고는 한숨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지로가 입을 열었다.

    - 네. 제가 편집자로서의 본분을 잊었던 것 같습니다. 조만간 끝날 거라는 정도의 예고는 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그렇게 하세요.”

    - 아, 그리고 최근 절망의 페르소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져서 그런지, 요즘 편집부로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연락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잡지사 연락이요? 왜요?”

    - 인터뷰 때문입니다. 텐겐 선생님이나 써니 선생님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답니다. 아무래도 이슈가 많으니까요.

    뭐 대충은 알만하다.

    “작품이 아니라, 원전에 대한 얘기겠죠.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됐느냐, 그리고 의도는 있었냐등등. 한국인이라 파고드는 것도 있을 거고요.”

    아니, 그런 노골적인 질문이 없더라도 기사에 슬쩍 끼워 넣을지도 모르고.

    - 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편집부의 입장은 어떤데요?”

    - 저희야 뭐, 선생님이 우선이니까. 일단 그런 요청들은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

    미리 차단해 준다면 내 입장에선 좋은 거다.

    사실, 일본 만화계는 은밀한 부분이 많아서 만화가들의 개인적인 부분은 출판사에서 미리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때문에 외부엔 너무 정보가 막혀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 편집장님 말씀으론 사장님께서도 이번 일에 대해 편집부가 적극적으로 선생님을 보호하라고 하셨고요. 아, 물론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아뇨, 잘하고 계신 겁니다.”

    - 아, 그렇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지로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 아무튼 이번 작품은 끝날 때까지 조용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혹시라도 일본으로 오시는 건 좀 보류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편집부에 잡지 기자들도 쉴 새 없이 들락거려서.

    나 때문에 편집부 직원들이 피곤하겠네.

    “안 그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저번에도 사인회 때문에 조금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서. 물론 선희가 더 바빴습니다만.”

    - 써니 선생님은 어떠세요?

    “일본의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 말인가요?”

    - 네.

    “흐음, 뭐, 써니의 성격이야 아카기 씨도 잘 아시겠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네요. 거기다 한국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잘 알 수도 없고요.”

    - 요즘 한국의 관심사는 아시안게임이겠군요.

    “뭐, 그렇죠. 아무래도 큰 스포츠행사라.”

    - 어쨌거나 그 때문에 일본의 분위기가 잘 전해지지 않는 건 다행이군요. 이런 땐 일본에 계시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러게요.”

    - 아, 그리고 삼사라의 마지막은 잘 준비 중에 있습니다. 3주후에 있을 마지막 편을 위해서 저희 편집부에서 이벤트도 계획 중이고요.

    마지막 편 이벤트 내용은 삼사라의 엔딩을 독자들에게 예상해보라는 것이었다.

    선물도 제법 빵빵하게 준비한 모양인데, 통 크게도 TV나 워크맨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다.

    이번 이벤트에 제법 많은 곳에서 후원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다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아, 이제 삼사라도 진짜 마무리가 되는 구나.

    어느 정도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준채로 끝내기는 했지만, 아직 이야기를 따로 준비한 건 없는 상태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오, 일본에서 정말로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거야?”

    “아, 깜짝이야!”

    언제 왔는지 경희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내 뒤에 서있었다.

    곧장 벽시계를 보니, 어느새 학교마칠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몰래 뒤에 서있지 마라. 그러다 이 오빠 심장마비 오겠다.”

    “오버하지 말고, 그래 잡지사 이야기는 뭐야? 인터뷰하고 싶데?”

    그렇게 묻는 경희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들었냐?”

    “어서 말해봐. 빨리, 빨리.”

    경희가 날 흔들며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전에 방송 봤잖아. 요즘 이걸로 일본이 시끌벅적하다는 건, 잘 알지?”

    “응. 당연하지.”

    “그 때문에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선희와 날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또 일본 가는 거야?”

    경희의 질문에 내가 피식 웃었다.

    역시 목적은 그거였구만.

    “너 일본에 가고 싶어서 그러냐?”

    “응.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인터뷰 때문에 일본에 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괜한 기대는 하지 마라.”

    “······.”

    경희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축 늘어진다.

    어지간히도 또 가고 싶은 모양이다.

    하기야, 지금의 일본은 한국과는 넘사벽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보니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해는 된다.

    미워하면서도 부러워하고, 그와 동시에 미래의 척도가 되는 나라.

    지금의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방송에선 20년이라고 하는 전문가도 있었고, 30년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니까.

    “마치 거짓말 같네요. 한국은 이렇게나 조용한데.”

    박소미의 말에 다른 어시들도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맞아요. 한국에선 써니 선생님이 만화가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렇다니까. 나도 만화 그리는 친구들 모임에 가면, 이름 없는 만화가 밑에서 계속 문하생을 하는 줄 알더라니까. 뭐, 걔네들이랑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하기야, 일본과 공식적 교류가 없는 세상이다 보니,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리도 없고, 설사 안다고 해도 만화 따윈 우습게 보는 분위기 때문에 그런 정보가 넘어올 리도 없다.

    물론, 소수의 마니아들은 알고 있다는 모양이지만, 이런 사람들이야 아직은 눈에 띄지 않던 시기니까.

    물론, 슬슬 아마추어 만화동아리도 곧 생겨나기 시작 할 거고, 그렇게 되면 많은 정보가 교류 될 테지만.

    아무튼 정보의 흐름이 아주 느린 시대다.

    그때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나가볼게.”

    경희가 실망한 표정을 지우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화실로 후다닥 들어오며 말했다.

    “또, 왔어.”

    “또라니, 누구?”

    “전에 그 일본여자 말이야. 전에 오빠가 말했잖아. 무슨 야시시한 잡지의 기자.”

    “야시? 누구?”

    “화과자.”

    “주간 루머?”

    “아, 거기, 거기.”

    야시시에다 화과자라······. 무슨 기억이 저런 건지.

    아무튼 미네가 찾아왔나보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전에 스치듯 듣기론, 일본의 유명인들이 은근히 한국을 찾아오기도 한다는 모양이던데. 하기야, 일본연예인이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맘 편히 여행하긴 좋을 테지.

    전에도 그런 일로 온 적이 있었으니.

    어쨌거나 근처에 온 김에 들렀다면 밥이라도 사야할 것 같기는 한데.

    전에 일본 잡지들을 수고스럽게 정리해서 내게 보내준 것도 있으니까.

    슬리퍼를 신은 채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 대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었더니 미네가 웃으며 서 있다.

    “어, 어쩐 일입니까? 여긴.”

    그런데 미네는 대답도 없이 날 아래위로 훑어본다.

    “운동복 바지 차림에 헐렁한 티셔츠, 슬리퍼 차림이라······. 천하의 삼사라, 아니 지금은 절망의 페르소나 스토리를 쓰신 선생님이 이런 복장이라니. 팬들의 환상을 사정없이 깨버리시네요.”

    “팬들과 부딪칠 일이 없으니까, 상관없죠. 그리고 뭐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요.”

    “그럼, 안되죠. 지금은 옛날하고 달라요.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내 말에 미네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기자가 유명인의 집에 찾아왔는데, 무슨 일이라니.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절 취재하러 온 겁니까?”

    그 말에 풋하고 웃는다.

    “뭐, 그러고는 싶은데. 싫어하실까봐 그건 안할게요. 사실, 이번에도 스캔들 건이 하나 있어서, 한국에 온 거랍니다.”

    “아, 역시.”

    “어?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무래도 취재가 아니라면 그거밖에 없을 테니까요. 전에도 그런 일로 온 적이 있었잖아요.”

    “아참, 그렇지. 잊고 있었어요. 요즘 들어 한국에는 자주 오는 편이라. 언제부턴가 편집부에서 한국전문이 되었거든요. 덕분에 요즘은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죠. 근데 한국어는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미네가 너스레를 떨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제 일 자체가 공인의 사생활을 추적하는 거니까. 그리고 알려드릴 것도 있어서 겸사겸사 온 거예요.”

    내게 알려줄 일이라고?

    “그게 뭔데요?”

    “제가 전에 이쪽 계통 잡지사 사람들이랑 친분이 많다고 했던가?”

    “아뇨, 그런 말 안했는데.”

    그 말에 미네가 살짝 표정을 찌푸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그럴 땐 박자 좀 맞춰줘도 될 텐데.’라고 중얼거리고는 퉁명스러운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아무튼, 쇼킹 스타란 잡지가 있는데요. 거기 이번 주에 나올 기사내용 중에 흥미로운 게 있어서요.”

    쇼킹 스타라니, 이름도 참.

    그나저나 흥미로운 거?

    “뭐죠?”

    “텐겐, 아니 윤환 씨에 관한 거예요.”

    “저에 관한 거요?”

    “네. 미쯔다쇼텐의 사장인 미쯔다 히로유키와 아주 특별한 사이라는 내용이요.”

    “뭐요?”

    이게 무슨 소리야?

    미쯔다쇼텐의 사장이랑 만난 기억도 없는데.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녀가 묘한 눈빛으로 날 살핀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아니에요?”

    “취조하는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튼 내용은 더 있어요.”

    또 있다고?

    “뭔데요?”

    “미쯔다 사장의 조카가 있는데, 그 여자랑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고. 그래서 출판사에서 그를 비호한다고 하더군요.”

    이건 또 뭔 헛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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