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6화 (266/425)
  • 절망의 페르소나 (5)

    방송에선 체르노빌사고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절망의 페르소나’ 이야기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분에 평소 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제목을 알게 될 정도로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그 때문에 일본의 각종 단체에서 연재를 중단하라는 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급부도 있었다.

    바로 원전반대 운동이 그것이었다.

    이미 방송에서 만화가 얼마나 잘 묘사되었는지 전문가들까지 인증을 해준 덕분에 원전의 위험을 인식한 시민단체들이 나선 것이다.

    - 후손에게 안전한 땅을 물려줘야 한다!

    - 체르노빌사고 같은 일이 일본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자제해야 한다!

    - 정부는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일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정부는 소련 측에 누출 방사능 수치를 당장 공개하라고 큰소리를 내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새롭게 등장한 만화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방사능이라는 공포에 집중되었다.

    * * *

    평일 오후, 점심시간.

    소년 히어로가 있는 층의 직원 휴게실엔 직원들이 모여 담배를 피거나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와, 요즘엔 온통 절망의 페르소나 이야기로 뜨겁네요. 소년 히어로가 지금처럼 관심을 받는 일이 앞으로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그렇겠지. 아무래도 소련에서 터진 일이 워낙 크다보니까. 거기다 여기는 일본이잖아. 다른 나라에 비해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큰 곳이야. 오죽하면 고지라 같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겠어?”

    “그것뿐이 아니죠. 예전엔 원자력 관련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될 거라고 했었잖아요. 어릴 적에 그런 만화 엄청 봤는데.”

    “어쨌건 원자력은 고효율 에너지가 맞기는 하지만, 위험하긴 하지.”

    “아무튼 신작 만화덕분에 잡지 판매가 늘어서 그런지 다른 만화들 단행본까지 덩달아 판매가 늘어나니까, 분위기는 좋네요.”

    “뭐, 이런 식의 이슈도 도움이 되는 거니까.”

    그때 직원 하나가 휴게실 유리 벽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아카기 씨에요. 요즘 편집부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던데.”

    그 모습을 힐끔 본 선배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겠어? 요즘 저 친구가 편집부에서 제일 바쁘잖아. 듣기론 임원들에게도 가끔 불려가는 모양이더라고.”

    그 말에 후배직원이 눈을 크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엑? 진짜요? 다른 편집부는 편집장들도 임원들을 만나는 경우가 드문데.”

    “요즘 우리 부서가 제일 주목을 받잖아. 거기다 저 친구는 무려 지금 이슈의 중심에 있는 써니 선생의 담당이니까. 듣기론 다른 편집장들이 저 친구를 만나려고 안달한다고도 하더라.”

    “어? 왜요?”

    “텐겐 때문이지. 텐겐. 스토리 작가. 나도 들은 얘긴데, 그 선생 이런저런 유명한 선생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고. 몇 작품은 직접 관여도 했다는 모양이더라고.”

    “오, 역시 숨은 강자로군요.”

    “그렇지. 솔직히 삼사라도 그림만 잘 그리고 내용이 엉망이었다고 해봐. 아마 모르긴 해도 만화연구회 사람들 말고는 봐주지도 않았을 걸?”

    “하긴, 저도 스토리에 완전히 반했었으니까요.”

    그 말에 선배직원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튼 저 친구, 텐겐에 써니까지······.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직원 하나가 담배를 비벼 끄더니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운이 좋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넌 갑자기 왜 그래? 아카기랑 무슨 관계라고.”

    “3자인 내가 들어도 열 받으니까 그러지.”

    “그러니까 네가 왜 그러냐고.”

    어이없다는 듯 묻자 동기인 직원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야, 아카기가 처음 들어올 때 삼사라를 가지고 이곳에 들어온 거 생각 안 나냐?”

    “그야······.”

    그 말을 들은 후배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정말이에요? 진짜로 아카기 씨가 삼사라를 가지고 입사했다고요?”

    “그래. 나도 야지마 씨한테 들은 얘긴데, 아카기 저 친구, 전에 있던 출판사에서 삼사라를 받아주지 않아서 우리 쪽으로 이직한 거라더라. 그러니까 이미 아카기는 한국인인 두 사람을 무명시절에 만났고, 그런 그들을 결국 일본만화계에 데뷔시킨 친구야. 그러니까 운이니 뭐니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와, 진짜 대단하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도 운이 좋은 건 좋은 거지. 써니나 텐겐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래.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건 실력이라고. 너 전에 퇴짜 놓은 그거. 지금 소년 매거진에서 잘나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야기고.”

    “······.”

    “아무튼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떠들기 전에 실력부터 쌓아.”

    “젠장, 너는 뭐 충고할 정도는 되고?”

    “나도 안 되지. 하지만, 적어도 너처럼 뒤에서 헛소리는 안하잖아.”

    “뭐가 헛소리라는 거야?”

    두 사람이 으르렁대자 후배 직원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두러 그들을 말렸다.

    “저기, 두 분 다 진정들 하세요. 동기끼리 왜 그러세요.”

    “동기는 무슨.”

    “내가 할 소리다.”

    그때 휴게실문이 빼꼼 열리며 야지마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 여기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 말에 후배 직원이 손을 좌우로 휘적거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쳇.”

    직원 한명이 화가 난 표정으로 야지마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그런 모습을 돌아보던 야지마가 다른 직원들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의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이 어색하게 웃었다.

    “······?”

    잠시 후 휴게실은 나온 야지마가 편집부도 돌아갔다.

    그런데 지로가 새로운 원고 식자작업에 열중한 모습을 보자마자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 아카기. 혼자 늘 바쁘구나. 그런데 그거 절망의 페르소나 원고야?”

    야지마의 질문에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네.”

    그런 지로를 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쭉 내밀며 은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 식자작업 끝나고 나면 바쁘지?”

    “그런데, 왜요?”

    “왜긴, 복사는 내가 도와줄까 싶어서.”

    야지마의 말에 지로가 멈칫했다.

    “복사를요?”

    “어. 파시엔시아도 오늘 중으로 끝내야잖아.”

    “그렇긴 한데······, 갑자기 왜 이렇게 제 일을 도와주려는 거예요?”

    지로는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야지마를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야지마가 어색하게 웃었다.

    “왜라니, 너랑 나 사이가 보통 사이야? 대학교 때부터 줄곧 이어진 끈끈한 사이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널 도와야지. 뭘 그렇게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물어.”

    야지마가 능청스럽게 말하며 지로의 어깨를 툭 친다.

    여전히 의심스런 표정으로 쳐다보던 지로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네, 선배 말대로 요즘 너무 힘들어서. 도움이 좀 필요하긴 해요.”

    “그렇지? 요즘 너 보니까, 내 마음이 짠한 게 그렇더라니까. 역시 나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며 웃자, 지로도 같이 웃었다.

    “네. 그러네요. 아무튼 선배가 그러시다니까 부탁을······.”

    “야, 수작 그만부리고 네 일이나 해!”

    갑자기 들려온 말에 두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온 뒤쪽으로 동시에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이 바라보는 그 곳엔 팀장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한 채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팀장의 시선은 야지마를 향해 있었다.

    그러자 움찔한 야지마는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팀장을 돌아봤다.

    “갑자기 왜 그래요? 수작을 부리다니.”

    “너, 지금 절망의 페르소나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그 말에 야지마가 화들짝 놀랐다.

    “아, 진짜. 뭐라는 거예요?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요? 하하. 농담도 참.”

    하지만 지로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이 변해있었다.

    ‘어쩐지’라는 그런 표정으로 야지마를 돌아봤다.

    야지마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며 서둘러 팀장에게 원망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님은 정말, 왜 쓸데없는 얘기를 하셔가지곤······.”

    “와, 도대체 요즘 왜 이렇게 오타를 많이 만드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갑작스런 가시 돋친 음성이 또 다시 끼어들었다.

    하지만, 음성의 주인공을 알아차린 야지마가 다시 화들짝 놀랐다.

    “어? 무, 무카이.”

    “선생이라고, 선생. 당신은 담당이면서 왜 만날 그렇게 막 불러?”

    그렇게 말한 무카이가 갑자기 지로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카기 씨.”

    무카이가 갑자기 싹싹하게 자신을 대하자 지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무카이 선생님.”

    “요즘, 텐겐 선생님이랑 써니 선생님은 건강하시죠?”

    “아, 네. 덕분에요.”

    “요즘 신작, 절망의 페르소나, 너무 재밌습니다. 역시 두 분의 조합은 최고라니까요. 요즘 신문에서 떠드는 미친 소리는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기, 두 분께 안부 전해 주시면 좋겠는데.”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리고 텐겐 선생님도 중원요리왕 너무 재밌다고 평소에도 많이 말씀하세요.”

    “정말요?”

    무카이가 영광이라 듯 몸을 바짝 세우더니 곧 감동했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야지마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는 담당편집자인 나는 소, 닭 보듯이 하면서, 아카기에겐 너무 극진한 거 아니냐?”

    무카이는 유독 지로만 만나면 저렇게 깍듯하게 대하니 야지마도 심통이 나서 투덜거린 것이다.

    그러자 무카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 담당 선생에게 너라니. 이러니까 대접을 못 받지. 누굴 탓해?”

    “진짜, 너무하네. 다 죽어가는 놈을 살려줬더니.”

    “살리긴 누가 살려? 내가 잘나서 산거지.”

    그 말에 야지마가 버럭 했다.

    “떽! 인간이 그러면 못써.”

    “됐고, 빨리 미팅이나 하자고. 미팅. 이번에 제임스 선생님이 보내온 스토리 장면에 대해서 의논하려고 온 거니까.”

    “안 해, 안 해. 이런 대접까지 받은 마당에, 뭔 영광을 얻겠다고.”

    야지마가 토라진 채로 머리를 돌리자 무카이가 그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에이, 또 왜 그래. 이제까지 잘 해왔으면서. 자자, 오늘 내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어허, 됐다니까 그러네.”

    “뭐 어떤 걸로 드셔? 중국식? 프랑스식?”

    그렇게 말하며 회의실 쪽으로 이끌자, 야지마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카이를 따라 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팀장이 피식 웃었다.

    “무카이 선생도 대단하네. 능구렁이 야지마를 잘도 삶는걸 보면.”

    “그러게요.”

    “그런데 말이야, 그쪽은 어때?”

    “그쪽이라뇨?”

    “텐겐 선생 쪽 말이야. 이번 일에 대해서 알고는 있어?”

    “네. 알고 계세요.”

    “그럼 반응은?”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이런 반응에 흥미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팀장이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흥미롭다고?”

    “네.”

    그렇게 말한 지로가 식자작업을 멈추더니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뭐랄까, 진짜 미래의 일본이 저럴 것이라도 확신이라도 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요.”

    “······.”

    “뭐, 그냥 제 느낌이 그렇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더니, 다시 식자작업을 이어갔다.

    그런 지로를 보던 팀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어깨를 으쓱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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