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4화 (264/425)

절망의 페르소나 (3)

키도의 화실에선 아침부터 어시들끼리 써니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와, 요즘 절망의 페르소나, 그거 분위기 장난이 아니던데요? 어제 오늘아침에도 지하철에서 그거 보는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니까요.”

“나도 그거 봤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년 히어로를 보는 건 처음 봤다니까. 소년점프나 소년매거진 같은 것만 눈에 띄었는데, 요 며칠 동안은 소년 히어로 보는 사람을 더 많이 봐서 엄청 신기했어. 백만 부가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설마 했는데.”

“지금은 백만 부라는 것보다 써니 선생님의 신작 때문이잖아요.”

그 말에 선배어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

“우리 입장에선 키도 선생님 작품이 좀 더 떴으면 좋겠지만, 뭐 어쩌겠어. 이젠 써니 선생님과 키도 선생님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솔직히 이젠 힘들다고 봐야지. 그동안 열심히 하시긴 했는데.”

“뭐가 힘들다고? 이젠 무리라는 건가?”

그때 화실 문이 열리며 키도가 들어오자 모두 그의 시선을 삭 피했다.

그런 어시들을 보며 키도가 눈을 부라렸다.

“이것들이 틈만 보이면 날 씹어 드시고 있구만. 그래 자네들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흉흉한 눈빛으로 으르렁대자 모두 몸을 바짝 숙이고 작업에만 열중한다. 그런 어시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다가 한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을 본 키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카다는 어디 갔나?”

“밖에요. 간식 사러 나갔습니다.”

“간식이라고 하지만, 결국 담배 심부름이잖아.”

“······.”

“막내라고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야? 혹시 나 안 보이는 데서 신참을 고육 시킨다는 명분으로 이지메를 하는 건 아니겠지?”

“네? 이지메라뇨. 저희는 그런 거 없습니다. 선생님이 오히려 저희들을 이지······.”

“뭐?”

“······아닙니다. 그냥 이지하게 다루신다구요”

그때 밖으로 나갔던 나카다가 화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TV에 나와요!”

“나오다니, 뭐가?”

키도가 그렇게 대답하자 화들짝 놀란 나카다가 간식이 든 비닐주머니를 뒤로 숨긴다.

그 모습을 본 키도가 피식 웃었다.

“다 아니까, 숨기지 않아도 돼. 하지만 화실 내에선 담배 냄새 풍기지 마라. 난 뭐 괜찮지만. 그나저나 뭐가 나온다는 거야?”

“아, 참. 지금 TV에서 이번에 써니 선생님이 연재하시는 만화 있잖아요. 인기 최고인, 그 뭐냐······.”

“절망의 페르소나.”

“아, 네. 맞아요. 그거. 아무튼 그게 지금 방송에 나오더라니까요.”

“뭐라고? 그게 왜 TV에 나와.”

놀란 키도가 화실을 두리번거렸다.

“조종기 어디 있어? 조종기!”

“리모컨 말씀이세요?”

“이름이 뭐든 간에, 그거 어디 있어? 당장 TV 켜.”

그때 난바가 자신의 책상위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그러자 키도가 가재미눈을 뜨고 난바를 쳐다봤다.

그 때문에 난바가 당황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이, 이게 왜 내 책상위에 있지. 하하하.”

그 순간 다른 어시들의 눈이 난바에게 쏠린다. 난바가 모두의 시선을 피하며 TV를 향해 소리쳤다.

“아, 저거네요. 저거! 나카다 저거 맞지?”

“네. 저 방송 맞아요.”

그 말에 모두가 TV에 집중했다.

평범한 시사방송처럼 보이는데 한 패널이 손에 만화잡지를 들고 있는 게 보인다.

늘 보던 잡지인데다 얼마 전에 나온 표지라 너무 익숙하다.

“어? 저거 소년 히어로 아니에요?”

“맞네, 맞아. 그게 저기 왜 있어?”

“조용히 좀 해봐. 그리고 난바, 소리 크게 해. 제대로 들리지 않잖아.”

“아, 네.”

난바가 다시 리모컨을 TV로 향하며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화면 속의 사람들 음성이 점점 커졌다.

누군가 조금 과장스럽게 행동하며 한참 떠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이라니, 놀랍군요.

- 네. 그렇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만화가 이렇게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준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 그렇다면 그 내용이 검증은 된 건가요?

- 그래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일단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해 봤습니다. 한번 보시죠.

그렇게 말하자 TV 속 화면이 바뀐다.

그리고 원전 전문가들의 인터뷰장면이 이어지고, 더불어 정치학과 교수들까지 여러 명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원전 기술자들의 경우엔 만화책을 읽어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용에 대해선 거의 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며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특히나 전문적인 장면은 실제 관련 일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했거나, 혹은 어느 정도 업종에서 종사한 게 아닐까하는 예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교수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리는 분위기였다.

‘만화니까 가능한 거지, 실제라면 아무리 부패한 정치인이라도 이건 말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쪽과 또 다른 의견은 ‘지금의 정치인들이라면 충분히 이런 것도 가능하다.’였다.

아무튼 종합적인 결론은 원전사고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실제로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는 거였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난 TV 속 연예계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시작은 개그맨인 턱수염의 남자였다.

- 솔직히 저는 아니라고 봐요. 어떻게 이런 극악한 일이 벌어졌는데,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겠어요? 방사능이 퍼진 곳에서 난 농산물을 국민에게 먹으라니, 거기다 그것이 안전하다고 선전을 한다고요? 일본이 무슨 독재공산국가입니까? 그리고 지금은 태평양 전쟁 이전의 상황도 아니잖아요. 일본인들은 충분히 의식이 있는 선진국의 시민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의 일본 원자력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요. 내진설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줄 아세요?

그 말에 곁에 있던 배우가 맞장구를 쳤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그냥 만화로 받아들여야지, 이런 토론 자체가 이상하다고 보는데.

그러자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일본에서 건강문제로 인기를 끈 뚱뚱한 외모의 의사 출신의 방송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 방금 전문가들이 말하는가 보셨잖아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왜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합니까? 그리고 만화 속에서도 내용이 나왔지만, 자연재해에 인재까지 겹쳤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일어날만한 일이죠. 기계는 몰라도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인간은 공포에 약한 동물입니다. 그건 분명한 일입니다.

- 솔직히 정치는 우리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심하게 떨어진다는 건 인정해야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늘 엉망 아닙니까? 까놓고, 지금 정치인들 하는 거 보면 이런 큰 재앙이 벌어졌을 때, 잘할까하고 생각해보면 영 아니죠. 얼마 전에 미국에서 벌어진 5개국 재무장관회의에서 돌아온 다케시다 노보루 씨가 엔화의 가치를 올린 건 잘한 일이라고하며 헛소리를 한 일도 있었고요.

그러자 이젠 흥분한 반대쪽 사람이 버럭 했다.

- 엔화 가치가 올라서 요즘 호황인거 몰라요? 그게 왜 잘 못된 거라는 건지 모르겠네. 지금의 일본이 잘나간다는 건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요. 앞으로 일본이 세계를 제패할 거라는 건 거의 확정된 일이니까.

- 맞아요. 그리고 이거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거 아세요? 한국인이 일본을 알면 얼마나 알까요. 어쩌면 개인적인 불순한 마음이 있는 게 아닐지 의심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 아니죠. 오히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고 봐야죠. 어쩌면 3자이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우리의 문제, 그런 거 말입니다.

- 너무 좋게 바라보는 거 아닙니까? 평소 남이 비웃는 것도 그렇게 받아들이세요?

- 아닌데요. 비웃는 거랑 충고하는 거를 구분할 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만.

그 말에 상대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 혹시, 부모님이나 조부모 중 재일조선인이 있는 건 아닙니까?

- 뭐라는 거야, 미친 작자가.

- 뭐?

그 말에 진행자가 끼어들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 불필요한 감정싸움은 피하도록 하세요.

- 저는 겨우 만화책의 내용으로 이런 토론을 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만.

- 초대에 응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 당신은 좀 빠지지?

- 상종을 못하겠구만.

그 때문에 진행자가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며 말하자 곧바로 광고가 이어진다.

“뭐하는 거야, 저 녀석들은? 이거 생방송이야?”

키도가 황당해하며 TV를 바라본다.

그러자 어시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아뇨. 녹화방송이에요. 그런데 저 방송 이슈몰이 전문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런 것도 그냥 내보는 거죠. 아무튼 저긴 요즘 뜨는 게 있다싶으면 저렇게 반대되는 사람들을 불러다놓고 싸움시키는 방송이에요. 그래도 인기가 있어서 시청률은 높다고 하던데.”

그 말에 어시 한명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방금 나왔던 전문가들은 가짜에요?”

“아니, 그런 걸 가짜로 만들만큼 맛이 간 방송은 아니야. 하지만 방송국에 나오는 인간들은 전문가가 아니지.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비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리는 황당한 방송이야. 물론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는 거고.”

“와, 저는 처음 봤는데, 저거 꽤 재미있네요. 현장감도 있고. 싸우는 것 보니까 막 흥분도 되고. 거기다 대상이 저희가 연재중인 잡지의 만화니까 더 신기하기도 하고. 다음에 혹시 써니 선생님이나 텐겐 선생님이 화실에 놀러 오시면 그때 사인은 반드시 받아두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며 키도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하지만 키도는 그런 그의 바람과 달리 아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혀 이야기를 듣지 못한 눈치라 어시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때 예쁜 여자들이 수영복을 입고 즐거워하며 춤추는 방송에 시선을 고정시키던 키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연, 유난이야. 역시 내 동생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린다.

그러면서 키도는 여전히 광고 속 미소녀의 몸매를 보며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과연 영상에 만족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텐겐과 써니의 활약에 만족하는 것일까?

묘한 표정으로 어시들이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곧 인기척을 느끼고는 곧장 다시 원고작업을 위해 빠르게 머리를 책상 쪽에 처박았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키도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TV에 빠져 있었다. 그때 부드러우면서도 한기가 느껴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 즐거워 보이시네요.”

“당연히 그렇지.”

그렇게 말했다가 키도가 멈칫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여보.”

그곳엔 키도의 부인이 쟁반을 든 채 평소 같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열심히 일을 하시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방송을 보시며 휴식중이셨군요.”

그 순간 키도가 곁눈질로 TV를 슬쩍 보자 여전히 광고속의 미소녀가 요염한 동작으로 젤리를 광고하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평소라면 그토록 짧기만 한 광고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광고가 긴 것일까.

갑자기 등줄기가 찌릿찌릿 하는 느낌에 다시 부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없이 온화한 부인의 미소였지만, 그 속에 있는 뭔가를 느끼고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곧바로 리모컨을 찾았다. 하지만, 리모컨은 난바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난바는 머리를 숙인 채 작업에 열중해 있다.

순간 키도는 절망에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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