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3화 (263/425)

절망의 페르소나 (2)

미치코가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에 들어오며 모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편집부 내의 남자직원들이 반색하며 그녀에게 아는 체를 했다.

“오, 카와다.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 자주자주 좀 오지.”

“맞아. 카와다 씨, 다른데 간 거 너무 섭섭하던데. 이젠 다시 돌아올 생각 없어?”

“여기가 훨씬 재밌지. 거긴 순 무서운 여자들뿐이잖아. 안 그래?”

“아니에요. 다 좋은 분들이에요.”

“아니긴, 내가 핑크걸 편집부를 좀 아는데. 거기 고질라 편집장도 유명한데. 입에서 불이 나갈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미치코가 웃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런 말씀 마세요. 우리 편집장님 좋은 분이신데.”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지로가 있는 자리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지로는 그녀가 온 사실도 잊은 채 써니의 신작 네임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지로를 보며 미치코가 살짝 찌푸리더니 곧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저 왔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로가 머리를 번쩍 들며 미치코를 향해 돌아갔다.

“어. 왔어? 그래, 원고는······?”

시큰둥한 표정을 본 미치코가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 제가 선배 대신 한국에 다녀왔는데, 수고했다는 말씀 정도는 하시는 게 먼저 아니에요?”

“아, 미안. 그래 수고했어.”

그런 반응에 살짝 어이없어 하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너무해.”

“뭐가?”

“좀 감정을 넣으시라고요. 진심이 안 느껴지잖아요.”

“······?”

미치코의 말에 잠시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지로가 한숨을 푹 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진심이니까, 얼른 원고나 줘.”

“······.”

“진심이라고.”

“치, 알았어요.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럭저럭 만족한 표정을 지은 미치코가 가방을 열어 원고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읽어봤는데 엄청 슬펐어요. 설마, 이거 전에 광고에서 나온 것처럼 정말로 일본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건가요?”

“글쎄.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어머, 담당자인 선배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그 말에 지로가 그녀를 쳐다봤다.

그 때문에 미치코가 움찔거리며 물었다.

“왜, 왜요?”

“너 일하러 안가?”

“네?”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을 거야?”

“선배 때문에 온 거잖아요.”

“그건 고마워. 그러니까 이젠 가도 된다고.”

미치코가 지로의 말에 곧바로 인상을 팍 썼다. 그러고는 잠시 지로를 노려보더니,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팡팡 치며 말했다.

“좋아요, 좋아. 뭐, 그게 선배니까요.”

“뭐라는 거야?”

“아무튼 저는 그럼 가볼게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편집부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하하, 역시 카와다는 시원시원해서 좋다니까.”

“그러게. 그래도 아카기 씨만 너무 찾으니까 섭섭하네.”

“유부남이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죠.”

“야, 유부남은 남자 아니냐?”

“어? 그거 위험한 말 아니에요? 부인에게 일러 버릴까보다.”“야, 농담이야, 농담. 너는 왜 그런 걸로 진지하게······.”

“크크 농담 아닌 것 같은데.”

“농담이라니까!”

그때 나이든 팀장 한명이 혀를 쯧쯧 하며 찼다.

“아무튼 요즘 여자애들은 저렇게 당돌하다니까.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되려고.”

그렇게 직원들이 떠드는 동안에도 지로는 조심스럽게 원고를 한 장씩 살펴보고 있었다.

전화 통화대로 30페이지.

내용은 네임보다 조금 더 늘어있었고, 원고의 완성도는 과연 써니다 싶을 정도다.

아니, 폐허가 된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잘 표현된 배경은 삼사라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만족한 얼굴로 한 페이지씩 읽어가던 지로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는 곧장 그것을 들고 복사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키도가 전화기를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만 살짝 알려주면 안 될까?”

- 며칠 후면 나올 건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이 형님이 궁금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이번 신작에 대한 홍보 때문에 네 담당에게도 물어봤는데, 조금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그러지.”

- 아카기 씨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나도 못 알려주지.

그 말에 키도가 인상을 팍 썼다.

“이런 꽉 막힌 녀석. 나중에 또 연락하마.”

- 어.

전화를 끊고 난 키도가 인상을 쓰며 팔짱을 끼고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냉정한 녀석.”

키도가 주둥이를 잔뜩 내밀며 투덜거리고 있자, 어시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텐겐 선생님이 안 알려주세요?”

“그래. 무슨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군다니까.”

“지금 분위기면 일급비밀이나 다름없죠, 뭐.”

그 말에 키도가 한쪽 눈을 크게 뜨며 돌아봤다.

“그 정도야?”

“그럼요. 지금 삼사라 차기작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난리도 아니라고요. 그렇지?”

“맞아요. 제 친구들은 아예 아침부터 잡지배급시간에 맞춰 서점 앞에서 기다릴 거라고 하던걸요.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소년 히어로 나오는 시간 이후에 화실로 나오면 안 될까요? 나오자마자 사고 싶은데.”

노무라의 말에 다른 어시들도 기대감어린 표정으로 키도를 돌아봤다.

그런 어시들을 시선을 받던 키도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피식 웃었다.

“뭐, 그것도 괜찮겠지.”

그의 말에 어시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곧장 키도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틀은 합숙하면 되지 뭐. 안 그래도 요즘 원고마감에 아슬아슬한데.”

“······.”

“······.”

모두가 키도의 시선을 외면하며 원고작업에 열중했다.

* * *

드디어 소년 히어로가 배포되는 날 아침, 많은 서점에서 소년히어로를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점이나 편의점, 문방구 주변에서는 소년 히어로를 서서 보는 사람들이 눈이 많이 띄었다.

*

소년 히어로에선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편집장이 소리쳤다.

“자네는 인쇄공장에 가서 추가 증쇄 여력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자네는 재고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봐. 그리고 자네는 얼른 출판부에 가서 다른 잡지들 출판계획표 확인하고.”

그의 말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때 편집부로 들어오던 미치코가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직원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선배, 여기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어요?”

“왜긴, 출판부에서 책 부족하다는 전화를 사방에서 받은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편집부 직원들까지 증쇄를 위해 투입되는 거야. 지금 여기 정신없어.”

“아, 그거 때문이죠? 절망의 페르소나. 우리 편집부도 아침부터 그 얘기뿐이던데. 역시 제 눈이 맞았다니까요. 이렇게 크게 터질 줄 알았어.”

“저기, 미안한데, 지금은 내가 바빠서······.”

“그런데도 아카기 선배는 뭐라는 줄 아세요?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지로의 흉내를 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은 말이지.”

“솔직히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하면 어디가 덧나요? 그렇게 성격이 깐깐해서야 어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겠냐고요.”

미치코에게 붙들린 남자 직원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을 힐끔거리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 그건 그렇지.”

“아무튼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까 어쨌건 기분은 좋아요.”

“아, 그거 다행이다. 아, 저기 그리고 나 말인데······.”

“네?”

그때였다.

“이봐, 고노! 아직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인쇄공장 가라는 소리 안 들었어!”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미치코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런 모습을 보며 미치코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편집부 내를 둘러본다. 이미 지로는 자리를 비우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바쁘나보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곧장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소년 히어로 신간이 나오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판매부수가 이제 100만권이 넘은 잡지임에도 이번 써니의 신작 ‘절망의 페르소나’에 대한 관심 때문에 평소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잡지가 소진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각종 만화연구회 모임에서도 온통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도쿄 외각에 있는 이곳 대학교 내의 서클 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야기였어?”

“그래. 첫 편에선 공개되지 않았는데, 뱃속 아이가 죽고, 부인이 갑자기 죽는 얘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하더라. 상황을 보면 그럴 듯 해 보이기도 하고.”

“와, 그런 거였구나. 그냥 대지진 후에 평화로운 일상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전에 이 작품 예고할 때 우리들이 겪을 수 있는 슬픈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평화로운 이야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쯤은 예상했어야지.”

“하긴, 써니의 만화는 뭔가 세기말적 분위기가 어울리긴 하다.”

“그래도 이번 건 좀 충격이더라. 너무 실감이 나서. 이제까지 써니 작품이 판타지적은 부분이 컸으니까. 파시엔시아도 그렇고 삼사라도 결국 현실보다는 만화적인 느낌이 강하잖아.”

그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초반에 너무 평화롭다는 사실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니까 너무 충격적이더라. 그런데 정말 이거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야기 맞아? 무슨 독가스 같은 거 아니야?”

“뉴스에서도 얼핏 지나가면서 ‘4호기가 어쩌고’ 그러면서 지지직 하는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던 장면.”

“아, 그렇고 보니 그러네.”

“그거 말고도 몇 장면 더 있어. 마을 노인들이 ‘정부가 괜찮다면 괜찮겠지.’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었고.”

“와, 확실히 써니의 작품은 숨은그림찾기 같다니까. 그냥 넘길 수 있는 대사가 없다니까.”

“야, 써니가 아니지. 스토리는 텐겐인데.”

“아, 그렇지.”

“그래도 그런 스토리를 그만큼 표현해내는 써니도 엄청 대단하지.”

“그나저나 삼사라가 끝나가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는데, 이번 페르소나로 그럴 겨를이 없네. 진짜 대단한 만화가야.”

“이러니까, 연구회 녀석들이 열광하는 거지. 몇몇 또라이 같은 놈들이 한국인이 어쩌고 하는 놈들은 그냥 무시해야 된다니까.”

“맞아. 그런 놈들이 무슨 만화연구회야. 그냥 민족연구회나 하라고 해.”

“그런데 정말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이렇게 되는 건가?”

“모르지. 만날 정부에서는 안전하다고 하니까.”

“야, 만화잖아. 너무 심각할 필요 있냐? 어느 정도는 과장한 부분도 있겠지. 요즘 나오는 사이버펑크 만화들 분위기도 그렇고.”

“그래도 이건 너무 리얼해서.”

“써니잖아. 써니. 리얼한 건 당연하지.”

“그런가?”

*

그리고 한주가 지나고 난 뒤, 다시 소년 히어로가 발간되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 많은 책이 판매가 되었고, 그로인해 사람들의 관심도 더 뜨거워졌다.

출퇴근 시간의 사람들도 지하철, 혹은 버스 안에서 소년히어로를 보는 장면이 흔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 사건의 이유가 밝혀졌다.

미리 눈치 챈 사람들의 예상대로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지역은 사고지역으로부터 약 60킬로미터 지점에 거주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물론 그러한 사실을 주인공과 부인도 알고 있었지만, 위험하지 않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그곳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 결국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번 화도 1화처럼 30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나온 덕분에 팬들은 더욱 열광했다. 그리고 더불어 만화 속에서 비춰진 원전의 위험에 대해 사람들이 공포를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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