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페르소나 (1)
“신작? 확실해?”
편집장이 눈을 크게 뜨며 팀장에게 물었다.
“그건 담당인 이 친구에게 직접 들어보세요.”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곁에 있는 지로 쪽으로 턱짓했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지로가 입을 열었다.
“네. 제가 직접 신작 네임을 받아왔습니다. 일단 이 네임도 한 번 더 수정을 하기로 했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그대로 갈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복사용지 뭉치를 내밀자 그것을 편집장이 받아들었다.
“이게, 이번 신작 네임이라고?”
“네.”
“완결을 코앞에 두고 그새 신작이라니 무섭구만.”
“읽어보시겠습니까?”
지로의 물음에 편집장은 평소와 달리 조심스럽다.
“읽어봐도 되는 건가?”
아무래도 삼사라가 완결을 예고한 상황에서 앞으로 나오게 될 신작이라 긴장한 것이다. 거기다 기본적으로 담당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도 그의 원칙이니까.
“그럼요.”
지로가 대답하자마자 서둘러 복사된 네임을 펼쳐본다.
그 모습을 보던 팀장이 피식 웃었다.
이미 자신도 네임을 본 상황, 그리고 그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이 꽤나 주목을 받을 작품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편집장의 반응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편집장이라면 독자들이 이것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더 확실하게 알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한참을 읽어가던 편집장이 한참 후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묘하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가 표정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내용이 좀 당황스럽군. 아니 이정도면 충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그 반응에 팀장이 히죽거리며 지로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지로가 움찔하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인 만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적지 않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 말에 편집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아카기 자네 말이 맞아. 너무 현실적이라 반응이 클 것 같군. 그것도 상당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턱을 만지작거린다.
말과 달리 이상하게 편집자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그것을 보던 팀장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반응이 크다는 게 문제가 된다는 뜻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편집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줄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이게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서.”
“사실적이라서 마음에 걸린 다뇨? 좋은 게 아닙니까? 당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팀장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편집장이 생각에 잠기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말이지 얼마 전에 체르노빌 사고가 벌어지고, 우연히 사석에서 그쪽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거든. 술자리 말이야.”
“그쪽이라면 원자력 발전소 말입니까?”
“그래. 꽤나 오랫동안 관련 일에 몸담은 사람이었어.”
“그런데 그게 왜요?”
“그 사람이 말하길, 실제로 원전이 알려진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체르노빌 사고 같은 건 충분히 일본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거야. 특히 일본에선 지진이라든가 쓰나미가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저도 그건 들어서 알아요. 하지만 내진 설계를 제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하던데. 그리고 쓰나미 문제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내진도 정도를 넘어서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래. 거기다 발전소가 완벽하더라도 인간이 부주의하게 다룰 수도 있는 문제라. 그리고 일이 한번 터지면 닫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고 하더라고.”
편집장의 말에 팀장과 지로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때 그가 말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 네임에 나오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거든. 물론 정치 같은 부분도 지금 일본 정치인들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고.”
“그럼, 이게 진짜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는 겁니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렇지.”
“······.”
팀장과 지로는 편집장의 말에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런 반응을 보며 편집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놀랍군. 써니, 아니 텐겐 선생이 체르노빌 사건이 벌어진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게 말이야. 이런 이야기가 순간적으로 떠오르고 이렇게 단번에 만들 수 있을 만큼 일반적인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지.”
“이번 사고가 있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라고 들었습니다.”
지로의 말에 편집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디테일하게 만들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 하지만, 타이밍이 절묘하단 말이야. 많은 만화들 중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 지금 한참 잘나가는 삼사라의 작가가 또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리고 준비를 해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인데 말이야. 아니 전문가도 벌어질 일에 대한 것에만 집중하지, 정부가 이렇게 대응한다고 예상은 못할 거란 말이지. 거기다 만든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더 충격적이고.”
그제야 편집장이 놀란 이유를 알게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봤다.
“이런 이야기는 최소 전문가 집단 몇 개가 모여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 하지만 이런 걸 예상하기 위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 집단이 모일 리도 없으니. 거기다가 그런 집단이 모여 이렇게 가슴 찡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리도 없고.”
그 말을 들은 팀장이 멍한 얼굴로 있다가 곧 크게 웃었다.
“에이, 너무 억측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전문가의 예상과 맞아떨어졌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죠.”
그 말에 팀장을 돌아보던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너무 나간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만큼 텐겐 선생이 실력이 있다는 것도 되고.”
“그럼요. 너무 이야기가 리얼해서 우리끼리 너무 심각해진 모양입니다.”
“그렇구만.”
그렇게 말하며 편집장이 지로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지로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정도 분위기면 독자 반응도 꽤 크겠어요.”
그 말에 팀장이 엄지를 척 내밀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 냉정한 편집장님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니까.”
그때 편집장이 지로에게 물었다.
“이거 원고는 언제 쯤 나올 수 있나?”
“일단 이쪽에서 연재가 가능한지부터 알려드리기로 해서요.”
“바로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 이런 작품이라면 지면을 늘려서라도 해야지.”
“그럼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지로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를 끊자 궁금하다는 편집장과 팀장이 지로를 빤히 쳐다본다. 빨리 대답하라는 표정으로.
“한편만이라면 3일정도면 완성이 된다고 합니다.”
“오, 역시 써니 선생의 스피드는 엄청나네. 아, 우리 사토 선생님도 저런 속도를 익혀야 하는데.”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신다.
편집장은 그런 팀장을 슬쩍 한번 봤다가 곧바로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시간이 없구만, 이번 잡지 편집 마감이 언제지?”
“내일 정오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바로 홍보용 페이지를 추가하도록 하게. 표지에도 글을 넣도록 하고.”
“어? 표지는 완성했는데요?”
“다시 수정하면 되잖아.”
“······이거, 표지 디자인 쪽 사람들이 시끄러울 텐데.”
“그쪽 과장은 내가 직접 만날 테니까. 어서.”
*
며칠 후.
신간 소년 히어로가 발행되자마자 그날 저녁 팬들이 주로 모이는 카페는 시끌벅적했다.
“다음 주부터 써니의 신작이 나온다던데?”
“어. 하지만, 신작 그림도 없고, 내용도 알려주지 않던데.”
“그러게. 그냥 글로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는 너무 현실적이고 슬픈 이야기’라는 것만 눈에 띄던데.”
“어떻게 다음 주부터 당장 나올 작품인데, 그림 한 장 없냐고, 너무한 거 아닌가? 홍보에 너무 성의가 없다고.”
한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투덜거리자 다른 남자가 팔짱을 끼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턱 기대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들이 이렇게 궁금해 하잖아.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너는 안 살 거야?”
그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깨를 움츠리더니 피식 웃는다.
“······뭐, 할 수 없는 일이잖아. 당연히 사야지.”
“그러니까.”
“써니도 참 대단하다. 삼사라야 곧 끝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미 연재 중인 작품이 세 개인데 또 하나를 더 하겠다니.”
“써니 여고생이라며, 그런데 괜찮나?”
“걱정은 되면서도 더 해줬으면 하는 악마적인 재능이 문제지.”
“그러게. 나도 솔직히 걱정은 되면서도 좀 더 활동을 많이 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되니까.”
“그나저나 정말 어떤 작품이지? 궁금해서 한주를 어떻게 기다리냐고.”
“요즘은 정말 만화책 전쟁이라니까. 재미있는 만화들이 너무 많아서 용돈이 부족하다고.”
“난 만화책 구입 때문에 따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따로 하고 있다니까. 그 때문에 요즘 피곤해 죽겠어.”
“뭐, 어쩌겠어. 만화를 좋아하는 업보인데.”
“그러게.”
* * *
오랜만에 미치코가 밝은 모습으로 화실로 들어오더니 손을 들고 소리쳤다.
“아녕 하시무니까!”
여전히 어눌하지만 사람들을 그런 그녀를 향해 밝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카와다 씨.”
“요즘 뜸하시던데. 미자 언니 작품은 요즘 반응이 어때요?”
“조스무니다. 아주 조스무니다.”
그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한다고 하더니 말은 잘 알아듣는다. 하지만, 아직 혀가 한국말에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어시들과 잡다한 대화를 나눈 미치코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당연히 일본어로.
“신작에 대한 홍보로 반응이 아주 뜨겁던데. 그거 완성 되었다면서요.”
“네.”
“제가 그 원고 받아가려고 왔답니다.”
“네. 들었어요.”
“원고는······.”
“준희야.”
“응.”
“원고.”
“알았어.”
성준희가 서둘러 완성된 새 원고가 들어있는 서랍을 열어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미치코에게 건넸다.
미치코는 마치 무슨 인디아나 존스의 성물이라도 만지듯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서는 테이블에 놓고 원고를 천천히 꺼냈다.
생각보다 두꺼운지 날 보며 물었다.
“원고가 좀 많아 보이네요?”
“네. 첫 화는 특별히 30페이지짜리거든요.”
“와, 진짜요? 사흘 만에 30페이지를 완성하신 거예요?”
“네. 제일 고생한 사람이 우리 김달부 씨라 오늘은 쉬시라고 했거든요.”
“아.”
미치코가 김달부의 비어있는 자리를 보더니 머리를 끄덕인다.
그나마 엄청난 속도의 배경장인이라 완성하긴 했지만, 그도 좀 무리를 한 것 같아 쉬게 한 것이다.
아무튼 미치코는 그런 사실에 여전히 놀라워하며 다시 원고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원고 첫 장에 놓인 빈 원고지를 내려다보며 조금은 요란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 이게 지금 그렇게 반응이 뜨거운 원고군요.”
“네.”
“막 두근두근해서 첫 장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아요.”
꽤나 호들갑을 떨어대면 말하던 미치코가 빈 원고지를 넘겼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본다.
제목은 ‘절망의 페르소나’다.
“절망의 페르소나?”
머리를 갸웃거리던 미치코가 곧장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30페이지를 다 확인한 미치코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거 너무 슬픈 거 아니에요? 전 전혀 준비도 못하고 있었는데.”
경희하고 반응이 너무 비슷해서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