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1화 (261/425)

미래에 대한 첫 메시지 (4)

경희가 요란을 떨며 눈물콧물을 흘려대고 있으니 어시들도 궁금했던지 하나둘 모여들었다.

“왜요? 혹시 신작이 멜로물이에요?”

박소미의 물음에 경희가 흐르는 콧물을 훌쩍 닦으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뇨. 오빠에게 그런 감성이 있을 리 없잖아요.”

뭐야, 너무 하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노골적이잖아.

“아.”

박소미의 반응에 결국 울컥해 버렸다.

“아라니,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을 앞에 두고.”

“아, 그런 뜻은 아니고요.”

아니긴.

속마음을 들킨 표정이구만.

아, 멜로는 나 따위의 감성으론 불가능한 장르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들 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서글프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박소미가 아니라고 계속 변명을 한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다고!

아무튼 경희는 주변에 어시들이 모여들었음에도 이야기에 완전히 몰두해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경희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만 갔다. 그리고 다 읽었는지 잠시 콘티노트를 내려다보던 경희가 테이블에 그것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굉장히 화난 얼굴이다.

“뭐야, 꿈도 희망도 없이 이렇게 끝나버리는 거야?”

“그래.”

“막을 방법도 찾지 못하고?”

“못 찾아.”

“아예?”

“없어.”

내 대답에 눈물을 콸콸 쏟으며 내 팔을 붙들고 막 흔들기 시작했다.

아아, 목 다치겠다.

“미래잖아. 앞으로 25년이나 후의 미래인데,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거야? 화성까지 갈 기술이 있는데도? 이게 무슨 미래냐고!”

“무슨 소리야? 콘티에 그런 내용이 어디 있어?”

“과학책에서 봤단 말이야. 앞으로 2-30년 후엔 화성에 인간이 살게 될 거라고. 나중에 화성으로 여행가는 걸 얼마나 꿈꾸고 있었는데.”

“······.”

가긴 하는데, 그게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게 문제지.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미래인데, 너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네.

거기다 설사 가능하다고해도 여행은 네 마음대로 가냐?

에휴.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시절에서 보는 미래는 하드웨어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발전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미래는 소프트웨어적인 발전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가장 대표적이다.

아무튼 선희의 황당한 발언에 잠시 머뭇거렸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일단 이 녀석부터 진정시켜야 하니까.

“방사능과 우주여행이랑은 별로 상관이 없어. 그리고 내가 만든 만화 속에선 그 정도까진 발전하진 않았다는 설정이고.”

“······.”

“이번 이야기는 방사능이 유출될 경우를 가장해서 만든 거야. 경각심을 가지자는 게 주된 내용이니까.”

내 말에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고는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알고 있어. 그냥 이야기가 너무 슬프게 끝나니까. 그런데,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져? 소련에서 일어났다는 일도?”

“누출 양에 따라서는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어.”

경희가 더 울상이 되었다.

“······진짜? 우리나라도 원자력발전소 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관리를 잘 해야 하는 거야, 원자력은.”

경희와 이런 대화를 하는 동안 어시들은 모여 열심히 콘티를 읽어보고 있다. 그러면서 ‘어머나! 저런! 너무 심한데!’하고 소리치고 있다.

나중에 다 읽은 어시들도 이 대화에 참여했다.

“정말 원자력발전소가 터지면 이렇게 되는 겁니까?”

우리화실에서 나이 많은 막내어시 김달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거 이상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책에서 읽은 겁니다.”

물론, 만화책이나 당시 뉴스를 통해서 들은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방사능 유출이 계속 일어난다니, 뭔가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데요?”

“맞아요.”

“뭔가 무서워요.”

대부분의 어시들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하기야, 한국에서도 계속 원전을 늘려가고 있는 분위기고, 그것이 안전하다는 홍보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런 반응도 어쩌면 당연하다.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선생님이 만든 이야기속의 상황처럼 돼 버린다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인간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인류는 멸망으로······.”

“세계 여러 곳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진짜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그래서 이런 일은 안 일어나야 하는 거고.”

“그런, 지금 소련에서 일어난 일은 이만큼 상황이 안 좋을 수 있다는 거군요.”

“그럴 겁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진 않겠지만요.”

“어쩐지 3차 대전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네요.”

대화의 내용 때문에 화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실버만은 담담한 표정이다.

“57년에 영국에서도 사고가 있었고, 79년에 미국에서도 있었어. 그게 레벨5. 그거보다 더 심하게 터진 사고가 57년 소련에서 있었는데, 그건 정확한 자료가 알려지지 않아서 피해는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 그건 레벨6. 그런데 그거보다 이번 사건이 더 클 거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공산권 국가에선 이런 사실을 외부로 잘 알리지 않고 숨길 테니까. 아, 참고로 레벨이 높을수록 큰 사고야.”

뭐야? 실버 저 인간 원전 전문가야?

알면 알수록 실버의 지식은 놀랍다.

아무튼 실버의 말대로라면 후쿠시마도 체르노빌과 비슷하다고 했으니, 어쩌면 같은 레벨일지도 모르겠네.

“무섭다.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많은 사고가 있었다니.”

박소미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놀란다.

“그건 알려진 거고, 어쩌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을지 모르지.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인식도 하기 전에 인류는 멸망해 버릴지도 몰라.”

실버가 화실의 썰렁한 분위기에다 드라이아이스를 쏟아부어버렸다. 덕분에 어시들은 완전이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거 수습이 되려나?

*

다음날 지로가 화실을 찾아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탓에 이런저런 선물들도 잔뜩 챙겨왔다.

어시들이 사용할 펜이나 잉크, 곡선자와 스크린톤도 잔뜩 가져왔다.

물론 화과자는 기본이고.

그렇게 찾아온 지로와 서로간의 긴 안부 인사를 하고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콘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 전에 콘티를 먼저 읽게 한 것은 물론이고.

한참동안 콘티를 읽던 지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러더니 콘티노트를 내려놓으며 날 쳐다봤다.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생각보다 리얼하네요. 여기 내용은 조사를 하신 건가요?”

“네. 제법 많이요.”

사실을 기반으로 했으니까.

“정말로 이렇게 된다면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그리고 부끄럽지만 일본정치인들이라면 이렇게 할 것 같기도 하고. ‘서바이벌(생존게임)’이나 ‘표류교실’보다 더 충격적이네요. 거기다 써니 선생님의 리얼한 그림까지 더해지면 팬들도 엄청나게 충격을 받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일본침몰’ 정도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일본침몰요?”

“네. 오래전에 나온 소설인데, 영화로도 만들어져 엄청나게 히트 쳤죠.”

그러고 보니 나중에 리메이크가 나왔던 그 영화의 원작인 모양이다.

“이거 너무 내용이 상세해서 좀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삼사라도 인류종말이 배경설정이었는데, 확실히 이 부분에 대해선 강하시네요. 물론 삼사라의 경우는 판타지 쪽이었지만요.”

“내용은 어떻습니까?”

“네. 상당히 공감이 가는 얘기고, 분노, 슬픔이 교차되네요. 이런 이야기라면 일본인들이 좋아하죠. 단편소설인 ‘반딧불의 묘’도 이런 식의 내용이죠.”

지금기준으로 2년 후 개봉하는 ‘반딧불의 묘’의 원작 소설을 말하는 것이다. 60년대에 나온 단편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읽은 기억은 없다.

다만, 작가가 자신의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썼다고 하던 게 기억난다.

아무튼 지로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성공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로 예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타이트한 느낌이네요. 한권으로만 표현하기엔 너무 빠른 느낌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조금 템포를 떨어뜨린다면 감정 전달도 확실히 좋을 것 같고요. 특히 이 부분이랑, 이 부분요.”

“흐음. 그렇겠군요. 순간적인 충동으로 진행시킨 이야기다보니.”

그 말에 지로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사건 때문에 만드신 이야기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솔직히 저도 그러시지 않았을까 생각은 했습니다만, 상황묘사가 너무 실감나서 오랫동안 준비를 하신 것도 같아서 애매했거든요.”

“뭐, 이 사건 이전에도 관심이 있긴 했으니까요.”

오랫동안 이 사건을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 접했으니까.

물론 체르노빌이 아닌 후쿠시마를 말이다.

“아무튼 이번 작품은 삼사라와는 다른 형태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크게 받을 것 같습니다.”

“뭐,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삼사라는 원고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왕 오신 김에 원고 가져가시면 될 것 같네요.”

“벌써 끝나셨다고요?”

“네. 미뤄둘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완성된 원고를 지로에게 가져다주었다.

7주 연재분이니 상당히 많은 양이다.

일곱 개의 봉투에 나눠 담아 쌓아뒀는데, 그것을 보던 지로가 생각이 많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삼사라와 지내온 그동안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모양이다.

잠시 그렇게 봉투들을 바라보던 지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봉투를 하나씩 열어 원고를 조심스럽게 넘기며 읽어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읽어가던 그가 마지막 원고를 봉투에 넣으며 날 쳐다본다.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역시 저번말씀처럼 후속편에 대한 희망을 남겨놓으셨네요.”

“아, 네. 뭐.”

실은 완벽하게 마무리하려했는데, 선희가 콘티를 바꾼 거지만.

그래도 전에 지로에게 ‘어쩌면 후속편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처럼 보였나보다.

뭐,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거고.

“아무튼 마지막 원고까지 확실히 받았습니다.”

“네.”

“아참, 그러시면 이번에 시작할 원고는 어제쯤 연재를 하실 계획이십니까?”

“삼사라 연재를 끝내고 할 생각인데, 왜 그러세요?”

“사실, 2주후 출간된 소년 히어로에서 토시오 선생님의 ‘사막의 기사’가 완결될 여정이라 새로운 작품을 찾고 있거든요. 혹시라도 여유가 되신다면 이 작품을 넣어보시는 건 어떠실까해서요.”

“이미 파시엔시아와 삼사라, 이렇게 두 작품이나 연재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한권짜리, 길어도 두 권이면 마무리 될 만화 아닙니까? 거기다 써니 선생님 작품이라면 편집부에선 환영일겁니다.”

“다른 만화가 선생님들이 항의 할지도 모르는데요.”

“아닐걸요. 다른 분도 아니고 텐겐, 써니 선생님 조합이면요.”

“······그렇다면 뭐.”

안 그래도 파시엔시아랑 다크 프린세스만 작업하면 시간이 너무 남아돌긴 한다.

그 때문에 한동안 일이 없어서 눈치를 볼 것 같다는 어시들의 우스갯소리도 들었고.

“알겠습니다. 일단 돌아가면 그 부분을 편집장님과 의논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콘티부분은 복사해서 가져가겠습니다.”

“네. 하지만, 아까 아카기 씨가 지적한 부분은 수정을 할 생각이니까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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