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0화 (260/425)

미래에 대한 첫 메시지 (3)

소련,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을 말하는 건가?

“이름이 뭔데?”

내 질문에 실버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더라? 체르······ 뭐라고 하던데.”

“체르노빌?”

“어? 너도 알고 있었냐?”

“······뭐. 그렇지.”

그런데 그 사건이 벌어진 게 오늘이라고?

순간 몸이 긴장으로 굳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화실 식구들도 멈칫하더니 실버를 바라본다. 그리고 박소미가 실버에게 물었다.

“원자폭탄이요?”

“아니, 원자력발전소.”

그 말에 좀 안심하는 표정이다.

“소련이면 굉장히 멀잖아요.”

“그렇지.”

“······오늘 터진 거예요?”

“고르바초프가 발표했는데, 터지긴 이틀 전에 터진 모양이야.”

이틀 전이구나.

그런데 실버의 말에 모두 안심해 하는 표정이다.

그저 폭탄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테지.

실제로는 상당히 심각한 일이 벌어진 건데.

아무튼 그런 반응에 실버도 내 생각과 같은 지 눈살을 잔뜩 찌푸린다.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는 건 어쩌면 폭탄보다 더 무서운 일이야.”

그 말에 어시들도 깜작 놀랐다.

“원자력 발전소라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어? 저번에도 방송에서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다고 얘기하던데.”

“그거야 폭발하지 않았을 때 얘기지. 그리고 안전한 시스템이라도 사람이란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인근은 아마 쑥대밭이 되었을 거다.”

나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체르노빌의 피해는 엄청났다고 들었다. 그리고 실버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멀어서 우리에겐 피해가 적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전혀 영향이 없다고는 말 못해.”

“그럼 어떡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실버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아는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야 미래에서 왔으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름 엄청난 사람이 죽고 방사능에 피해를 입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동시에 떠오른 것도 있다.

후쿠시마.

2011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그곳에 있던 원전이 폭발한 사건.

그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있었고, 그 지역은 완전히 폐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그 지역 물건들을 한국에게까지 수출하려고 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일본은 점점 이상한 곳이 되어가고 있어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 되었건 그 사건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계속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커다란 사건이다.

이것이 체르노빌처럼 먼 곳에서 벌어졌다면 모르겠지만, 가까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도 그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

그렇다면 이 사건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가 이런 일에 끼어들어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난 그저 평범한 만화덕후일 뿐이니까.

물론 지금의 난 평범한 덕후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미 몇 개의 작품을 히트시키고 있는 제법 이름 있는 만화 스토리 작가니까.

그리고 아직은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2008년에 나오게 될 코펠리온이라는 만화도 있다. 작품 배경의 원전폭발은 2016년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만화가 나왔지만 결국 원전폭발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래엔 각종 재난관련 만화가 많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 파장이 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거기다 등장인물들이 방사능에 항체를 가진 육상자위대에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결국 좀 더 리얼하고 현실적인 작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굳이 따로 설정을 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당시의 일본 모습을 어느 정도 봤으니, 그것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되는 거다. 물론 계획은 단행본 1권짜리 정도로.

이걸로 경각심이라도 가지게 만든다면 그거로도 충분하지 싶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지금 기준으로도 먼 미래의 일인데,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되는 거다.

일단 결심이 서자, 스토리 구상에 들어갔다.

그동안 일본 주변도시에 대한 사진은 지로에게 많이 받아둔 상태여서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정을 만들었다.

후쿠시마라고 콕 집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커다란 지진, 그것으로 인해 해안선에 자리 잡고 있는 원전 중 하나가 폭발해서 방사능 유출이 계속 일어나는 상황이 기본 배경이다.

원전 폭발이후, 정부는 사실을 축소시키고 방송을 통해 국민들을 속이는 것에 급급해 한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정권을 잡겠다는 욕심에 나라가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의 정책을 펼치고.

실제 배경도 2011년으로 잡았다.

이정도면 실제 일과 거의 흡사하다.

이것을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임신 중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뱃속의 아이는 사산되어버리고, 결국 여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름시름 앓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지만, 별일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부인도 사망, 홀로 남겨진 남자는 뭔가 잘 못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홀로 정부와 싸우고, 그런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모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화실 퇴근 후, 저녁.

이제까지 구상한 것을 기반으로 선희와 함께 콘티를 제작했다.

선희는 사진들을 조합해 도시를 구상하고, 지진으로 폐허가 된 부분은 지역별로 구분해 스케치를 따로 만들었다.

그걸 기반으로 구상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자, 그것을 메모하며 콘티작업이 시작되었다.

“여기 도시 외곽 지역이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골이야.”

선희가 그린 지도의 한 지역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콘티 속 배경을 그려간다.

전형적인 일본 배경이지만, 미래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더해 실제 미래의 모습보다 더 미래처럼 그렸다. 물론 시골이라는 느낌은 살리면서.

이 시절엔 이미 블레이드러너의 영향으로 사이버펑크 식 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독자가 예상하는 미래의 배경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

너무 현실적인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스토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나가는 동안 선희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이번 이야기는 이제까지와 달리 흥미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더 그렇다.

메모를 하면서도 선희는 계속 날 힐끔거렸다.

“왜?”

“이번 이야기, 결론이 어떻게 돼?”

이제까지 한 번도 이야기의 결론에 대해 궁금해 한적 없었는데, 의외다.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뭔 힘이 있겠어. 그냥 저항만 하다가 불행하게 끝나는 거지.”

“불행?”

선희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린다.

안 그래도 주인공의 아내가 아이를 사산하고, 거기다 시름시름 앓고는 죽는 것까지 들었는데, 결론도 이 모양이니 마음이 좋을 리는 없겠지.

“해피엔딩으로 하면 안 돼?”

“그러고 싶은데, 이건 좀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거든.”

“······알았어.”

여전히 아쉽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인다.

그렇게 한참동안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마무리가 되자 선희가 메모를 끝냈다.

그때 경희의 방문이 열렸다.

며칠 후에 있을 시험으로 바쁘다더니 요즘 몰골이 퀭하다.

그런 경희가 거실에 있던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 신작 준비하는 거야?”

“그래.”

“뭔데, 뭔데. 이야기 해줘.”

“콘티 내일부터 작업할거니까, 금방 끝날 거야.”

“금방? 왜? 이번엔 짧은 거야?”

“한권짜리.”

“그렇게 짧아?”

“장편으로 하기엔 좀 그래서.”

그 말에 경희가 머리를 갸웃했다.

“왜?”

“나중에 완성하면 그때 봐.”

“알았어. 기대할게.”

그렇게 말하더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밤늦게 또 간식 먹으려고?”

“배가 고프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 같아서. 선희 너도 먹을 거지?”

경희의 질문에 선희가 머리를 힘차게 끄덕인다.

“응.”

선희도 우울했던 표정을 지우고 금방 밝아진다.

*

지로가 심각한 투로 말했다.

- 지금 일본은 시끄럽습니다.

“그래요?”

- 네. 아무래도 과거 전쟁 때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 많으니까요.

말은 안하지만, 결국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관한 얘기겠지.

하기야, 지금 시대라면 대충 4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으니 장년층들은 직접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 뉴스에서도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계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소련에 이번 일로 인한 방사능 피해, 그리고 수치를 제대로 공개하라고 하는 모양이고요.

“······.”

이 부분은 좀 그런 게, 내가 살던 시절의 일본을 기억하는 나로선 좀 우스운 일이기는 하다.

그때의 일본 정부는 이걸 숨기려고 난리였으니까.

- 아 참. 삼사라가 끝난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 편집부엔 독자들의 문의 전화랑 엽서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좀 더 연재를 이어가 달라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구요.

“그렇군요.”

- 그런데 정말로 완벽하게 마무리 되는 겁니까?

“글쎄요. 엔딩 콘티가 묘하게 마무리 되어서.”

- 묘하게라뇨?

“선희의 생각이 들어간 엔딩인데, 완전한 마무리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또 나쁘지가 않아서.”

- 희망이 있다는 거군요.

“아직은 확실하진 않은데, 그럴 지도요.”

- 그거 반가운 얘기네요.

그렇게 말하며 지로가 웃었다.

그리고는 곧장 최근에 재미난 일도 있었다며 월간 가십이라는 잡지사 건물 앞에서 벌어진 팬들의 시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 그 때문에 다른 잡지들도 몸을 잔뜩 사리고 있습니다. 팬들의 반응이 너무 격했으니까요. 덕분에 저희들도 일하기가 수월해졌습니다.

“그 건 저도 반가운 일이네요. 안 그래도 잡지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몰아붙여서 좀 찝찝했는데.”

- 그게 일본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잡지들이야 오로지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것밖에 모르니까요. 요즘 나오는 스포츠신문이랑 똑 같거든요.

문제는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보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지.

아무튼 이런저런 잡다한 대화를 한 뒤, 이번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신작 콘티가 거의 완성되어 가는데, 한국에 들리실 예정은 없습니까?”

- 아, 그렇다면 카와다에게 시키지 말고 직접 가야죠. 내일은 인쇄공장에 가봐야하니까, 모레 한국에 가겠습니다.

“네. 그럼 그때 뵙도록 하죠.”

- 네. 알겠습니다.

*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경희가 신작 콘티를 읽다가 날 홱 돌아봤다.

그런데 이 녀석 눈물에 콧물에, 얼굴이 엉망이다.

“오빠, 나 이렇게 슬픈 이야기는 너무 그렇다고. 넌 안 그러니?”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슬퍼.”

“그치?”

그렇게 말하며 코를 쭉 빨아들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슬프다니, 난 준비도 안 됐는데.”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지.”

“아직 슬픈 내용이 더 남았다고?”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내 말에 경희의 표정이 더 울상이 되었다.

“오빠,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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