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첫 메시지 (2)
“선희야, 이번 콘티는 마지막이다.”
“마지막?”
“그래. 지금 내가 말할 내용은 마지막이니까, 집중 잘 해줘.”
내 말에 선희가 묘한 표정으로 날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응.”
아직 연재로 끝이 나려면 한 달 반 이상을 더 연재해야 하지만, 콘티는 오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선희가 콘티노트를 들고 기다렸다.
내가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해나가자, 선희가 그것을 메모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야기의 끝은 어제 밤새 고민했던 부분이고, 아침에 다시 메모를 수정하며 완전히 마무리를 했다. 물론 그것이 선희 손에 들어가서 새롭게 가공되고 선희만의 삼사라 엔딩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고 난 뒤, 선희는 그것을 적은 메모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곧장 작업에 돌입했다.
어시들도 삼사라의 마지막 콘티라는 사실 때문인지 작업 중인 선희를 쓸쓸한 눈길로 바라본다. 나 역시도 삼사라 마지막 콘티라고 생각하니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듯한 기분이다.
한 시간 정도 흐른 뒤, 선희가 마지막 콘티를 내게 가져왔다.
“끝난 거야?”
“응. 최선을 다했어.”
콘티노트를 선희에게 받아 읽어봤다.
장면도 나름 디테일하며 그려둬서 이야기를 이해하기 좋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했던 마지막보다 더욱 감정선이 좋아서 마지막이라는 것이 더 실감나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엔딩부분은······.
“어? 내가 설명한 거랑은······.”
다르다.
내가 생각한 엔딩이랑 많이 다르다.
난 더 이상 이야기를 더 이어갈 생각이 없다는 느낌으로 마무리 지었는데, 선희는 어째선지 이야기가 더 있을 것처럼 끝을 냈다.
“이야기가 더 이어지는 거냐?”
“그런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
“뭐, 이런 느낌도 나쁘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야기를 더 쓰고 싶을 때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 텐데.”
“······.”
뭔가 선희의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하면 독자들도 후속편을 기대하게 될 텐데.
뭐, 이어갈 스토리가 떠오른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선희가 처음으로 스토리에 자신의 의지를 넣었으니, 이것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 일단 마무리는 이렇게 하는 걸로 하자.”
“응.”
아무튼 마지막 콘티는 내 생각보다 훌륭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화실 식구들도 돌아가며 마지막 콘티를 읽고는 제작각의 감상을 이야기했다.
“아, 저도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느낌이에요. 사실, 이대로 완전히 끝난다는 느낌보다는 이쪽이 좋은 것 같아요.”
“저도요. 언젠가는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어서 좋아요.”
“아까 윤환이 말대로라면 이건 희망고문이야. 그냥 완벽하게 끝내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실버는 다른 어시들과는 다른 반응이다.
확실히 끝내는 쪽이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나 역시 아직은 속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실버의 말도 이해는 된다.
아무튼 콘티는 완성이 된 상황이니, 이것을 작업은 며칠 내로 완성이 될 것이다.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작업했던 삼사라를 떠나보내니 기분이 좀 묘하네.
차기작은 뭐로 할지 좀 생각해 봐야겠다.
* * *
11권으로 삼사라가 마무리된다는 소식은 팬들에겐 꽤나 큰 충격이었다.
도쿄 시내의 카페에 모인 삼사라 연구회 사람들은 특히나 그 충격 때문에 모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중 다크서클이 가장 심하게 보이는 남자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삼사라가 다음 단행본이 마지막이라는 소식 들었어?”
“여기서 그 소식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 물어볼 걸 물어야지.”
“쟤도 지금 충격이 얼마나 심했으면 저러겠냐? 우리가 이해해야지.”
“나도 그 소식 알고는 충격 때문에 어젠 잠도 못 잤다니까.”
“나도, 나도. 드래곤볼이랑 북두의권 보는 낙으로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삼사라를 제일 재밌게 보고 있었다고.”
“사건은 모두 해결되었지만, 아직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해줬으면 했는데.”
“편집부에 전화라도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전화 걸어서 뭐 어쩌려고? 무조건 삼사라 끝내면 안 된다고 말하게?”
“역시 무린가?”
“엽서라도 보내면 어떨까? 써니가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스토리를 쓰는 사람은 텐겐이라고.”
“그럼 텐겐에게.”
“잡지 안 읽었어? 텐겐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모두 끝냈다고 하잖아.”
“하고 싶은 얘기는 끝났어도 또 생각해 내면 되는 거지. 애초에 만화가의 숙명이잖아.”
“그건 점프식이고. 다른 잡지는 다르지.”
“······아, 이렇게 끝나면 곤란한데.”
연구회 사람들은 모두 삼사라가 이렇게 끝난다는 사실에 모두 아쉬워했지만, 현실적으론 그들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카페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얼마 전에 사인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 아닐까?”
그 말에 곁에 있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남자가 물었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데?”
“그 자식들, 써니가 한국인이라고 엄청 지랄했었잖아.”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자 몇몇이 그 말에 반응했다.
“나도 잡지 몇 개 읽어봤어. 특히 월간 가십 그놈들이 제일 악질이었어. 써니는 얼굴마담일 뿐이고, 실은 따로 작가가 있을 거라며 맘대로 기사를 썼던 그 자식들. 내가 그거 읽고 얼마나 열이 뻗쳤는데. 눈앞에서 써니의 사인을 받아봤다면 그딴 소리,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걸.”
“사인도 그림 몇 개 외워서 했을 거라고 써 놨더라.”
“아, 들으니까 또 열 받네. 아무튼 네 말은 그게 이유라는 거지?”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 중 한명이 묻자 계속 창밖을 바라보던 남자가 시선을 거두고 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라면 그런 기사 보고 열 받았을 테니까. 어린 나이에 그런 기사 보면 충격이 컸을 거 아니냐.”
“맞아. 안 그래도 얼마 전 유키코 자살도 그랬잖아. 18살이었지, 아마?”
“그래. 고등학생이면 감성이 풍부할 때지.”
“아, 진짜. 그 쓰레기 자식들. 평소엔 만화 쪽엔 관심도 없던 놈들이.”
“듣기론 가십 그 새끼들, 이번에 잡지 엄청 팔았다더라. 돈 밖에 모르는 자식들.”
그때 남자 한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우, 나 못 참겠다. 당장 찾아갈래.”
“찾아가서 뭐 어쩌려고?”
“어쩌긴, 소리라도 버럭 질러야지!”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나도 동참할래.”
“나도 같이 가자.”
“그럼 나도.”
그렇게 말하며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월간 가십의 편집부.
“와,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자극적으로 쓰지 그랬어.”
“그러게요. 저도 이정도 일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이번 써니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가 히죽거리며 잡지를 읽고 있다.
그때 편집장이 그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이봐, 가네다.”
“네, 편집장님.”
“이거. 격려금.”
그렇게 말하며 흰 봉투를 건네자 그것을 받은 가네다가 환하게 웃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뭘, 이번에 판매부수가 좋았으니까. 다음에도 이런 기사 부탁해. 좀 더 자극적으로.”
“그럼요. 이참에 써니에 대한 조사를 좀 더 할 예정입니다.”
“좋아, 좋아.”
그런데 그때였다.
창가에 있던 직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바깥으로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 밖에 사람들이 잔뜩 모였는데요?”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저······. 지금 우리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하며 편집장과 직원들이 창가로 몰려가서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소리치는 편집실을 쳐다보며 소리치는 듯 보인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월간 가십! 쓰레기는 폐간하라!”
“폐간하라!”
“월간 가십! 쓰레기는 폐기물이다!”
“폐기물이다!”
그 모습을 보던 편집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직원들을 돌아봤다.
“저, 저 사람들, 왜 저래?”
“모르겠는데요. 도대체 왜 저러지?”
“잠깐만요. 밑에서 써니가 어쩌고 하는데요?”
“써니? 그럼 그 기사 때문에?”
“그런 모양인데요.”
“미친놈들. 젊은 녀석들이 만화에 빠져서 정신 못 차리고.”
“어쩌죠?”
“어쩌긴 경찰 불러야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직원이 서둘러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다음날 오후.
월간 가십의 편집부.
이번엔 직원들 대부분이 창가에 모여 있었다.
그때 위층에 올라갔던 편집장이 사무실의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이봐, 또 뭐야? 그 녀석들 또 온 거야?”
“네. 그런데 그게······.”
“뭐하고 있어. 경찰 부르지 않고. 얼른 쫓아버려.”
“그러고 싶긴 한데, 사람이 좀 많은 것 같아서요.”
“많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창가로 다가오며 다시 말했다.
“많아봐야 얼마나······!”
창가에 선 편집장이 멈칫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얼핏 봐도 100명은 훌쩍 넘어보였다.
“왜 저렇게 많아?”
“저기, 모르겠습니다. 어제 경찰을 부른 게 아무래도 역효과가 난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젠장. 경찰, 다시 불러봐.”
“그러다가 혹시 더 많아지기라도 하면.”
“부르기나 해. 이 이상 더 늘기야 하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직원이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어제보다 두 배 이상 늘었어요!”
“망할! 뭐야? 무슨 개미떼처럼 늘어나는 거야?”
“저 사람들 지금 분위기가 흉흉해요. 이거 퇴근시간까지 저러고 있으면 어떡하죠?”
“경찰은?”
“곤란하데요. 어제도 경찰들이 사정사정해서 돌아갔다고 하던데.”
“······.”
창 아래를 내려다보던 편집장의 표정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 * *
지로의 말에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시위요?”
- 네. 삼사라 연구회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작했는데 이미 5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월간 가십이라는 그 잡지사는 이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다더군요.
월간 가십이라면 미네가 보내준 잡지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잡지 중에서 가장 악의적인 기사를 썼던 놈들이다.
대부분 조사도 없이 뇌피셜만으로 싸지른 찌라시 같은 기사였지.
- 삼사라 팬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행동한 이상 다른 잡지사들도 몸을 사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속이 시원하더군요.
“하하. 저도 그러네요.”
- 그런데 이렇게 많은 팬들이 응원하고 있는데, 정말 끝내는 게 아쉽지 않으십니까?
“아쉽기는 하지만, 뭐. 상황이 맞으면 또 할 수는 있는 거니까.”
그 말에 지로의 목소리가 확 밝아졌다.
- 그렇습니까?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아니, 꼭 한다는 건 아니고······.”
- 그래도 희망이 생겼잖습니까? 저도 한명의 팬으로서 기대가 되니까요.
괜히 희망적인 말을 한 건가 싶어서 입 안이 쓰다.
아무튼 그렇게 전화통화를 끝내고 나자 어시들이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요?”
“삼사라가 다시 연재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니까요. 그냥 하는 말씀은 아닌 거죠?”
“그야 뭐······.”
그런데 선희도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저 녀석도 기대하고 있는 걸까?
혀를 한번 쯧 하고 찬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문제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죠. 당장은 예정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모두 웃기만 할뿐이다.
그때 평소처럼 안방에 있던 실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화실로 들어왔다.
“소련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