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첫 메시지 (1)
* * *
어제 사인회는 나름 재미있었다.
물론 나야 만화가들과 사인을 교환한다는 목적으로 하긴 했지만, 일반 팬들을 상대로는 하지 않았다.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써니 사인회라는 사실만 알고 찾아온 거니까.
그리고 가면라이더의 가면을 쓴 선희는 그게 좋았던 모양이고.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몰려든 덕분에 진행관리를 맡았던 사람들 입에서 ‘가면라이더 보다는 써니 사인회 같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면라이더 가면을 쓴 많은 수의 일반 팬들도 선희의 사인을 받아가기 위해 줄을 섰을 정도였으니까.
어디,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번쩍이는 카메라 세례도 많이 받았고.
아무튼 현장에 가져왔던 만화책 단행본과 소설책 3천권도 다 팔렸을 정도로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며칠간 보낸 일본은 재미가 있었다.
다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갔던 공항에서 정오쯤에 긴급뉴스가 나온 것만 빼면.
오카다 유키코라는 일본의 아이돌이 자살한 사건인데, 그 뉴스를 본 지로가 충격에 빠졌었다.
내가 일본인도 아니고, 특히나 아이돌에 대해선 아는바가 없지만,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오전에 자살시도를 했지만 미수로 그쳤는데, 정오쯤에 결국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렸으니.
내가 살던 시절도 그렇지만, 왜 이렇게 연예인 자살이 많은 건지.
아무튼 선희도 그 뉴스를 보고 꽤나 충격을 먹었던 모양인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 말 없이 그저 창밖만 보고 있었다.
그건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되었다.
“저번도 그렇지만, 왜 일본만 가면 그런 큰 사건이 나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불행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그렇지.”
“······.”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
며칠 후.
소포를 받았는데, 일본잡지들이 여러 권 들어있었다.
주간 루머의 기자인 미네 아츠코가 보내준 잡지들이다.
“이게 뭐예요?”
- 이번에 일본 잡지들에 실린 써니 관련 기사들이에요. 여기 분위기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주간 루머도 있는데.”
- 그건, 제가 쓴 거고요. 사진은 뭐, 그때 찍은 거.
미네가 사인회에 잠시 들러 사진을 찍었는데, 다른 곳과 달리 친분 때문에 선희의 가면을 쓰지 않은 사진도 찍었었다.
그때 그중 잘나온 사진은 직접 현상해서 보낸다더니, 소포 속에 사진도 따로 동봉되어 있다. 과연 기자가 찍은 사진이라 그런지 꽤 괜찮은 느낌이다.
- 우호적인 기사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기사도 많아요. 써니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죠.
“그렇겠네요.”
그런 것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사실이니까 놀랄 일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선희에게도 당부해 둔 것도 있고.
물론 선희야 그런 기사 따위엔 관심도 없어 보이지만.
“여러모로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 뭘요. 제가 오히려 고맙죠. 윤환 씨 덕분에 소설책이 잘 팔려서 저희 집도 사정이 좋아졌으니까요. 그래서 뭐, 저도 더 자유롭고.
저쪽 집 사정이야 자세한 건 모르지만, 미네가 파파라치 관련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트러블이 좀 있는 모양이다.
- 너무 물렁하게 하지 마세요. 나도 일본사람이지만, 일본인에게 쉽게 보이면 안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미네와의 전화통화를 끊고 나서 잡지들을 살펴봤다.
미네는 센스 있게 미리 중간 중간에 스티커를 붙여둬서 기사가 있는 부분을 찾기 쉽게 해줬다.
“뭔데? 무슨 잡진데?”
경희가 다가오며 관심을 가진다.
“어머, 망측해라! 오빠 이런 거 좋아했어?”
표지가 야시시한 수영복차림의 여자가 요염한 동작으로 있는 걸 보며 경희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야, 이거 성인잡지야. 어린애들 보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남자면 이런 거 좋아하는 게 정상인 거야.”
“씨, 오빠는 다를 줄 알았는데.”
“착각이네요. 남자는 다 똑같은데. 그러니까, 너도 남자 조심해.”
“칫, 그런 것쯤은 다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찌푸린 얼굴로 물러선다.
나쁜 기사도 많다는데, 이런 걸로 물러나주면 나야 좋은 거고.
그렇게 경희가 물러나자마자 다시 잡지를 펼쳐 읽었다.
뭐, 미네의 말대로 괜찮은 내용의 기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다.
대충 비율은 반반정도인데, 문제는 악의적인 기사가 좀 도를 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는 거다.
아직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전쟁, 가난 이런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일본에서 활동하는 우리가 그들의 눈엔 아니꼽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기사의 내용에 가난, 돈, 성공, 일본인들의 주머니, 뭐 이런 것들도 등장하는걸 보면.
이런 찌라시같은 기사들은 아직 그렇게 주목받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이런 시선도 있다고 생각하니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니다.
미네도 이런 곳이니 너무 물렁하게 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겠지.
물론 나도 이런 건 잘 알고 있다.
일본만화를 좋아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일본어를 공부했었고, 일본에 대한 것도 제법 많이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10배 이상인데다가 만화분야 만큼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곳이다. 아니, 만화뿐만이 아니라 문화 전체에서도 상당히 격차가 많이 나는 시기니까.
얼마 전에 라디오 뉴스에선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영화는 일본영화 만큼의 인지도가 없어요. 외국에서 가격차이가 열배 이상이나 나죠. 과거엔 한국영화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잖아요.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정확한 건 아닌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시아에서 홍콩영화가 가장 잘 나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한국의 전체적 분위기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분노와 그들의 발전된 경제, 문화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가장 크게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뭐 때가되면 역전이 되는 부분이 점차 앞으로 나올 테지만, 솔직히 지금의 한국인에게 그런 미래는 잘 그려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을 해서 그럴까? 그런 미래의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볼까하는 충동도 살짝 일어나긴 한다. 뭐, 실제로 벌어질 미래이니까 SF판타지는 아닌 건가?
*
지로가 조금은 힘이 빠진 듯 물었다.
- 역시 11권이 끝인가요?
“네. 아무래도 할 이야기는 다 했거든요. 엔딩에도 다가가고 있고요. 숨겨진 이야기도 거의 다했으니 이대로 계속 이어가봐야 그냥 늘려가는 것뿐이라서.”
- 그래도 팬들의 충격은 심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이야기가 빨리 끝나버리니까요.
뭐, 인기가 있는 만화라면 수십 권은 기본인 일본에서 11권이면 상당히 일찍 끝나는 만화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작화를 맡은 선희도 빨리 끝난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는 있다.
어시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처음 결정되었던 스토리를 다 풀어놓은 마당에 더 이어가는 것이 지금 내게는 무리라서 그만두기로 한 거니까.
마지막은 결국 헬 게이트를 안에서 막아버리며 마무리할 생각이라, 남은 지구인들이 자체적인 노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얘기로 끝이 날 것이다.
조금은 진부할지도 모르는 내용이지만, 그런 진부한 내용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물론 파시엔시아와 다크 프린세스는 계속 연재를 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다크 프린세스의 경우엔 삼사라 외전적인 이야기다보니, 결과적으론 삼사라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나 다름없긴 하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콘티 마무리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 * *
며칠 후,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내에선 삼사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뭐? 삼사라가 끝난다고? 확실해?”
“네. 어제 편집장님이랑 아카기 씨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니까요.”
“그래서? 편집장님은 뭐라 하셨어?”
“뭐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시던데요. 아마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려나봐요.”
“하긴, 숨겨진 이야기도 거의 다 밝혀진 상태니, 이대로 끝난다면 엔딩으로는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해도 되는 걸까요? 지금 잡지 내 인기 1위인데.”
“뭐, 편집장님이 그렇게 결정하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소년점프였다면 어림도 없었을걸요. 아마 50권 이상 연재하라고 만화가에게 압력을 넣었을 거예요.”
“그 녀석들이야 원래 업계에서도 유명하잖아. 물론 가장 잘 팔리는 잡지긴 하지만, 그만큼 문제가 많은 곳인 것도 사실이니까.”
“가장 잘 팔리는 게 중요한 거죠.”
“그야 그렇긴 하지.”
“그런데 지금 팀장님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아까, 부편집장님이 긴급회의를 열었어요. 아카기 씨도 회의에 불려갔어요.”
“음, 역시 삼사라 때문인가 보네.”
“그렇죠, 뭐.”
그 시각, 회의실에선 팀장이상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실에 모인 팀장들은 삼사라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얘기에 좀처럼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카기 자네가 텐겐 선생님을 다시 설득해 보면 안 되겠나?”
“그래. 만화가들은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기 힘들면 끝내려는 습성이 있으니까. 삼사라의 경우도 충분히 성공해서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을 테고.”
“그래도 선생님 본인이 끝내고 싶어 하면 끝낼 수 있게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애초에 처음부터 써니 선생님이랑 텐겐 선생님을 이곳에 데려온 것도 아카기였으니까. 담당이 그렇게 판단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고.”
“어이, 자네 팀이잖아. 팀장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내 팀이니까 그러는 거지.”
“지금 삼사라는 단순히 어느 팀이 맡고 있다는 정도의 만화가 아니야. 소년 히어로의 판매부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 몰라?”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부담을 작가에게 몽땅 지울 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그 때 부편집장이 팀장들 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자, 일단 진정들하라고. 그리고 이렇게 팀장급 회의를 시작한 이유는 삼사라의 연재를 더 이어가게 하려는 게 아니야.”
부편집장의 말에 팀장 하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럼 뭡니까?”
“삼사라의 완결은 이미 편집장님의 허가도 떨어진 상황이라서, 어떡하든 삼사라의 연재 종료로 인한 충격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하는 것이 회의의 목적이다.”
“······삼사라의 충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라는 거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팀장들이 맡은 선생님들과 팀원들이 맡은 선생님들이 좀 더 힘내도록 하라는 거야.”
그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팍 가라앉았다.
그런 상황에서 지로의 담당 팀장이 입을 열었다.
“아카기.”
“네.”
“써니 선생님 혹시 차기작 계획은 없어?”
“일단 현재 연재중인 파시엔시아와 다크 프린세스에 집중하시겠다는 말씀 외엔 없으셨습니다.”
“역시 두 작품만으로도 버거운 건가?”
그 말에 다른 팀장도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써니 선생님이 현재 고등학생 신분이니, 이거 이상 맡는 것도 무리는 있었겠지. 거기다 지금은 대학교 입시 준비라고 하지 않았어?”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대단하긴 대단하다. 고등학생인데 세 작품 연재에 대학교 입시까지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한 작품 줄이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이긴 하지.”
“그건 그런데, 소년 히어로 입장에선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니까 문제지.”
“그러게 말이야. 잡지 판매가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피해가 될 테니까.”
그렇게 모두가 한숨을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