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57화 (257/425)
  • 공개 사인회 (9)

    이게 무슨 소리야, 만화가들이 찾아와서 나와 선희 사인을? 그것도 현재 일본에서 1, 2위를 다투는 소년점프와 소년매거진의 만화가들이?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 멍하게 있었지만, 말하고 있던 지로도 비슷한 기분인지 아직 실감하고 있지 못한 표정이다. 아마 나도 저런 표정이겠지?

    “선생님······.”

    “······네?”

    “사인.”

    “아.”

    내가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일단 제 사인보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데요?”

    “아, 네. 저쪽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인회가 열리게 될 장소 뒤쪽을 가리킨다.

    눈을 크게 뜨고 그곳을 바라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웅성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곳을 확인하자마자 지로가 앞장을 섰다.

    지로를 따라 가자 선희도 날 따라온다.

    아까 이시노모리 선생에게 받은 가면라이더 옷이 좋은지 계속 그것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곧 가방에 주섬주섬 넣는다.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하는 행동만 보면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것 같다.

    이렇게 감정이 풍부한 아이인데, 어째서 가면을 벗으면 그렇게 무감정한 느낌이 드는 걸까?

    아무튼 꽤나 즐거워하는 선희와 함께 지로를 따라 사람들이 몰려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들이 도착하자마자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아, 이분들이 써니, 텐겐 선생님이신가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힐끔거렸다.

    “네. 여자 분이 써니 선생님, 그리고 이 분은 써니 선생님의 오빠이신 텐겐 선생님.”

    “아, 역시. 두 분은 남매간이시군요. 저도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진짜일거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저도요. 솔직히 남매가 각 분야에서 그렇게나 독보적인 능력을 보인다는 게 썩······.”

    그렇게 말하다가 내 눈치를 보며 움찔거리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뭐, 보통은 그렇다는 거지요. 역시 두 분은 특별하신 모양이고.”

    그런 남자를 주변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보았다. 마치 그들은 ‘이런 눈치 없는 사람을 봤나.’ 하는 얼굴들이다.

    그래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누군가 나서며 말했다.

    “저희들은 만화가 선생님들의 담당 편집자들입니다. 오늘 선생님들이 단체로 이렇게 오신 건 당연히 두 분의 선생님들을 뵙기 위함입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이번 단체방문을 제의하셨고요, 그것에 관심을 보이신 분들과 함께 여기를 찾아왔습니다.”

    “저희들 때문에 말입니까?”

    내 말에 그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요. 요즘 신인만화가들에게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분들이 두 분이시니까. 물론, 기성 작가님들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상당하고요.”

    “그럼요. 저희 선생님도 써니 선생님 작품이 출간되면 무조건 당일 직접 서점에서 사시거든요. 출판되는 날 서점에 가면 가슴이 막 두근거리신데요.”

    “저희 선생님은 뭐, 써니 선생님과 관련된 건 모조리 다 모으세요. 애니 비디오, 캐릭터 팬시, 단행본, 포스터 할 것 없이 모두요. 만화가가 아니라 연구회 사람 같다니까요.”

    “저희 선생님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만화가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듣고 있으면 뿌듯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때 유일하게 눈에 익은 편집자가 보인다.

    그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저는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의 담당인 토리시마라고 합니다.”

    만화 바쿠만에서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쪽 세계에선 유명한 편집자다.

    “안녕하세요.”

    “저희 선생님께서 바쁘신지라 제가 대신 왔습니다. 양해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양해는요. 당연히 바쁘시면 그럴 수 있죠.”

    토리야마 아키라야 원래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장소를 싫어하니 이해는 된다. 오죽하면 사람 대면하는 걸 어려워해서 출판사도 찾아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뭐, 가끔 전화도 주고받으니 상관없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모여 있던 편집자들이 서둘러 주변으로 흩어졌다.

    다가온 사람들은 바로 만화가들이었다.

    그런데 그 무리 속 사람들 사이에 낯익은 사람들이 몇 보인다.

    뭐야?

    아는 사람은 죄다 유명한 사람들이다.

    ‘시티헌터’의 호죠 츠카사, ‘공태랑 나가신다’의 히루타 타츠야, ‘세인트 세이야’의 쿠루마다 마사미까지 보인다. 거기다 얼굴은 모르지만 분명 익숙한 이름도 있을 테고.

    그나저나 이런 엄청난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일부러 찾아왔다고?

    그래도 혹시 이곳에 볼일이 있어 왔는데, 괜히 나 혼자 김칫국을 마시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런데 이 양반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한꺼번에 모여든다.

    “써니 작가님은 이쪽이시고, 스토리를 맡은 텐겐 작가님은 이쪽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실 테지만, 두 분은 남매세요.”

    편집자중 한명이 우리를 소개하자 만화가들이 눈을 반짝이며 선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특히 선희의 경우엔 가면라이더 가면을 쓰고 있으니 흥미롭다는 분위기다.

    “써니 선생님은 가면을 쓰고 외부인과 접촉한다더니 그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요.”

    “정말 그래요?”

    “저도 그 소문 들었는데.”

    관심을 가져주는 건 좋은데 우리 소문이 좀 이상하게 난 모양이다.

    선희가 완전히 가면 쓴 찐따같은 느낌도 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그렇습니다. 아직 어리셔서 낯을 많이 가리세요.”

    “어리다고요?”

    “고등학생이세요.”

    그 말에 만화가들이 술렁거린다.

    하기야 이시노모리 선생의 말처럼 대충 계산 해봐도 중학교 때 시작한 게 되니까. 물론 알려진 건 고등학교 시작하면서 부터지만.

    “초창기 그림은 아키라의 영향을 받은 것 같던데. 혹시 맞습니까?”

    “······네.”

    누가 질문했나싶어서 돌아보니, 놀랍게도 젊은 시절의 우라사와 나오키다.

    아직 히트작이 없지만 올해 ‘야와라’를 연재하면서 스타작가가 될 남자.

    나중엔 마스터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을 만들어낸 거물급 만화가.

    내가 살던 시절엔 일본 최고의 만화가 중 한명인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만화가의 모습으로.

    아, 그리고 보면 이 양반 초창기 만화가 아키라의 작가 오토모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림체도 조금 비슷하긴 했지. 물론 연출방식은 상당히 다르지만.

    지금은······, 아마 ‘파인애플 아미’를 한창 연재중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자신을 빤히 본 덕분인지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네, 알고 있어요. 파인애플 아미를 그리는 우라사와 선생님이시죠?”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저를 알고 계신가요?”

    “그럼요. 반갑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청하자 그가 주변을 의식하며 나와 손을 잡았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서도 우라사와 나오키에게 주목한다. 아직은 크게 이름을 날린 만화가가 아니라, 주변 만화가들도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분위기다.

    그나저나 우라사와 나오키는 현재 소년점프, 소년매거진 작가는 아닌데.

    “어? 우라사와 선생님!”

    그렇게 말하며 누군가 달려와 그를 붙든다.

    “아니, 이곳은 저희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우라사와 나오키의 담당 편집자인가?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고 있다.

    “여긴 소년점프랑 소년매거진에서 활동하시는 만화가분들의······.”

    “뭐, 사인 정도는 괜찮잖아요. 그나저나 아셨어요? 여기 계신 텐겐 선생님이 제 이름을 알고 계시더라니까요.”

    그 말에 우라사와 나오키를 잡아끌던 남자가 움찔하고 놀랐다.

    “네?”

    “저도 놀랐어요. 어떻게 절 아시고 계신건지. 혹시 제 만화 팬이신가? 하하.”

    “맞아요. 파인애플 아미는 다 읽었거든요.”

    “다요?”

    우라사와 나오키가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아참, 파인애플 아미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만화인데, 실수다.

    내가 그냥 말로만 팬이라고 떠드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려나?

    “연재중인 부분까지요.”

    “아.”

    “소재가 재밌었어요. 의뢰자에게 생존훈련을 시킨다는 설정.”

    그제야 내가 봤다는 걸 인정한 듯한 표정이다.

    아무튼 파인애플 아미는 후에 마스터키튼에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본인의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런데 어째 주변 분위기가 쎄하다.

    우라사와 나오키 하고만 대화를 한 탓인 모양이다. 하기야, 지금 그의 위치는 이들 만화가들에 비해 좀 밀리는 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우라사와 나오키의 담당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자자, 선생님. 어서요.”

    “알았어요.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날 돌아보고는 웃는다.

    “사인은 해주실 거죠?”

    “그럼요. 저도 받아야하는데.”

    “제 사인요? 하하.”

    재밌는지 크게 웃더니 머리를 끄덕인다.

    “가치가 100배는 차이 나실 텐데. 뭐, 원하시면 100개 이상도 해드려야죠.”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말하며 다시 그를 잡아끈다.

    “아우, 살살 좀 합시다. 팔 떨어지겠네.”

    “제발, 너무 튀지 마세요. 정말 선생님 때문에 제가 죽겠습니다.”

    “그럼 안 되죠. 하하.”

    “가시기 전에 사인은 해주세요.”

    “정말이세요? 농담인줄 알았는데.”

    “그런 걸로 농담하는 사람은 아닌데요.”

    “아. 역시.”

    곧장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그에게 내밀자, 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웃으며 사인을 신나게 갈겨쓴다.

    작게 파인애플 아미의 캐릭터도 그려 넣고.

    “조만간 스포츠만화를 그릴 예정인데, 그것도 꼭 봐주세요.”

    “그럼요. 선생님이라면 이번 작품은 크게 히트치실 겁니다.”

    “와, 말이라도 감사해요. 아, 그리고 저도 사인.”

    “네. 해드려야죠.”

    그가 삼사라 단행본을 내밀었다.

    서둘러 사인을 하고 나서는 선희에게 내밀자,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사인을 해낸다.

    “와, 움직임이 대단하시네요.”

    선희가 사인과 일러스트를 그려내자 감탄하며 말했다.

    그렇게 사인을 교환하자마자 우라사와 나오키 담당이 서둘러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그를 끌고 사라진다.

    그는 멀어지면서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저 이제 선생님이랑 친분이 생긴 겁니다. 다음에도 다시 꼭 봬요.”

    “네. 그래요.”

    그를 끌고 가는 담당이 계속 미안해하며 인사를 한다. 주변 만화가들과 편집자들에게도.

    음, 뭐랄까 생각보다 훨씬 유쾌한 사람이구나. 우라사와 나오키.

    미래에서 인터넷으로 몇 번 영상을 보긴 했는데, 저런 성격이었구나. 어쩌면 젊었을 때라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가 사라지고 나자 다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나저나 오늘 써니 선생님이 너무 말이 없으시네요.”

    “아까 들었잖아요. 낯을 많이 가리신다고.”

    “하기야, 저희들처럼 나이든 남자들과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렇긴 하네요.”

    “그나저나 텐겐 선생님은 일본어가 능통하시군요. 어쩐지 번역의 느낌이 아니다 싶더니. 혹시 현재 재일조선······.”

    “아닙니다. 저와 써니는 한국에서 살고 있어요. 일본엔 연재를 시작하고 처음 왔고요.”

    “아, 그러시군요.”

    좋아하던 만화가가 많은 건 좋은데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 있으니 정신은 좀 없다. 그리고 생각 외로 예의 없는 사람도 있고.

    이런걸 보면 그냥 만화가는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래도 짧게나마 만화 쪽 유명인들과 대화를 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다 시간을 보니 잠시 후면 개장 시간이라,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이 사인을 원하고 있으니 모른 채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처 테이블에 있던 단행본과 소설책을 구입해서는 곧장 선희와 내게 모여들었다. 그곳엔 만화가들뿐만 아니라 편집자들도 끼어 있었다.

    “이왕이면, 사인 옆에다 짧게나마 한마디 정도만 적어주시면 좋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친애하는 호죠 선생님께, 정말 영광······.”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사인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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