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56화 (256/425)

공개 사인회 (8)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희를 바라본다.

가면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대충 봐도 단발머리의 여학생정도로 보이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분은 써니 선생님과 남매이신, 텐겐 선생님이십니다.”

그 말에 이시노모리 선생이 날 쳐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아, 텐겐이라면 삼사라의 원작을 쓰신······?”

“네.”

“이거 반갑소이다. 안 그래도 오늘 써니 선생님 사인회가 있다고 들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영광이죠. 평소 선생님의 만화를 좋아했었거든요.”

“그렇소? 아, 이거 쑥스럽군요.”

“선희야. 이 분이 가면라이더 원작만화를 그리신 분이야.”

그 말에 선희가 가면을 벗더니 그에게 인사를 꾸벅한다.

그런데 가면을 벗은 선희의 모습에 좀 놀란 모습이다.

“생각보다 더 어린 것 같은데, 설마 아직 고등학생인거요?”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정말 놀랍군. 그럼 도대체 몇 살에 삼사라를 시작한 거요?”

그 질문에 이번엔 지로가 대답했다.

“중학교 때 시작했습니다.”

“허. 중학교라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기야, 나도 선희의 재능을 처음 알았을 땐 충격이었으니.

그런데 선희는 그런 이시노모리 선생의 반응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지 다시 가면을 쓰고는 계속 리허설 중인 무대 위로 시선을 돌린다.

선희에겐 저쪽 무대가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하긴, 아직 애니까.

“써니 선생님은 무대 위가 흥미로운 모양이군요. 한국엔 아직 가면라이더가 방송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일본에서 구입한 비디오로 보고 있거든요. 저도 좋아하고요.”

“오, 그래요? 두 분 선생님들께서 가면라이더를 좋아한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시노모리 선생이 크게 웃었다.

“이왕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으니까, 저랑 같이 무대 앞으로 같이 가시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아직 사인회야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으니까.

무대 앞으로 갔더니 가면라이더의 복장이 잘 보인다.

나로서는 2018년의 가면라이더를 많이 본 상황이라, 지금의 가면라이더 복장은 촌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이 시절에만 볼 수 있는 클래식함이 있어서 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나름 무대 위에 모터사이클까지 준비한 덕에 박력은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선희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노트를 하나 꺼낸다.

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모양이다.

타고난 그림쟁이라 그런지 주변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노트를 펼쳐 연필로 슥슥 그림을 그려간다.

뭘 그리나 싶어서 힐긋 봤더니, 무대 위에 보이는 내용을 기반으로 상상의 무대를 만들어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그리고 있다.

늘 가면라이더 TV판에서 봤던 무슨 석재광산 같은 곳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싸우는 박력 있는 그림이다.

역시 뭔가를 보고 그것을 응용하는 능력은 정말 타고난 것 같다.

무대 위를 보고 저런 것을 떠올리는 걸 보면.

그런데 그런 선희의 행동이 흥미로웠는지 이시노모리 선생도 다가와 선희의 작업을 슬쩍 엿보고 있다. 그리고는 감탄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써니 선생님은 만화가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작업량에 놀라는 편인데, 직접 보니 속도가 놀랍군요. 저 정도면 데즈카 선생님보다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선희의 그림을 더 자세히 바라본다.

도시 가운데서 싸우는 그림을 스케치하던 선희가 하늘 배경에 가면라이더의 얼굴을 크게 그렸는데, 그것에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나도 왜 저러나 싶어서 슬쩍 봤다가 움찔해 버렸다.

아, 저런.

가면라이더의 얼굴 디자인이 얼마 전까지 나왔던 2기의 디자인이 아니다.

황당하긴 하지만, 저건 한참 미래에나 나오게 될 디자인인 ‘가면라이더 지오’와 닮아있다. 물론 눈에 적힌 가타가나는 그물망으로 처리된 디자인이지만.

이건, 이전에 내가 가면라이더를 재미로 그리던 선희에게 지오의 디자인을 설명해줘서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또 기억해내서 그린 모양이다.

지오는 내가 있던 2018년에 나온 가면라이더 29번째 캐릭터라 시대를 너무 앞서간 디자인이다.

물론 내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지오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놀라운 디자인이군요. 저런 건 처음 봤습니다.”

“······.”

이시노모리 선생이 디자인에 관심을 보이며 흥분하고 있다.

이런, 너무 앞서간 디자인임에도 이질적으로 보지 않다니, 이 양반 감각도 장난이 아니구나.

아니, 그보다 이런 것을 보여줘도 괜찮은 건가?

이러다 내가 알고 있던 가면라이더 족보가 완전히 박살나는 거 아닌가?

선희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미 그림은 완성되었고 그런 선희의 그림을 쭉 보던 이시노모로 선생이 선희에게 물었다.

“그거 내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머리를 끄덕인 선희가 노트를 내밀었다.

끄악.

선생님, 그 그림에 너무 관심을 가지시면 곤란합니다. 그냥 원래 그리던 라이더를 그려주세요.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이시노모리 선생은 한참동안 선희노트를 바라보더니 그것을 다시 선희에게 돌려준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아, 네.”

내가 대답하자 그가 서둘러 무대 뒤쪽으로 뛰어간다.

그리고는 비닐에 잘 포장된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혹시 이거 관심 있습니까?”

“이게 뭔데요?”

“가면라이더 방송에서 사용되는 옷입니다. 여벌로 만든 것인데, 사실은 오늘 팬들 중 한명에게 추천을 해서 선물로 드리려고 가져온 겁니다.”

“방송에서 진짜 사용되는 옷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때 선희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그것을 빤히 보고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눈빛이 뭘 얘기하는지 알 것 같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아주 그냥 이글이글 타오르는구나.

그 눈빛을 본 이시노모리 선생이 이번엔 선희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선희가 양손을 번쩍 들며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던 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신 부탁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선희는 아무거나 관계없다는 듯 머리를 빠르게 끄덕거린다.

“그 그림 저에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이런 결국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선희가 그린 저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 물론. 이 옷 한 벌로 끝내지는 않겠습니다. 디자인은 써니 선생님으로 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따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선희가 날 쳐다본다.

어떻게 할까? 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저 옷을 갖고 싶어 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엔 다시 이시노모리 선생이 날 쳐다본다.

선희와 비슷한 표정으로.

‘난 이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얼른 허락해. 얼른!’

그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

어떡하지?

나는 상관없다.

선희도 마찬가지.

솔직히 내가 만든 디자인도 아니고, 어차피 미래에 나올 디자인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앞으로 가면라이더의 역사는 바뀔지 모른다.

덕후로서 그게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갈등을 눈치 챘는지 선희가 내 소매를 슬쩍 당긴다.

어서 결정을 내리라고 압박하는 눈빛으로.

“어휴, 뭐. 선희,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제야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밝아졌다. 아니, 선희는 얼굴이 가려져서 모르겠지만 선희의 행동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저 행동은 그냥 액션가면을 흉내 내는 짱구 같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약간은 요란 벅적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우리 사인회가 열릴 장소로 다시 이동했다.

나름 눈에 잘 띄는 곳에 만들어진 장소인데, 커다란 벽과 그곳에 ‘만화가 써니 사인회’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사인회를 하기 위한 테이블은 옆으로 상당히 길게 만들어져있다.

어째서 그런가 했더니 한쪽 테이블에선 이번에 신작으로 나온 삼사라 단행본 10권과 경영의 왕 소설책을 잔뜩 쌓아두었다.

아무래도 판매를 겸한 사인회인 모양이다.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누군가 했더니, 에이엔샤의 미네 코사쿠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렇게 말하다 싸구려 가면라이더 가면을 쓴 선희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아, 써니 선생님이시군요.”

“여기서 경영의 왕 판매도 하세요?”

“네. 이미 서점엔 뿌려지긴 했지만, 아직 홍보가 좀 제대로 안된 것 같아서요. 이번에 아카기 씨가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곁에 있던 지로를 향해 머리를 살짝 숙인다.

“그거야 당연히 담당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뭐. 출판사가 다르다고는 해도 서로 작품들이 홍보가 되면 이익이니까요.”

“그래도 여러 가지로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부탁드릴게요.”

“하하, 무슨 말씀을.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인사를 한 코사쿠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늘 사인회엔 참석을 안 하시는가요?”

“뭐, 전 그냥 선희 사인하는 것만 구경할 랍니다. 저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왜요, 텐겐 선생님이라면 엄청 사람들이 몰릴 텐데.”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사람들이 몰리는 거.”

“아.”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은 장소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불편할 뿐이지.

만약 미래였다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 얼굴을 알리기 싫어도 이런 공식적인 장소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엄청난 양의 사진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게 될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거기다 일본은 그런 부분에선 상당히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잘 알려지는 건 힘들기도 하다.

그 유명한 토리야마 아키라의 사진이 미래에도 별로 보기 힘든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원피스의 오다 에이치로 역시 마찬가지고.

아무튼 그 부분은 이 시대의 장점이다.

코사쿠가 내게 인사를 하고 다시 테이블 끝으로 돌아간다. 작은 출판사라 할 일이 많단다. 코사쿠가 간 곳을 쳐다봤더니 나이 지긋한 두 분이 나를 보고는 인사를 꾸벅한다.

아, 코사쿠의 부모님인 모양이다.

에이엔샤는 가족끼리 운영하고 있다더니, 가족이 총출동한 모양이다.

물론 주간 루머의 기자인 딸은 제외하고.

그나저나 평일이라 그런가, 어째 관람객이 얼마 없네.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좀 적네요.”

“아직 입장 시간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12시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이 입장하게 되거든요. 그때쯤이면 사람이 많을 겁니다.”

“아.”

평일이라서 그런 건 아니구만.

“그럼 사인회는 그때 시작합니까?”

“아뇨. 사인회는 1시로 계획이 잡혀있습니다.”

그런데 한쪽 편에서 누군가 지로를 불렀다.

“아카기 씨. 이쪽에 잠시만!”

“네.”

지로가 그곳으로 달려가더니 어떤 남자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지로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왜 저렇게 놀라지?

내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다시 지로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저기, 선생님. 아무래도 사인회를 조금 일찍 시작하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뭐 그래야 하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선희야, 괜찮지?”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그런데, 저. 가능하시면 텐겐 선생님도 같이 하셨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저도요? 전 사인 안하려고 했는데. 꼭 해야 합니까?”

“저기, 그게. 지금 찾아오신 분들이 선생님 사인도 꼭 좀 받았으면 하셔서요.”

“일반인은 12시 넘어야 한다면서요.”

“일반인은 아니고, 만화가 선생님들이세요. 소년점프 쪽이랑 소년매거진 쪽 선생님 10여분이 찾아오셨거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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