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55화 (255/425)

공개 사인회 (7)

가면라이더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선희가 어제 사인회에서 가면라이더의 탈을 썼으니.

그보다 가면라이더 15주년이라.

1971년부터 시작했고, 올해가 1986년이니까.

음. 15주년이 맞구나.

내가 있을 땐 45주년을 넘기고 있었는데.

하여튼 지금은 쇼와 라이더 2기가 재작년에 끝난 상황.

내년부터 3기인 쇼와라이더 블랙이 방영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집에서도 가면라이더 비디오가 있어서 보긴 하는데. 물론 나도 좋아하지만 쌍둥이들이 더 좋아하지만.

음······, 끌리기는 하는데.

“이시노모리 쇼타로 선생님도 아마 내일 나오실 겁니다.”

지로의 말에 깜짝 놀랐다.

사이보그009의 이시노모리 쇼타로?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의 신으로 불릴 때, 그는 만화의 왕으로 불리고 있던 또 한명의 전설적 인물이 바로 이시노모리 쇼타로다.

아, 그러로보니 이 양반이 가면라이더도 원작자였지.

많은 특촬물의 원작을 맡았을 정도로 이쪽 계통해서는 특히나 더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 이건 무조건 가야 되는 각인데.

턱을 긁으며 지로에게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 예약해놓은 비행기표는······.”

내 말을 들은 지로가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 문제라면 괜찮습니다. 결정을 하신다면 곧바로 취소하고 다음날로 다시 티켓을 준비해 드릴 테니까요.”

그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슬쩍 못이기는 척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가야죠. 너도 괜찮지?”

“응.”

선희는 오히려 이곳에 더 놀 수 있어서 환영하는 표정이다.

일단 집에 전화를 걸어서 경희에게 선희가 화요일까진 학교를 빠져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은 해둬야겠고.

‘으아아아! 오빠랑 선희가 너무 부러워!’

이거 경희가 부러움에 소리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런 내 모습을 지로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

“아, 하하. 그렇다면 사인회는 내일인겁니까?”

“네. 점심 때 쯤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건 휴일에 하는 건데, 시간이 없으니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평일, 그것도 월요일 오후라면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일 테니까.

그래도 너무 많이 오는 건 나도 부담스러우니 어쩌면 이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바로 가면라이더 행사 측과 만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로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집을 빠져나갔다.

일요일인데도 우리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선희와 나는 곧바로 집을 나선 뒤 근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다시 시내 구경을 나갔다. 어제 놀지 못했으니까, 오늘이라도 실컷 놀아야지.

* * *

만화가 써니의 사인회가 열리는 것으로 되어있던 서점 앞에선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서점 입구에 걸려있는 커다란 현수막의 글 때문이었다.

“어? 뭐야? 오늘 써니 사인회 안하는 거야?”

“그러게.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럼 어제 사인회로 끝인 거야?”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일부러 아침 일찍 찾아왔는데.”

진짜 짜증이 나는지 현수막을 노려보며 투덜거린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서점을 보며 말했다.

“그럼 써니 얼굴은 영원히 못 보는 거야? 한국인이라서 일본에 자주 오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써니가 일본인이 아닌 게 이럴 때 가장 아쉽다니까.”

“한국에선 사인회 같은 거 안 해?”

“모르지.”

“한국에선 활동을 전혀 안 해서 별로 안 알려졌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얘긴 어디서 들었냐?”

“마사토가 그러던데?”

“그 자식 원래 허풍이 엄청 많잖아. 그건 믿을 게 못돼.”

“맞아. 일본에서 이정도 인기 만화가가 한국에선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아무튼 진짜, 짜증이다. 사인 꼭 받고 싶었는데.”

“써니 얼굴을 봤다고 하던 녀석 말로는 무슨 아이돌 같다고 하던데.”

“그건 아니지. 설마. 아이돌까지야.”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만화가 중에 예쁜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실망이다, 실망. 이렇게 예고도 없이 취소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현수막 아래에서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정문에서 몇 명의 직원이 A형 사다리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현수막 아래 새로운 천을 달기 시작했다.

거기엔 사인회가 내일로 미뤄졌으며 장소는 ‘일본무도관’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완전히 취소된 게 아니었어?”

“어? 내일, 일본무도관?”

“아, 잠깐만! 거기 내일부터 가면라이더 행사하기로 되어 있지 않아?”

“그래?”

“맞아. 15주년 기념행사라고 2기까지 나온 가면라이더가 총 출동한다던데. 설마 거기서 사인회를 한다는 거야?”

“와, 거기라면 장소가 넓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 의문을 표했다.

“그나저나 왜 가면라이더지?”

“관계는 무슨, 그냥 거기 자리가 넓어서 그런 모양이지. 여기 서점 솔직히 너무 좁잖아.”

“그렇겠네.”

“난 아니라고 봐.”

“뭔 소리야?”

“어제 온 사람들 말로는 써니가 가면라이더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하던데, 역시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오,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써니가 뜬금없이 그런 가면을 썼을 리가 없지.”

“어쨌건 내일 오후라······, 어쩔 수 없이 내일은 회사 쉬어야겠다.”

“난 오전만하고 가볼래.”

“아, 진짜. 내일은 거래처 부장님 접대에 가야돼서 빠질 수 없는데.”

“낄낄, 내가 대신보고 와서 얘기해 줄게.”

“카메라 들고 가라. 없으면 내거 빌려줄게. 꼭 찍어와.”

“싫어.”

“야!”

그렇게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직원들이 그제야 한숨을 푹 쉬었다.

“와, 아침부터 이정도 몰려들었으니, 오늘 정말 사인회가 열렸으면 건물 전체가 마비되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저기 봐, 저기. 지금도 사인회 취소된 줄 모르고 몰려들고 있잖아.”

직원의 말대로 사인회를 이유로 몰려드는 사람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었고, 그와 더불어 이곳에서 현수막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과 교차되고 있다.

이것도 이것대로 장관이라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 *

다음날.

“와, 오랜만이네 여기.”

일본무도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아이러니한 건 내가 봤을 때보다 건물자체는 더 새것이라는 사실이다.

미래의 내가 살던 시절에 봤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 온 적 있어?”

선희가 머리를 삐딱하게 돌린 채 묻는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올 땐 항상 선희와 동반해서 왔으니, 따로 이 건물을 봤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하네.

“아, 사진으로 봤거든. 그래서.”

“아.”

그래도 선희가 대충 넘어가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무도관 주변은 온통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이사이 가면라이더의 복장을 코스프레 한 사람들도 제법 보이고,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가면라이더 싸구려 플라스틱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보인다.

한쪽을 보니, 그런 것들과 풍선들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보인다.

그런데 어째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이······, 20세기 소년에 등장하는 사다키요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선희가 내 소매를 슥 잡아당겼다.

“······왜?”

“저거, 사줘.”

“저거 쓰고 싶어?”

“응.”

어쩐지 사람이 많은 장소에선 자꾸 가면 뒤에 숨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을 때의 선희는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다.

어쩌면 선희는 늘 경직된 표정과 절제된 행동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선희를 잠시 바라봤다가 같이 가면을 팔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면은 생각보다 종류가 많은 편이었다.

“어떤 걸로 할래?”

“저거.”

선희가 고른 가면은 현재기준으로 가장 최신작인 ‘가면라이더 ZX’였다. 제트엑스가 아니라 읽을 땐 ‘제크로스’라고 읽어야 하는 가면라이더다. 하여튼 일본은 영어를 제멋대로 만들어 읽는다니까.

어쨌건 모양은 전체적으로는 빨간색.

눈은 초록색, 그리고 더듬이가 두 개인 재미난 얼굴의 가면이다.

“저걸로 주세요.”

“고맙습니다.”

가면을 받아든 내가 그것을 선희에게 씌워줬다.

그래도 엊그제 사인회에서 쓰고 있던 커다란 것보다는 잘 어울리네.

그땐 너무 커서 불안불안 했는데.

“마음에 들어?”

내 질문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가면을 쓰면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건 여전하다.

그리고 기분이 좋다는 걸 표현하려는지 요란하게 총총거리고는 가면라이더처럼 허리에 손을 턱 얹고는 폼을 잡는다.

빨간 머플러라도 목에 걸어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때 입구 근처에 있던 지로가 우리를 발견하고 뛰어 왔다.

“일찍 오셨군요.”

그렇게 말하며 선희를 돌아보고는 웃는다.

“뭔가 어울리는군요.”

그 말에 선희가 어깨를 쓱 끌어 올린다.

그 모습을 보며 지로가 웃다가 다시 날 쳐다봤다.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럼 들어가죠. 밖에서 할 것도 없는데.”

“절 따라오세요. 아, 이거 받으시고.”

지로가 선희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사각형의 카드에 줄이 연결되어있다.

“이걸 목에 거세요.”

아마도 관계자 카드인 모양이다.

그것을 받아든 내가 선희의 목에 하나를 걸어주고, 나도 한 개를 걸었다. 그리고는 곧장 지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무도장 실내로 들어서니,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코미케가 열리는 도쿄 빅사이트처럼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행사 도우미인 여자들도 섹시한 가면라이더 스타일의 복장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큰 무대에선 가면라이더 연극의 리허설을 하는 중인지 서로 액션을 맞추고 있다. 일본에 와서 재미난 것 중에 하나가 가끔 길거리에서 이런 전대물 종류의 연극이 많다는 거였는데.

아무튼 선희도 그게 재미난 모양인지 가면을 쓴 채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무대를 뒷짐 지고 올려다보는 뽀글 머리의 중년 사내가 보인다.

저사람······.

이시노모리 쇼타로다.

내가 그를 보고 있자, 지로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선생님도 알고 계시는군요. 이시노모리 선생님.”

“그럼요. 전설적인 분이신데.”

내 말을 듣자마자 지로가 서둘러 나와 선희를 데리고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한참 무대 위를 올려다보던 그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우리 쪽으로 돌아본다.

“안녕하세요, 이시노모리 선생님. 저는 소년 히어로에서 일하고 있는 아카기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어쩐 일로······?”

“이쪽에 계신 분은······.”

가면을 쓰고 있는 조그마한 선희를 가리킨 지로가 살짝 당황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삼사라를 그리시는 써니 선생님이십니다.”

그 말에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깜짝 놀랐다.

“오, 이분이 정말 써니 선생님이라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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