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53화 (253/425)
  • 공개 사인회 (5)

    그나저나 오쿠보가 너무 빤히 쳐다보니까 민망하네.

    “정말 텐겐 선생님?”

    “아, 네.”

    “제가 무례를 했습니다. 전 그냥 써니 선생님의 가족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며 인사한다.

    “아뇨, 가족은 맞는데요 뭐, 오빠이기도 하니까.”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제 가족 관계까지 알아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을 이리저리 빠르게 둘러보더니 내게 슬쩍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그럼 선생님도 사인회를······.”

    “뭐, 선희, 아니 써니만 하면 되죠. 팬들도 그런 걸 원하는 모양이고.”

    “아. 역시 나서는 건 불편하시다는······.”

    “특별히 그런 건 아니고. 굳이 일부로는 그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지로가 직원들과 함께 주변을 확실히 정리해나간다.

    아까는 다소 정신없는 실내였는데, 지금은 전체적으로 정리돼서 그런지 소란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인을 받겠다는 팬들의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서 계속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저녁까지 계속 붙들려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야 뭐 상관없는 일이기는 한데.”

    그렇게 말하며 선희 쪽을 돌아봤다. 선희는 여전히 커다란 가면라이더 머리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열심히 사인에 열중해있다.

    사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림도 포함되어 있는 사인이라 일반 사인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본 지로가 내게 물었다.

    “그림을 차라리 빼고 사인만 하시는 쪽이 어떨지.”

    “글쎄요. 그건 선희가 알아서 할 문제라, 별로 간섭하고 싶지는 않은데.”

    “역시 그렇겠군요.”

    지로도 선희의 성격을 아는지라 금방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아무튼 커다란 머리통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인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귀엽게 여겨졌는지 연신 귀엽다를 연발하는 여자들이 상당히 눈에 띈다.

    특히나 귀여운 걸 좋아하는 일본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자 팬들도 정신을 못 차리는 분위기다.

    이건 뭐, 만화가 팬 사인회인지 아이돌 팬 사인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분위기.

    그렇게 한참을 사인하느라 정신없던 선희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자꾸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리고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은 건가?

    아침도 대충 먹고 나온 덕분에 점심을 이곳 근처에서 제대로 먹으려 했는데.

    그때 사람들 사이로 푸른색 줄무늬 앞치마를 두른 여자 한명이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녀는 바구니에 뭔가를 잔뜩 넣어둔 채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도시락입니다. 300엔이에요.”

    어? 도시락 장사인가?

    서점에서 저런 것도 파나?

    그때 자리에서 슬쩍 일어난 선희가 날 툭툭 건드렸다.

    “왜?”

    “저거.”

    커다란 머리통으로 까닥거리며 도시락 쪽을 가리킨다.

    “나, 저거.”

    “먹을래?”

    “응.”

    그때였다.

    몇 명의 직원들이 여자에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그녀를 붙들었다.

    “여기서 장사하시면 곤란해요. 가뜩이나 번잡한데.”

    당황한 여자가 서둘러 머리를 숙인다.

    “죄, 죄송해요. 사정이 좀 급해서요. 어떻게 좀 안될까요?”

    “안됩니다. 어서 나가주세요.”

    “······저기, 하지만.”

    “자자, 어서.”

    그렇게 직원들이 여자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려는 순간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저기, 도시락 몇 개만 파시고 내보내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지금 저희도 밥을 못 먹어서요. 안 그러면 저희도 계속 사인회를 이어갈 수가 없어서.”

    “······!”

    상당히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직원들 끼리 서로 쳐다보고는 있지만, 그들 스스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중년의 남성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직원들에게 다가간다.

    점장인가?

    그런데 그가 직원들에게 대충 사정을 들었는지 여자에게 뭔가를 말한다.

    그러자 여자가 그들 사이에서 나와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시락 드릴까요?”

    “네. 거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여기 꺼 다요?”

    “네.”

    대충 봐도 바구니에 들어있는 도시락은 대충 10개 안쪽.

    내 주위에 있는 사람만 선희포함 다섯 명이다.

    거기다 선희가 대식가라 몇 개를 먹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여자는 서둘러 도시락을 내려놓자 내가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때 지로가 날 막더니, 자신이 지불하려 한다.

    그런데 그걸 또 오쿠보가 막았다.

    “저희가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양보하세요. 경비처리하면 되니까요.”

    “그건 곤란합니다. 신세를 질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니라니까요.”

    “어허.”

    그렇게 편집자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가장 먼저 도시락을 받아든 선희가 서둘러 머리통을 내려놓고는 사인을 그만두고 식사를 시작한다.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그것조차 망각하고 오물오물 잘도 먹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도시락여자에게 소리쳤다.

    “저도 밥 하나 부탁해요.”

    “저도요!”

    “우린 다섯 개요!”

    “우린 두 개!”

    사람들이 소리친다.

    그러자 직원들이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년의 남성을 돌아본다.

    그도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곧이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도시락여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도시락은 충분합니까?”

    “아, 네. 근처 도시락 집에서 왔는데, 양은 충분해요. 사실, 단체 주문이 취소되어서······.”

    왜, 필사적으로 팔려고 했는지 대충 감이 오네.

    갑자기 생긴 대량의 도시락을 팔아야 한 곳이 필요했는데,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서 다짜고짜 들고 온 모양이군.

    “그럼, 서둘러 가져오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도시락 값을 받고는 서둘러 뛰어나간다.

    그리고 곧장 두 명의 노인들과 함께 셋이서 여러 개의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길게 이어진 줄에 붙어서 도시락을 하나씩 나눠주며 돈을 받았다.

    그러자 가져왔던 도시락도 그새 동이 나버린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더 이상은 팔 도시락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쯤 되자 이번엔 서점 직원들이 부족한 도시락을 나르는 지경이 이르렀다.

    도시락을 받은 사람들은 아예 자리에 푹 주저앉아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이건 뭐, 팬 사인회가 아니라 도시락 행사에 온 사람들 같다.

    잔뜩 줄을 맞춰 앉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일본에선 참 보기 힘든 모습인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나만 이색적으로 느낀 건 아니었는지 몇몇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도 한다.

    그런데 앉아서 먹는 사람들은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선희를 계속 쳐다본다.

    선희가 얼굴을 드러낸 채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새 선희는 세 번째 도시락을 먹기 시작한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더니 밥이 더 당기나보다.

    보통 때도 적지 않은 양을 먹기는 하지만, 돈가스나 고기 같은 게 들어있는 일본 도시락이 입에 잘 맞는 모양이다.

    “써니 선생님은 체격에 비해 식사량이 많으시네요. 설마 평소에도 저렇게 드시나요?”

    이제까지 사인하느라 정신없던 유우키 마사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평소에도 많이 먹어요.”

    “아, 그러시구나. 신기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선희를 바라본다.

    그때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머리를 쭉 들어봤더니, 생각지 못한 사람이 등장했다.

    “뭐야, 여기서 단체로 식사파티라도 하는 건가?”

    “어? 키도 형.”

    키도가 찾아온 것이다.

    사람들 중 키도를 알아본 사람들이 웅성거린 모양이었다.

    “사인회, 내일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문제가 좀 생기는 바람에.”

    “무슨 문제 길래, 이곳이 이렇게 된 거야? 재미있네.”

    유우키 마사미도 키도와 안면이 있는지 식사를 하다말고 벌떡 일어나 인사한다.

    “아, 키도 선생님.”

    “아, 오늘 자네도 사인회 하고 있었어?”

    “원래 오늘은 저의 사인회입니다만.”

    “아, 그런 거였어?”

    그렇게 말하며 우리 뒤쪽에 있는 커다란 판을 본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이게 뭐야, 그럼 주객이 전도된 건가?”

    그 말에 유우키 마사미가 어색하게 웃었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키도가 웃었다.

    “하긴, 써니가 왔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

    그렇게 말하고는 열심히 세 번째 도시락을 먹고 있는 선희를 쳐다봤다.

    “뭐야, 우리 써니. 한참 자랄 나인데, 그런 걸로 되겠어? 끝마치고 나랑 우리 집으로 갈래? 마침 오늘 너희들이 올지 모른다고 맛있는 거 잔뜩 요리중인데.”

    그때 선희가 먹다말고 손을 번쩍 들었다.

    “갈래.”

    먹으면서도 또 식탐을 부린다.

    나 참.

    저 놈의 식탐.

    “역시, 먹성은 여전하구나. 하하.”

    그렇게 잠시 떠들다보니 어느새 대부분 식사도 마무리 되었고, 선희도 도시락 세 개를 먹고 나서야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곧 다시 머리에 커다란 가면라이더 머리통을 올려놓는다.

    “아, 다시 시작하나본다. 얼른 먹어.”

    “난 벌써 다 먹었어.”

    “아직 반도 못 먹었는데.”

    그때 직원들이 커다란 봉투를 들고 주변을 돌며 도시락을 받아 치우기 시작했다.

    도시락여자도 같이 왔던 두 노인들과 함께 열심히 주변을 치우고 있다.

    그리고는 곧 우리 쪽으로 와서 인사를 한 번 더 하고는 곧장 서점직원들에게 인사하고는 쓰레기들을 함께 가지고 나간다.

    그렇게 대충 주변이 정리되자 다시 사인회가 이어졌다.

    * * *

    카페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방금 들어온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뭐? 써니 사인회?”

    “그렇다니까. 자 봐. 이거.”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첫 장을 펼치자 거기에 멋들어진 그림과 써니라고 적혀있는 사인을 발견했다.

    “와, 이거 진짠데?”

    “뭐야, 사인회 내일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소식 듣고 달려가서 사인 받고 오는 길이야. 뭐, 듣기론 내일도 한다는 것 같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당장 가자.”

    “그래.”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말했다.

    “지금 가봐야 소용없어.”

    “뭐? 왜?”

    “아까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딱 200명까지만 더 사인해준다고 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꼬리가 다 잘려 나간거지.”

    “아쉽네.”

    “그나저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어.”

    “새로운 사실이라니.”

    “너희들 써니가 젊은 여자라는 건 알지?”

    “그거야 다 알고 있지. 그런데 그게 왜?”

    “얼굴이 엄청나게 예쁘더라니까. 완전 미소녀 아이돌이야, 아이돌.”

    “뭐? 너 얼굴 봤냐?”

    “길게는 아니고 잠깐 봤어. 사인할 땐 가면라이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못 봤는데. 식사할 때 잠시 봤지.”

    그렇게 말하며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사인이랑 관계없이 일단 가보자.”

    “야, 내일도 사인회 한다니까.”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의 써니는 오늘밖에 없으니까. 하루하도 더 젊고 예쁜 써니의 얼굴을 봐야지.”

    “야,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변태 같잖아.”

    “시끄러, 자식아. 써니는 오늘부터 나의 여신님이야.”

    “나도.”

    그렇게 말하고는 우르르 카페를 빠져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