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52화 (252/425)
  • 공개 사인회 (4)

    문틈으로 슬쩍 바깥을 봤더니, 진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몰려들었나 싶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대충 알아서 사람들이 흩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을 벗어나 버렸어요. 제 불찰입니다.”

    “아뇨,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좋은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계속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문제다.

    사인을 받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유우키 마사미가 선희의 정체를 눈치 챈 덕분에 일이 좀 꼬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 곤란하네.

    어떻게 여길 빠져나가지?

    휴게실을 둘러보니 문은 하나밖에 없고. 불투명 창은 고정되어 있으니.

    그렇다고 영화처럼 위쪽 환풍구로 빠져나가는 것도 웃기고.

    슬슬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데, 그때 선희가 불쑥 다가왔다.

    “인형머리 없어?”

    “······뭐?”

    “인형머리. 그거 있으면 괜찮은데.”

    “인형······ 머리?”

    갑자기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인형머리라니.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했던 사인회에서도 인형머리통을 위에 얹고 사인회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인을 하려고?”

    내 물음에 머리를 끄덕였다.

    “응. 사람들이 원하면 나도 하고 싶어.”

    “······정말이냐?”

    “응.”

    선희와 한국말로 대화한 덕분에 대화 내용을 이해 못한 오쿠보가 멀뚱거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혹시 근처에서 인형머리만 따로 구할 수 있어요?”

    “네?”

    황당해하는 표정이다.

    갑자기 인형 머리만 따로 찾으니, 이런 반응도 당연하다.

    무슨 변태가 아닌가 싶겠지.

    “머리통이요. 길거리에서 인형 옷 입고 이벤트를 하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거 머리.”

    그런데 의외로 그의 표정이 곧바로 변했다.

    “아.”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다니.

    뭐지?

    그런데 내 생각을 이해했는지 그가 곧장 이유를 설명했다.

    “전에 사인회 하셨을 때 썼던 그거 말씀이시군요.”

    “어? 아시네요?”

    “그럼요. 저도 그때 사인회 갔었거든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그나마 쉽게 이해해주니까 다행이다.

    “그런데······, 똑같은 걸로 구하는 건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똑같을 필요는 없어요. 그냥 아무거나 머리에 쓰기만 하면 되니까.”

    “아,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더니 곧장 문을 닫고 나간다.

    나는 곧바로 선희에게 물었다.

    “괜찮겠냐? 내일도 해야 되는데.”

    사실, 내일은 공식적으로 광고까지 한 상황이고, 준비도 따로 하는 중이라 약속을 어길 수가 없다.

    “응. 할래.”

    “안 해도 되는데.”

    “사람들이 저렇게 기대하고 있으니까.”

    “······알았다.”

    그리고 바깥이 더 소란해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삼사라를 외치는 소리랑, 써니를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이정도면 뭐, 그냥 사인회장 분위기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오쿠보가 들어왔다. 그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이번엔 가면라이더 머리통을 들고 있다.

    “죄송합니다. 구해보려고 했는데, 이것밖에 없어서.”

    그래도 여자애가 이걸 뒤집어쓰면 좀······.

    “좋아요.”

    선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게 괜찮다고?

    메뚜기 머리통이?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메뚜기 머리통을 받아들자 그가 문을 닫고 나간다.

    “······.”

    “줘.”

    “이건 좀 그렇지 않냐?”

    “이게 좋아.”

    미세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다.

    진짜로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화실에 있는 가면라이더 비디오를 꽤나 자주 보기는 했었지.

    그래도 설마 했는데 이런 가면도 좋아했나?

    설마 모터사이클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선희가 가면라이더처럼 붉은 머플러를 목에 감고 모터사이클을 타는 상상을······.

    응? 뭔가 신기하게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건 좀 보고 싶기는 하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왜?”

    “크음, 아무것도 아니야.”

    선희가 날 보며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곧장 커다란 가면라이더의 머리통을 쓴다.

    역시 선희 머리가 작아서 금방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런데, 어째······. 머리가 너무 커서 가분수 가면라이더 같다.

    저런 모양으로 모터사이클이라.

    “풋!”

    “·······?”

    아무튼 웃음을 참으며 선희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때 다시 문이 열리며 오쿠보가 우리를 쳐다본다.

    나와도 된다는 표정이다.

    선희가 먼저 커다란 머리통을 덜그럭 거리며 그를 따라 나가고 그 뒤를 내가 따랐다.

    선희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람들이 희한한 머리통을 한 모습을 보고 웅성거리다 곧 환호성을 내지른다.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도 선희는 별다른 동요 없이 사인회 테이블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는다.

    그나저나 선희 쟨, 이상하게 인형 탈 같은 걸 쓰기만 하면 용감해지는 것 같은데.

    아니, 평소에도 마음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면 긴장해서 행동이 뻣뻣해지기는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선희 옆에 앉아있는 유우키 미사미가 더 긴장한 표정이다.

    본인의 사인회가 갑자기 선희의 사인회로 바뀌었으니 당황스러운 것도 당연할 테지.

    아무튼 선희가 자리에 앉고 나자 언제 몰려들었는지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자자, 줄을 서 주세요.”

    “이쪽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질서를 지켜주세요.”

    직원들이 요란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횡재를 만났다며 연신 즐거워하고 있다.

    “내일 사인회라고 들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이지?”

    “그러게. 난 저쪽 루미코 씨 사인 받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오늘 운이 좋았어.”

    “내일은 안하나?”

    “모르지. 취소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아니, 아까 들어오면서 봤는데, 지금 새로 광고포스터 붙이고 있던데? 날짜도 내일이 맞고.”

    “그럼 오늘은 뭐지?”

    “글쎄?”

    곁에 있는 유우키 마사미는 보이지도 않는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애초에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불쌍한 만화가에겐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대부분 줄은 선희 쪽에 서 있지만, 몇몇은 그에게 서서 아직 사인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우키 마사미는 별로 기분나빠하는 표정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선희 쪽도 사인이 시작되자 젊은 남자가 금방 사온 것인지, 삼사라 10권을 내밀며 인사했다.

    “써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말에 선희가 커다란 가면라이더 머리통을 한 채 거수경례를 착 한다.

    뭔가 SD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귀여운지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카와이’를 연발한다.

    나도 평소엔 절대 볼 수 없는 행동이라 얼떨떨하다.

    전에도 사인회 할 때 그런 느낌이었는데.

    뭐랄까, 어쩌면 저런 것이 진짜 선희의 속마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런 선희의 행동 때문인지 주변의 분위기는 너무 좋다. 거기다 사인이 끝나고 나자 이번엔 궁극초인R을 다시 사들고 와서는 옆줄에 서는 사람도 있다.

    물론 시선은 선희 쪽으로 둔 채로.

    어찌되었건 유우키 마사미 쪽도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담당인 오쿠보도 만족한 표정이 된다.

    “아, 고맙습니다!”

    선희가 간단한 그림과 함께, 사인을 해주자 그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여자도 보인다.

    선희는 그런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는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하이파이브까지 한다.

    그러자 여자도 즐거워하며 인사를 하고는 옆으로 빠진다.

    그 때문일까, 다음 사람부터는 사인과 함께 하이파이브가 자동으로 이어졌다.

    어떤 남자는 선희와 손바닥을 마주치고 나자 자기 손을 붙들고 감격한 얼굴로 돌아서는 모습도 보인다.

    그때였다.

    아무래도 가면의 시야가 좋지 못한 모양인지 어떤 여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던 선희가 헛손질을 했다.

    그 순간 선희가 휘청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던 가면라이더의 머리통이 기우뚱하더니 곧바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 덕분에 선희의 얼굴이 드러나 버렸다.

    “아!”

    누군가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이곳이 잘 보이지 않는 뒤쪽 줄의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덩달아 침묵.

    곧장 ‘뭐지?’하는 얼굴로 이곳을 기웃거린다.

    그때 놀란 선희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자, 내가 서둘러 가면라이더의 머리통을 주워 머리에 다시 씌웠다.

    그 순간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곧장 다시 웅성거렸다.

    “와, 방금 봤어? 써니 얼굴.”

    “어. 나도 봤어. 얼굴 엄청 이쁘잖아. 아이돌 아니냐?”

    “난 솔직히 써니가 가면라이더 가면 쓰고 나왔을 때 얼굴이 못생겼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솔직히 얼굴이 좀 못생겨도 상관없었고. 무려 삼사라를 그리는 써니니까. 그런데 정말 예상 밖이다.”

    “나, 방금 키구치 모모코를 본 줄 알았어. 완전 귀엽잖아.”

    “난 미나미노 요코 같던데.”

    “그나저나 도대체 몇 살이지? 얼굴 보니까,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나 지금 막 떨린다. 오늘 무조건 사인 받아야겠어. 내일도.”

    “나도.”

    “누구 카메라 없냐? 사진 찍어야 할 것 같은데.”

    “야야, 다시 가면라이더로 돌아갔어.”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저 속에 그 얼굴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맞아.”

    특히나 남자들이 난리다.

    솔직히 선희가 어디 가서 꿀릴만한 얼굴은 아니지만, 아이돌까지는 좀 그렇지.

    아마도 스포츠 선수들 중 미녀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효과가 아닐까 싶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라 특별히 미모가 뛰어나 보이는 현상.

    만화로 치자면 이런 경우다.

    객관적으로 만화가의 실력 때문에 온통 못생긴 사람들만 나오는 만화가 있다고 치자. 그런 곳에서 조금 예쁜 머리스타일과 얼굴이 나오고 그것을 주변에서 초미녀라고 받들어주면 우리는 그 여자를 예쁘다고 인식하는 것.

    쌍둥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날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솔직히 내 생각에도 너무 극단적이긴 하니까.

    아무는 그런 현상 비슷한 것이 아닐까?

    뭐, 사실이야 어쨌건 지금 분위기를 보면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 아이돌을 만난 팬들의 반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 아이돌들의 최고 전성기 시절이 아닌가.

    그렇게 대략 두 시간 정도 사인회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이쯤 되면 오늘내로 끝날 수 있을지 어떨지.

    그렇게 난감해 하고 있는데, 그때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선생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로가 찾아온 것이다.

    사람이 계속 몰려들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편집부에 연락을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오쿠보가 그에게 대충 사정을 설명했다.

    “저 대신 선생님들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오쿠보가 곧 머리를 갸웃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요?”

    “네. 써니 선생님과 텐겐 선생님 두 분.”

    “네?”

    오쿠보가 깜짝 놀라며 날 홱 돌아본다.

    어어, 목 다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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