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47화 (247/425)
  • 수상한 사람 (4)

    신타로가 황당한 표정으로 날 돌아본다. 자신이 예상하던 곳과 전혀 다른 곳이라 말문이 막힌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일한다는 곳이 화실이라고 예상할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고 어둠의 일을 한다고 예상하는 것은 더 이상하지만.

    만약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면 왜 따라 온 거야?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나랑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있는 건가.

    “여기 진짜 만화가 화실이 맞아?”

    신타로가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맞다니까 그러네. 속고만 살아왔나.”

    “어, 어쩐지 네가 만화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인연이 있다니.”

    “그러게. 나도 형을 만났을 땐 솔직히 좀 놀랬어.”

    내 말에 신타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나와 신타로가 떠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경희가 신타로를 계속 째려보고 있다. 그런 시선의 부담스러운지 신타로는 긴장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본다.

    그런데 그때 뭔가 떠올랐는지 경희가 박수를 짝 치며 소리쳤다.

    “어? 전에 그 사람 아니야? 동네 청소할 때······.”

    “맞아.”

    “난 아까 알아봤는데.”

    선희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경희가 버럭 했다.

    “사람이 다 네 같은 줄 알아? 나도 꽤나 기억력 좋다고! 성적도 나 정도면 나쁘지 않고.”

    갑자기 성적 얘기는 왜 하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소리치거나 말거나 선희는 별로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는 것 같은 행동을 하던 경희가 곧 한숨을 푹 쉬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리고는 나와 신타로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빠는 그새 일본인 아저씨랑 친해진 거야?”

    그렇게 말하더니 내가 대답할 시간도 안주고는 곧장 신타로에게 웃으며 일본어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전에 아침에 봤는데. 청소할 때”

    경희가 열심히 빗질하는 흉내를 낸다.

    그러자 신타로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얼떨결에 인사한다.

    “아, 그러시군요.”

    그렇게 말하더니 나와 선희를 번갈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런데, 저기. 일본어를 잘하시네요. 윤환과는 어떤 관계······.”

    “관계라니, 낯부끄럽게.”

    “네?”

    “그냥 남매요. 저기 일하고 있는 애는 나랑 쌍둥이.”

    “아.”

    이미 들어오면서 두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는 건 눈치 채고 있었던 건지 그 부분에 대해선 크게 놀라지는 않는다. 그보다 나와 남매라는 사실이 더 신기한 모양이다.

    “그럼, 남매가 같은 화실에서 일하는 중?”

    “맞아.”

    “그럼······, 다른 사람들은 다 퇴근?”

    “그렇지.”

    “선생님은 이곳에 머무시지는 않나봐.”

    “선생님? 만화가?”

    “어. 건물 보니까 위층은 불이 꺼져 있어서.”

    그러니까, 우리 남매가 다 퇴근한 화실 뒷정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거구만.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지금 화실에 계시지.”

    “그래?”

    그렇게 되물으며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본다.

    그리고 눈빛으로 ‘어딘데? 어디?’ 이렇게 묻고 있다.

    내가 선희 쪽을 턱짓하자, 그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곧장 눈을 커다랗게 뜨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선희 뒤쪽을 살핀다.

    이 인간아 그 뒤에 뭐가 있다고.

    하지만, 이거 은근히 재밌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신타로의 모습을 보던 경희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맞아요. 선희가 만화간데.”

    “선희······?”

    “네, 일본에서는 써니라고 하는데. 아, 잘 모르시려나?”

    경희가 그렇게 말하더니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잘 모르긴.

    저 표정을 봐라.

    충격에 빠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나저나 너무 빨리 말하면 재미없는데. 씁.

    “오빠는 손님을 데려오면서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도 말 안 한 거야?”

    “그냥 뭐, 내가 일하는 곳이라는 것 정도만 말했지.”

    “어휴, 미리 말이라도 했으면 청소라도 했을 거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히 깨끗하지, 뭘.”

    “일반인이 보면 그렇지도 않아.”

    “괜찮아. 이 형은 잘 알고 있으니까. 이쪽 업계 경험도 있고.”

    “정말?”

    “그래.”

    그렇게 말하며 신타로 쪽을 슬쩍 돌아봤다.

    신타로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이다.

    어어, 입에서 침 떨어지려고 한다.

    그런데 신타로의 벌려진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뭔가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써니······, 써니······.”

    마치 좀비 같은 모습으로 계속 같은 말만 중얼거린다.

    “왜 그래?”

    내 물음에 움찔하더니 곧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날 보며 물었다.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써니는 아니겠지?”

    “형이 알고 있는 써니? 삼사라?”

    “그, 그래.”

    “맞아. 그 써니.”

    “콜록! 콜록!”

    갑자기 급성폐렴에 걸리기라도 한 듯 거칠게 기침을 하자 경희가 서둘러 물을 컵에 담에 그에게 내밀었다.

    “자, 자요. 어서, 쭈욱.”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던 신타로가 경희에게서 물 컵을 받아 쭈욱 들이킨다.

    그리고 곧 기침이 진정되자 휴, 하고 숨을 쉬더니 여전히 놀란 눈으로 우리 모두를 돌아본다.

    “진짜, 여기 삼사라 작가, 써니의 화실이야?”

    “어. 맞아.”

    “우리 오빠는 스토리 써요. 그것도 몰랐겠네.”

    “스토······.”

    “눈 튀어 나올라.”

    “······.”

    신타로는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설마 네가 텐겐 작가, 거기다 써니의 화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신타로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까까지 삼사라를 읽고 있었는데. 정말 만화를 보다가 정신을 잃고 꿈을 꾸는 기분도 들고.”

    “내가 꼬집어 줄까?”

    “아니, 벌써 몇 번 꼬집어 봤어. 그러니까 괜찮아.”

    “행동 빠르네.”

    “내가 좀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신타로가 풀린 눈으로 웃는다.

    “형, 아까 봤던 콘티, 아니 네임을 보고 생각한 건데. 형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때?”

    “그걸로?”

    “어.”

    내 대답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이 된다.

    “그거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럼 왜?”

    “아까도 형네 집에서 말했잖아. 재미보다 설정이 너무 좋다고. 그런 아까운 설정을 버리면 곤란하지.”

    “······.”

    “나랑 같이 해볼래?”

    그 말에 화들짝 놀란다.

    이 양반 오늘 몇 번을 놀라는 거야.

    “네가 스토리를 도와주겠다고?”

    “그래. 그림이야 뭐, 형이 잘 그리니까. 하면 될 테고. 물론 인물이나 연출은 좀 더 노력해야겠지만.”

    그렇게 말했는데도 여전히 꿈인가 생신가하는 표정이다.

    “내 그림으로도 될까?”

    “스토리만 괜찮다면, 충분하지. 솔직히 인기 만화 중에 그림만 놓고 보면 엉망인 것도 얼마나 많은데.”

    “그거야 그렇지만.”

    “회사 퇴근시간 언제야?”

    “아, 원래는 4시 반인데. 무조건 1.5시간은 추가로 해야 해서, 오후 6시 퇴근. 그런데, 실제 그 시간에 퇴근하는 건 수요일뿐이고. 보통 땐 추가 두 시간 더 해서 8시 퇴근이야.”

    누나가 예전에 이것과 비슷하게 일한 터라 나도 잘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출근시간도 아마 7시 반쯤이거나 늦어도 8시겠지.

    그야말로 하루 종일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할 거다.

    “그럼, 평일은 퇴근하고 찾아와. 그리고 토요일은 일찍 마치겠지?”

    “어. 4시 반.”

    “일요일에도 오고.”

    “그래도 돼?”

    “그래. 나중에 잘 되면 이거 갚고.”

    “알았어. 그럼 얼마······.”

    “일단 성공을 해야지. 그리고 가족이랑 다시 같이 살아야잖아.”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을 글썽인다.

    그때 부엌에서 커피와 간식거리를 들고 나오던 경희가 그런 모습을 보며 날 흘겨본다.

    “아니, 모처럼 온 손님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고마워서 그런 겁니다.”

    “······.”

    “나 열심히 해볼게. 그리고 시킬 일 있으면 시켜. 만화 쪽이면 내가 그래도 제법 도움이 될 테니까.”

    “여기 어시들, 실력 좋거든요.”

    “아, 그렇지. 삼사라 그림이라면. 아, 내가 주제넘게 나섰네.”

    “형은 그냥 본인 만화에만 열중하면 되거든.”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

    다음날 아침.

    화실 대문 앞으로 걸어가다 멈칫했다.

    대문 앞마당이 평소보다 너무 깔끔해서다.

    근처 전봇대 주변에 늘 보이던 쓰레기들도 보이지 않고, 연탄재들도 주변이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다.

    “······?”

    맞은편 슈퍼의 주인아줌마가 청소한 건가?

    나중에 따로 인사라도 해야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자, 고소한 밥 냄새가 집안 가득이다.

    먼저 온 엄마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어서다.

    쌍둥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나서, 아침이면 이곳에 미리 오셔서 식사준비를 한다.

    최근엔 일찍 나오는 화실 식구들도 있어서, 아침이라도 직접 먹여야 한다며.

    아무튼, 덕분에 요즘은 나도 아침밥은 화실에서 먹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출근한 사람은 없다.

    “어, 이제 왔니? 밥 먼저 먹을래?”

    “아니. 좀 있다가 같이 먹지 뭐.”

    “그럴래?”

    “근데, 대문 밖이 깨끗하던데.”

    “아, 그거?”

    “슈퍼 아줌마가 한 거 같던데.”

    “아니야.”

    “어? 그럼 누구?”

    “일본 총각이던데?”

    “뭐?”

    청소한 게 신타로라고? 아침 일찍 출근할 텐데?

    그보다 엄마가 신타로를 아나?

    “새벽시장 들렀다가 돌아오는데, 젊은 남자가 청소를 열심히 하더라. 그래서 누군가 싶었더니, 일본총각이었어.”

    “엄마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알지.”

    하기야, 엄마는 동네 사람들과 친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일본총각이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더라. 너랑 잘 알고 있다며?”

    “아, 뭐 그렇게 됐어. 그 사람도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어머, 그러니?”

    “어. 그래서 마치면 여기 올 거야. 나랑 같이. 그 형, 신작 하는데 도와주려고.”

    그렇게 말 하며 신타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리를 하며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어머, 그러니?’ 등등의 추임새를 넣더니 다 듣고 나서 내게 말했다.

    “잘했다, 잘했어. 그 집 가족들도 얼마나 힘들겠니.”

    “뭐, 그렇지.”

    “여튼, 그럼 나도 여기서 저녁 간식거리라도 따로 만들어 줄까?”

    “아이고, 그런 말씀은 마셔요. 그쯤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그냥 집에서 쉬셔. 괜히 나오면 다 불편해.”

    “너도 참.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리고 화실식구들이 출근하면서 일과가 시작되고, 평소처럼 하루가 마무리될 시점에 어시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 신타로가 화실로 찾아왔다.

    쌍둥이들도 평소처럼 화실에 남아 있어서 같이 인사를 하고는 그를 소파에 앉혔다.

    “아침 청소 형이 했다며?”

    엄마에게 들은 것도 있어서, 물었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꼭두새벽에 뭐 하러 힘들게 그래? 일부러 집에서 여기까지 와서.”

    “괜찮아. 이 정도는 그냥 하게 해줘. 그래도 신세를 지면서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잖아.”

    “신세는 무슨. 나중에 갚으면 된다니까.”

    “이건 이자라고 생각해줘.”

    “내가 무슨 사채업자냐?”

    “은행도 이자는 받지.”

    “아, 그건 그러네. 그나저나 시간 없으니까 빨리 시작하자.”

    “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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