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 (3)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그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재밌어?”
“아니.”
“······.”
그를 본 건 아니지만 급 실망한 표정이 느껴진다.
난 여전히 네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흥미롭다고 한 건, 미래에 대한 묘사 때문이야. 상당히 그럴 듯해서.”
“아, 그거.”
그제야 내가 한 말을 이해한 신타로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원래 SF만화를 좋아해서, 기계 그리는 거 좋아하거든. 하지만 요즘 SF만화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잖아. 그런 건 이미 애니에게 자리를 거의 내줬으니까. 거대한 로봇이나 전함 같은 로망도 70년대 같지 않고. 그래도 미래에 대한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어. 그래서 다른 식의 미래에 대해 알아보려고 이런저런 잡지들을 사서 읽다보니까, 어쩌면 미래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더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미래라는 게 꼭 예상하는 데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니까.”
“맞아. 그래서 미래과학에 대한 잡지들을 이것저것 살펴보다보니까,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 해서 그것을 응용해 미래를 표현한 거야.”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비슷하게 유추할 정도면 상당히 공부를 많이 했겠다.
아니, 이게 공부만으로 나올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전문가는 많고도 많으니까.
그런데 신타로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너 타임머신이라는 소설 봤니?”
“타임머신? 뭐, 영화는 봤지만, 소설은 안 봤는데. 내용은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내 말에 신타로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영화랑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야.”
“그래?”
“어. 영화는 그 소설의 일부분만 따와서 만든 거고. 사실 소설 쪽이 좀 스케일이 크거든. 아무튼 거기 보면 타임머신 내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외부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 있거든. 그 중에 도시가 변해가는 게 있는데, 처음엔 빌딩이 위로만 계속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멈추거든. 그리고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한다고.”
“그게 왜?”
“그러니까, 무조건 커다랗고 엄청난 규모의 기계가 나온다는 식의 미래는 지금의 생각일 뿐이고, 어쩌면 좀 더 다른 식의 발전이 있지 않을까 나름 생각한 거야. 전에 어떤 잡지에서 보니까, 앞으로는 종이신문도 사라질 거라고 하던데, 그것도 참고한 거고.”
“그러니까 형이 생각한 형태의 미래를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조한 거네?”
내 말에 꽤나 쑥스럽다는 얼굴이다.
“창조까지는 아니고. 아무튼 이거 설정만 잡는데도 오래 걸렸어.”
이 사람 신났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대?
거기다 만화까지 계속 그리고 있었다니.
내가 웃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만화가 안한다더니 이런 건 계속 한 모양이네.”
그 말에 신타로가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일하고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없었으니까. 따로 만나는 사람도 없고. 아, 이런. 내가 말하고 보니 참 한심하다.”
하기야, 내가 살던 시절처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거기다 알아듣기 힘든 TV방송을 계속 보기도 힘들었을 테고.
그러다보니 유일한 낙이 명동이나 이태원골목에서 구입한 일본잡지 읽는 거였겠지.
아무튼 생각이 좀 옆으로 새긴 했는데, 이야기가 재미없는 것만 빼면 콘티의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미래를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하게 표현했다.
물론 콘티만으로는 배경의 디테일이 떨어져서 알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그럼에도 대단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슬쩍 떠봤다.
“설정이 너무 좋아서 이걸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이걸로 한번 도전해 볼래? 아까 형이 보던 그 소년 히어로에 말이야.”
“뭐?”
“소년 히어로가 3류 잡지라서 그래?”
그 말에 신타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소년 히어로는 3류 잡지가 아니야.”
아닌 건 알고 있다.
그냥 말해본 거지.
그래도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니까 좀 뻘쭘하긴 하네.
그가 계속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여기 잘나가는 만화가 엄청 많아. 솔직히 점프, 매거진, 썬데이 빼면 거의 최고야.”
“그 정도야?”
요즘 판매부수가 늘었다고는 들었지만, 그 정도일지는 몰랐다.
너무 관심을 끊고 살았나?
“그래. 특히 삼사라, 진심의 남자, 에스퍼 존은 최고야. 개인적으로는 에스퍼 존의 팬이었는데, 지금은 삼사라를 더 좋아해. SF는 아니지만. 아, 너 삼사라는 알고 있니?”
“잘 알지.”
신타로가 삼사라를 좋아한다니 기분은 좋네.
아무튼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그의 표정도 밝아진다.
“다 읽어 봤어?”
“뭐, 그렇지.”
“나도 이태원에 단행본 나온 거 확인했는데, 사진 않았어. 너무 비싸서 그냥 서서 몰래. 읽었지.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짓더니 곧 나를 보며 웃었다.
“설마 한국에서 이만큼 즐겁게 얘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살았는데. 덕분에 오늘은 한국에서 최고 좋은 하루로 기억될 거야.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나도 즐거웠는데, 뭘.”
그렇게 말하고는 콘티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다시 그를 쳐다봤다.
내 표정에서 뭘 봤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거, 다시 한 번 만들어서 도전해볼 생각은 없어?”
“······.”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들여 만든 설정인데, 이대로 사장시키면 아깝잖아.”
“그렇기는 한데······. 여기가 일본도 아니고, 다시 돌아가는 것도 두렵고.”
“평생, 이렇게 불법체류자로 살고 싶어?”
“그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거야?”
“······.”
신타로가 머리를 푹 숙였다.
아마도 바꾸기 힘든 현실에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릴 적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산 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시절로 오기 전까지도 그렇게 살았었다.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동정만 하면 이 사람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나랑 같이 한번 해볼래?”
그 말에 머리를 슬쩍 들어 올리며 날 쳐다봤다.
“너랑?”
“어. 나랑.”
신타로가 쓴 웃음을 지었다.
“······고마운 말이기는 한데.”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미안. 기분 나빴다면 내가 사과할게.”
“형은 자꾸 사과하는 버릇부터 좀 고쳐. 뭐가 그렇게 미안한게 많냐?”
“······미안하다.”
“허, 참.”
뭐, 당연한 일이지.
일본만화계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이 너무 쉽게 얘기하니 기가 찰 테니까.
물론 신타로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지.
내가 물었다.
“어때 이제 몸, 움직일 만 해?”
“어, 뭐. 이젠 괜찮아.”
“일어나 봐.”
“왜 갑자기.”
“괜찮은지 보려고.”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인다. 표정에 약간 경련이 일고 있는걸 보니까 아직 아프기는 한 모양이다. 하지만, 움직임은 확실히 좋아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좀 더 놀다가지?”
신타로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내 말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어.”
“어딜?”
“내가 일하는 곳.”
“네가 일하는 곳? 거기가 어딘데?”
“여기서 가까워. 같이 가자.”
“뭐하는 곳인데?”
“가보면 알지.”
그 말에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래. 알았어.”
“형은 경계심도 없냐? 어디 이상한 데라도 팔아먹으면 어쩌려고.”
“내가 여기서 더 떨어질 곳이 어디 있냐? 그리고 네가 팔아먹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팔려가지 뭐.”
뭐라는 거야?
내가 진짜로 팔아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봤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그 말이 맞네.”
내 말에 신타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일본엔 변태가 많다는 말.”
“뭐?”
그렇게 되묻더니 잠시 후 크게 웃었다.
“맞아. 일본이 좀 그렇지. 그건 나도 인정.”
*
“여기가······ 네가 일하는 곳이라고?”
화실 대문 앞을 바라보며 물었다.
상당히 놀란 모습으로.
“맞아.”
“여기 일본 집처럼 생겼는데?”
밤이지만, 대문 너머로 보이는 집의 모습에 경계를 하는 눈빛이다.
“그래. 맞아. 그런데 왜?”
“아, 아니.”
“뭐, 설마 내가 야쿠자라도 될까봐?”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니긴 표정이 맞다고 하는데.
하기야, 한국에서 일본식 건물을 보니 뭔가 섬뜩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조직폭력단들이 일본과도 상당히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으니, 이해가 가는 모습이다.
“들어가기 싫으면 관둬도 되고.”
“아니, 그건 아니야. 뭐, 팔려간다면 그것도 내 팔자겠지.”
“뭐라는 거야?”
엉뚱한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가 잠시잠깐 머뭇거리다 날 따라 들어온다.
긴장된 표정으로 마당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불이 켜진 마루 쪽을 바라본다.
마루의 창문들은 투영한 유리로 되어있긴 하지만, 안쪽 문들이 닫혀있어서 보이는 건 없다.
지금 시간이라면 어시들은 모두 퇴근했을 것이라 아마도 경희와 선희만 있을 것이다.
엄마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 이쪽으로.”
“어, 어. 그래.”
아무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서 나를 따라 오는 그의 발걸음이 상당히 조용하다.
슬쩍 돌아보니 이젠 체념한 표정이다.
이거, 너무 재밌는데?
좀 더 놀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냥 관두기로 했다.
내가 너무 악마 같아서.
아무튼 앞장선 내가 화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역시나 경희와 선희 둘 뿐이다.
그런데 경희가 날 보더니 흠칫 놀란다. 그리고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나며 버럭 소리쳤다.
“아니, 오빠! 도대체 과자 사러 나간다던 사람이 이제야 들어오면 어떡해! 걱정 했잖아. 화실 식구들도 얼마나 걱정했는데!”
선희도 선 채 날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녀석도 날 걱정 했나?
아 참, 그러고 보니 과자를 사러 나갔었지?
그러고 보니 과자 봉지를 신타로 집에 두고 왔구나.
뭐, 어쩔 수 없지.
“간식도 안 사왔네?”
“까먹었다.”
“뭘 하느라고 까먹어?”
“그러게.”
“오빠!”
그렇게 소리쳤다가 내 뒤에서 눈치를 보며 기웃거리는 신타로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어머, 손님이 오셨네.”
입을 가리며 어색하게 웃더니, 곧 날 도끼눈으로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손님이 같이 왔으면 말을 하지.”
“네가 말할 틈이라도 줬냐?”
“······그랬나?”
그런데 들어오던 신타로가 곧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떡 벌린다.
그리고는 날 보며 물었다.
“여, 여기 화실 아니야? 만화가 화실.”
“맞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