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45화 (245/425)
  • 수상한 사람 (2)

    그의 질문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

    그런데 표정이 묘하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들은 게 반가운 건가?

    그런데 어둡기는 하지만, 얼굴에 멍이 든 것 같은데.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그 말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만지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괘, 괜찮아요. 이런 건. 윽!”

    아픈지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린다.

    “일단 치료부터 합시다. 그리고 근처에 파출소 있으니까 거기서 신고도 하고.”

    그 말에 남자가 화들짝 놀란다.

    “아뇨, 괜찮아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니까 하는 말이지.”

    “그래도 경찰서는 곤란해서요.”

    “······.”

    경찰서는 곤란하다니, 정말 경희 말대로 무슨 범죄자 출신인가?

    그래도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멋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일단 슈퍼 앞에 좀 앉아있어봐요. 내가 간단하게 치료할 약이라도 사올 테니까.”

    “아뇨. 괜찮아요. 집에 약은 있으니까.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털더니 웃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축 해 드려요?”

    “아뇨, 괜찮습니다.”

    “뭐, 그러시다면이야.”

    그렇게 말하자 그가 다시 내게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려 걸어간다. 그런데 걷는 게 영 부자연스럽다. 아무래도 좀 많이 다친 모양인데.

    그 모습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 그를 부축했다.

    “집 방향 알려줘요. 데려다 줄 테니까.”

    “······하지만.”

    “괜찮다니까요.”

    “네, 고맙습니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집이 있는 방향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와 함께 걸어가다 보니 화실이 아닌 우리 집 근처로 간다.

    아참, 이 사람 동네 청소할 때 봤으니, 우리 집 근처가 사는 곳이겠지.

    역시나 집과 가까운 2층 주택이다.

    예전에 살던 집과 비슷한 다가구주택.

    허름한 철 대문 앞까지 다가간 뒤 내가 말했다.

    “이제, 들어가 보세요.”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동네 이웃인데. 오며가며 인사나 하면 되죠.”

    “그, 그럴까요?”

    “당연하죠.”

    그렇게 말하고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멀어지려하니,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술이나 한 잔 할까요?”

    “네?”

    “집 안에 소주 있어요. 안주도 있고.”

    “소주요?”

    “네.”

    “······.”

    “역시 폐가······.”

    “아니 뭐,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음료수라면 뭐.”

    “아, 네. 있어요. 콜라도 있고. 맥콜도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런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까까진 상당히 경계하던 눈치였는데, 갑자기 친근하게 구는지 알 것 같아서다.

    타국에 와서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그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형태의 작은 부엌, 그리고 방문이 보인다.

    이 시절 단칸방들은 대부분 모양이 비슷비슷해서 어디를 가나 익숙한 느낌이다.

    아무튼 안으로 들어간 그가 등을 켜자, 아담한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외모와 달리 방은 상당히 깔끔하게 잘 정리정돈이 되어있어 조금 놀랐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가 물었다.

    “어떤 걸로 드실래요?”

    “아니, 그것보다 일단 약통이나 갖고 와 봐요.”

    “아뇨. 그러실 필요는······.”

    “어서.”

    “아, 네.”

    그렇게 대답한 그가 한쪽 편에 있는 책상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낸다.

    그것을 받은 내가 안을 열어 먼저 소독약으로 얼굴 상처부위를 닦아주고 연고를 발랐다.

    따끔한지 몸을 움찔거리며 신음소리를 낸다.

    “아, 아야!”

    “거 참, 남자가 좀 참아 봐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네.”

    약을 바르는데 이 양반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어? 이 사람이 왜 이래?

    내가 움찔 놀라며 슬쩍 몸을 뺐다.

    “그렇게 아픕니까?”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갑자기 눈물이······.”

    “······그랬어요?”

    뭔가 답답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다시 약을 바르며 오지랖을 부려본다.

    “왜, 한국에 온 건지 말해 줄 수 있어요?”

    “······.”

    머뭇거린다.

    곤란한 질문이었나?

    “뭐, 비밀이라면 안 해도 되고.”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어차피 말씀드린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니까······.”

    “······?”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도망쳤습니다.”

    “도망요?”

    진짜 범죄자였나?

    “혹시 죄를 지은 겁니까?”

    “······죄를 지었습니다.”

    “네?”

    그 순간 남자가 머리를 푹 숙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부인과 아이를 버렸으니까요.”

    “······!”

    아, 뭔가 알 것 같은 진행이었다.

    도박, 빚, 그리고 도망.

    역시 실버가 얘기했던 데로 이 사람도 파칭코나 경마 같은 걸로 도망중인건가?

    그럼 야쿠자들에게 쫓기는 건지도.

    “빚을 많이 지셨어요?”

    “조금······.”

    역시 도박이구나.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생활비요?”

    “네. 만화만으로는 가족이 먹고 살수가 없었으니까요.”

    “······만화요? 그럼, 만화가예요?”

    “······네.”

    예상이 엄청 빚나갔구나.

    그나저나 한국에서 일본만화가를 만나다니, 이것도 참 공교롭다.

    하기야, 한국에서 일본만화잡지 편집자도 만났으니, 그리 특별한 경험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만화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소수의 만화가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무명 만화가니까. 거기다 만화 쪽은 소득도 불안정해서 대부분 무명생활은 오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화로 성공해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단편만 몇 편에 중편짜리 몇 편, 그리고 단행본 두 권짜리가 전부라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두 권 나오고 중단되었다면 판매량이야 안 봐도 뻔하다.

    “어시 생활이라도 해보면 되잖아요.”

    “물론 그것도 해봤습니다만······. 어? 만화에 대해 아십니까?”

    남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네, 조금요.”

    그 말에 그가 곧 머리를 끄덕인다.

    “아무튼 어시 생활도 유명한 곳은 자리가 없고, 신인들 자리가 가끔 생기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조금씩······.”

    부인과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생활비가 부족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이라니.

    남의 가정사에 감 놔라 배추 놔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런데 내 생각을 읽은 걸까, 그가 입을 열었다.

    “편의점 일도 해보고, 야간 공사 교통정리 일도 했습니다만, 점점 어떻게 살아야할지 무서웠습니다. 그러다가,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이렇게는 계속 살 수 없다고.”

    젊은 나이에 가장으로서 부담도 상당했을 테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처가로 갔고, 저는 술에 빠져 지냈습니다.”

    이해는 간다.

    만화만을 위해 달려가던 사람이 만화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으니, 절망에 빠져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거기다가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져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의 늪이라면 더더욱 그랬겠지.

    그리고 그동안 생활비로 빌린 돈 때문에 사채꾼들에게 시달렸을 테고.

    아, 진짜 상상만 해도 괴롭다.

    “그럼, 지금은 불법체류겠군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이런 얘기를 저에게 왜 하시는 겁니까? 혹시라도 제가 신고해버리면 강제 추방이 될지도 모르는데.”

    “······글쎄요.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렇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곳에 도망쳐 오긴 했지만, 여기서의 생활도 만만치는 않았을 테니까. 거기다가 아직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 통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거고.

    이곳에선 쓸쓸함,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동안은 만화책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거든요. 물론 일본보다 더 비싸긴 했습니다만.”

    “아까 보던 그 소년 히어로 말인가요?”

    “정말 놀랍네요. 이 책에 대해서도 아시고. 일본만화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네. 좋아합니다.”

    “그래도 이런 타국에서 일본 만화 팬을 만난 것도 행운이네요. 역시 살아가다보면 좋은 일도 있는 모양입니다.”

    모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저기, 그러니까 제 이름은 고이즈미 신타로라고 합니다. 제 소개가 좀 늦었습니다.”

    “저는 이윤환입니다. 앞으로 얼굴보면 인사라도 하며 지내죠.”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죠.”

    “아, 이거 폐가 되는 건 아닌지.”

    일본인 특유의 조심스러움일까?

    이게 뭐라고.

    “그런데, 만화가라고 하셨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고이즈미 씨가 그린 그림 볼수있을까요?”

    “아, 네. 연습장에 그린 게 좀 있습니다. 그리고 신타로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윤환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전 27살입니다.”

    “전 23살이에요. 제가 동생이니까, 형으로 부를게요. 그리고 친하게 지냅시다. 말도 놓고.”

    “아, 그래도······.”

    “괜찮아요. 이것도 인연인데.”

    “조, 좋아.”

    “오케이.”

    어째 내가 경희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네.

    아무튼 어색하게 웃은 신타로가 자신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서랍을 열어 연습장 한권을 꺼내 내밀었다.

    “그래도 버릇은 못버려서 이렇게 가끔 그리고는 있습니다. 아니, 있어.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실력이 많이 부족하거든.”

    “알았으니까, 신경 안써도 돼.”

    “아, 그래.”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고는 그의 연습장을 펼쳤다.

    연필로 그려진 그림들.

    그런데 메카닉 디자인이 상당히 많다.

    물론 사람도 그려져 있기는 한데, 주로 미래형 비행선이나, 무기, 혹은 자동차들이다.

    그런데, 일단 연필로 그린 일러스트만 놓고 보면 상당히 퀄리티가 높다.

    캐릭터도 80년대 유행중인 전형적 스타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퍼스트 건담과 Z건담의 캐릭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마도 이쪽 계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아무튼 지금 시대에 SF 분야라면 슬슬 인기가 식어가는 추세라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애니 쪽은 아직 괜찮긴 하지만.

    “SF가 형의 주 분야야?”

    “어, 그래. 야마토랑 하록을 좋아했거든.”

    우주전함 야마토랑, 캡틴 하록이라.

    “그림이 좋은데?”

    “칭찬해주니까, 기분은 좋네.”

    “스토리 만화로 그려놓은 건 없어?”

    “아, 있기는 한데, 별로 재미는 없어.”

    “내가 편집자도 아닌데 왜 신경 써? 그냥 편하게 보여줘.”

    “그, 그럴까?”

    머뭇거리던 그가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서 다른 연습장을 하나 더 꺼냈다.

    “이거.”

    “네임이야?”

    “네임도 알아? 너 진짜 만화 엄청 좋아하나보다.”

    감탄하는 그에게서 연습장을 받아 펼쳐봤다.

    “그거 단편이야.”

    “응.”

    대답하면서 콘티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그리고 읽어가면서 처음 든 생각은 연출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캐릭터의 특징이 없어서 지루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의외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미래의 일상물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휴대용 전화기에 가정용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까지.

    똑같은 건 아니지만, 상당히 유사하다.

    이 시대의 만화치고는 상당히 미래를 구체적으로 잘 표현했다.

    “야, 이거 흥미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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