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41화 (241/425)
  • 예상치 못한 리메이크 (6)

    며칠 후.

    키도의 화실.

    점심 식사 후 쉬는 시간.

    어시들이 각자 자리에서 짧은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중 며칠 전에 새롭게 화실의 식구가 된 막내어시를 보며 선배 중 한명이 물었다.

    “일이 좀 많은데, 할만 해?”

    “네. 힘들지만, 배우는 것도 많아서 좋습니다.”

    “좋기는······. 한 달만 더 있어봐. 얼굴이 우리처럼 변할 거니까.”

    선배 중 한명이 눈 밑이 검게 변한 자신과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때문에 막내어시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 하하하.”

    이거 계속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는 방금 편의점에서 사온 소년점프를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힘든 걸 잊을 수 있는 이 시간은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때니까.

    그렇게 가장 재미있는 만화부터 읽은 뒤, 평소처럼 가장 뒷장을 펼쳤다.

    만화가를 꿈꾸고 나서부터는 만화책을 읽은 뒤, 이렇게 만화가들의 후기를 읽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던 탓이다.

    하나하나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읽어나가던 그의 눈이 하라 테츠오의 후기에서 멈칫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뜬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그러자 주변에 있던 어시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왜 그래?”

    “하라 선생님의 후기요.”

    “누구? 하라 선생님?”

    “하라 선생님이 누군데?”

    “하라 테츠오잖아, 하라 테츠오. 북두의 권. 너는 그것도 모르냐?”

    “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더니.”

    “그런데 갑자기 하라 테츠오는 왜?

    “소년점프 후기요. 이거 좀 읽어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있던 선배 어시에게 소년점프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것을 선배 중 한명이 받아들자, 다른 어시가 그에게 말했다.

    “무카이, 소리 내서 읽어봐. 우리도 뭔 내용인지 궁금하다.”

    “네.”

    무카이가 그렇게 말하며 목을 살짝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 음, 보자. 뭐가 적혔길래. ‘써니 선생님의 일러스트를 받은 화실의 식구, 모리타가 너무 부럽군요. 만화가들 사이에선 스타로 취급되는 써니 선생님이 직접 액자로 만들어 보내주시다니. 질투심이 팍팍. 앞으로 모리타를 괴롭힐랍니다.(웃음)’ 이라고 쓰여 있네요.”

    “아, 그런 거야?”

    “음, 좋았겠네. 일러스트를 선물로 받았다면.”

    “그러게.”

    하지만 말과는 달리 어시들의 반응이 어째 시큰둥하다.

    그 때문에 막내 어시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 모두들 반응이 왜 그러세요?”

    “왜? 반응이 어떤데?”

    “후기의 내용이 대단하잖아요.”

    “대단하네. 부럽기도 하고.”

    “맞아. 대단하지. 모리타라는 어시가 누군지는 몰라도 엄청 좋아하고 있겠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시원찮다고 느낀 막내 어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니, 놀랍다고 말씀들을 하시는데, 왜 반응이 그러세요?”

    그 말에 어시들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분위기라 더 의아할 뿐이다.

    그때 키도부인이 쟁반을 들고 화실 안으로 들어왔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나봐요?”

    키도부인이 쟁반에 올려진 차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 네. 나카다 반응이 재미있어서요.”

    “어떤 반응 말인가요?”

    “아, 네. 소년점프 후기에 하라 테츠오 선생님 어시가 써니 선생님 일러스트를 선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어서, 그것 때문에.”

    그 말을 들은 키도부인이 알 것 같다는 듯 여전히 미소지은채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아, 써니 선생님. 일러스트 받은 어시 분은 좋았겠네요.”

    그 말에 막내어시인 나카다가 그녀를 보며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사모님도 써니 선생님을 아시는 군요. 역시 만화 팬이시구나.”

    “아니에요. 만화는 잘 몰라요. 전 그냥 텔레비전 드라마를 좋아한답니다. 자 식기 전에 드세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으로 화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나카다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아뇨. 사모님이 정말로 써니 선생님을 아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 같아서요.”

    그 말에 어시 한명이 웃으며 말했다.

    “아닌데, 정말 아시는데.”

    “아, 네. 이름이야 들어보셨을 테죠. 하지만 써니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는 잘 모르시잖아요. 만화가와 관계있는 사람들이라면 써니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아실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선배 어시들을 바라본다.

    아까의 반응에 실망한 눈빛으로.

    그런 나카다의 얼굴을 보던 어시들이 뭐가 재밌는지 다시 낄낄 거렸다.

    그 모습에 다시 나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들이 왜 아까부터 저렇게 웃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뭔가 혼자 따돌림을 당한다는 기분까지 들어서 기분도 별로다.

    그때 키도가 화실에 들어왔다.

    그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데?”

    “어? 파칭코 다녀오셨어요?”

    “어. 오랜만에 갔는데. 제법 운이 좋았거든.”

    그렇게 말하다가 화실의 묘한 분위기를 읽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두 왜 그런 표정이야? 재밌는 거 있어?”

    “아, 네. 나카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요.”

    “재미있는 이야기?”

    그렇게 말하며 나카다를 돌아본다.

    키도부인이 들어왔을 때랑 똑같이 이야기하는 선배의 말에 조금 찌푸렸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써니 선생님 이야기만 하면 모두 웃는데, 좀 이상해요.”

    그렇게 말하며 소년점프 후기부터 아까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자 키도가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아, 써니.”

    “······.”

    그의 반응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나카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왜, 이 화실 인간들은 써니의 대단함을 모를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화가 나려 한다.

    물론 만화도 호불호가 있는 영역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화실 전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그런 나카다를 힐끔 쳐다보던 키도가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텐겐이랑 써니가 남매라는 건 알고 있어?”

    “······네. 선생님도 잘 아시네요.”

    “당연하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는 키도.

    그를 보며 눈알만 데굴거리는데,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기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나카다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화실입니다.”

    “아, 키도 선생님 계십니까?”

    “네. 누구시라고 말씀드릴까요?”

    “유난이라고 전해주세요.”

    “유······난이요?”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키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줘.”

    “아, 네. 유난이라고.”

    “어. 방금 들었다.”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어, 나야. 오랜만에 전화구나.”

    그렇게 말하며 굉장히 반가워한다.

    나카다는 평소 키도 선생이 평소 전화를 이렇게 반갑게 받는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모습이 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아직 화실에서 일한 건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키도 선생이 전화를 받는 모습을 그리 많이 본건 아니다. 그나마 전화를 받아도 보통은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하지만 곧 저렇게 반가운 사람도 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작업을 슬슬 준비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때 키도가 껄껄 웃었다.

    “안 그래도 방금 그 얘기는 나도 들었다. 새로 들어온 막내어시가 너희들 얘기를 하더라고.”

    그 말에 나카다가 흠칫했다.

    새로 들어온 막내어시면 자신이 맞는데······.

    하지만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머리를 들어 키도 선생을 쳐다봤다.

    그런 그를 키도 선생이 웃으며 본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너랑 써니.”

    “······!!”

    “언제 또 놀러와. 난 지금 연재 때문에 정신이 없잖아. 여유 많은 너희들이 와야지. 그래. 오면 우리 막내어시한테 사인이라도 한 장 해줘. 뭐? 일러스트? 그러면 더 좋지.”

    그 순간, 키도 선생이 자신을 놀리려고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된다. 그리고는 다른 어시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그들은 웃고 있다.

    이 사람들이 단체로 정신이 나간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들이 거의 동시에 종이를 한 장씩 들어올린다.

    “······?”

    순간 뭐지? 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그 그림들이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보니······, 그게 모두 삼사라 그림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사인이 되어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카다가 선배들에게 다가가 그림을 바라보니 복사 품이 아니다. 그리고 사인도 진품이 확실해 보인다.

    “·······어?”

    그 반응이 재밌는지 모두 그를 보며 다시 웃는다.

    “······어?”

    설마.

    “······어!!”

    * * *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나갔던 성준희가 화실 안으로 들어오며 내게 말했다.

    “윤환아, 밖에 일본여자가 찾아온 것 같은데?”

    “일본여자?”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성준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그런데 성준희 표정이 묘하다.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그런데 화실 사람들의 표정도 묘하긴 마찬가지.

    다만 실버만 낄낄거리고 있을 뿐이다.

    왜들 이래?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으로 나갔더니, 긴 코트에 단발머리 여자가 몸을 돌리고 있다.

    어째 익숙한 느낌인데.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여자가 돌아선다.

    역시, 주간 루머의 기자인 미네다.

    “안녕하세요. 텐겐 선생님.”

    “아, 갑자기 한국까지 어쩐 일로······. 설마, 내 또 우리 화실에 조사할 게 있는 겁니까?”

    그 말에 미네가 웃었다.

    “아니요. 오늘은 감사인사를 하러 왔어요.”

    “감사인사요?”

    뭔지는 알만하다.

    책 때문이겠지.

    “그런 거면 전화로 한통 하시면 되는데.”

    “그건 아니죠.”

    “그래도 이웃동네에 사는 것도 아닌데, 굳이.”

    “괜찮아요. 안 그래도 이곳에 볼일도 있고요. 이번엔 좀 대형이에요. 연예인이랑 거물정치인.”

    “아.”

    “요즘 저희 집 정신없어요. 아, 물론 출판사.”

    “······.”

    “매일같이 서점들로부터 전화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언제 책 나오냐고.”

    나도 그 얘기는 그녀의 오빠에게 전해 들었다.

    소설가도 요즘 잠까지 줄여가며 책을 쓰느라 바쁘단다.

    첫 권이 아마 두 달 정도 걸릴 거라고는 하던데, 공을 많이 들이는 모양이다.

    “아무튼 감사해요. 이건 선물.”

    박스를 보니 화과자 같다.

    일본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과자를 좋아하는 건지.

    뭐 경희나 선희야 이거 보면 또 환장하겠지만.

    “밖에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아니에요. 바로 가야돼요. 언제 체크아웃을 할지 몰라서.”

    그 정치인이랑 연예인 말이구나.

    근처 호텔에 있는 건가?

    아무튼 미네가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게 느껴지는 말이라 묘한 기분이다.

    “혹시 다음에 또 찾아오면 그땐 화실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죠?”

    “뭐, 우리가 타깃이 아니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그 말에 미네가 웃었다.

    “써니 선생님에 대한 건 걱정하지 마세요.”

    “거 반가운 얘기네요.”

    “하지만, 텐겐 선생님이라면······.”

    “네?”

    “그럼 전 가볼게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다.

    “······.”

    방금 돌아설 때 묘한 표정으로 웃은 것 같은데.

    그나저나 방금 그 말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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