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40화 (240/425)

예상치 못한 리메이크 (5)

“안뇽 하시 무니까, 저 와스무니다!”

“어서 와요, 카와다 씨.”

“어서 오세요.”

“미치코 씨. 귀여워.”

“제가 조무 큐트 하무니다.”

“어머, 미치코 씨 말솜씨가 많이 늘었어요!”

“서당캐, 사녀언. 아니, 삼개워루! 삼개워루!”

“아하하하.”

“하하하.”

정미자의 담당인 미치코가 평소처럼 화실에 들어오며 애교를 떨자 어시들이 즐거워한다.

요즘엔 말빨도 예전보다 훨씬 늘어서 어지간한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

그나저나 요즘엔 우리 담당인 지로보다 미치코를 더 많이 만나고 있어서 누가 담당인지 슬슬 헷갈리고 있는 중이다.

하기야, 지로는 삼사라에다 다크 프린세스까지 맡고, 거기다 곧 시작할 파시엔시아 때문에 평소에도 늘 바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한국까지 들락거리느라 잠도 부족했을 테니.

어지간하면 지로도 보조 한명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사실, 만화가도 만화가지만 담당편집자들도 보통 힘든 게 아닌 모양이다. 단순히 원고만 받아서 그것을 보고 의견을 내고 그런 것에 끝나지 않고. 식자부터 연재 잡지에서 보면 테두리에 들어가는 글이나, 마지막 장면에 들어갈 글까지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편집자들은 작가가 필요로 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니는 모양이라던데.

아무튼 들어와서는 어시들과 웃고 떠들던 미치코가 가방에서 꺼낸 건 팬레터가 든 종이가방이었다.

“이번에도 상당히 많은 팬레터가 왔답니다. 여기.”

“수고하셨어요.”

“뭘요. 제가 할 일인데요.”

평소에도 팬레터는 꼬박꼬박 챙겨 와서 이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지금도 여기 2층에는 팬레터만 모아둔 방이 따로 있다.

쌍둥이들이 어쩌다 피곤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거기 올라가서 팬레터들을 보며 힐링 하는 장소다.

아무튼 그 때문에 쌍둥이들은 팬레터가 오는 걸 가장 좋아한다.

지금도 선희, 저 녀석 그림 그리다 말고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런 눈빛을 이해한 미치코가 미소 짓더니 곧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 저기······ 그런데 그거 사실이에요?”

미치코가 호기심을 잔뜩 보이며 묻는다.

“네? 뭐가요?”

“후기에 올리신 거. 소설 나온다고 하던데. 정말이세요?”

“아, 그거요? 네. 맞아요. 따로 홍보할 방법이 없어서 후기에 써봤는데. 역시 좀 어설펐나?”

“아뇨, 절대로 아니에요.”

“그래요?”

그런데 미치코가 갑자기 정신나간 사람처럼 킥킥하며 웃는다.

“······왜 웃어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편집부가 바빠졌거든요. 요즘 그걸로 문의전화가 많이 와서.”

“아이고, 저런. 제가 폐를 끼쳤네요.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할 소설인데.”

“괜찮아요. 괜찮아. 이것도 다 편집부 일인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말괄량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혼자 낄낄거린다.

“······?”

“뭐, 지로 선배가 그 불만들을 다 감당하느라 고통 속에······. 크음. 아니에요.”

“고통요?”

“아, 아니에요. 그냥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눈이 초승달이 되었구만.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 한다.

그나저나 선배인 지로가 고통 받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군.

어제 통화할 때도 별다른 티를 안내던데, 어쩐지 지로가 불쌍해지네.

지로에게 너무 미안한데, 뭐라도 선물을 하나 준비해야할 것 같다.

결국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아, 그리고 이거요. 아카기 선배가 이거 선생님께 전해달라던데.”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가방에서 검은색 파일 한권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아카기 선배가 선생님 팬한테서 받은 거라고 하던데요.”

“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파일을 열어봤다.

그 속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은 그림이 수십 여장 들어있다.

그림을 보니, 잔선이 많아 거친 느낌의 그림들이다. 아직은 좀 어설픈 느낌도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독특한 매력을 가진 그림들이다.

“전해 듣기론, 하라 뭐라고 하는 만화가선생님 어시분 이라나봐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하라? 설마 하라 테츠오?

북두의 권, 꽃의 케이지를 그린 그 양반?

오, 유명한 만화가 어시구나.

어쩐지 그림이 그쪽 계열이다 싶더니.

그나저나 하라 테츠오를 모르다니, 이 여자 편집자 맞아?

하기야, 관심 없는 만화라면 만화가 이름을 모르는 것도 그리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동안 그렸던 그림을 파일에 정리해 꼭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직접 편집부를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직접요?”

“네. 어지간히도 두 분 선생님 팬인가 보더라고요. 그림 스타일은 좀 다른데. 아무튼 이거 가져와서는 소설이 언제쯤 나오는 지도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뭐, 정확한 건 모른다고 했다던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들을 살펴본다.

삼사라의 캐릭터들이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독특한 매력이 있다.

북두의 권 어시면 퀄리티 때문에 상당히 바쁠 텐데.

이런 걸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사람이 많구나 싶다.

그나저나 그림을 보면 볼수록 묘한 기분이다.

분명 하라 테츠오의 느낌도 있지만 다른 익숙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라서.

누구랑 닮은 것도 같은데.

혹시나 싶어서 파일속 그림들을 살펴본다.

대부분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데, 딱 하나 그림에 날짜와 사인이 적혀 있는 게 있다. 요란하게 날려 쓴 글이지만, 이 사인도 분명 내 기억에 있는 거다.

“이 그림을 준 그 어시라는 사람, 혹시 이름 아세요?”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이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다.

바로 ‘로쿠데나시 블루스(비바 블루스)’와 ‘루키즈’, ‘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모리타 마사노리다.

특히 로쿠데나시 블루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학원폭력물을 유행시킨 만화다.

당시 ‘일진’이라는 말도 유행시켜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엄청 두들겨 맞았다고 하던데.

아, 그러고 보니 모리타 마사노리가 북두의권 만화 어시출신이라는 것도 기억난다.

그림은 하라 테츠오와 이케카미 료이치, 그리고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인 다니구치 지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고 있다.

어쩐지 그림이 익숙하다 했더니.

그나저나 이 양반 ‘로쿠데나시 블루스’를 연재하기 시작하는 게 88년이니까 그럼 2년 후인가?

지금쯤이면 나이가······, 20살 쯤 되었을 것 같은데.

이거 과거로 오니까 앞으로 유명해질 사람들과의 접촉도 가끔씩 생기는 게 여전히 신기한 기분이다.

“왜 그러세요?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그건 아니고. 아, 그런데. 혹시 하라 테츠오 선생님 화실 주소, 알 수 있을까요?”

“아카기 선배는 지금 너무 바쁘니까, 제가 알아봐 드려요?”

자신에게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보인다.

“네. 그래주시면 고맙고요.”

“역시, 고맙다는 인사 선물을······. 그런 거라면 제가 직접 전달해 드려도 되는데.”

“직접 하실 것까진 없고. 주소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동안 화실에서 어설픈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실을 나섰다.

나는 곧바로 선희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선희야, 뭐 하나 부탁해도 되겠니?”

그 말에 파시엔시아 콘티를 작업하던 선희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응.”

“뭔지 알고 응이냐?”

“그림 아니야?”

“그······ 그래.”

“그러니까 괜찮아.”

“알······ 았다.”

“뭐 그려줘?”

내 생각이 이마에 쓰여 있기라도 한 건가?

“그러니까 말이지······.”

* * *

“모리타.”

화실 중앙에 자리 잡은 만화가의 부름에 인물 펜선을 작업하던 모리타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네.”

“여기 이 표정 말이야,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그 말에 모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만화가의 자리로 다가갔다.

“어떤 표정 말입니까?”

“자네 잘하는 입술 그거. 약간 장면이 코믹해야겠는데, 자네 같은 그런 느낌이 안 나더라고.”

“이런 식으로 말입니까?”

그가 직접 코믹한 표정을 짓고는 툭 튀어나오는 입술모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만화가가 웃었다.

“자네 그 입술 움직임은 정말 압권이라니까. 하하. 그래 그걸로.”

“네.”

원고를 받아든 모리타가 곧장 자신의 자리로 가서는 만화가가 그린 데생위에 연필로 표정을 그려 넣는다.

평소 모리타는 이런 그림을 잘 그리는 특징이 있어서 가끔 데생을 맡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던 그를 보며 만화가가 물었다.

“자네, 앞으로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

“네? 뭘요?”

“자네 도쿄로 상경할 때 부모님이랑 약속한 거 있었다며.”

“아, 그거요. 앞으로······ 2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아, 빠듯하구만. 앞으로 2년 안에 만화가로 데뷔해 자리까지 잡으려면.”

“그래도 해내야죠. 부모님 뒤를 잇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사원이라고 했지? 집.”

“네. 정토 진종혼 간지파입니다.”

“불교도 파가 많은가보네.”

“네.”

그렇게 말하며 모리타가 쓰게 웃었다.

집에다 대학 보낸 셈 치고 딱 4년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하고 상경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자신은 어떡하든 4년 안에 만화가가 되기 위해 정말 밤낮없이 그림에 매달려 있다.

아니 정확히는 3년 안에 만화가가 되고 4년째가 되는 해엔 부자가 될 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그런 과정에 있고,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화실에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막내 어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오더니 모리타를 불렀다.

“모리타 씨 앞으로 소포가 왔어요.”

“나한테 소포?”

“네. 직접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서랍 속에 있는 도장을 꺼내들고는 문 쪽으로 갔다.

“여기 도장 부탁드립니다.”

“아, 네.”

도장을 찍은 뒤 소포를 받고는 자리로 돌아와 보낸 사람을 확인했다.

그때 만화가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이거 말이 씨가 된 거 아니야? 저번처럼 자네 부모님이 보낸 건가?”

그런데 모리타는 그 질문에 금방대답하지 않고 멍한 모습이 되어있다.

“어? 왜 그래?”

“······.”

“설마, 무슨 폭탄 같은 거야?”

그렇게 말하며 만화가가 웃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리타가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거······, 한국에서 온 건데요.”

“한국? 자네 한국에 아는 사람 있어?”

“아, 아뇨. 그건 아니고······.”

“혹시 북조선 아니야? 진짜 폭탄?”

그렇게 말하며 킥킥거리고 웃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어시들도 같이 덩달아 웃었다.

“그거 들고 나가서 열어. 위험하니까.”

누군가의 농담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리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써니요.”

“뭐라고?”

“써니······, 와 텐겐. 삼······사라의 작가요.”

그 순간 웃음소리가 넘쳐나던 화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삼사라?”

“진짜?!”

“네. 거기서 온 소포에요.”

“장난 아니고, 진짜!”

만화가까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그렇게 대답하며 이미 다 풀어진 소포 속에서 액자하나를 꺼냈다.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들어있네요.”

그 순간 나머지 어시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의 동시라고 할 정도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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