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39화 (239/425)
  • 예상치 못한 리메이크 (4)

    내가 황당한 얼굴로 실버와 선희, 두 사람이 보고 있는 뉴스를 같이 보았다.

    뉴스에선 아나운서가 한참을 떠들다가 미국 특파원을 부르며 화면이 전환되고 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화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올라가는 우주왕복선의 화면을 확대한 영상이 보이고, 이내 불꽃이 번지다 공중으로 폭발. 그리고 두 개의 불기둥으로 갈라지며 하늘에서 기다란 연기구름을 만드는 장면이 보인다.

    [7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28일 상오11시 38분(한국시간 29일 상오 1시 38분) 발사대를 떠난 지 75초 만에 16km 상공에서 공중폭발, 교사출신인 크리스타 매콜리트 여사가 포함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폭발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뉴스는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미국의 대통령 레이건이 ‘개척에 나설 때는 위험이 따른다.’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도 한다.

    나도 과거 미국에서 발사한 우주왕복선의 사고를 들은 기억은 나지만, 이게 실시간으로 전해지니 그 느낌은 차원이 다르다.

    특히나, 지금처럼 최신 정보가 나오는 것이 대부분 방송매체나 신문으로 한정되어 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제야 아까 집을 나설 때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폭발이니 뭐니, 하던 말도 있었던 것 같고.

    아무튼 이 때문에 선희와 실버는 한동안 뉴스에만 빠져 있었다.

    평소 뉴스엔 별로 관심이 없던 선희까지 이렇게 뉴스에 몰두하는 걸 보면 이게 얼마나 큰 충격인지 알만하다.

    그런데 문득 내가 꼬꼬마시절에 있었던 911테러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때 엄마와 아버지가 야밤에 충격 받은 표정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지.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어시들이 하나둘 출근했다.

    당연히 그들은 출근과 동시에 온통 이번 챌린저호 폭발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첫 번째 동양인 출신의 우주인이랑, 여교사인 일반인 최초 우주인이라고 그렇게 기대를 했다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그거 보고 있던 가족이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까 저까지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역시 아직 지구인에게 우주는 쉽지 않은 영역이에요.”

    “그러게요.”

    “이번에 우주선 폭발하는 거 보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나도 언젠가는 우주 가고 싶었는데. 그거 보고 나니까, 겁나서 안 되겠어요.”

    아침부터 화실분위기가 착 가라앉는 것 같다.

    이런 큰 사건이 있으면 아무래도 당연한 일이지만.

    오후에 지로와 통화 했을 때도 이런 분위기는 일본역시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 편집부도 이번 사건 때문에 모두 충격을 받은 분위깁니다. 일본뉴스도 온통 이번 우주왕복선 폭발에 대한 얘기뿐 이구요. 특히나 엘리슨 오니츠카라고,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나도 그건 뉴스에서 들었다.

    나사의 무슨 엔지니어라고 하던데.

    하지만 국제전화로 오랫동안 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금방 그 얘기는 접어두고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었다.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지로에게 들려주자 그가 호기심을 보인다.

    - 한국에서 나왔던 만화를 소설로 새로 만든다는 건 꽤 괜찮아 보이긴 하네요. 거기다 써니 선생님이 직접 표지에다 삽화까지 넣는다면 결과도 좋아 보이고요.

    “하지만 책이 나오기 전까진 결과를 확정하긴 어렵죠. 아무래도 만화책이 아니니까요.”

    - 그건 그렇습니다만. 일단 써니 선생님의 팬이 많으니, 기본적으로 일러스트 때문에 팔리는 양도 적지 않을 겁니다. 이제까지 써니 선생님이 판매한 일러스트들의 성과를 보면 대충 예상이 되니까요.

    그 때문에 나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라이트노벨 같은 소설로 만들자 의견을 냈던 거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지로도 나와 비슷한 의견이다.

    그래도 혹시 미쯔다쇼텐과 소설 계약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뭔가 얘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이 뭔가 더 도울 일이 없는지를 얘기한다.

    - 일단 제가 그쪽 출판사 분들이랑 만나서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는 사람도 조금 있으니까 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주면 저로서도 고맙죠.”

    - 담당인데요, 뭐.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그래도 담당은 잘 만났구나.

    - 아참, 삼사라 원고는 인쇄공장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작가 후기가 빠져있어서.

    그 말에 아차 싶었다.

    요즘 소설에 대한 것 때문에 정신이 좀 없었던 모양이다.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 내일까지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생각하셔서 전화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언제 왔는지 이대봉이 소파에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 눈에 들에 들어온다.

    그런 그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오늘은 너무 놀라서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하다니까. 어휴우~”

    한숨소리가 크게 이어진다.

    이 인간도 미국 소식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네.

    “그래서 온 거야? 위로 받으려고?”

    그런데 내가 툭 던진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대봉의 주둥이가 앞으로 툭 튀어 나온다.

    “너는······ 말을 해도. 이런 날에는 나라도 여기 같이 있어줘야 하잖니.”

    “뭐라는 거야? 방금 본인이 우울하다고 했으면서.”

    그 말에 움찔한다.

    “그야, 그렇지만······. 아무튼 여기 분위기도 안 좋은 건 맞잖아. 그러니까 내가 필요한 거지.”

    그때 가만히 있던 실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입을 열었다.

    “또 시작이구만, 그 억지. 저 녀석은 지가 필요해서 와 놓구선.”

    “억지 아니거든! 그리고 서로 좋으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실버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이번엔 경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경희야. 나도 커피 한잔만 부탁한다.”

    “알았어!”

    “너는 사람이 말하는데, 꼭 그렇게 무시 하냐?”

    “삼삼삼.”

    “OK!"

    “야!”

    며칠 후.

    일본에서 소포가 날아왔다.

    보통 때처럼 지로에게서 온 거다.

    그런데 소포의 내용물은 소설자료들이다.

    그러니까 에이엔샤에서 준비한 자료를 지로가 따로 정리해 보낸 것이다.

    미네 오빠를 따로 만나 이번 소설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고 하더니.

    어쨌거나 이번 소설 판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달라진 설정과 장면들에 대한 것이 잘 정리되어있다.

    특히 서두 부분은 어떻게 써 나갈지 그 느낌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해두어서 대충이나마 소설이 어떨지 감이 잡힌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무거운 진행이지만, 뭐, 이것도 괜찮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몇 군데 체크를 해서 메모를 해 두었다.

    나중에 전화로 전달이라도 해 주려고.

    실제론 그때그때 체크한 것을 글로 알려주면 더 좋은데 그게 좀 아쉽다.

    요즘엔 일본도 슬슬 팩스를 쓰고 있는 분위기라는데, 아직 한국은 그런 통신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다.

    선희는 전상길의 화실에서 얻어온 경영의 신 대본소 단행본들을 보며 전체적인 스토리를 파악한 뒤, 일본에서 보내온 설정을 참고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

    “펜선이 아닌 연필로 마무리하자.”

    “그래도 돼?”

    “그래. 너도 그런 느낌을 좋아하지?”

    “응.”

    “그럼, 그걸로 하자.”

    이제는 선희의 연필데생이 완숙단계에 이르렀다.

    때문에 굳이 연재만화가 아니라면 연필로 마무리하는 게 더 나을 정도다.

    물론 실버 같은 실력자 덕분에 펜선으로도 엄청난 표현이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선희의 느낌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거라면 연필데생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작업한 것은 며칠 후 찾아온 정미자의 담당인 미치코를 통해 전달했다.

    이젠 우리가 할 건 다 한 셈이다.

    이제 결과는 소설가와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에 달렸다.

    그나저나 출판사가 작아서 홍보의 여력도 없는 모양인데······, 뭔가 방법이 없으려나.

    * * *

    어두운 방안.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와 커튼을 확 젖혔다.

    그러자 어두웠던 방안이 밝아지며 잠들어 있던 남자의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진다.

    “이봐, 모리타 일어나.”

    “으음······.”

    모리타라 불린 젊은 남자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킨다.

    “벌써. 점심땐가?”

    “그래. 조금 있으면 선생님 출근하실 거야.”

    “책은 사왔어?”

    “소년 히어로?”

    “그래.”

    “짜식이 점프 쪽에 목표를 세운 녀석이 왜 그렇게 소년 히어로에 목을 매는지 원.”

    “그야······.”

    “알고 있어. 삼사라 때문이라는 건.”

    그렇게 말하며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리타에게 남자가 소년 히어로를 내민다.

    “자. 여기.”

    “땡큐.”

    “땡큐는 무슨. 그거 대충 보고 빨리 씻어. 조금 있다가 근처 라면집에 갈 테니까.”

    “오늘은 라면이야?”

    “그래.”

    “알았어.”

    곧 문이 닫히자 모리타가 아직 덜 깬 눈으로 소년 히어로를 살핀다.

    그리고 평소처럼 가장 먼저 삼사라를 펼쳤다.

    스토리엔 텐겐, 그리고 작화는 써니다.

    물론 이들이 한국인이라는 건 최근에 알려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야 어떻든 그는 여전히 삼사라의 팬이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현재 일본에서 최고인기 만화중 하나인 ‘북두의권’으로 유명한 하라 테츠오의 화실이다.

    모리타는 1984년 플레쉬점프에서 단편 ‘IT 'S LATE’가 데쯔카상 가작에 오른 경력이 있는 제법 실력을 검증받은 만화가 지망생이다.

    현재 그는 이 하라 테츠오의 화실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연마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케카미 료이치(크라잉 프리맨, 셍츄어리) 같은 만화가의 화풍을 완성하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런 그가 최근 인기를 올리고 있는 삼사라라는 만화의 화풍에도 빠져있었다.

    그러다보니 최근엔 삼사라를 빠지지 않고 보게 되었고, 이렇게 책이 나오는 날은 부탁을 해서라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었다.

    “나이도 어리다던데, 그림 실력은 정말 엄청나게 발전하는구나.”

    자신도 이제 20살의 나이.

    이미 고등학교 때 신인상을 받아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써니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자신의 목표도 써니를 따라 잡는 것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현역과 아직 단편밖에 올린 적이 없고, 어시로서 생활하는 자신과는 한참의 차이가 있다.

    한숨이 나올 정도의 차이지만, 어쨌거나 존경하는 만화가다.

    이번 주 연재분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스토리와 그림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만화를 더 보고 잡지를 덮으려다 멈칫했다.

    “아, 후기를 봐야지.”

    작가들이 한마디씩 남기는 후기는 쏠쏠한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정보 같은 것도 있으니 꼭 읽어두는 편이다.

    그런데, 작가들의 후기를 읽다 멈칫했다.

    저번 주까진 후기에 써니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 주엔 텐겐으로 바뀌어 있다.

    “역시 이제까지 후기는 텐겐이 썼던 걸까?”

    스토리를 담당하고 있다면 납득이 되기는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용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뭐? 소설책이 나온다고? 표지와 삽화는 써니가 맡아 그려?”

    그동안 써니의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모으고 있던 그에게는 새로운 희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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