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38화 (238/425)

예상치 못한 리메이크 (3)

화실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미네의 오빠.

아, 그러고 보니 남매니까 둘 다 미네인가?

아무튼 미네 아츠코의 오빠, 미네 코사쿠가 화실로 온 것이다.

전상길을 통해 알아낸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그를 우리 화실로 부른 것이다.

근처 호텔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가 묵고 있던 장소는 여관이었다.

아무래도 경비를 줄이기 위함인 모양이다.

하기야, 미네 말로도 그녀 가족이 운영하는 ‘에이엔샤’는 그리 여유가 없는 곳이었으니.

아무튼 화실에 찾아온 코사쿠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실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나와는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눈 탓에 내가 텐겐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여자들 중에 과연 누가 써니인지 알지 못한 탓에 그의 눈이 바쁘게 사람들을 훑는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구자희에게 머물렀다.

딱히 선생이라고 생각할 만한 특별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 대충 외모를 보고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여성을 찍을 것이리라.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저쪽이 써니에요. 이름은 이선희.”

“······.”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내가 가리키자 순간 멈칫한다.

전혀 예상 밖의 여자애라는 것 때문인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저기, 그러니까, 저기 저 여자아이······. 실례지만 혹시······. 학생······.”

“네.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 올해 3학년으로 올라갑니다. 나이는 일본식으로 17살.”

“······17살이라고요?”

“네.”

“그런······, 아.”

그렇게 말했다가 스스로도 무례라고 생각했는지 머리를 푹 숙이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어리셔서 제가 무례를 했습니다.”

“······.”

하지만 선희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더 당황하는 눈치다.

“괜찮답니다. 신경 쓰지 말래요.”

“난 별말 안했는데······.”

“그런 뜻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며 코사쿠에게 목례를 슬쩍 하고는 다시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순간 한국말로 대화를 나눈 탓에 그가 우리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역시 제가 무례를.”

“괜찮답니다.”

“분위기는 아닌 것······.”

“괜찮은 것 맞는데.”

선희가 일본어로 중얼거리듯 다시 움찔하더니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쉰다.

“아, 감사합니다.”

“여기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그가 소파에 앉으며 선희 쪽을 다시 한 번 힐끔거리더니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역시 두 분은 일본어에 능통하시네요.”

“아무래도 일본에서 활동하려면 그게 편하니까요.”

“아.”

그때 2층에 있던 경희가 언제 왔는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 오빠, 그분은 누구셔?”

“어. 어제 얘기했던 그분.”

“아.”

그렇게 말하더니 경희가 코사쿠에게 넙죽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

순간 코사쿠는 놀란 눈으로 멍하게 있다가 다시 작업 중이던 선희 쪽을 돌아본다. 그리고는 다시 경희를 바라본다.

“선희랑은 쌍둥이에요.”

“아, 쌍둥이요.”

머리 스타일까지 완전히 똑같아서 구분이 힘들 정도라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그리고는 곧 표정관리를 하더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엔샤의 미네 코사쿠라고 합니다.”

“네. 전 이경희입니다.”

그렇게 웃으며 말하고는 코사쿠에게 물었다.

“오빠, 커피 가져올까?”

“어. 그래.”

“커피 어떻게 드실래요? 삼삼삼?”

“네?”

경희의 질문에 코사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몇 스푼씩 넣어요? 커피, 프림, 설탕.”

그제야 알아들은 코사쿠가 ‘아’ 하고 중얼거리더니 바로 대답했다.

“커피만 세 스푼으로 해주세요.”

“네? 커피 만요?”

“네.”

“어? 그럼 엄청 쓸 텐데.”

“괜찮아요. 전 블랙으로 마시니까.”

“······아, 네.”

경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엌으로 간다.

하긴, 프림이나 설탕을 적게 넣는 경우는 있었어도 아예 넣지 않는 건 처음일 테니, 저런 반응도 이해는 된다.

저것도 나름 컬쳐쇼크려나?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데 그런 날 보는 코사쿠의 표정이 묘하다.

왜 날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왜 그래요?”

내 질문에 코사쿠가 움찔 하더니 곧 어색하게 웃었다.

“의외라서요.”

“뭐가요?”

“삼사라라는 작품을 만드는 분들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너무나 평범해서······.”

“아.”

“써니 선생님은 고등학생, 스토리를 쓰신 텐겐 선생님도 아직 많이 젊으시고 쌍둥이라는 것도 특별하긴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평범함이라는 건, 삼사라라는 작품으로 예상한 느낌과 상당히 달라서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렇게 한참동안 덕담을 나누고는 그와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평발 스트라이커는 파시엔시아라는 만화도 있었으니까 납득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경영의 신, 같은 경우엔 좀 의외였습니다. 상당히 재미가 있기도 했고, 일본인인 제가 봐도 익숙한 느낌이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네.”

하기야, 원래 ‘멋진 남자 김태랑’을 참고해서 만든 작품이니 어쩌면 일본인에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태랑이 연재를 시작하는 건 앞으로 8년 정도 후의 일이니, 경영의 신은 제법 신박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이거 혹시 김태랑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나온다고 하더라도 다른 내용이 될지도 모르고.

에이 모르겠다.

그런 모든 변수까지 생각하면서 사는 건 관두기로 했으니까.

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코사쿠의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삼사라의 작가님이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재미의 포인트도 상당히 많고. 대사도 인상 깊은 게 많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작품에 대한 칭찬을 하다가 대충 대화가 무르익어가자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신 이유가······?”

“미네 씨. 아니, 여동생 분과 통화를 했거든요.”

“아······.”

그가 살짝 커진 눈으로 날 본다.

“알고 계셨습니까?”

남매끼리 서로 연락은 못한 모양이다.

요즘처럼 휴대폰이 흔한 시절이 아니라서 그런 모양이다.

“면목이 없군요.”

“아뇨. 실은 에이엔샤가 어떤 출판사인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가 그때서야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렇군요.”

상당히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계약 건은······?”

“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에이엔샤와 계약은 하고 싶네요. 물론 마지막 결정권은 전 선생님이 가지고 있지만.”

그제야 다시 표정이 밝아진다.

단순히 밝아진다는 느낌보다는 더 요란한 느낌이긴 하지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의견을 말해도 될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1인칭 구어체로 소설을 전개했으면 하고요. 거기다 삽화를 넣었으면 하는데······.”

“1인칭 구어체, 삽화······.”

“네. 표지도 우리 쪽에서 직접 작업하고요.”

바로 라이트노벨로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의견이었다.

물론 아직은 라이트노벨이라는 용어가 있던 시절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라이트노벨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미래에도 불분명하긴 하지만.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코사쿠는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곧장 내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안 그래도 개인적으로 걱정을 좀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이고, 두 분 이름이 알려졌다고는 해도 과연 일반 소설로 옮겨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방식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소설화 시킨 경우도 있으니, 괜찮을 것 같고요. 거기다 1인칭라면 몰입감도 좋으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역시 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 라이트노벨의 강점이라면 삽화, 즉 일러스트에가 가벼운 문체의 글이니까.

특히나 일러스트의 경우엔 판매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물론 이 시절에도 비슷한 소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히무로 사에코의 소녀소설 같은 것도 있었고, 아라이 모토코의 SF소설도 비슷한 경우다.

“문체는 되도록 쉽고 가볍게 해서 대중적일수록 좋을 것 같고요.”

내 말에 코사쿠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네. 제 생각도 선생님과 같습니다.”

“일단 경영의 신부터 작업한 뒤 결과를 보고 다음 작품을 하는 것으로 하죠. 물론 전 선생님이 사인을 하시고 나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그가 돌아가자, 곧 전상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상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나자 이렇게 물었다.

- 그럼 사인만 하면 되는 거야?

“네.”

- 그런데 말이야. 자네들 쪽에서 표지에다 삽화까지 넣으면 내가 미안하잖아. 그래서 그 부분은 비율을 좀 조정하도록 하자. 내가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그렇게 거저먹을 수는 없지.

“아뇨. 그 부분은 어차피 계약이니까.”

-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내가 더 양보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해보자.

이 양반은 역시 보통이 아니다.

결코 눈앞의 이익에 얽매이지 않는 걸 보면, 나중에 크게 성공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따로 얘기하도록 하죠.”

- 그래.

그리고 다음날 경영의 신을 먼저 계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

며칠 후.

선희는 경영의 신 컬러표지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근 파시엔시아를 쉬는 동안 컬러 공부를 위해 각종 일본 책자를 구입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물감과 마카를 사용하는 방법에 빠져 지냈다.

아직은 조금 서투르긴 하지만, 앞으로는 표지도 직접 하고 싶다는 욕심이 많아서 여러 방식의 컬러를 공부중인데, 당장은 마카 사용이 능숙해지는 모습이다.

깊이는 좀 떨어지지만 깔끔한 느낌 때문에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새롭게 그려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왜?”

“더 잘 그릴 수 있어.”

“벌써 10장도 넘게 그렸잖아.”

“조금 더 그려보고 싶어. 괜찮지?”

“네가 그리고 싶다면 그려야지. 그래도 좀 적당히 해라.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알았어.”

선희는 그렇게 밤까지 그리고도 모자라 다음날 아침 일찍 화실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가 혀를 찼다.

“쟤 또 제대로 빠졌나보다.”

“누가 말려.”

경희도 엄마의 말에 동조한다.

아침 일찍 혼자 보내기 그래서 나도 아침을 일찍 먹고 화실로 일찍 집을 나서는데, 어째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동네 어르신들이 슈퍼 앞 평상에 모여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평소에도 저런 모습은 흔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뭔 일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화실에 들어갔더니, 이미 실버의 신발도 보인다.

“일찍 왔네? 어?”

그런데 화실에는 없다.

선희도 없다.

두 사람 다 어디 갔나?

그런데 그때 옆방에서 TV소리가 들린다.

아, 저기 있는 모양이네.

아침부터 뭘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지?

방문을 열자 TV를 정신없이 보는 실버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실버의 곁엔 선희도 있다.

“좋은 아침. 오늘은 일찍 왔네.”

“······.”

그런데 실버는 내 인사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선희도 TV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일단 소리로 봐서는 뉴스인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실버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보는데?”

“오늘 새벽에······, 미국 나사에서 발사한 우주왕복선이 폭발했다.”

“뭐?”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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