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37화 (237/425)
  • 예상치 못한 리메이크 (2)

    황당하다.

    갑자기 일본출판사에서 왜?

    그보다 어떻게?

    선희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밝힌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작업했던 것까지 알아낸 거지?

    이 시절은 이렇게 정보력이 빠를 리 없는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해 있는 와중에도 전상길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대봉이한테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너희들 한국인이라고 일본에 밝혔다고.”

    “그렇긴 해도 특별히 우리에 대해 자세하게 밝히지는 않았는데요.”

    “그랬어? 그 양반 다 알고 온 것 같던데.”

    “그래요?”

    “어.”

    자신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났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 일본출판사 이름이 뭐더라······? 잠시만.”

    그렇게 말하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그리고는 곧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서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그걸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내밀었다.

    “내가 일본글자는 잘 몰라서. 그때 같이 온 통역하는 사람이 에······ 뭐라고 하던 것 같았는데.”

    “······?”

    전상길이 내민 건 명함이었다.

    [에이엔샤(永遠社)]

    에이엔샤? 처음 듣는 출판사다.

    하기야, 만화와 관련된 일본출판사가 어디 한두 개라야지.

    어쨌건 내가 모른다는 건 그리 알려진 곳은 아니라는 건데.

    “그거에서 출판하는 만화 잡지는 뭐가 있다고 하던가요?”

    “만화? 문학책 전문 출판사라고 하던데.”

    “문학책요? 만화는 없고요?”

    “만화책은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째서?”

    내 질문에 멀뚱거리며 날 보던 전상길이 갑자기 ‘아’ 하며 자신의 이마를 탁 친다.

    “내가 제대로 설명을 안했구나. 만화가 아니고 소설로 만들고 싶다던데.”

    “네? 소설이요?”

    소설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만화를 소설로 만들어?

    “그래. 경영의 신과 평발 스트라이커를 소설로 만들고 싶다더라. 그 사람 말로는 현지화를 위해서 한국인은 일본인으로 바꾼다고 하던데. 그거야 뭐 걔네들이 결정할 문제니까.”

    “현지화······.”

    지금 이 시대엔 한국에 나오던 일본의 해적만화도 현지화는 거치고 있었다.

    일단 일본이라면 거부감이 굉장히 강한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

    덕분에 일본애니의 경우엔 한국인들도 국산애니로 착각한 경우가 흔했으니까.

    그 때문에 한일전의 응원에서 흑역사를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런 건 접어두고서라도 소설이라니, 이건 좀 의외다.

    “네 생각은 어때? 해도 괜찮겠냐?”

    “작품에 대한 권리는 어차피 선생님한테 계신데요. 선생님이 결정하시면 되죠.”

    “너도 그 뭐냐, 2차 판권인가 뭔가 그거 너에게도 어느 정도 있잖아.”

    “그야 그렇죠. 하지만, 결정은 선생님이 하시는 거죠. 전에 문구 때처럼.”

    문구 쪽은 아직도 돈이 들어오고 있다. 잘 확인은 안하고 있지만, 잊을 만하면 박상식이 현금을 받아오곤 했으니까.

    “그건 그런데, 뭐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지.”

    하긴, 한국이라면 모를까. 일본에 대한 건 거의 까막눈일 테니.

    나도 별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작업 중이던 실버가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아카기 씨나 카와다 씨한테 한번 물어보면 되잖아.”

    “소년 히어로 쪽이랑은 관계없는 작품인데. 거기다 만화 쪽도 아니라고 하잖아.”

    “그래도 너보다야 많이 알겠지.”

    “흐음.”

    턱을 긁적이며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바쁜 그들에게 폐를 끼치는 기분이라서 별로다.

    “일단 그 부분은 좀 고민해 볼게요.”

    내 말에 전상길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무작정 OK사인을 하는 것도 그래서 일단 미뤄뒀다. 급한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 확실히 그 판권이라는 거 무시 못 하겠다. 이제 슬슬 인기도 식어가는 작품들인데 이렇게 다시 판로가 열리는 걸 보면 말이야.”

    “그러게요. 저도 소설 쪽은 생각도 못했는데.”

    저녁이 되고 모두 퇴근한 후 집으로 온 나는 한참동안 고민에 빠져있었다.

    어떻게 그 두 작품이 나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하지만 이건 아무로 혼자 궁리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있어 지갑을 뒤적거리다 명함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오빠, 할매 떡볶이 사왔어. 먹어!”

    경희가 소리치자 전화기를 든 채로 대답했다.

    “일본에 전화 걸고 나서 먹을게.”

    “다 먹어버려도 모른다.”

    “남겨 놔!”

    * * *

    “퇴근 안 해?”

    남자 직원의 말에 한쪽 구석자리에 있던 여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기사 정리 하구요.”

    “몸 생각하면서 해. 그럼 나 먼저 퇴근한다.”

    “네.”

    그렇게 대답하고 계속 원고를 쓰느라 바쁘다.

    낮에 썼던 기사 원고는 편집장에게 반려되었다.

    ‘자네답지 않게 왜 이렇게 내용이 밋밋해! 다시 해봐!’

    그것을 떠올린 여자가 글을 쓰다가 멈칫하며 턱을 긁적였다.

    편집장이 유독 자신에게만 깐깐한 것 같아서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가장 인정해주니 화가 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귀찮기는 하다.

    “끄응, 여기서 뭘 더 대단하게 쓰라는 건지······.”

    그렇게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다 하는 수 없다는 듯 다시 글을 쓰려고 할 때였다.

    전화기가 울린다.

    늦은 시간이긴 해도 전화가 울리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혹시 좋은 정보를 물어주는 이들에게서 걸려오는 일이 많았으니까.

    “나도 호출기나 하나 장만해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네. 미네입니다.”

    - 아, 아직 퇴근 안하셨네요. 미네 씨. 저 윤환입니다. 이윤환.

    전화를 받은 이네 아츠코가 깜짝 놀랐다.

    “아, 삼사라?!”

    - 네?

    “아, 아뇨.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미네가 당황하며 서둘러 얼버무린다.

    “그런데 어쩐 일로······?”

    - 아, 네. 에이엔샤라는 회사 말인데요.

    그 말에 미네의 눈이 커졌다.

    ‘그 바보가 쓸데없는 말을 한 건가?’하며 중얼거렸다.

    -네?

    “아, 아니에요. 저기 꼭 그 회사랑 계약하실 필요는 없어요. 지인이 하도 부탁을 해서 술김에 그냥.”

    - 네? 그 출판사, 그 쪽이랑 아는 사람이 일하는 곳이었어요?

    “······.”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 게 아닌 모양이다.

    그 순간 미네는 수화기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너무 앞서간 자신을 탓하며.

    - 어? 갑자기 잡음이······.

    머리를 두드리는 바람에 그걸 잡음으로 여긴 모양이다.

    “아, 죄송해요. 저 때문이에요. 잡음도, 그리고 그 출판사도.”

    그 말에 저쪽에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그랬군요. 어쩐지 이상하게 출판사가 빨리 접근했다싶었어요. 역시 미네 씨가 범인이었군.

    “······네에. 죄송합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다른 곳이랑 계약하셔도······.”

    - 아니, 괜찮아요. 그보다 에이엔샤는 괜찮은 곳입니까?

    “네?”

    - 돈을 떼먹는다거나, 뒤통수를 치는 곳은 아닌가요?

    그 말에 미네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그런 일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어요. 규모는 작지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분명 양심적인 출판사에요. 워낙 돈을 쥐꼬리만큼 벌어서 그렇지.”

    - 쥐꼬리요?

    “아, 죄송해요. 쓸데없는 말을.”

    감정이 앞선 자신을 속으로 원망했다.

    - 아뇨. 그리고 규모는 상관없어요. 속이지만 않는다면.

    “혹시······, 정말로 에이엔샤랑 계약을······.”

    - 미네 씨가 괜찮은 회사라고 하니까, 한번 믿어볼까 싶기도 하고. 물론, 결정권이 제게 있는 건 아니지만요.

    이윤환의 말에 미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정말요?”

    - 네······. 그런데 과하게 반응하시네. 관계가 특별하신가 보구나.

    “아, 그게······, 실은 제 아버지랑 오빠가 운영 중인 출판사라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 대답하긴 했지만, 역시 거북한 느낌이다.

    실은 얼마 전 집을 오랜만에 찾아 갔었다. 그런데 가족들과 술을 마시다 출판사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를 듣고 싸움이 생긴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적자만 쌓이는 출판사 따위 그만두라니까.]

    그녀의 말에 아버지는 별다른 말없이 연거푸 맥주만 들이켰다. 그러자 엄마가 상심한 얼굴로 그녀를 말렸다.

    [넌 오랜만에 찾아와서 또 그러니?]

    [그렇잖아. 팔리지도 않는 책에만 매달리는 거. 그나마 제법 재능 있다는 작가는 다른 출판사로 다 떠나버리고. 직원이라고 해봐야 이젠 아빠랑 엄마, 그리고 오빠뿐이니까]

    [미안하구나. 할 말이 없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그녀도 더 이상은 말하기 어려웠다.

    좁아진 아버지 어깨를 보니 더 속상하기만 하고.

    아버지를 닮은 오빠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가 오빠에게 말했다.

    [삼사라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게 밝혀졌어.]

    그 말에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의 오빠가 쳐다보았다.

    그도 삼사라를 꽤나 좋아하고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으니 특별한 소식은 아니지만, 갑자기 여동생이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거 원래 내가 조사하던 거였어. 그리고 그 작가 직접 만나기도 했었고.]

    [······정말이야?]

    하지만 부모님은 도대체 삼사라 뭔지, 그리고 그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 그저 남매의 대화를 보고만 있었다.

    [그동안 조사한 게 좀 있는데, 이전에 한국에서 만화를 몇 작품 했던 모양이야.]

    그 순간 그녀의 오빠가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

    [그럼······?]

    [맞아.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도 있었던 모양이던데. 하나는 축구, 하나는 경영만화]

    [정말이야?]

    [응. 그런데 그 사람 작품 소설로 만들면 어때? 괜찮을까?]

    [당연하지. 그 사람이 만든 거라면 재미있을 거야. 캐릭터도 살아있고, 이야기도 좋고.]

    그녀의 오빠가 흥분한 채로 말한다.

    [그러니까 오빠가 그 작품의 판권에 접근해봐. 그나저나 괜찮게 글 쓰는 사람은 있어?]

    [있어.]

    [한국어 번역인데, 괜찮겠어?]

    [한국어 잘하는 친구가 있거든. 만화는 그 친구에게 맡기면 돼.]

    [그럼, 내가 찾아낸 정보를 줄 테니까, 아빠랑 오빠가 알아서 해.]

    [고맙다. 아츠코.]

    미네가 그 때를 떠올리고 있을 때 전화기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그랬군요. 가족이 운영한다면 뭐. 확실히 믿을 만은 하겠고.

    “그러니까 큰 출판사와 계약하셔도 괜······.”

    - 아뇨. 가족이라면 더 믿을 수 있지. 어쨌거나 찾아왔던 분이랑 제가 만나보고 결정하죠. 그런데 찾아오신 분은······?

    “······오, 오빠에요.”

    - 알겠어요.

    미네가 황당해하며 멈칫하는 동안 전화 속에서는 계속 음성이 들려왔다.

    - 전 선생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으니까, 아마 계약은 될 거라 생각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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