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35화 (235/425)

팬들을 무시하지 마 (6)

“그나저나 한국인이라는 게 밝혀진 게 불과 며칠 전인데 한국에 많이 팔린다는 게 이해가 되는 일인가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의외이긴 하다.

테고시의 말대로 써니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건 며칠 전의 일.

그러니까 한국에 벌써 알려질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대만에서의 붐은 도대체 뭐라는 말인가?

아니, 생각해보면 대만은 일본 만화책이 정발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의외인건 오히려 한국이다.

키도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럼, 그냥 유행 같은 건가?”

“그럴 겁니다. 일본에서도 굉장히 많은 마니아가 형성된 만화니까요. 한국이나 대만도 상황은 비슷할 겁니다.”

“한국은 해적판이 판치는 곳 아닌가?”

“저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아직 일본문화를 막고 있으니까요.”

“그럼 해적판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인쇄상태가 엉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좋은 질의 단행본을 구매하고자 하는 독자층이 형성되었다고 봐야죠.”

“일본어를 몰라도 말인가?”

“네.”

하긴, 일본에서도 원어로 된 프랑스나 미국의 만화들을 구입하는 경우도 흔하니 특별한 일은 아닌 것이다.

아무튼 사정을 대충 이해한 키도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턱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역시 삼사라는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판매량이 늘어나다니.”

“그러게요. 엄청 부럽습니다. 특히 해외 판매 같은 경우는.”

“대량으로 파는 건 라이선스가 최고야. 그렇게 보따리 장사들 만으로는 크게 판매부수가 늘기는 어렵지.”

“그런 것치고는 그래도 판매량이 많다고 하던데요.”

“그럼 부러운 거고.”

그 말에 테고시가 살짝 웃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나 일등 했지?”

“네?”

“일등······.”

“·······.”

고개를 갸웃 거리던 테고시가 곧 화들짝 놀라더니 갑자기 요란하게 박수를 짝짝 거린다.

“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엎드려 절 받기 같은데.”

“······아하하, 그, 그럴 리가요.”

“······.”

“아, 아닙니다. 절대로.”

* * *

지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팬들 사이에선 별로 변화가 없어요? 진짜로요?”

- 네. 그렇습니다. 오히려 일부는 그런 낌새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까지 하더라구요.

이게 무슨 소리야?

낌새라니.

“그럼 예전부터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 네. 그런 모양입니다. 이전부터 한국인이라는 소문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대부분 팬들은 그 소문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요.

“아.”

그렇다면 대다수가 일종의 음모론 같은 이야기로 치부했던 건가?

그래도 일찍부터 팬들 중에는 한국인으로 의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의외였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의외의 능력자들도 있는 모양이다.

- 만화 속에서 몇 군데 부분에서 일본인이 아닌 것 같았다는 말도 하더군요. 뭐, 가령 들어 도시 장면에서 초반에 등장했던 장면이긴 합니다만, 차가 달리는 방향이 오른쪽으로 되어 있었다던가······, 뭐 그런 장면들 같은 겁니다. 대부분은 단순한 실수정도로 느꼈던 모양이었지만요. 저 같은 경우엔 솔직히 포착하지 못한 장면입니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사소한 장면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아······.”

스토리에 집중하느라 디테일을 많이 놓쳤던 초반부의 이야기다.

솔직히 초반엔 선희도 그렇고 나도 많이 부족했었으니까. 덕분에 원고에도 몇 가지 에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은 제대로 검토해보지 않은 내 탓이다.

선희의 경우엔 거의 시킨 대로 그렸을 뿐이니까.

- 어쨌건 그런 소문이 일찍부터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사실 따위엔 관심이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팬들은 대부분 며칠 지나고 부터는 별일 아니라는 반응입니다.

그건 다행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다.

“하지만, 편집부엔 여전히 전화가 많이 온다면서요.”

- 그렇습니다. 요즘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항의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거기다 이번 앙케이트 결과도 좋지 못했고요.

“그런데, 정작 팬들에겐 변화가 적다, 뭐 그런 겁니까?”

- 대부분이 그런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지만, 제가 만나는 팬들은 대부분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럼? 항의전화가 계속 온다는 건 뭐지?

순위가 떨어진 것은 또 뭐고.

그런데 지로는 내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 역시 항의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잡지구독자들 중심, 그러니까 삼사라만의 팬들은 아니라는 거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입 밖으로 떠들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삼사라의 팬이 아닐지 모른다는 거죠. 어쩌면 타 잡지, 경쟁만화들의 팬일 수도 있구요. 소문이긴 한데, 그들 사이에 만화가들도 끼어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물론, 정확한 건 아니겠지만.

길게 얘기는 하지만, 결국 저 말은 지로의 뇌피셜이라는 거군.

신뢰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날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한편으로는 고맙긴 하다.

“그런 소문이야 어디서건 있는 거니까요.”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최근 각 잡지들에서 삼사라, 써니 선생님 응원 글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오히려 반전된 기분도 들고요. 일반구독자들 사이에선 솔직히 반감이 아직은 많은 것 같습니다만 열성팬들 사이에선 오히려 더 인기가 올라가는 분위기고요. 예전의 조사에서도 인지도에 비해 삼사라가 책이 덜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좋은 결과 때문인지 지로는 연신 흥분한 채 말이 많다.

어쨌거나 신기한 일이다.

얼마 전에도 단행본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엔 팬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니.

역시 삼사라는 마니악 한 만화인건가?

- 아무튼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지로와 통화를 끝내고 나자 실버가 무심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오히려 전화위복인건가?”

“아마도 그런 모양이야. 한국인이라는 걸 밝히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솔직히 걱정은 많이 했는데.”

내 말에 실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그럼 진짜로 무너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여?”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서 쎄게 나간다고 생각했더니······. 나 참. 어이가 없구만.”

실버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운은 좋았군.”

“그러게.”

“······.”

다시 한 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실버가 ‘아.’ 하고 말했다.

뭔가가 생각이 난 모양이다.

“어제 이태원에 갔었는데 말이야.”

“응? 이태원? 갑자기 거긴 왜?”

“왜긴, 평소처럼 일본책을 구하려고 갔었지.”

“부탁할 거 있으면 아카기 씨에게 말하면 되지. 일부러 이태원에는 왜가? 가봐야 종류도 얼마 안 될 텐데.”

“내가 부탁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하긴. 그런데 갑자기 책 이야기는 뭔데?”

내 질문에 실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내가 말을 끊어서 저런 표정을 짓는 모양이다.

아무튼 실버가 잠시 나를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자주 가던 외국서적 판매가게에서 재미난 걸 봤어.”

“재미난 거? 그게 뭔데?”

“거기에 삼사라 단행본들이 잔뜩 깔려 있더라고. 같은 책이 여러 권.”

“진짜? 갑자기 왜?”

“거기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최근 주문을 엄청 받았다는 모양이야. 그래서 이참에 좀 더 들여놨다더라.”

거기서 만화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만화 쪽에서 일하고 있거나, 혹은 그쪽 방면으로 목표를 가진 이들이다.

내가 살던 시절이야 대부분 이북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걸로 일본만화를 많이 접했다. 하지만, 이 시절엔 외국서적 전문서점이 아니면 구입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같은 만화를 여러 질을 들이는 건 극히 드문 경우다.

그런데 삼사라가 많이 있다니, 이건 좀 의외다.

“모르겠어?”

“뭘?”

“그러니까, 한국 만화 쪽 사람들의 그림 공부 필독서가 됐다는 말이야. 실제로 거기 사장도 만화가 화실 쪽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더라고.”

“······.”

그 순간 선희가 처음 내게 본격적으로 만화를 교육받던 시절, 오토모 선생의 아키라와 동몽을 구입해 교재처럼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몇 년 뒤면 아키라의 해적만화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판매가 되고, 그 이후로 고가의 일본 단행본이 한국에 대규모로 넘어와 많은 작가들의 교과서처럼 사용되게 된다.

그게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걸쳐 진행되게 되는데.

결국 그 일이 있기 전에 그 자리를 삼사라가 차지하게 된다는 거다.

이젠 한국만화계에도 슬슬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는 건데······.

뭔가 한시대의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 * *

며칠 후.

소년 히어로 편집부.

누군가 소리쳤다.

“앙케이트요! 앙케이트!”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직원들이 몰려갔다.

“어디 줘봐!”

“나도!”

“여기 있어요.”

종이들을 나눠주자 직원들이 잽싼 동작으로 A4용지를 받아 순위를 확인했다.

이번엔 삼사라가 얼마나 추락했을지 궁금했던 탓이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뭐야? 4위?”

“그러게, 오히려 순위가 올라갔잖아!”

“어디 봐봐. 정말이네? 어째서 3단계나 올라간 거야? 전보다 줄기는 했어도 항의 전화는 여전한데 말이지.”

“엽서에도 항의 글은 여전해요.”

“그런데도 순위가 올랐다는 거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미스터리네요.”

“카운팅을 잘못 한 거 아니야?”

“그럴리가요. 이번 건 특히나 신중했는데.”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무슨 일이지?”

그때 지로가 편집부내로 들어온다.

앙케이트를 나눠주던 직원이 서둘러 지로에게 다가갔다.

“아카기 씨. 이거 앙케이트요.”

“아, 고맙습니다.”

지로가 앙케이트를 확인하더니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곧장 자리로 가서 원고들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어? 뭐야? 순위가 올랐는데, 표정변화가 없네? 아카기 씨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그 말에 종이를 나눠주던 직원이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이거 방금 최종 순위가 결정된 거예요. 미리 알고 있었을 리 없어요.”

“그럼 왜 저렇게 태연해?”

“글쎄요? 그냥 관심이 없는 건가?”

“하기야, 요즘 단행본이 더 팔린다고 하니, 이딴 앙케이트엔 관심이 없다는 거겠지.”

그때 신입 중 한명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앙케이트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니에요?”

“중요하지. 하지만 단행본이 잘 팔리는 만화가라면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순위야. 거기다가 지금 독보적인 판매량을 올리는 삼사라라면 더욱더 그런 거고.”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머리를 끄덕인다.

“그렇겠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랑은 같은 세계의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아.”

그때 몰려있던 직원들을 보며 팀장 중 한명이 혀를 찼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바쁜 시간에 떠들고 있어?”

그 말에 모여 있던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자 팀장이 인상을 팍 썼다.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돕는 게 자네들 일이잖아. 얼른 움직여!”

그러자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그곳에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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