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29화 (229/425)

주간 루머 (5)

그런데 박유찬은 날 보자마자 실실 웃었다가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미네를 보고는 살짝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미네를 향해 턱짓하며 누구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저 인간이 왜 저래?

그때 미네가 내게 물었다.

“누구에요?”

그녀가 일본말로 묻자 박유찬이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다가와서는 내 곁에 덥석 앉았다.

“매제, 일본여자랑 사겨?”

“뭐라는 거야? 사귀긴 누가 사겨?”

이번엔 분식집 할머니까지 나섰다.

“매제라니 이 총각이 손주사위 매제야?”

“아, 네. 할매. 이 놈, 제 사촌 여동생 남자친구······.”

“적당히 좀 해. 준희랑 아무 사이도 아니구만.”

“에헤이, 난 다 안다니까.”

“알긴 뭘 안다고 그래? 만날 때 마다 헛소리를 하는 주제에.”

하지만 박유찬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지 또 딴소리다.

“그래, 뭐. 이해는 해. 매제 같은 남자라면 여자가 꼬이는 것도 이해를 하니까. 나도 매제가 일본 쪽 일을 하는 것도 알고 있으니, 이런 인연도 생기겠지.”

“아니라니까. 사람 말 좀 들어, 인간아!”

이 인간 머리를 확 다 뽑아버릴까?

“오늘 일은 준희에게 말 안할 테니까.”

“아, 진짜! 쫌!”

순간적을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건 박유찬과 더불어 할머니까지 겨우 이해를 시키고 나서야 분식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떡볶이, 그리고 서비스로 받은 찐빵 몇 개를 들고 미네가 함께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의심을 풀지 않았는지, 가게 문을 빠끔히 열고 보는 박유찬의 시선에 한숨이 나온다.

그나저나 저 인간 여자 친구가 이 근처에 산다고 하더니, 분식집 할머니의 손녀였을 줄이야.

어쨌거나 저 분식집에는 더 이상 가면 안 될 것 같다.

“번역 담당이시죠?”

미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랐다.

“네?”

“제임스 작가의 스토리를 번역하는 일을 담당하시는 거 맞죠?”

“아, 뭐.”

번역 담당은 아니지만, 번역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니까, 반쯤은 맞는 말일지도.

“원래는 이곳에 좀 더 머물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바꿨어요.”

“네? 왜요?”

“그쪽이랑······, 근데 당신 이름이 뭐죠? 전 명함까지 줬는데, 이름을 못 들은 것 같아서.”

“이윤환이요.”

“이······ 유난? 그럼, 이 상으로 불러야 하나요?”

이 상이라면, 우리식으로 이 씨가 된다.

어이 이씨!

생각만 해도 이거 너무 아재 같아서 영.

“그냥 윤환이라고 불러요.”

“그럼, 유난 씨(상)라고 부를게요.”

“그러든가.”

“아무튼 지금은 일단 물러서려고요. 준비나 조사도 좀 더 해야 할 것 같고, 하던 일도 마냥 미룰 수는 없겠다싶기도 하고.”

“하던 일이라는 거, 혹시 아까 말했던 그 전무라는 양반의······.”

“네. 맞아요. 신인 여가수와의 스캔들. 그거부터 일단 터뜨리고 조금 더 자금을 모아야 할 것 같아서. 마무리하면 보너스도 좀 나올 것 같으니까.”

이 여자가 진짜.

자금까지 모아서 철저하게 죽이겠다는 거냐?

“나 참, 잔인하네.”

“네?”

한국말로 중얼거렸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아니, 뭐.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요.”

내 말에 그녀가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 놀리는 말이구나.”

“놀리는 건 아니고.”

“아무튼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파보려고요.”

열심히 파지마, 그냥 대충 대충 하라고.

“걱정하지 마요. 중원요리왕에는 피해가 안 갈 테니까.”

젠장, 내가 중원요리왕까지 신경 쓸 여력이 어디 있냐.

“일단 이번 기사 마무리 하고 다시 기회 봐서 올 테니까, 그때 다시 보죠.”

내가 당신을 또 왜 봐?

“물론, 제가 불편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같은 한국인이니까.”

그냥 같은 한국인 정도가 아니라고.

“그리고 다음번에 다시 만날 땐 유난 씨 도움을 좀 받아도 되겠죠?”

“글쎄요. 전 바쁠 것 같은데.”

“그럼, 그때 부탁할게요. 사례는 충분히 할 테니까.”

“······.”

전혀 내 말을 들어먹지 않는구만.

짜증이 막 밀려온다.

*

이대봉이 떡볶이를 맛나게 먹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더니 버럭 소리쳤다.

“뭐? 기자를 또 만나?!”

“앗, 튀잖아!”

엄청나게 쏟아진 파편에 인상을 와락 썼다.

“어디서 만났는데? 가다가? 아니면 오다가?”

이대봉을 찌푸린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휴지로 대충 닦으며 말했다.

“떡볶이 사러갔더니 분식집에 있더라.”

이번엔 경희가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뭐야? 그럼 잠복하고 있었던 거야?”

“넌, 많이 먹지 않았냐?”

“선희 때문에 별로 못 먹었어.”

“애초에 많이 만들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선희가 많이 먹었다고.”

그러자 이번엔 선희도 대화에 끼어든다.

“너랑 별로 차이 안 나는데.”

“아니거든. 네가 훠얼씬, 많이 먹었거든.”

“아닌데.”

“맞는데.”

“아닌데.”

“맞거든요.”

쌍둥이들을 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말했다.

“잠복은 아니지. 우리가 무슨 엄청 큰 죄를 지은 범죄자도 아니고. 거기다 그 여자가 무슨 수사관도 아니잖아.”

“뭐래?”

“아직은 완벽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더라. 일단 일본으로 돌아간다고는 하더라만.”

그렇게 말 하고는 미네와 했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실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면, 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군.”

그렇게 말하며 슬쩍 이대봉을 곁눈질했다. 그러자 이대봉이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헝클어뜨리며 울상이 된다.

“미안해. 나 때문에!”

“형이 미안할 일은 아니야. 어차피 이런 일이 언젠가는 생길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물론 생각보다 조금 일찍 그 시기가 찾아온 것 뿐.”

“그래도 힘들게 쌓은 명성인데.”

“뭘, 그렇게 걱정해? 아직 일이 터진 것도 아니고, 물론 터졌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지만.”

“이젠 어떻게 되는 거야?”

이번엔 경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 우리는 그저 평소처럼 만화를 만들면 되는 거고.”

솔직히 나도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인기도 내 예상보다 더 크게 터졌지만, 또 그만큼 빨리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어봐야 나아질 일도 아니다.

이런 건 자연재해랑 같아서 일단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 *

소년 히어로 편집부 창가에 트리에 매달린 꼬마전구가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화요일 오전.

어제 출간된 잡지 이야기로 사무실 전체가 떠들썩했다.

“와, 정말?! 전무랑 신인가수?”

“그렇다니까, 이거 봐. 사진에도 얼굴이 제대로 나왔잖아.”

“그런데 이 여자가수 이름 뭐래?”

“리사래.”

“리사가 누구야? 여자 아이돌?”

“그런 모양이야. 사진 보니까 얼굴도 반반하고. 그나저나 이렇게 어린 여자랑······. 너무 부러운걸!”

“무슨 헛소리야? 전국에 이 망신을 당했는데.”

“역시 돈이 좋기는 좋구나. 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랑······. 크으윽!”

“야, 그렇다고 울기는.”

이런 분위기는 이곳 소년 히어로 편집부만이 아니었다.

층층마다 각각의 잡지 편집부들은 아침부터 온통 전무의 스캔들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늦은 출근을 하던 지로가 미쯔다쇼텐 건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이런 스캔들 사건으로 회사가 시끄러운 줄도 모른 채 부스스한 머리 꼴을 하고 있었다.

삼사라의 새로운 단행본이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어제 밤늦게까지 인쇄소에서 그쪽 직원들과 밤을 샌 덕분이었다.

오늘은 소년 히어로 식자 문제만 대충 해결하고 가까운 목욕탕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가 산발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건물로 들어가는데 어째 주변이 소란스럽다.

그리고 곧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중년의 남자들.

바로 회사 중역들이었다.

그 때문에 주변에서 직원들이 물러서며 인사를 하고, 경비원들도 몰려들며 그들과 함께 밖으로 뛰어나간다.

지로도 얼떨결에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물러섰지만 누구도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가기 바쁘다.

그런 그들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밖에 검은 고급승용차가 멈추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직원 중 한명이 뒷좌석 문을 열자 강인한 인상의 중년 사내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미쯔다쇼텐의 사장, 바로 미쯔다 히로유키였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임원들과 비서들이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길이 열리며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모두가 그 뒤를 따른다.

건물 안 직원들도 그런 그를 향해 인사를 꾸벅하고, 지로도 얼떨결에 그를 향해 인사했다.

머리를 살짝 끄덕이며 들어오던 그가 지로 근처를 지나다 멈칫하더니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지로를 향해 돌아봤다.

“아, 자네.”

지로는 갑자기 사장이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자 화들짝 놀랐다.

“네?”

“자네, 삼사라 담당이라고 했었지?”

“아, 네!”

지로가 머리를 푹 숙이며 대답하자 굳어있던 사장의 표정이 펴지더니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그래, 이제까지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게. 자네에게 기대가 크니까.”

“······네!”

“음. 그럼. 다음에 또 보기로 하고.”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표정이 굳어지며 걸어가자 다른 임원들이 서둘러 그를 따라간다. 그중 몇몇은 머리를 숙인 지로를 힐끔거리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지로가 머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무슨 일 있나?”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사장님 표정 봤어? 오늘 회사 완전히 발칵 뒤집히겠는데?”

“왜 안 그러겠니? 전무님이 폭탄을 터뜨렸는데.”

“진짜, 회사에 있을 때도 여직원 성희롱 때문에 말이 많았는데, 결국 다른 곳에 가서도 문제를 일으키네.”

“이게 보통 문제니? 무려 신인여가수와의 스캔들이야, 스캔들. 사장님도 이번엔 진짜 그냥 안 넘어가실걸?”

“에이, 그래도 손이 안으로 굽는 거지. 사장님 처남인데.”

“이번엔 아닐걸? 전에도 몇 번이나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했다고 들었거든.”

“그나저나 신인가수 이름이 뭐래?”

“음······, 기억이 안 나서 잘 모르겠다.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잡지책을 꺼내 살펴본다.

그러자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직원 하나가 그녀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여기서 그걸 꺼내면 어쩌자는 거야? 눈치 없이!”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여직원들이 종종걸음으로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무와 신인여가수······, 스캔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곧 어깨를 으쓱 하더니 곧바로 직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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