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28화 (228/425)

주간 루머 (4)

떡볶이를 사러 경희가 알려준 분식집에 왔더니, 할머니가 아는 체를 하신다.

경희 말로는 처음 찾아가도 저런 반응이라 찾아간 사람이 오히려 헷갈려 한다더니, 나도 모르게 ‘어 왔어?’ 라는 말에 ‘네.’ 라고 대답한 뒤 떡볶이를 달라는 말을 했다.

어찌나 친근하게 말씀하시는지 그 밝은 표정 앞에서 ‘실은 저 처음 왔는데요.’ 라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가게에서 사람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시는 건 무리겠지.

아니면, 이런 식으로 친분을 쌓는 건지도.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가게 안에서 갑자기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것도 일본말로.

호기심에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어? 당신!”

그런데 어떤 여자가 날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난 깜작 놀라고 말았다.

“어?!”

아까, 화실을 찾아왔던 일본 여자, 그러니까 주간 루머라는 잡지의 기자라는 사람이었다.

이름이 미네 뭐시기라고 했었지?

그런데 여자도 상당히 놀랐는지 먹던 걸 갑자기 꿀꺽 삼킨다. 그리고는 갑자기 ‘윽’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가슴을 퍽퍽 쳤다. 아무래도 먹던 음식에 채한 모양이다.

그 모습에 놀란 할머니가 서둘러 물 컵에 물을 따라서는 여자에게 가져다준다.

“아이고, 얹혔나보네. 자자, 어서 마셔, 얼른!”

할머니가 건넨 물을 받은 미네가 서둘러 입안으로 들이킨다.

“괜찮아, 일본 아가씨?”

할머니가 등을 두들겨주며 물어보자 잠시 끅끅거리던 여자가 곧 머리를 치켜들고는 요란하게 숨을 내 쉬었다.

“후아!”

“어이구, 큰일 나겠네, 정말.”

“가무사 하무니다!”

그 와중에도 어설픈 한국말로 감사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곧장 날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설마 날 미행?”

“저기, 그건 그쪽 일 같은데······.”

“아.”

여자가 눈을 살짝 위로 뜨더니 납득했는지 머리를 끄덕인다.

당연히 그런 비밀스러운 짓거리는 당신 쪽이 전문이잖아.

그런데 우리 대화를 들은 할머니가 깜짝 놀란다.

“총각이 일본말을 참 유창하게 하네. 혹시 정혼자?”

그 말에 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요.”

“괜찮아, 괜찮아.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일본여자랑 사귄다고 흉 되는 세상도 아닌데.”

“······.”

할머니는 이 여자와 내가 애인사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이네.

“자자, 총각도 자리에 앉아.”

초승달 눈으로 웃으시며 말씀하시더니 나를 강제로 여자가 앉았던 자리 맞은편으로 떠밀고는 억지로 의자에 앉히신다.

“아참, 떡볶이 달랬지? 몇 인분?”

“······4인분요.”

“알았어. 애인이랑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기다려.”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떡볶이 쪽으로 가신다.

할머니와 무슨 대화를 한 건지 모르는 미네가 멀뚱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곧 날 보며 물었다.

“뭐라고 이야기 하신 거예요?”

“별거 아니에요.”

“그쪽이 흠칫 하는 걸 봐서는 별거 아닌 게 아닌데.”

“별거 아닌 거 맞습니다.”

그 말에 여자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날 미행한 게 아니라면 여긴 어쩐 일이죠?”

“저기, 뭔가 착각하시나본데, 여기 우리 동네거든요. 조금 멀긴 하지만. 그리고 여기 분식집인데, 당연히 간식거리 사러 온 거고.”

“아.”

아는 무슨.

아무튼 내 말에 제대로 납득했는지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날 유심히 쳐다본다.

뭘 생각하는지 눈이 가늘어지기에 서둘러 물었다.

“저기, 같이 오셨던 한국인은 어디 갔어요?”

“아, 그 통역하시는 분?”

“네.”

“그분 돈 드리고 돌려보냈어요.”

“한국어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같이 다니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한국어 모르고 막 돌아다니기엔 불편할 텐데.”

“아, 생각보다 간단한 일본어를 하시는 분들은 제법 많아서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지금이 1985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시대엔 나이 많은 분들 중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기억한 것이다.

지금시대엔 실제로 일제강점기를 지내온 노인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편하긴 할 텐데.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미네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실은 그 통역사 남자 분 절 자꾸 이리저리 훑어보길래 기분 나빠서요.”

“아.”

그렇다면이야 이해가 되긴 한다.

미네가 물었다.

“그런데 간신은 뭐 사러 왔어요?”

“떡볶이 사러왔죠. 저기 저 빨간 거.”

“아, 저거요? 저거 무지 매워 보이던데.”

“그래도 맛있어요.”

“음, 도전해 볼까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볍게 만지며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가 곧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까 생각하던 게 다시 떠오른 표정으로.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잘됐어요.”

“잘되다니······, 뭐가요?”

“아까 거기 문 앞에서 하던 이야기 계속 하면 어때요?”

“······무슨 얘기요?”

“에이, 왜 그래요? 다 알면서.”

“난 모르겠는데.”

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미네가 친근한 표정으로 머리를 내 쪽으로 쭉 내밀었다.

“써니요. 삼사라 만화가.”

“할머니 아직 멀었어요?”

“천천히 이야기해도 돼. 내가 맛있는 거 줄 테니까.”

“별로 할 얘기도 없는데.”

“남자가 너무 무뚝뚝해도 못써.”

“그런 게 아니고요.”

“자자, 괜찮다니까 그러네.”

경희의 말을 들은 게 실수다.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여자는 실실 웃으며 팔짱을 낀 채로 날 쳐다보고 있다.

“······.”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나저나 이 여자 설마 근처에서 계속 우리를 감시하려는 속셈인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닌가?

그보다 여기가 일본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이게 대단한 스캔들인가 싶다.

내 쪽에서야 보자면 대단하긴 하지만, 저쪽에서 보면 별거 아니지 않나?

내가 입을 열었다.

“저기 하나만 물어볼게요.”

“여려 개라도 상관없어요.”

아 진짜 부담스럽게 쳐다보네.

“하나면 돼요.”

“뭐, 아무튼 물어보세요.”

“주간 루머라는 잡지 말인데······, 회사 돈이 철철 넘치나 봐요.”

“네?”

“아니, 그렇잖아요. 만화가가 한국인이라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걸 취재하려고 여기 한국까지 찾아와 이런 고생을 하는가해서요. 이럴려면 돈도 제법 들 텐데.”

그 말에 여자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여기 취재비는 회사에서 지원해주지 않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회사에서 지원해 준건 신인 여가수와의 스캔들까지······, 아무튼 이곳 취재는 제 개인 돈이에요.”

“개인 돈까지 써서 한국까지 와서 취재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인가요, 이게?”

“아, 역시 아닌가?”

뜬금없이 뭐라는 거야?

“네?”

“삼사라 작가인 써니가 지금 일본에게 얼마나 주목 받고 있는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실은 당신이 써니라는 작가와 조금은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는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써니가 나와 관련이 있다는 말에 뜨끔했다.

하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표정관리를 하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삼사라가 인기가 많은 거야 잘 알고 있다.

전에 사인회에서 봤을 때도 엄청났으니까.

하지만, 그거야 팬들만 몰려들어서 그런 거지 저런 대중적 잡지에서 다룰 정도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85년 정도면 만화가의 인지도 역시 제법 크던 시절이긴 하지만.

아무튼 미네는 조금 실망한 눈치다.

“아, 그래도 내 감을 믿었는데.”

아무튼 나와 써니가 관계가 있다는 건 맞다.

감이 날카롭네, 재능이 있어.

조심해야겠네.

“그럼, 일본으로 돌아갈 건가요?”

“아뇨. 그럴 순 없죠.”

순순히 그냥 돌아가면 좋겠는데.

“뭔가 실마리는 있어요? 그 삼사라 작가라는 사람을 찾을 만한 그런 거.”

“흐음.”

여자가 턱을 긁적이며 날 유심히 쳐다본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다.

긴장이 된다.

하지만 마른 침을 삼키면 들킬지도 모르니까, 참아야지.

아무튼 그렇게 잠시나마 나를 훑어보던 미네가 곧 쯧 하며 작게 혀를 차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실은 없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솔직히 그 전무라는 사람의 말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요.”

휴, 잘 참았다.

아니 그보다 방금 뭐라고 했지?

“전무요?”

“아, 미쯔다쇼텐의 전무요. 그 사람을 도청······, 아니 뭐 그런 게 있어요.”

미쯔다쇼텐의 전무?

예전에 몇 번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미쯔다쇼텐 사장의 처남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사람 내가 한국인이라 못마땅했다고 그 사람.

듣기론 어딘가로 좌천 됐다고 하던데.

뭐,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묘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미네가 물었다.

“혹시 알아요? 그 사람?”

“모르죠.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왜 아는 듯한 표정이지?”

“잘 못 봤어요. 제가 원래 생각이 많은 표정이라.”

“아.”

그렇게 말하더니 작게 ‘피곤하겠다.’ 라고 말하며 중얼거린다.

이 여자가 사람을 앞에 두고 뭐라는 거야?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좀 난감하네요. 그래도 나름 삼사라의 팬인데. 그래서 반드시 제대로 조사하고 싶거든요.”

“······팬이요? 정말입니까?”

삼사라의 팬이라니 의외다.

“네. 저 그래도 만화 중에선 삼사라를 가장 재밌게 읽고 있으니까.”

“팬이시라니까 다시 물어보죠. 만약 이 스캔들이 터지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네? 갑자기 왜 그걸 물으세요?”

“그 만화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냐고요.”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야, 뭐. 좀 많이 타격을 받겠죠. 믿었던 만화가가 한국인이었다면 아무래도 팬들이 많이 실망할 테니까.”

“무시하던 한국인이라서?”

“······그건.”

멈칫하던 그녀가 곧 인정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아마도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유럽인이었다면 반응은 달랐을 거다.

일본은 특히나 서양 사람들에 대해 환상이 많은 편이라서.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게 대부분 서양에 관련된 것이 많은 편이다.

부잣집 여자들 사이에선 서양의 레스토랑에서 유럽식 식사예절을 배우는 게 유행이라는 말도 들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닌 평소에도 무시하던 한국이지 않나.

내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으니, 지금이야 오죽하랴.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내가 욕한다고 바뀔 문제도 아니니까. 그리고 어느 나라건 나름의 자부심이라는 것도 있으니.

“그럼 그 폭로 기사가 나가면 타격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는 거군요.”

“······그래요.”

“왜죠? 팬이라면서 왜 굳이 이걸 파고드는 겁니까?”

“스캔들은 아니니까요.”

“네?”

“스캔들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그렇다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삼사라 작가라면 이런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도 반드시 다시 일어설 거라고 생각해요.”

어? 뭔가 이상한데.

스캔들 폭로 잡지 기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약간 혼란스럽다.

“······.”

그런데 그때였다.

가게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할매! 나 왔어요!”

그러자 가게 안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살피던 할머니가 반갑다는 듯 말했다.

“어? 손주사위 왔어?”

“네. 접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와 곧 내 눈이 마주쳤다.

“어? 매제 아니야?”

“······!”

황당하게도 남자는 성준희의 사촌오빠인 박유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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