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루머 (3)
그렇게 한동안 실내에는 선희의 떡볶이 쩝쩝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 다 먹었는지 선희가 만족한 듯 머리를 끄덕거리다 물을 마신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꺼억’ 하는 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란 선희가 입을 가리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아무튼 그 소리 때문인지 정적이 흐르던 실내에 그제야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이대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밖에 찾아온 사람이 너랑 선희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거니?”
“뭐, 그런 거지.”
“큰일이잖아, 그런 거면! 그리고 널 알아봤을 테니, 어떻게 하니?!”
이대봉이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빽하고 소리쳤다.
“아니, 날 알아본 건 아니었어. 그리고 여기도 형이 일하는 곳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고.”
내 말에 이대봉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그렇지만, 문제는 끝난 게 아니라서 금방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변해버린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어쨌건 그 기자라는 사람이 여기 집까지 알아낸 이상, 선희가 써니라는 것도 금방 알아버릴지도 모를 텐데.”
그때 실버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대봉에게 말했다.
“아무튼 생각 없이 경솔하게 행동할 때부터 알아봤지. 멍청한 녀석.”
“야, 이미 일어난 일을 따져서 뭐해?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부터 고민해야지.”
“그건 맞는데, 그 말을 죄지은 네가 하면 안 되는 거지.”
“야,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하잖아.”
“시끄러 멍청한 놈아.”
“그래, 네 똥 굵다!”
이대봉과 실버가 그렇게 다투는 동안 경희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음, 일단은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말에 경희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우리 화실까지 찾아왔다며. 그런데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도 돼는 거야? 정말 괜찮아?”
“그냥 마음 편하게 지내라는 거지. 어차피 괜히 힘들게 숨기려고 해봐야 그 행동 때문에 더 의심만 살 테니까.”
“어? 그럼 그 기자라는 사람에게 밝혀져도 된다는 거야?”
“그냥 자연스럽게 알려진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일부로 저런 스캔들 잡지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 말에 경희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계획이 있어?”
“내가 작전관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계획이 있겠냐? 애초에 이런 일 자체를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에이, 그럼 뭐야. 아무 계획도 없으면서 큰 소리 친 거였어?”
“계획은 없지만, 뭐 앞으로 만들면 되는 거지.”
그 말에 경희가 허탈해한다.
솔직히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알려지게 되면 그땐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준비하면 되는 거고.
그동안 쌓아놓은 경험이 있으니, 화실 식구들을 곤란하게 할 일은 없을 것을 것이다.
거기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당장 넋 놓고 알려지게 만들 거라는 건 아니고.
그나저나 떡볶이가 하나도 없네.
“경희야, 떡볶이 더없어?”
그러자 경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미안. 다 먹었는데.”
“아까 많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먹다보니까, 다 먹어버렸어. 미안.”
그 말에 내가 한숨을 푹 쉬자 경희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떡볶이 사올까? 요 앞 국민학교 근처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진짜 맛있는 분식집이 하나 있거든? 거기에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 경희를 내가 말렸다.
“아니, 됐다. 가게 이름이나 알려줘. 내가 다녀올 테니까.”
“정말?”
“그래.”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경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사오는 김에 몇 인분 더 사오면 안 돼?”
“뭐? 그렇게 많이 먹고 또 먹게?”
“선희 쟤는 많이 먹었는데, 난 좀 덜 먹어서.”
그때 선희가 그림을 그리면서 작게 말했다.
“나도 덜먹었어.”
“뭐? 너도?”
얘네 들은 정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애들이다.
내가 살던 시절이었다면 먹방으로 대박을 냈을 텐데.
* * *
후루룩.
훌쩍.
쩝쩝.
학교 앞 작은 분식집 안.
젊은 여자가 코를 훌쩍이며 전투적으로 라면과 김밥을 먹고 있다.
아침부터 내내 굶은 내내 굶었던 탓에 식욕이 왕성하기만 하다.
그리고 최근 계속 되던 업무로 지쳤는지 감기까지 생겨버렸다.
아니, 어쩌면 서울의 이 추위가 더 문제였을지도.
초겨울이라더니, 이곳 서울은 도쿄의 한겨울보다 더 춥다.
훌쩍.
다시 한 번 더 코를 훌쩍이며 김밥 하나를 더 입속에 밀어 넣는다.
“가격이 싸서, 기대도 안 했는데, 맛은 괜찮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는데, 그때 분식점 주인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어휴, 일본아가씨가 복스럽게도 잘 먹네. 뭐 더 줄까?”
그러면서 곧바로 도넛 하나를 접시에 담아 여자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여자는 일본인이라 한국인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는 커다란 눈을 데굴거리기만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웃던 할머니가 곧장 접시에 찐빵 하나를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이거 공짜.”
“네? 저 안 시켰는데요.”
알아듣지 못한 여자가 손을 휘적거리며 일본어로 말하자 할머니가 괜찮다며 머리를 끄덕인다.
“다이조부, 다이조부. 오카네 이나이.”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을 능숙하게 하는 할머니의 말씀에 깜짝 놀랐더니 곧 머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아, 고맙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머리를 끄덕거린 미소 짓던 할머니가 많이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곧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 TV를 시청한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가 살짝 미소를 짓다가 곧 찐빵을 맛본다.
“오, 이것도 맛있어.”
빵 맛에 기분 좋게 웃던 그녀는 바로 주간 루머의 기자, 미네 아츠코였다.
그녀는 찾아갔던 집에서 돌아 나와 곧장 인근에 있던 분식집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같이 왔던 통역하는 남자는 돈을 주고 돌려보냈고.
사실, 통역 때문에 잠시 고용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계속 힐끔거리는 시선이 불편했던 탓에 빨리 돌려보낸 것이다.
실력 있는 통역사라며 소개해준 잡지사 동료를 원망하며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가 남을 빵을 입안으로 몽땅 밀어 넣었다.
그렇게 양쪽 볼을 커다랗게 만들며 쩝쩝거리던 미네의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힘들게 찾긴 했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얼굴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김밥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녀는 중원요리왕이라는 만화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제임스라는 스토리 작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관심이 있는 만화가라면 삼사라와 다크 프린세스의 써니라는 작가가 유일했다.
하지만 써니는 그저 젊은 여자만화가라는 사실 말고는 만화계에서도 꽤나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본인 일은 연예계 스캔들을 다루는 것이어서 굳이 알아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최근 연예인 관련 스캔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아직 히트곡이라 할 만한 노래는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청초한 이미지로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던 리사 라는 신인 여가수였다.
그런 그녀가 최근 스폰서를 만난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것을 조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스폰서란 인물은 바로 미쯔다쇼텐 이라는 출판관련 회사의 전무인 중년의 오카다 켄이라는 남자였다.
이미 증거사진 몇 장은 찍어둔 상태였고, 좀 더 확실한 이야기와 더 큰 스캔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정보도 얻은 상황. 그것까지 다 묶어서 한꺼번에 터뜨리려고 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미쯔다쇼텐의 전무의 뒷조사를 통해 도청한 내용 중 재미난 것이 있었다.
바로 삼사라의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건 생각보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삼사라는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기 만화였고, 자신도 그 만화를 상당히 즐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화의 작가인 써니가 설마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는 것, 그것도 한국인이라니.
아마도 만화 팬들이 알게 된다면 꽤나 소란스러워 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전무에 대한 스캔들을 터뜨리는 건 일단 미뤄두고, 이것도 함께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전무가 했던 대화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꽤나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미쯔다쇼텐부터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중원요리왕 이라는 스토리작가 역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추가로 알아냈다.
만화계에 흔하지 않은 한국인이 같은 잡지사, 그것도 같은 잡지인 소년 히어로에 연재중이라면, 전무가 했던 그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호기심이 생긴 미네는 더욱 깊게 조사를 했다. 그리고 또 알아낸 사실은 제임스라는 작가가 스토리를 쓴 중원요리왕의 담당 편집자와 삼사라의 편집자가 친분이 꽤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이런저런 정황들을 조합해보니, 결국 삼사라의 편집자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가끔씩 한국으로 출장을 간다는 것도.
하지만, 삼사라 담당 편집자는 꽤나 조심스러운 성격인지, 추격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는 수없이 다시 중원요리왕의 담당자를 추적했고, 그렇게 끈질긴 조사 끝에 어렵게 제임스의 주소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곧장 한국으로 찾아온 것이다.
곧 통역을 맡아줄 남자와 함께 제임스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가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그 차를 택시로 추격해 쫓아온 거였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아까 그 오래된 일본식 주택이었다.
처음엔 이곳이 어쩌면 써니와 관련된 곳인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임스는 그 주택에 벨도 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이곳이 그의 작업실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남의 작업실을 저렇게 제집 드나들 듯 한다는 건 그녀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확인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초인종을 눌렀고, 문을 열어준 이는 일본어가 능숙한 젊은 남자였다.
일본어에 능숙하다는 것이 특이하긴 했지만, 제임스는 한국인 스토리작가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이 같은 집에 머물고 있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예상일뿐이지만 아마도 제임스의 스토리번역을 맡아줄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곳이 작업실이란 추측도 대충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써니에 대한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가 써니와 친분이 있다는 건 심증이긴 하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더라도 그가 평소에 어떤 식으로 써니와 만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이고.
하지만, 오랫동안 스캔들 관련 일을 조사한 덕분에 생겨난 예민한 감각이 방금 문 앞에서 부딪쳤던 남자에게 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가 번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혹시 그가 써니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예상에 생각이 도달한다.
“음, 어쩌면······.”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라면 분명 무슨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까지 들 정도다.
달달한 찐빵을 먹으니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물론 그 순간 잔소리꾼 선배의 말도 떠오른다.
‘무슨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해! 네가 무슨 탐정이야? 되지도 않는 추리나 상상 따위는 집어치우고 제대로 조사를 하라고. 성과를 내란 말이야!’
하지만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번엔 진짜라니까. 냄새가 난다고.”
자신의 예감을 철저하게 믿는 미네였다.
그때 분식집 밖에서 누군가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TV를 보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밖으로 나간다.
“어, 왔어?”
“네. 여기 떡볶이 좀 주세요.”
남자의 목소리다.
하지만 미네는 전혀 관심가지지 않고 여전히 김밥을 먹을 뿐이다. 그러다가 곧 뭔가 음성에 귀에 익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한국어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
그래서 돌아서 앉아있던 그녀가 그대로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바깥으로 시선을 보내더니, 곧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
그 남자다.
아까 문을 열어줬던 그 남자.
미네가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당신!”
그 순간 남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리고 남자의 눈도 크게 떠졌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