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루머 (2)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여자가 내게 명함을 내민다.
그것을 받아보니, ‘주간 루머’라는 글자와 아래에 ‘기자 - 미네 아츠코’라고 적혀있다.
“······?”
물론 ‘주간 루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잡지 이름으로 봐서는 대충은 알 것 같기는 하다.
일본은 이런 연예인 스캔들관련 잡지가 넘쳐나고, 인기도 있으니 아마도 그런 쪽이겠지.
물론 그런 일본을 영향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은 것인지, 한국에도 비스 무리한 잡지가 몇 개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아무튼 그런 잡지의 기자가 왜?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죠?”
“실은······. 아, 당신은 일단 물러나 계세요. 이분이 그래도 일본어에 능숙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곁에 있던 남자를 향해 말한다.
그러자 통역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멀찍이 물러나서는 맞은편 슈퍼에 있는 평상에 앉는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모습을 잠시 보던 미네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 고개를 돌려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저희 잡지는 유명인 스캔들 기사를 주로 다루고 있답니다.”
“······그런데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제가 조사 중인 게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더니 눈웃음을 치며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쪽 분 도움이 좀 많이 필요한데,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이대봉을 쫓아온 여자, 그리고 유명인 스캔들이라.
이대봉과 유명인.
뭔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설마, 이대봉이 잘난 얼굴로 여자 연예인을 꼬시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작가라는 사실까지 노출된 걸까?
이대봉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특별히 여자에게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는데.
그래도 일단 들어나 보자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이 뭔데요?”
내 말에 자신의 미인계가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여자가 그럴 줄 알았다며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곧바로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아까 그분 말인데요.”
“······?”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중원요리왕 작가 분 맞으시죠.”
“글쎄요. 전 그 중원머시긴가 하는 건 잘 모르겠는데.”
“아, 그래요?”
하지만 내 말을 별로 믿는 눈치는 아니다.
그래선지 표정도 느긋해 보인다.
“그분 이름은 필명은 제임스, 국적은 이 땅이 살고 있는 한국인. 현재 주간소년 히어로에서 연재 중이구요.”
“······.”
꽤나 구체적인 사실까지 알고 있는 걸 보니, 이미 다 알고 왔다는 거군.
이제야 이 연예가십을 다루는 잡지의 기자가 뭘 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유명만화의 스토리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잡지에 폭로할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신기한 건 이대봉이 일본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그저 창녕에 있는 부곡하와이에 다녀왔을 뿐인데, 어떻게 미행을 한 거지?
어쩌면 미행 준비를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 생각보다 중원요리왕의 인기가 높은 모양이다.
이런 잡지사 기자가 한국까지 따라붙은 걸 보면.
그나저나 중원요리왕 스토리작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꽤나 시끄러워질지도 모르는데.
이 시절이야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극히 드물던 때긴 했다. 하지만 그거야 워낙 경제력, 국가적 차이가 너무 크던 시절이라 한국을 듣보잡 취급하던 시절이니 그런 거다.
어쨌거나, 그렇게 조심해 왔는데, 이대봉은 꼬리를 밟힌 모양이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하긴, 평소 조심성 없는 이대봉 스타일로 보면 걸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긴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라 조금 방심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눈이 가늘어지자 미네가 슬쩍 웃었다.
“어때요? 꽤 정확하죠?”
“·······.”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인정해버릴 순 없다.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죄송한데, 중원 뭐라고 하는 그거에 대해 전 아는 게 없는데요.”
“······.”
“그만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런데 미네라는 여자가 날 보며 여전히 싱글거리고 있다.
이 여자가 왜 이러지?
어쩐지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
“뭔가 착각하신 모양이네요.”
“네?”
“전 제임스라는 그 작가 분에게는 솔직히 관심이 없답니다.”
이 여자가 뭐라는 거야?
제임스에겐 관심이 없다고?
미네가 팔짱을 끼며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중원요리왕 정도의 만화 스토리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것 정도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어요? 물론, 만화에 광적인 사람들이면 몰라도, 대중의 시점에도 보자면, 별로거든요.”
“······?”
“그러니까 제임스 작가님을 위해서 그쪽이 열심히 숨기실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이대봉의 뒤를 캐는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건가?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야 이런 말빨이 능수능란할 테니 무작정 넘어가선 곤란하겠지.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문을 닫으려하자 그녀가 서둘러 몸을 날려 닫히려는 문을 막았다.
“잠깐만요!”
갑자기 몸이 문에 끼자 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위험하게 왜 이럽니까?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갑자기 이런 식으로 문을 닫으시면 곤란하죠.”
“······아가씨가 착각한 거라니까요.”
“제가 쫓는 진짜가 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 찝찝해, 말하지 마.
“관심 없으니까, 빨리 비켜요.”
“제가 쫓는 건 삼사라 작가인 써니에요.”
“······.”
젠장!
하마터면 놀란 표정을 들킬 뻔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표정관리가 된 것이다.
“모르세요? 삼사라?”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미네를 밀어내고 서둘러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보세요, 저기요!”
쿵쿵 거리며 문을 두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경희가 밖으로 나와 내 쪽이랑 대문 쪽을 번갈아 쳐다본다.
“······여기에 대한 건 조만간 알아낼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 크게 만들지 않으려면 문 좀 열어봐요.”
여자가 일본어로 소리치자 밖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진다.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뭔가 싶어서 몰려드는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뚝 끊어지고, 여자의 큰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들이 모여들자 부담스러워진 모양이다.
난 걸음을 멈추고 대문 쪽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미네라는 여자가 쫓고 있는 게 써니라면······. 결국 우리가 타깃이라는 건데.
조심하고는 있었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폐쇄적인 일본문화의 특성상 유명만화가들 사이에 한국인이 끼어있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추적해 폭로하는 것이 저런 스캔들 관련 잡지들의 일이기도 하고.
물론 대중의 인기야 연예인들에 더 쏠려있지만, 그래도 만화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기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 그만큼의 인기가 있다고 생각지도 않고.
아니지, 요즘 분위기라면 정말로 1권이 100만권을 넘길지도 모른다. 100만부면 밀리언셀러, 결국 인기작가인 거다. 그것도 권당이라면 더더욱.
문득 이렇게나 많이 판매를 하고 있고, 적지 않은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한국에 있다 보니 실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삼사라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종종 망각하게 된다.
“누구야? 방금 저 여자는? 일본인?”
경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자 경희가 여전히 대문 쪽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곧 날 따라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서는 곧장 화실 쪽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좀 끈질겼나보네.”
이대봉이 만화잡지를 뒤적거리며 말 하길래 내가 물었다.
“누군지 알고 있었어?”
“외판원 아니야?”
“아니, 형 쫒아온 여자던데?”
“뭐? 날?”
이대봉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군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역시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군.
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대봉을 바라봤다.
“쯧, 한심한 녀석. 또 어딘가에서 눈웃음을 치고 다녔던 거군.”
실버가 혀를 차며 말했지만 이대봉은 여전히 머리를 갸웃거리기만 한다.
“누구지?”
“혹시 주간 루머란 잡지 알아?”
“주간 루머? 그게 뭔데?”
그런데 그때 실버의 표정이 묘해진다.
그래서 이번엔 실버에게 물었다.
“형은 아는구나.”
“뭐, 그냥 풍문으로 좀 듣긴 했는데······.”
그런데 실버 표정이 왜 저래?
뭔가 영 꺼림칙해 보이는 모습이라 좀 의아해한다.
그런 내 눈빛을 의식했는지 곧바로 변명하듯 말했다.
“연예계 스캔들을 다루는 잡지야. 그거. 물론 난 본적은 없지만.”
본적이 있다.
얼굴에 딱 쓰여 있다.
“본 적 있구만, 있어.”
이대봉도 눈치를 챘는지 가재미눈을 한 채로 실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실버가 이대봉의 시선을 피하며 신문을 본다.
“야야, 너 일본 잡지 무자게 많이 보잖아. 자세히 말해봐. 역시 야한사진 많은 그런 잡지 맞지?”
“······.”
“역시 꾸리한 인간이구만.”
그렇게 말하며 실실 웃던 이대봉이 이번엔 날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 잡지가 왜? 우리 윤환이도 그런 잡지 좋아한 거야?”
그 말에 이번엔 경희랑 선희가 날 홱 돌아본다.
설마 하는 눈빛으로.
하지만 난 그러거나 말거나 곧바로 실버에게 물었다.
“실버 형, 주간 루머라는 잡지가 인기 있어?”
“······난 잘 모른다니까 그러네.”
“방금 거기 기자가 대봉이 형을 쫓아 왔더라니까.”
그러자 이번엔 이대봉이 화들짝 놀랐다.
“날 쫓아왔다고? 왜?!”
“너 이 자식, 혹시 전에 일본 가서 큰 사고 친 거 아니야? 혹시 유명 연예인들이랑······.”
실버가 그렇게 말하다가 쌍둥이 눈치를 보고는 멈칫한다. 그리고는 곧 다시 약점을 잡았다는 듯 묘하게 웃으며 이대봉에게 말했다.
“아무튼 저 녀석, 생긴 값을 한다니까. 이젠 한국도 모자라서 일본까지······.”
“뭐라는 거야?! 일본에선 그냥 일반인들이랑 인사한 거 밖에는······. 헉!”
“뭐야? 역시 있었구나. 누구였냐?”
“아니, 그냥 예쁜 여자가 있긴 했긴 했는데, 설마 배우였나?”
“남자는 없었냐?”
“남자는 없······, 헛소리 할래?!”
이대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곧바로 날 보며 물었다.
“그 기자라는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 나 별로 나쁜 짓 한 거 없는데.”
“별로 없다면, 하긴 했다는 거군.”
“아니라니까!”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꽥 소리를 질렀다.
“중원요리왕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더라.”
그 말에 이대봉과 실버가 깜짝 놀라며 날 쳐다본다. 그러더니 실버가 이대봉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멍청한 자식, 일본 가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냐?”
“아,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 진짜야!”
억울하다는 듯 이대봉이 소리치는 걸 보며 내가 진정시켰다.
“대봉이 형은 관심이 없대.”
“뭐?”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이 이번엔 또 의외라는 듯 날 쳐다본다.
“아무래도 형과 우리가 관련이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야. 방금 그 여자 기자가 쫓는 건 나와 선희, 즉 삼사라 작가라고 하더라.”
“······!”
“······!”
실버와 이대봉은 물론 경희까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물론 선희는 아직 떡볶이를 오물거리며 먹기만 할뿐 관심이 별로 없는 모습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