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24화 (224/425)

동생의 꿈 (4)

미치코가 가져온 서류봉투를 받은 지로가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 모습을 본 미치코가 인상을 팍 썼다.

“안 봤어요, 안 봤어. 저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누가 뭐래? 그냥 보는 거야. 혹시라도 원고가 훼손되지 않았나 싶어서.”

“보물처럼 소중히 가지고 왔다니까요.”

“알겠다니까.”

지로의 대답에 미치코의 표정이 더 썩어 들어간다.

“너무하네. 그렇게 못 믿겠으면 직접 가시지 그러셨어요?”

“그래, 잘했어. 그러니까 좀 조용히 해.”

“······.”

곧이어 지로가 밀봉된 봉투를 커터칼로 잘라내고는 안을 슬쩍 보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요?”

“왜긴 회의 가야지.”

“저도······.”

“안 돼.”

지로의 단호한 대답에 미치코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네엥.”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지로는 곧장 팀장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미치코가 입이 툭 튀어나왔다.

“치, 너무해. 칭찬정도는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내가 해줄게. 칭찬.”

“······?”

미치코가 의아한 눈으로 돌아봤더니 야지마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잘했어. 카와다 군.”

“······.”

“왜? 칭찬 해줬잖아.”

“전 핑크걸 편집부로 가볼게요.”

“어? 칭찬 해줬는데, 왜 그래?”

“뭐,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한 미치코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그 뒷모습을 보며 야지마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내 칭찬은 별로라는 거냐? 너무하네.”

*

다음날 오후, 소년 히어로의 직원 회의실.

그곳에 홀로 앉아있는 카미야 준.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동생의 네임노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며칠 전 써니 작가가 단편의 데생만 맡아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다.

동생이 그토록 좋아하던 작가가 동생의 네임으로 그렸던 원고를 가지고 단편을 만든다니,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리고 어제 그 데생원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데생만이라고는 하지만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버렸다니, 그건 좀 의외였다.

혹시 가벼운 생각으로 대충 만든 건 아닐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써니 정도의 작가가 아쉬울 건 없으니까.

아마도 키도 선생이 동생과의 인연 때문에 따로 부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빌런X를 그려준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래, 그려준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이것만으로도 다이키는 충분히 만족할 거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런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지로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지로가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카미야가 머리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의 대답에 피식 웃은 지로가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이게 써니 선생님께서 만드신 데생원고의 복사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봉투에 들어있던 종이뭉치를 꺼내 내밀었다.

“자, 읽어보세요.”

“아, 네.”

카미야 떨리는 손으로 종이뭉치를 받아들고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뒤 그것을 내려다본다.

빈 표지그림을 잠시 동안 내려다보던 그가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

첫 표지에 커다랗게 써진 ‘빌런X'라는 제목과 주인공의 사악하면서도 강렬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표지제목 디자인을 직접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괜찮아서, 괜찮으시면 이걸 메인 디자인으로 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

“카미야 씨?”

그제야 깜짝 놀란 카미야가 서둘러 대답했다.

“아, 네? 아. 저도 마음에 듭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집중에 방해를 했네요. 계속 보세요.”

“네.”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표정의 카미야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곧바로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펼쳐지는 거대한 배경에 압도돼 흠칫 놀랐다.

솔직히 그림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대충 설렁설렁 그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데생(물론 복사된 것이기는 하지만)원고를 보니 완성도가 예상을 몇 곱절이나 훌쩍 뛰어넘고 있었던 탓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단순히 잘 그린 연필데생이라는 느낌보다는 이 자체로 그냥 완성된 느낌이라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톤을 사용해야 할 부분조차 섬세한 떼선으로 넣어 입체감을 준 덕분에 펜작업의 효과 이상의 느낌이 전달된다.

하지만 그보다 대단한건 따로 있었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빌런X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충격적이었나 싶을 정도로 긴장감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완성된 네임만으로는 동생이 이야기했던 이야기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 때문인지 찾아갔던 출판사 모든 곳에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오히려 최소한 원고는 완성해 오라는 충고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그것을 완성해보려고 그림에 매달렸다.

한때 그림을 좀 그려본 기억도 있어서 만화를 그려보려고 공부를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잠까지 줄여가며 결국 빌런X의 도입부로 단편이야기를 힘들게 완성해 내었다.

나름 사력을 다해 그렸고,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이정도면 읽어는 주겠거니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가는 출판사마다 여전히 퇴짜를 맞아버렸다.

그나마 소년 히어로에서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원고도 제대로 읽어줬고, 네임에도 상당히 큰 관심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작화를 맡아줄 만화가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은 거절해버렸다. 동생이 남긴 네임을 알지도 못하는 작화가에게 맡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자신이 직접 동생의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결국 그것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삼사라 작가인 써니였다.

써니는 얼마 전 사인회에서 이상한 탈을 쓰고 나타나 왜소한 체형의 여자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화계에서 그녀의 입지는 카미야가 생각하는 것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대단했다.

최근 삼사라, 다크 프린세스가 드래곤볼에 카메오로 등장하면서 더 유명세를 탄 덕분에 서점에 가면 온통 삼사라 광고포스터가 붙어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듣기론 애니메이션의 판매량도 증가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대단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소년 히어로 편집부에 찾아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인물과 만난 덕분에 당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다.

자신의 멍청한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일.

결국 절망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며칠 후, 편집자인 지로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예전에 주소를 가르쳐준 일이 있었지만 설마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던 탓이다.

그런데 집을 찾아온 그가 자신에게 놀라운 말을 했다.

“써니 선생님에게 네임을 부탁하려고 절 찾아오셨던 거죠?”

“······어떻게?”

“키도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정말이었던 모양이군요.”

“······.”

그리고 다시 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써니 선생님께 연락해 부탁을 드렸습니다.”

“······!”

“허락하셨습니다.”

“네? 설마 빌런X를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빌런X의 데생을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일단 펜작업 쪽은 저희가 해결하는 걸로 하고요.”

결국 그렇게 진행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결실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카미야의 몸이 움찔거렸다.

장면의 디테일함도 그렇지만, 동생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낸 듯한 표현 때문에 깜짝 놀란 탓이다.

실제로 만화를 구상하던 당시, 동생이 신나하면서 빌런X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네임에서는 그것이 제대로 묘사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때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단편원고를 만들려했고, 그것도 결국 실패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써니가 그린 그림은 그런 동생의 이야기가 정말로 살아서 팔딱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카미야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런 카미야를 보며 지로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잔인한 장면이 난무하는 그런 만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지로의 시선을 느낀 카미야가 서둘러 눈가를 훔치며 어색하게 웃는다.

“추한 모습 보여드렸네요.”

“그건 아닙니다만······.”

왜 그러냐고 묻는 듯 말하자, 카미야가 대답했다.

“동생이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나서요. 동생이 네임을 만들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설마 이 정도까지 묘사를 해내실 줄은 몰랐거든요.”

“아.”

지로는 그제야 이해를 하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카미야가 전부 다 읽고 나서는 머리를 들어올렸다.

“굉장히 재미있군요. 제가 제대로 정리했다고 생각한 단편이 왜 문제였는지 이걸 읽어보니까 알겠어요. 그나저나 페이지가 상당히 많네요.”

실제로 얇은 복사지임에도 두께가 상당했다.

딱 봐도 40페이지는 가볍게 넘을 분량이다.

“네. 48페이지입니다. 원래 단편보다 두 배가 넘는 양이죠.”

“그런데도 전혀 늘어지는 느낌이 아니라니, 놀랍군요.”

“네. 저도 페이지가 이렇게까지 늘어났는데, 오히려 더 이야기가 스피디한 느낌이라서 의외였습니다. 그런데 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것도 오히려 조금 빠른 느낌이라서.”

“네. 저도 왜 동생이 써니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 그리고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네? 뭔데요?”

“저희가 회의를 통해 결정을 한 건데요. 아무래도 내용이 좀 소년지엔 맞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에, 청년지인 영 히어로 쪽으로 넣어볼까 합니다.”

그건 카미야도 읽으면서 어렴풋이 생각한 점이다.

아무래도 내용이 너무 어둡고 잔인한 내용이라 소년지엔 무리가 아닐까싶었던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써니 선생님께서는······.”

“써니 선생님 측에선 오히려 원작자 선생님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이번 데생원고는 이대로 잡지에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데생의 느낌을 죽이지 않고 펜으로 그려낸다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단한 그림이었어요. 오히려 펜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성도 있고요.”

“네. 그래서 이대로 다음 주에 영 히어로 측에 넘길 예정입니다. 출판 날짜는 12월 초가 될 겁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카미야가 머리를 숙였다.

*

12월 초.

방문이 열리며 카미야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집안으로 들어선 그가 가장 먼저 동생의 위패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가방에서 잡지책과 네임노트를 꺼내 위패 옆에 놓았다.

잡지책은 지로에게 미리 받은 것으로 내일 출판될 예정인 영 히어로다.

그것을 바라보며 카미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키. 드디어 빌런X가 만화로 나왔다. 그것도 네가 가장 좋아하던 써니가 그려서.”

그렇게 말하는 그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합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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