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22화 (222/425)
  • 동생의 꿈 (2)

    키도의 말에 지로가 놀라 멍한 표정이 되었다.

    느닷없이 동생이 죽었다는 말을 한 덕에 조금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정말이에요?”

    “내가 그런 걸로 농담할 사람이야? 그 친구 장례식에도 직접 다녀왔어.”

    그렇게 말한 키도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그때 일을 떠올리는 지 잠시 동안 말이 없다.

    그런 키도의 갑작스런 변화에 근처에 있던 테고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저 뻘쭘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로도 침울한 표정으로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내가 알기론 만화를 한다는 건 전혀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만화가가 되겠다니.”

    “제가 원고 복사한 거 아직 가지고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지로의 말에 키도가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래도 되나?”

    “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좀 보여주게.”

    “네.”

    갑자기 편집부로 찾아온 목적을 잃어버린 키도가 난동을 멈추고 지로를 따라 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테고시가 게스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시간을 넘게 키도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진을 다 빼던 그가 순간 맥이 탁 풀려서 그런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근처에 있던 여직원이 다가왔다.

    “커피 드려요?”

    그녀의 말에 테고시가 힘없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시원한 걸로 부탁해도 될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직원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그곳에서 멀어지자 테고시의 힘없는 시선이 키도와 지로, 두 사람에게 향했다.

    “후, 지로 씨 덕분에 살았네.”

    그렇게 말하며 축 늘어진다.

    테고시가 소파에 널브러진 그 사이 지로의 자리로 다가간 키도가 복사된 원고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 자리에 앉으며 세심하게 살펴봤다.

    “흐음······.”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장면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하게 살핀다. 그리고는 완성된 원고를 덮더니 머리를 끄덕인다.

    “역시 생각대로 만화를 그리던 사람의 느낌은 아니군.”

    “그렇습니까?”

    “그래도 재미는 있어. 생각보다 센스도 있고, 느낌도 좋고. 이건 진짜 의외구만.”

    키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본 지로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역시 형제는 형제다 싶어서.”

    “재능 말입니까?”

    “아니.”

    “······?”

    지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키도가 피식 웃었다.

    “이야기의 분위기 말이야, 분위기. 그게 상당히 닮았다고.”

    “동생분과 말입니까?”

    “그래, 동생인 다이키, 그녀석이랑 말이지.”

    키도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지로가 깜짝 놀랐다.

    “잠깐만요, 다이키요? 지금 이름이 다이키라고 하셨습니까?”

    지로의 반응에 키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 카미야 다이키. 저 친구는 자네도 알다시피 카미야 준이고. 그런데 왜 그러지?”

    “카미야 준이요? 전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동생 분 이름이 카미야 다이키라면 역시 가명이었던 모양이군요.”

    “뭐? 가명?”

    “네. 자신의 이름을 카미야 다이키라고 하시 길래 전 그게 본명인줄 알았거든요.”

    “그랬어?”

    “네. 하지만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긴 하네요. 죽은 동생 분을 기리는 거라면.”

    동생이름을 필명으로 쓴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죽은 동생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이 찡한 이야기라 측은할 뿐이었다.

    “뭐 그렇지.”

    키도가 머리를 끄덕이다가, 원고 근처에 있는 복사된 네임에 시선이 갔다.

    그것을 보며 그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 모습을 본 지로가 설명했다.

    “아, 그건 네임 복사한 겁니다. 내용은 좀 더 길긴 해요. 처음부터 장편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네임의 이 그림.”

    키도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했다.

    “다이키의 그림이야.”

    “네?!”

    지로가 화들짝 놀랐다.

    “확실한 겁니까?”

    “내 밑에서 일하던 녀석이야. 그림 정도는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그만 둔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사실 어시들과의 관계가 돈독한 소수의 작가들이 아니라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어쨌건 키도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맞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역시 동생이 남긴 네임으로 만화를 만들었던 모양이군. 이제야 대충 사정이 이해가 돼.”

    “그렇다면 왜 굳이 본인이 직접 그린다고 고집을 부렸을까요? 동생이 남긴 콘티를 좀 더 잘 표현해 주는 사람이 좋을 텐데.”

    그 말에 키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했어?”

    “네. 물론 거절하면서 본인이 무조건 해야 한다는 말은 안했습니다만.”

    “혹시, 써니 얘기는 안했어?”

    “네? 써니 작가님요? 아닌데. 그나저나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내가 듣기론 다이키, 그 녀석 죽기 전에 만난 적이 있었거든. 건강 때문에 어시생활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다시 도쿄로 올라온 모양이더라고. 아무튼 그때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그 녀석이 그러더군. 다시 만화에 도전하고 싶다고. 그런데 그 이유가 삼사라라는 작품 때문이라고 하더군.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했었어. 그러니까 만약 이게 다이키가 남긴 마지막 네임이라면 형인 준에게 그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게 정말입니까?”

    지로가 놀라 되묻자 키도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는 왜 자꾸 그렇게 물어 보는 거지? 내가 평소에 믿기 힘든 말을 많이 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아,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계속 엄청난 얘기만 하시니까.”

    그 말에 키도가 납득을 했는지 머리를 끄덕이며 ‘내가 좀 그렇긴 하지.’ 하며 중얼거린다.

    “전 네임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런 지로의 말에 키도가 피식 웃었다.

    “영감이라는 것이 꼭 흉내를 낸다는 뜻은 아니니까, 당연한 거지. 영향을 받는다는 건 여러 가지야. 그게 어떤 특정한 장면일수도 있고, 대사일수도 있으니까.”

    “그렇겠군요.”

    “아무튼 이 네임 내가 좀 봐도 괜찮겠지?”

    하지만 지로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죄송합니다만, 네임은 좀 곤란합니다.”

    “아니, 원고는 괜찮고. 네임은 왜 안 돼?”

    “이건, 다르죠. 원고는 공모전의 개념이라 공개된 것이지만, 네임은 아직 공개가 어렵습니다. 네임을 보관하고 있는 입장이니까 함부로 외부에 돌릴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요. 아무튼 이해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키도가 흥분을 누르고 입맛을 다셨다.

    “뭐, 그렇게까지 말 한다면야.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래, 알았네. 그나저나 이렇게 중요한 네임을 왜 이렇게 어설프게 보관하는 거지?”

    “아, 그렇군요. 이건 제 실수입니다.”

    얼굴을 붉힌 지로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복사네임을 봉투에 담아 서랍에 넣어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키도가 말했다.

    “그럼 아까 그 친구가 다시 찾아온 이유는 뭔가?”

    “글쎄요. 전에 제가 제안한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닐까요?”

    “작화를 남에게 맡기는 거?”

    “네.”

    “아마 맞긴 할 것 같은데, 전에 거절했었다는 걸 보면, 역시 그거겠군.”

    “그거라뇨?”

    “써니.”

    “······설마, 써니 선생님께 부탁하고 싶다는 겁니까?”

    “아마도 그렇지 않겠어? 애초에 네임자체가 삼사라에게 영향을 받은 거라면 말이지.”

    “······아.”

    “하지만, 역시 그건 무리지 않겠어? 써니가 진행 중인 작품이 이미 3개나 되니까. 물론 하나는 월간지니까, 괜찮지만 나머지 둘은 주간지. 최소한 주간지 연재중인 작품 하나는 끝이 나야 가능할 테고.”

    키도의 말에 지로가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이미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차고 넘칠 정도의 퀄리티 작품을 이렇게나 많이 하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말이지, 저런 만화를 써니가 그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긴 하네.”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그렇게 웃던 키도가 다시 뭔가 떠올랐는지 버럭 소리쳤다.

    “어이, 테고시! 어디 있어?”

    키도의 외침에 소파에 늘어져 있던 테고시가 벌떡 일어났다.

    “아, 네, 선생님! 저 여기 있습니다.”

    “나 택시비 좀 줘!”

    “네?”

    “나 돌아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그러니까 택시비 달라고. 돈 없어?”

    “아, 네! 있습니다, 있어요.”

    “그럼 돈 좀 빌려줘.”

    “제가 택시를 잡아드리겠습니다.”

    “그럼, 고맙고.”

    “저랑 같이 내려가시죠.”

    “음, 그래.”

    테고시가 서둘러 대답하고는 앞장서자 머리를 끄덕인 키도가 따라 나선다.

    그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그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이제는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 * *

    “1부 마무리?”

    이대봉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파시엔시아 스토리에 좀 변화를 주려고.”

    “선희는 뭐래?”

    “내 생각에 따르겠다고 하던데.”

    “파시엔시아 인기는 괜찮잖아. 인기 순위가 대충 4위 정도니까.”

    “뭐, 그렇지.”

    “담당에게는 말했어?”

    “오늘 말할 예정이야. 안 그래도 아카기 씨랑 파시엔시아에 대해 대화를 많이 했는데, 뭔가 늘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일단 1부로 마무리하고 조금 쉰 다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하려고.”

    “나쁘지 않은 판단이네. 억지로 무리해서 연재하면 이야기만 더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억지로는 아니더라도 쉬지를 않으니까 이야기가 단순반복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아, 맞아. 그거 동감. 나도 요즘 중원요리왕 스토리가 너무 평범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거든. 이참에 같이 1부 완결하고 좀 쉴까?”

    턱을 긁적이며 하는 이대봉의 말에 실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웃기는구만. 이제 연재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냐? 거기다 인기도 낮은 주제에.”

    “야, 중원요리왕이 왜 인기가 낮아?”

    “시끄러워. 삼사라랑 파시엔시아 모두에게 깨지고 있는 놈이 무슨.”

    “······너는 어째, 비교를 해도.”

    그렇게 이대봉이 분을 삭이는 사이 전화기가 울렸다.

    “너, 전화기가 살린 거야.”

    이대봉이 그렇게 말하자 실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한번 뜨자고?”

    “누가!”

    이대봉이 그렇게 말하며 대번에 물러난다.

    그때 전화를 받은 차미정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 아카기 씨에요.”

    차미정에게 전화기를 건네받고는 지로와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나서는 지로가 원고 일정이라든가, 이번에 온 독자들의 반응, 그리고 삼사라연구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내게 전해준다.

    한참을 듣고 난 뒤, 이번엔 내가 말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 네. 말씀하세요.

    “조만간 파시엔시아를 1부로 마무리하려고요.”

    내 말에 지로가 깜짝 놀랐다.

    - 네? 1부 마무리요?

    “네. 조금은 쉬고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해서 시작할 생각입니다.”

    - 역시,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판단하신 거군요.

    “네. 전에 아카기 씨랑 얘기한 뒤, 저도 많이 생각했거든요.”

    - 네.

    그렇게 말하더니 곧 뭔가 떠올랐는지 그가 바로 입을 열었다.

    - 아참, 그럼 혹시 그건 어떠세요?

    “뭐가요?”

    - 빌런X 기억하십니까?

    “네.”

    - 그거 데생을 한 번 맡아주시면 어떨까해서요.

    “데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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