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21화 (221/425)

동생의 꿈 (1)

100만부라는 지로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나도 삼사라는 만화연구회처럼 만화에 관심을 가진 아마추어 모임 같은 곳을 중심으로 굉장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고, 만화가들에게도 좋은 평을 듣는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특유의 마이너한 감성이 문제에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30만부가 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오히려 예상보다 더 성공했다고 생각했고, 거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을까하고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드래곤볼과의 콜라보를 통해 다시 추진력을 얻고 50만부를 돌파하더니, 그림과 분위기를 바꾼 것으로 다시 판매량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젠 70만부를 넘기기 직전까지 왔다.

거기다가 지로는 100만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최초 1권만 100만부를 찍는 게 아니라 평균 100만부라니.

내가 단순한 덕후 시절에 권당 100만부가 넘는 작품은 상당히 많았고, 그것이 또한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1985년.

100만부를 넘기는 작품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그 대상이 내 작품이라면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남의 얘기로만 여기고 살다가 내 작품이 100만부에 갈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으니 닭살이 돋을 만큼 짜릿하다.

- 삼사라가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덕분에 다른 작품들도 영향을 받는지 순위변동이 평소보다 더 많고요. 그 덕분에 편집부도 최근 분위기가 좋습니다.

지로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입술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댄다.

그렇게 한참동안 통화를 하고 끝내자 화실 식구들이 내게 득달같이 질문을 퍼 부었다.

“100만부라니, 정말이에요?”

“얼마 전에 50만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막 두근거려요.”

“아니지, 아까 처음엔 70만부라는 말을 먼저 했으니까, 100만부는 희망사항이라는 거겠지. 안 그러니?”

마지막에 끼어든 이대봉이 대충 비슷한 말로 정리하며 묻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맞아. 하지만 지금 기세가 좋아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는 모양이야.”

그 말에 이대봉도 진짜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진짜? 그럼, 진짜 100만부의 사나이가 되는 거야?”

“100만부의 사나이는 또 뭐야?”

“600만 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 대령! 그리고 넌 100만 부의 사나이 이윤환.”

그렇게 말하며 혼자 좋다고 낄낄거린다.

“······?”

“나 참, 윤환이 쟨 다 좋은데, 이렇게 만화를 제외하면 바보나 다름없어서 김이 샌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이 한숨을 쉰다.

“제임스 오빠의 개그가 재미없으니까 그렇지.”

“이게 재미없어?”

“당연하지.”

박소미가 나서며 그렇게 말하자 이대봉이 어이없다는 듯 표정으로 홱 노려본다.

그때 가만히 있던 실버도 나섰다.

“그렇게 재밌으면 너도 심형래처럼 개그맨으로 성공하면 되겠네. 얼른 방송국에 가든가.”

“안 그래도 스토리에 재능이 없었으면, 그랬을 거야.”

“얼씨구.”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왕 하려면 이주일을 넘어서야지.”

“지금 대세는 심형래야.”

“아니거든? 이주일이거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몰라?”

“놀고 있네. 그 양반은 만날 뭔가 보여주겠데. 대체 뭘 언제 보여주겠다는 건지.”

“심형래는 어떻고? 허구한 날 잘 모르겠는데요~. 이러구 있잖아.”

어휴, 또 저런 사소한 걸로 싸운다.

그런데 화실 식구들은 그게 또 재밌다고 턱까지 괴고 그걸 열심히 보고 있다.

이거 팝콘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건가?

* * *

도쿄의 모 소년만화 편집부.

그곳의 한쪽 편에 있는 파티션 너머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편집자로 보이는 사내가 맞은편에 앉은 이가 가져온 원고를 살펴보다 곧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스토리는 괜찮아 보이긴 합니다만, 역시 그림이······.”

“그래도 다 읽어보시고 판단을······.”

“······.”

편집자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남자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남자가 완성원고를 챙겨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곧장 편집부를 빠져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편집자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그때 동료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작가 지망생?”

“응.”

“그런데 네 표정이 왜 그래?”

“어이가 없어서 그러지.”

“어이가 없다니? 무슨 소리야?”

“저 친구, 만화가가 되고 싶다며 찾아온 주제에 그림이 너무 엉망이라서.”

그 말에 동료가 피식 웃었다.

“신인이 다 그렇지. 뭘 기대하고 그래?”

“말도 마. 최악이라니까, 무슨 어린애가 그린 그림 같더라고.”

“에이, 설마. 그래도 출판사를 찾아왔다면 어느 정도 그림실력은 되겠지.”

“그랬으면 내가 제대로 읽지 않고 돌려보냈겠어?”

“뭐? 다 읽지도 않은 거야?”

“그렇다니까. 그림이 엉망이라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야 말이지. 그림이 저래서는 누가 읽으려하겠어? 인내심을 요하는 만화라면 그건 더 이상 만화가 아니지.”

그 말에 동료가 수긍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림이 그렇게나 엉망이라면 뭐.”

“제목도 웃기더라고.”

“뭔데?”

“빌런X”

“뭐야? 60년대 만화 제목 같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때 편집부 내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회의 시작하니까, 모두 회의실로 모여!”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이 서둘러 회의실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원고가 든 봉투를 품에 안은 남자가 밖으로 나온다.

검은 뿔테 안경의 왜소한 체형을 가진 남자.

그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한 채 출판사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로서 도쿄 내에 있는 어지간한 만화출판사는 거의 다 돌아보았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시내를 걸어갔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우울해진다.

그냥, 소년 히어로에서 만났던 편집자의 권유를 받아들일 걸 잘못했나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그림 실력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건 잘 알았으니까.

나름 그림연습도 열심히 해봤지만, 만화라는 것이 그렇게 단기간에 실력이 팍 늘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신은 애초에 어시 경험도 없어서 그쪽세계에 대한 지식도 많이 부족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 우울해진다.

그러다 문득 걸음이 멈춰졌다.

커다란 서점 앞에 붙어있는 만화 광고용 포스터에 시선이 갔다.

[삼사라! 폭발적 관심에 추가 증쇄 결정!]

제법 요란한 글귀에 저절로 눈이 간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있는 원고를 내려다봤다.

삼사라와는 인연이 있는 원고.

그것을 생각하며 표정이 다시 우울해진다.

그리고 한참을 서점 앞에서 포스터를 바라보다 곧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다시 가볼까?”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미쯔다쇼텐의 빌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고에 가장 관심을 가져준 소년 히어로가 있는 층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인내 결정을 내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소년 히어로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편집부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입구 근처에 있던 여직원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네. 아카기 씨를 만나고 싶은데요.”

“그러시군요. 잠시만 자리에 앉아 계시겠습니까? 지금 외근중이신데 잠시 후면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게스트용 소파에 앉았다.

이전엔 원고를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던 편집부의 내부를 바라본다. 대부분의 편집부들이 만화책과 원고들로 번잡하고, 또 담배연기로 자욱한 곳인데, 그나마 이곳은 그중에서도 나름 깔끔한 느낌이다.

최근 부서를 넓히기라도 했는지, 한쪽 편이 아직 정리되지 않긴 했지만.

“커피 드세요.”

여직원이 자판기 커피를 테이블 위에 두자, 남자가 머리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네.”

여자가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고 나서야 그가 조심스럽게 종이컵을 들어 입에 가져간다.

그때, 그가 앉은 자리 뒤쪽에서 요란한 음성이 들렸다.

“좀 진정하세요, 선생님!”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간다. 편집장님이랑 단판을 지어야겠어.”

“아이고, 선생님. 그래도 센터컬러 안준다고 편집부에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면 어쩝니까?”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무슨 행패?”

“이게 행패죠.”

“젠장, 그럼 불의를 보고도 그냥 참아야 돼?”

“이게 무슨 불의에요?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하세요.”

“아무튼 난 좀 따져야겠어.”

그 소리를 듣던 남자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에도 주변사람들은 그저 웃을 뿐, 편집부 분위기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모양이다 싶어서 다시 커피를 홀짝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러다 시끄럽게 떠들던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했다.

“······!”

목소리가 좀 익숙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자신이 아는 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그가 몸을 움츠리며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자신을 지나쳐 편집부 내로 들어가는 모습을 힐끔거리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카미야 씨?”

“아.”

기다리고 있던 아카기 지로라는 편집자가 자신을 보며 놀란 얼굴로 다가온 것이다.

그 순간 시끄럽게 떠들던 남자가 시선을 자신 쪽으로 살짝 돌리는가 싶더니 곧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

“······.”

자신을 알아본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뭔가를 더 말하려하자 서둘러 그에게 슬쩍 인사를 하고는 곧장 비상계단이 있는 곳을 향해 뛰다시피 걸어가 버렸다.

그런 사내를 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남자.

그리고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는 편집자 지로.

곧장 지로가 황당한 시선을 거두고는 시끄럽던 남자를 보며 물었다.

“키도 선생님. 혹시 카미야 씨, 아세요?”

“역시 카미야가 맞나보군. 내가 잘 못 본건 아니야.”

“어? 정말 아시는 분이세요?”

“음. 뭐. 예전에 우리 화실에서 일하던 어시의 형이야.”

“오, 그런 인연이.”

지로가 놀란 눈으로 다시 카미야가 사라진 곳을 돌아본다.

그때 키도가 의아한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저 친구가 여기에 온 거야?”

“모르셨어요? 저분도 만화가가 되려는 거.”

“뭐? 만화가? 저 친구, 만화해?”

“형제가 만화가를 목표로 하나보죠, 뭐.”

“아닌데. 분명 형은 만화하고는 관계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공무원이라고 이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나는군.”

“네? 그럼 동생 분을 도와주려고 그러는 걸까요?”

지로의 말에 키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런 키도의 변화를 눈치 챈 지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저 친구 동생이라는 걔, 몇 달 전에 죽었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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