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17화 (217/425)

100만 클럽 (2)

지로가 서둘러 사장실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찌푸려진 인상이 펴지지 않는다.

왜 자신을 사장이 따로 보자고 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다.

그렇게 걸어가다 걸음이 뚝 멈춰졌다.

“설마, 카와다랑 관계있는 건 아니겠지······.”

평소 미치코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고 있고, 그것에 그녀가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 그게 문제였던 걸까?

조카에게 막 대하는 직원이 곱게 보일 리도 없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다 곧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미치코를 자신의 조카로서가 아닌 후배로서 대해주길 원했다.

그사이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면 모를까 그렇게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아니지, 겨우 한번 만난 걸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거다. 거기다 저런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고.

윗사람들 마음이야 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들이니까.

다시 얼굴을 찌푸린 채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습관적으로 1층을 누르려다 엘리베이터의 방향을 확인했다.

어? 이거 내려가는 건가?

혼란한 정신 때문에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고 탔던 모양이다.

1층으로 간 뒤 문이 열리자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다. 지로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지로는 곧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아, 다시 올라가야 해서요.”

그제야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자신들이 갈 층의 버튼을 눌렀다.

지로도 뒤늦게 층수가 생각이 나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임원 회의실이 있는 층의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편집실이 있는 층에 비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복도를 걸어 임원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곳 앞에 책상에 앉아있던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지로가 인사를 하며 물었다.

“저기, 사장님을 뵈러······.”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여직원의 말에 곧장 회의실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노크를 한 뒤 물을 열었다.

“아, 어서 오게.”

임원 회의실 상석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머리를 들어 올리며 조용하게 말했다.

바로 사장인 미쯔다 히로유키였다.

지로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 와서 앉게.”

상석의 왼쪽 편을 가리키며 말하자 지로가 서둘러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네, 커피 괜찮지?”

“아, 네.”

“그래.”

그렇게 말한 사장이 곧바로 인터폰을 눌렀다.

“커피 두잔.”

- 네, 알겠습니다.

여성의 음성이 들리고 나서 사장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또각거리는 구둣발소리와 함께 노크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바로 문이 열리며 여직원이 커피 두 잔을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한 회의실에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며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온다.

여직원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사장과 지로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는 인사를 한 뒤 다시 돌아서 또각거리며 그곳을 빠져 나갔다.

그제야 사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 저번 달에 미국 뉴욕에서 G5 재무 장관 회의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나?”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 얼떨떨해 하던 지로가 곧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지나가는 뉴스로 본 기억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엔화가 계속 오르고 있다고 사실도요.”

그 말에 사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회의가 열린 곳이 플라자호텔이야. 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클래식하기는 해도, 내 취향엔 맞지 않더군.”

“······.”

“뭐, 아무튼 그때 참석한 다케시다 노보루가 ‘미국이 일본에게 항복했다.’며 헛소리를 했지. 엔화가 강해졌다는 건 일본의 국력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이라나 뭐라나. 웃기지 않나? 그런 멍청이가 대장성 대신으로 그런 회의에 참석했다니.”

지로는 그런 사실까지는 잘 모른다.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사장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일본의 GNP는 1만 달러를 훌쩍 넘겼어. 미국의 거의 70%에 육박할 정도지. 대미 무역도 사상 최고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그래서 불안감을 느낀 미국이 이번 회의를 연거야. 그리고 레이건은 ‘위대한 미국’을 주장하는 인간이야. 그런 사람이 일본 좋으라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 같아? 한심한 멍청이들이 지금 일본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어. 아마도 이번 일은 오일쇼크만큼이나 일본에게 위기가 될지도 몰라. 아니지, 오일쇼크 땐 오히려 일본자동차가 미국에 엄청나게 수출되었으니까, 그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지. 아무튼 이번 일도 그때처럼 잘 넘긴다면 일본은 더 탄탄해질 수도 있지. 아니라면 뭐······, 그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사장을 보며 지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지로의 표정을 보던 사장이 피식 웃었다.

“내가 갑자기 왜 엉뚱한 이야기를 하나 궁금한 표정이구만.”

“아, 아닙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보다는 많은 정보를 접하시니까, 생각도 많으시겠죠.”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까?”

지로가 되묻자 사장이 피식 웃었다.

“자네는 확실히 좀 특이한 구석이 있어?”

“네?”

특이한 구석이라니, 설마 밉보인 건가?

그렇게 생각한 지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그런 지로의 생각과는 달리 사장은 조금 더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내가 말하는 요지는 그거야. 일본이 그동안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는 거지. 덕분에 미국에게 너무 주목을 받은 거고. 지금의 우리처럼.”

“······네?”

주목을 받다니 누구한테?

지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곧바로 사장이 말했다.

“지금 큰 출판사들이 우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걸세. 그리고 미국에서 있었던 그 재무장관 회의처럼, 각 출판사들의 임원급들이 호텔에서 모임을 가졌지. 물론 거기에서 중심이 된 건 가장 큰 출판사 들이고.”

그렇게 말하던 사장이 곧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런 이야기는 관두고.”

“······.”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말을 끊어버리자 지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왜 말을 하다 마는 겁니까?’ 하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장이 만화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궁금한 순간에 계속 끊으며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엄청나게 히트를 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그렇게 잡다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다시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가? 담당하고 있는 선생들은 어떤가? 별 문제는 없고.”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자 정신을 차린 지로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최근에 어시 한분이 독립한 거 말고는요.”

“그건 들어서 알고 있네. 미치코가 담당이라지? 제목이 뭐였더라?”

“어둠의 클럽입니다.”

“아, 맞아. 그랬지. 어둠의 클럽. 무슨 귀신인가 뭔가 얘기였나?”

“흡혈귀입니다.”

“아.”

머리를 끄덕인 사장이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무튼 그 녀석, 벌써 제 2의 써니 선생을 만들겠다고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던데. 뭘 믿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그 얘기는 미치코에게 한 번 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세상을 우습게보지 말라며 한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나저나 삼사라, 요즘 반응이 더 뜨겁다고 하던데.”

“최근 드래곤볼에 삼사라 캐릭터들이 등장한 덕분에 인지도가 올라서 단행본 판매도 늘었습니다. 덕분에 잡지 판매부수도 늘었고요.”

“그래, 그렇다고 들었네. 그 때문에 내가 주목을 받은 거고.”

아까 그 모임이라는 곳의 이야기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잡지 판매가 많이 늘기는 했지만, 역시 100만부 달성은 쉽지 않겠지?”

“네? 100만부요?”

“······그래.”

그렇게 대답하며 사장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혹시 자네 생각은 어때? 그게 가능해 보이나?”

“뭐, 어떤 일이든 가능성이야 늘 존재하는 거니까요. 물론 예전의 소년 히어로였다면, 이런 얘기를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당연한 말이다.

삼사라가 시작하기 전의 소년 히어로는 그저 이름도 없는 잡지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언제 폐간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고.

그런데 지로의 말에 뭐가 재밌는지 사장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맞아, 자네 말대로야. 그나저나 자네는 내 앞에서도 잘도 그런 얘기를 쉽게 하는구만.”

그제야 지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깨닫고는 깜짝 놀라며 머리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말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

“아무튼 자네 생각은 어때, 100만부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나?”

“100만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지로는 그저 담당하는 작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본인의 일이었고, 그런 건 윗사람들이나 할 고민이었으니까.

어쨌건 눈앞에 있는 사장이 물었으니 대답은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회의적이라는 거다.

일본 3대 소년지가 아니라면 결코 넘볼 수 없는 엄청난 위엄이 바로 100만부 고지니까.

물론 출판사의 사장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 혹은 잡지중 하나 정도는 달성하고 싶다는 건 이해한다.

이곳 미쯔다쇼텐에서는 아직 그 어떤 책도 100만부를 달성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작년에 소설이 80만부쯤 팔린 게 기록이라고 했던가.

이런 잡다한 생각에 빠져있는 지로가 말하기를 주저한다고 생각했는지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자네 생각을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아무튼 그냥 희망사항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까, 지로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회사의 최고 오너 앞이니 조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생각해 본적이 없긴 합니다만, 100만부를 달성하려면 그만큼 히트작이 많아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초히트 작 몇 개가 끼어있다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히트작이 몇 개지?”

“아시겠지만, 상위 3-4개 작품정도가 히트작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삼사라 정도면 초히트작 아닌가?”

“작품으로서는 그만한 위치가 맞지만, 판매부수로만 따지면 그냥 히트작 정도입니다.”

“역시 회사의 인지도가 문제구만.”

“······.”

그렇다고 사장 앞에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로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히트작도 부족한데다가 더불어 초히트작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 역시 갈길이 멀다는 거군.”

“네. 히트작만 많은 잡지는 지금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잡지들 대부분은 50만부 언저리입니다.”

“그래, 자네 말은 잘 알겠어.”

“······?”

“아, 자네를 부른 건 혼자서 고민하던 문제라서 말이지. 뭐,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고는 있지만, 역시 머리 굳은 임원들보다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도 중요하고 말이지. 그리고 자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 네.”

“아무튼 100만 클럽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만. 역시 만화 쪽을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며 혼자 웃는다.

하지만 지로는 그 100만 클럽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진짜로 100만부를 노린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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