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14화 (214/425)
  • 힘들어도 괜찮아 (1)

    “아, 진짜 욕먹는 것도 정말 지친다, 지쳐.”

    여자편집자 한명이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푹 쉰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동료여직원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또 글자가 틀린 거야?”

    “아니, 붙였던 식자가 떨어진 모양이야.”

    “어머, 또?”

    “그러게. 진짜 인쇄소에서 잘못 다룬 거 아니냐고 하니까, 그렇더라도 내 잘못이래. 제대로 딱 붙이지 못한 거라고.”

    “뭐? 접착제 약한 걸 왜 우리 책임으로 돌리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쉰다.

    그런 여자를 다독이던 동료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딱 쳤다.

    “아, 오늘 그거 온다고 하던데, 들었어?”

    “그거라니?”“신작 단편.”

    “아, 그거?”

    시무룩해있던 여자의 표정이 금방 다시 생기를 찾는다.

    이곳은 격주간 소녀만화잡지 ‘핑크걸’의 편집부.

    이곳은 미쯔다쇼텐 빌딩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창간한지는 몇 달되지 않은 신생부서다.

    그동안 만화관련 편집부가 여러 번 생겨나고 없어졌지만, 유독 소녀만화잡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탓에 늦었지만 이제야 생겨난 것이다.

    그나마 이번에 생겨난 것도 소년 히어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만화잡지들이 선전을 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잡지가 생겨난 뒤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기작가의 부재다.

    물론 창간호는 몇 명의 기성작가들에게 단편을 지원받아 시작하긴 했지만, 인기연재작이 없다는 문제는 금방 나타나게 되었다.

    일곱 번째 잡지가 나오는 동안 계속 판매량은 줄고 동시에 재고만 쌓여가게 된 것이다.

    외부에서 능력 있는 소녀만화 편집자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문제는 금방 해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출판사 내의 타 잡지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런저런 네임이나 원고들을 받았다.

    하지만, 별달리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소년 히어로의 가장 유명인 편집자가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다.

    현재 미쯔다쇼텐 전체에서 가장 핫한 만화인 ‘삼사라’와 ‘파시엔시아’ 담당편집자, 아카기 지로였다.

    그런데 그가 가져온 것은 50페이지짜리 단편 네임이었다.

    다른 편집자라면 모를까, 삼사라 담당인 그가 가져온 네임이라 편집부에서는 그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그 콘티는 아직 일반 편집자들에게는 보여지지 않았고, 팀장급 이상의 회의에서만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단편원고가 지금 화제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담당은 누가 하는 거야? 역시 팀장들 중에서 결정하는 거겠지?”

    “글쎄, 나도 그 문제가 궁금해서 우리 팀장님한테 물어봤는데, 모르겠대.”

    “팀장들도 몰라?”

    “응. 일단 원고는 오늘, 늦어도 내일 중으로는 들어온다고 하긴 하던데. 그렇다면 분명 담당은 정해졌을 텐데.”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직원 한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소문엔 써니 선생님과 관련 있는 분이라던데, 들었어요?”

    “응. 나도 그건 들었어. 신인이라는 걸 보면 그쪽 어시출신이 아닌가하는 얘기도 있더라고.”

    “다른 어시라면 몰라도 진짜 써니 선생님의 화실 출신이라면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만약 써니 화실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아카기 씨가 직접 가져온 걸 보면 일반적인 신인에 비해 실력이 좋지 않을까? 실제로 팀장회의에서도 꽤 괜찮았다는 얘기도 있고.”

    “그래도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야. 그림만 잘 그린다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하긴, 아마추어에서 유명한 작가를 데려왔다가 망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맞아. 프로랑 아마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니까.”

    “그래도 써니 선생님 쪽이라면 어쩐지 기대가 되잖아요.”

    “그것도 그래.”

    직원들이 그렇게 수다를 떠는 그때 한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조용! 모두 이쪽을 주목해 주세요!”

    편집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진다.

    수다를 떨던 여직원들과 소수의 남직원들 시선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수염을 듬성듬성 기른 넙대대한 얼굴의 편집장이 주변을 쓱 돌아보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의 곁에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서있다.

    “신입인가?”

    “무슨 소리야, 전에 소년 히어로의 아카기 씨랑 같이 왔던 그 여직원 같은데?”

    “어머, 그래?”

    “맞아요. 나도 기억해요.”

    남직원의 말에 여직원들이 그를 슬쩍 돌아보며 웃는다.

    “예쁜 여자라면 기억을 참 잘하네?”

    “맞아.”

    “원래 기억력이 좋아요.”

    “그렇겠지.”

    “뭡니까, 그 비웃음은.”

    “아닌데?”

    “그나저나 이상하네? 설마 이곳으로 인사이동 결정이 난건가?”

    “그러게. 직원이 부족한 건 아닐 텐데.”

    “좌천 아닐까? 저쪽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다거나.”

    “어머, 설마. 여기가 무슨 죄인들만 보내는 유배지도 아니고.”

    “무슨 소리, 잡지사 내에서 가장 저조한 실적이니, 그럴지도 몰라.”

    “네?”

    “뭐, 저는 환영입니다.”“남자라 이거지?”

    “거기, 주목하라고!”

    같이 들어온 날카로운 얼굴의 노처녀 부편집장이 호통에 수군거리던 직원들이 움찔하고 놀란다.

    그 모습을 본 편집장이 작게 혀를 차고는 금방 입을 열었다.

    “이 쪽은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소년 히어로 편집부 직원이 카와다 군입니다. 소년 히어로에서 완전히 옮긴 건 아니고.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번에 신작 단편이 연재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정된 기간만 잠시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겁니다.”

    그 말에 다시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단편 하나를 위해 다른 부서의 직원이 들어오는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단편이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그 작품이라는 건 모두 눈치를 채고 있었다.

    “조용!”

    다시 부편집장의 날카로운 음성에 다시 실내가 조용해진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편집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직원들은 카와다 군이 필요한 일은 옆에서 제대로 서포트 해줬으면 좋겠어요.”

    편집장이 말을 끝내자말자 같이 들어왔던 미치코가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인사를 하자마자 모두 박수를 친다. 신입이 들어왔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자, 이쪽으로.”

    “네.”

    미치코가 편집장을 따라 회의실로 향하자 부편집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곧 회의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있던 팀장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뭔가 편집장의 행동이 조심스럽다는 인상이라 직원들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뭐야? 편집장님 왜 저러시지? 마치 상전을 모시는 것 같잖아.”

    “아카기 씨랑 같이 다니는 걸 보면 저런 대접을 받아도 이상한 건 아니지. 지금 아카기 씨 회사전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으니까.”

    “그래도 좀 과한데.”

    “과하긴, 만약 이번 작품이 소년 히어로 때처럼 대박이라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설마, 편집장님이 평소엔 저래보여도 얼마나 까다로운데.”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때 근처 자리로 다가오던 팀장 한명이 입을 열었다.

    “시마다.”

    “네?”“빨리 우치다 선생님한테 가봐. 이번에도 원고 늦으면 나 또 부편집장님한테 깨진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여직원이 서둘러 가방을 챙겨 편집부를 빠져나간다.

    “자네들도 그만 떠들고, 일들 해.”

    팀장의 번쩍거리는 눈초리에 놀라 각자 자신의 일을 하느라 분주해진다.

    *

    “자 여기 앉으세요.”

    편집장이 회의실 상석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미치코가 손을 휘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거긴 제가 앉을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래도 어떻게······.”

    “여기선 그냥 말단 여직원일 뿐이에요. 회사에 있을 땐 사장님도 그렇게 하시는 걸 바라실테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편집장이 부편집장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보낸다.

    편집장도 부담스러운지 결국 상석을 비우고 맞은편에 자리를 앉았다.

    그리고는 슬쩍 미치코가 가져온 가방에 눈길을 보낸다. 그제야 미치코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가방의 지퍼를 열어서는 안을 뒤적거린다.

    곧 가방에서 고급스러운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그것을 편집장에게 내밀었다.

    “완성된 원고에요.”

    “아, 네.”

    송구스럽다는 듯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는다.

    그 모습에 미치코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사장의 조카라는 것이 계속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사실 회사에서 이 사실은 아는 이는 몇 없는데, 그중 이곳 편집장도 포함된다. 특별히 사장과 친해서는 아니었고, 그저 얼마 전에 우연히 식당에서 부딪친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로와 함께 찾아왔을 때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낸 것이다.

    아무튼 조심스럽던 편집장이 원고를 넘겨가며 신중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그래도 편집부의 수장으로서 원고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어설프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지로와 함께 처음 네임을 가져왔을 때도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챈 이후임에도 원고는 팀장들을 시켜 제대로 확인시켰을 정도였다. 그리고 팀장들의 의견을 듣고 나서야 최종 허락이 떨어졌을 정도니까.

    아무튼 만화에 대한 것만큼은 고집이 강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원고를 한번 가볍게 쭉 읽은 편집장이 다시 처음부터 신중하게 살피기 시작한다. 5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다 보니 보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원고를 다 살핀 편집장이 머리를 들었다.

    “괜찮군요.”

    “그렇죠?”

    “하지만, 일단 한 번 더 회의를 해보고 최종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미치코의 대답에 신중했던 표정이 살짝 무너지고 이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 이런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군요. 이거 죄송합니다.”“아니에요.”

    “저기, 점심시간인데 식사라도······.”

    “괜찮아요. 선배랑 근처 식당에 가기로 했거든요.”

    “아, 네.”

    “아무튼 결정이 되면 연락주세요.”“알겠습니다.”

    편집장이 대답하자마자 미치코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 * *

    연휴가 끝나고 난 뒤라 그런지 화실 식구들의 얼굴이 모두 피곤에 절어 있다.

    “어구구구, 너무 오래 쉬었더니 후유증이 너무 심해요.”

    김기철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피곤한 표정을 짓자 곁에 있던 차미정도 같이 양팔을 위로 쭉 펴 올리며 말했다.

    “나도. 너무 오래 쉬니까 몸이 안 따라주는 것 같아.”

    “이거 이거 신입들이 빠져가지고. 선배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 안보이니?”

    “제임스 오빠는 왜 괜히 애들에게 군기를 잡고 그래? 그리고 우리 끌어들이지 마.”

    “맞아. 한량 아저씨인 주제에.”

    “뭐? 한량? 나도 늘 바뻐. 스토리작가는 뭐 만날 탱자탱자 논다니? 윤환이는 뭐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

    이대봉의 갑작스러운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서 날 끌어들여?”

    “넌 솔직히 놀면서 하는 거 맞잖아.”

    “나도 바쁘거든.”

    “넌 안 그렇게 보이는데.”

    “아니야, 나도 늘 바뻐.”

    그런데 그때 전화기가 올린다.

    전화를 받은 박수미가 날 불렀다.

    “선생님, 카와다 씨에요.”

    전화를 받고 약간 요란한 인사를 나누고 나자 미치코가 본론을 꺼냈다.

    - 어둠의 클럽 완전히 통과되었어요. 단편은 이번 편 말고 다음 편에 실리게 된데요.

    “잘 되었군요.”

    아무래도 이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으니 특별할 건 없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가 또 있었다.

    - 핑크걸 쪽에선 바로 연재 들어갔으면 한다는 입장이에요.

    “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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