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11화 (211/425)

헤비메탈 (2)

헤비메탈에서 요청?

세계적인 아티스트들, 특히 서구권 중심인 작가들이 활동하는 잡지에서 요청이라니.

전혀 의외의 일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거기에서 추구하는 만화는 이쪽이랑 좀 많이 다를 텐데요.”

-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한 요구도 있었습니다.

요구?

“어떤 요구요?”

- 기존의 작품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자유요?”

- 네. 조금 더 많은 것을 표현하면 좋겠다고. 독자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요.

“흠.”

자유롭게라······.

언뜻 들으면 지금 우리가 기존의 틀에서 자유롭지 않게 만화를 만들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로 들린다.

물론 헤비메탈이라는 잡지 자체가 처음부터 성인잡지라 성적인 부분이라든가, 폭력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기는 하다. 그러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구애를 받지 말라는 건 더 화끈한 걸 원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19금용 삼사라를 원하는 거군.

하지만, 애초에 삼사라가 성인의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닌데, 굳이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거침없이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니 이미 원하는 방식의 이야기를 진행 중인데, 여기서 뭘 더 자유롭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나나 선희의 취향이 폭력이나 성적인 부분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작화를 담당하는 선희가 아직 어리다는 거다.

아직 고등학생인 선희에게 그런 만화를 그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특히나 지금의 이 시대라면 더더욱.

“역시 그 문제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삼사라를 그런 식으로 만드는 건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 저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써니 선생님, 나이가 나이 인지라.

저렇게 말하니까, 선희가 엄청 나이가 많은 사람 같잖아.

-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일단 거절해 두기로 하겠습니다.

지로가 조금은 아쉽다는 어투로 말한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헤비메탈이라면 서구권에서 알아주는 잡지고, 거기에 만화를 싣는다면 홍보차원에서도 꽤 괜찮을 테니까.

일본은 오래전부터 늘 서구권에서 인정받고 싶어가는 기질이 강한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분명 좋은 기회를 걷어차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로는 더 이상 티를 내지 않고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저기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조금 심각해 보이시던데.”

미치코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와 지로가 한국어로 통화를 나눈 덕분에 내용이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외국 잡지인 ‘헤비메탈’에서 단편 요청이 있었다는 것 정도.”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선희가 내게 시선을 휙 돌린다. 그러더니 자기 자리 뒤의 책장에 가서는 책을 하나 뽑아서는 내게 다가와 내밀며 말했다.

“이 책?”

선희가 내민 책은 아까 지로와 통화에서 나누었던 그 잡지 바로 헤비메탈이었다.

사실, 헤비메탈은 이미 전부터 선희에게 그림 연습할 때 참고하라고 몇 번 사준 적이 있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책의 내용도 확인하고 선별해서 선희에게 가져다주긴 했지만.

때문에 선희에겐 의미가 남다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선희가 내민 책을 보며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맞아. 그거.”

“여기서 단편 달래?”

“뭐, 그렇다고는 하던데······. 내가 거절했다.”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머리를 갸웃거린다.

“왜?”

“우리가 원하는 삼사라가 아니었거든.”

그제야 선희도 납득했는지 끄덕였다.

“오빠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따를게.”

그런데 나와 선희가 잡지를 들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미치코의 눈이 커다래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우리가 들고 있는 잡지를 향해 있었다.

“만화잡지 헤비메탈에서 단편 요청이 왔다고요?”

눈치를 보니 미치코도 헤비메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네. 하지만 거절했어요.”

“거, 거절요? 왜요?”

“아무래도 잡지 성향도 그렇고, 선희 나이도 아직 어리니까.”

“성인지 라고는 해도, 써니 선생님이 표현할 수준에서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저쪽이 조금 더 많이 표현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그리고 그곳은 원래 성인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잡지라 성향에도 안 맞고요.”

그제야 미치코도 납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요청할 정도면 양보해 주지 않을까요?”

“아마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알기로도 그 부분에 대해선 절대 양보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후에 한국만화가들 중 몇 명이 대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잡지 성향과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그런 내 말에도 미치코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헤비메탈 같은 잡지에 써니 선생님 만화가 실린다면, 외국에서 이름을 알릴 기회인데. 너무 아쉬워요.”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아직은 소년지에서 할 일도 많으니까요.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지도 모르죠.”

이런 식이면 솔직히 안 와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좀 아쉬워요.”

그때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경희가 끼어들었다.

“이 잡지가 그렇게 대단해요? 난 서양만화는 적응이 잘 안돼서.”

경희의 질문에 미치코가 대답했다.

“대단하죠. 전 세계에 구독자가 엄청 많아요. 물론, 팔리기야 일본잡지가 훨씬 많이 팔리기는 하지만, 그쪽은 인지도가 상당하거든요.”

“아, 예술, 뭐 그런 거요?”

“맞아요. 그게 딱 맞는 표현이네. 전 세계 대단하다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만화잡지니까요.”

“와, 그래요? 난 그냥 뭔가 정신없는 만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솔직히 제 취향에도 별로긴 해요.”

“그렇죠.”

“그럼요.”

미치코와 경희는 죽이 잘 맞는지 열심히 수다를 떠든다.

아무튼 내 입장에선 기존 작품보다 더 자유롭게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거부감이 들었다.

나름 충분히 소년만화로서 충분히 자유롭게 만들고 있음에도 더 자유를 강요하는 것도 이상하고.

지금은 연재원고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니까, 그냥 잊는 게 속편하다.

그런데 그 일 있고 나서도 헤비메탈에서 요청이 몇 번 더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쪽에선 은근히 동양인이라는 것을 비하한 모양인지, 이런 저런 요구도 여전했고.

매번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왜 저렇게 끈질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로가 그 점을 좀 알아본 모양이었다.

- 삼사라 작가의 작품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잡지 구독자들의 요청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도 잘 몰랐는데, 삼사라가 생각보다 외국에 제법 알려진 모양이더군요.

“그래도 저쪽 성향에 맞출 생각은 없어요.”

- 그건 저도 찬성입니다. 어쨌건 삼사라는 저희 미쯔다쇼텐의 간판 만화니까요.

간판만화라.

대놓고 저렇게 말하니까, 쑥스럽네.

어쨌거나 이 시절은 서양 사람들에겐 일본이란 변방이고 거기서 나온 만화도 서양 만화에 비해 인정을 제대로 못 받던 시기다. 그러다보니, 요청을 하면서도 저렇게 목을 뻣뻣하게 세우는 거고.

하지만 이 시절 일본은 엄청난 기세로 성장해나가던 나라다보니 서양, 특히 미국에서 곱게 안 본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실버도 최근 비슷한 얘기를 한 것 같고.

어쩌면 이런저런 복합적인 사정 때문에 요청은 하되, 자존심은 세우고 싶다는 거겠지.

아직은 인종차별도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기니까.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굳이 머리를 숙이면서까지 만화를 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애초에 헤비메탈 같은 잡지에 만화를 싣겠다는 목표도 없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삼사라 단독으로 미국코믹스처럼 이슈별로 판매하면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먼 미래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 일단 접어둘 생각이다.

지금은 일본활동에만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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