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 (5)
니시다의 말이 아니더라도 키도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평소 많이 생각하고 있던 점이다.
지금의 삼사라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는 걸.
소년 히어로에서 비빌 수준은 한참 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도 진심의 남자로 부활하지 않았던가. 그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리 큰일도 아니다.
다만, 1위에 대한 갈증이 전보다 약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키도가 입을 열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보게, 니시다.”
“······.”
“자네는 인생의 목표가 소년 히어로의 1위인가?”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니시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왜 그렇게까지 소년 히어로 1위에 목을 매는 거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내가 연재를 하는 잡지니까 당연한 거죠. 키도 선생님은 진심의 남자를 포기 하셨습니까?”
그 말에 키도가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제 배가 부른 겁니까?”
“배는 진작 불러 있었어.”
“말장난 하지 마시구요. 설마 그냥 2위에 그냥 안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키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는 곧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얄팍한 수로 1위를 노린다는 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건가?”
“······얄팍한 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 진짜 그렇게 생각해?”
“······.”
니시다가 그의 시선을 살짝 피하자 그제야 굳었던 키도의 표정이 펴진다.
“만화에 대한 의욕이 생긴 건 좋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리고 솔직히 이런 어설픈 이벤트 따위로 이길 상대도 아니고. 내 말에 동의하지?”
그 말에 니시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스스로도 키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키도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런 니시다의 마음을 알았는지 키도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나는 솔직히 요즘 삼사라를 보면서 시야가 예전보다는 좀 넓어졌다네.”
“시야라뇨?”
“자네는 지금 소년 히어로가 다른 유명 잡지에 비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니까, 무작정 여기서 1위를 하고 다른 잡지들과 경쟁을 하겠다는 거잖아.”
“······.”
이것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좋은 방법······, 그게 뭡니까?”
“그냥 삼사라를 지금처럼 따라가는 거야. 계속 쭉.”
그 말에 니시다의 미간에 골이 패인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영영 멀어지는 거잖습니까.”
“삼사라의 지금 위치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위치라니.”
“삼사라 정도의 인기 만화를 유명잡지들에 비한다면 말이야. 가령 지금 제일 잘나가는 소년점프정도라면 말일세.”
잠시 생각하던 니시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판매부수로 생각해보면 중하위권 정도가 아닐까요?”
“그래, 판매부수로만 따진다면. 하지만 실제로 소년점프 중하위권 정도에 있는 작품과 비교하면 어떻지?”
“그야······.”
니시다가 말끝을 흐린다.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독보적인 만화잡지 순위에서 1위가 슈에이샤의 소년점프다.
얼마 전 주간 판매량 400만부고지까지 갔다는 소식에 다른 잡지들도 열을 올리고 있지만, 지금의 소년점프는 그야말로 최고의 작가들로 포진된 상태, 결코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철옹성의 분위기였다.
이미 드래곤볼, 북두의 권을 선두로 캡틴츠바사에 오렌지로드, 근육맨, 은아전설 위드, 거기다 최근 캣츠아이를 끝낸 호죠 츠카사의 신작 ‘시티헌터’까지 연재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 만화들이 죄다 그곳에 모여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 곳이라면 어지간한 만화가 연재를 시작하더라도 삽시간에 순위에서 밀려 떨어져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삼사라라면 어떨까.
판매량만으로 따진다면 분명 그런 작품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잡지사의 능력부족에서 오는 판매량일 뿐이다.
만약 소년점프에서 연재를 했다면 중상위권은 충분히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그제야 키도가 하는 말을 이해한 니시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보며 키도가 입을 열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겠지만 아마 삼사라가 월등할걸? 솔직히 소년 히어로 같은 이름 없는 잡지임에도 상당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을 정도니까.”
“······.”
“자 이렇게 생각해 보자고. 지금 우리가 엄청난 숫자의 자동차들이 펼치는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다, 뭐 이렇게. 그렇다면 거기서 지금 우리는 엄청난 속도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스포츠카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거야. 그냥 이 폭주하는 차를 뒤 쫓는 것만으로도 다른 것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게 되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에 니시다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무리를 해서 내 앞에 달려가는 차를 추월할 필요가 있을까?”
니시다는 그제야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키도를 쳐다봤다.
“그렇다는 건 그럼······.”
“그래. 지금은 뒤를 바짝 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거야. 아니 물론 이것도 결코 쉬운 건 아니지. 당장 지금만 해도 우리잡지에서 경쟁자들이 제법 생겼으니까.”
“······그렇군요.”
“내 생각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삼사라 혹은 써니의 차기작이 분명 소년점프의 작품을 모조리 밀어내고 최고가 될 날이 올 거야.”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존경하는 거구요.”
모처럼 니시다가 키도의 말에 동의하자 근처에서 구경만 하던 다나카가 깜짝 놀랐다.
키도 선생님과 늘 대치 점에 서 있던 니시다가 결국 그의 말에 수긍할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곧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자자, 그러니까 지금은 자네나 나나 기본에 충실하면서 어떡하면 삼사라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가에만 집중하자고. 그리고 언젠가 써니가 최고가 되어 있을 땐 우리도 그와 비슷한 곳에 서있게 될 테니까.”
“그럼 그땐 써니 선생님만 따라잡으면 최고가 된다는 거군요.”
그 말에 키도가 피식 웃었다.
“그래 맞아. 하지만 그건 내 이야기지.”
“네?”
“내가 2위니까,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바로 나라는 말이야. 아쉽지만 그때가 되더라도 자네는 넘버 쓰리일 뿐이지. 그러니까 써니를 이기려면 나부터 넘어야 된다는 걸세.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이가 없군요. 결국 키도 선생님만이 써니 선생님을 이길 수 있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야, 잘 알아듣는구만.”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다.
니시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가 피식 웃더니 곧 몸을 돌렸다.
“키도 선생님 괜히 시간낭비 한 것 같군요. 물론 일부 공감 가는 말씀도 있었지만요. 그러나 역시 마지막 말씀만큼은 용납할 수 없네요. 저는 솔직히 소년 히어로에서 써니 선생님 빼고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으니까.”
“오, 그래? 나랑 똑같네?”
“······두고 보도록 하죠.”
“어?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그럼 몸 건강히 계십시오.”
“······이봐, 그래도 이야기는 좀 더 듣고.”
“사양하겠습니다.”
곧장 화실을 빠져나가려는데 그때 키도 부인이 쟁반을 들고 화실로 들어오다 니시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 벌써 가시는 건가요?”
“네. 키도 선생님과의 즐거운 대화가 끝나서요. 사모님도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거 맛이라도 보고 가세요.”
“아니······.”
니시다가 거절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들고 온 음식의 비주얼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냄새까지도.
그때 근처에 있던 다나카가 눈을 크게 뜨며 다가왔다.
“와, 이거 또뽀끼네요.”
“떡볶이랍니다.”
“잘 먹겠습니다!”
다나카가 그렇게 말하며 포크를 쥐려고 하다가 흠칫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키도 부인의 눈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에 깜짝 놀란 탓이다.
이내 부인이 시선을 다시 니시다에게 돌렸다.
“써니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들어서 특별히 배운 건데, 한번 맛이라도 보세요.”
“써니 선생님께서요? 그럼 이거 한국음식입니까?”
“그럼요.”
그 말에 니시다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포크를 쥐고는 곧장 붉은 양념에 휩싸인 떡 조각을 찍어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매운 느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맛 또한 새로우면서도 상당히 중독성 있다.
“이거 맛있군요.”
“어머, 매우실 텐데 잘 드시네요.”
“좀 더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많이 드세요. 좋아하신다면 가실 때 따로 챙겨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가려던 것을 멈추고는 소파에 앉았다.
그때 부인이 키도를 슬쩍 돌아보자 그가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그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마저 이야기를 해볼까?”
그 순간 니시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음식을 모른 체하고 돌아서기는 아쉽다. 이 새로운 음식이 맛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건 써니 선생님과 그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을 먹는 동안은 저 말 많은 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떡볶이를 입에 넣으며 슬쩍 키도의 부인을 올려다본다.
그녀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와, 이게 다 뭐니? 팬레터? 선물?”
화실 식구들이 테이블 앞에 모여앉아 커다란 박스들을 해체하고 있는 모습을 본 이대봉이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었다.
“어, 제임스 오빠 왔어?”
“오빠도 이거 좀 도와.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이게 다 뭐냐고.”
그 말에 내가 입을 열었다.
“소년점프에서 보내 온 거야.”
“소년점프? 거기서 왜?”
“팬들이 편집부로 보낸 것들이라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
이대봉이 혀를 한번 할짝거리더니 곧바로 박스 하나를 붙들고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가위로 뜯기 시작했다.
나도 열심히 박스를 뜯는다.
내가 뜯은 박스에선 편지들이 잔뜩 들어있다.
“와, 과자다, 과자. 엄청 많아.”
포텐이라도 터졌다는 듯 경희가 좋아라 한다.
처음 보는 과자가 커다란 박스에 가득 들어있어서 그런지 행복에 겨워보인다. 물론 곁에 있는 선희의 표정도 비슷하다.
먹을 거 앞에서는 확실히 쌍둥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표정이 비슷하다.
박스에서는 과자 같은 것들을 비롯해, 각종 프라모델, 편지, 생활용품, 거기다 건강용 비타민이나 박카스처럼 생긴 것들도 있다.
아무튼 듣기론 모두 점프독자들 중 드래곤볼 팬들이 보낸 거라는데, 양이 엄청나다.
모두 박스를 뜯으며 즐거워하는 그때 전화가 왔다.
“윤환아, 아카기 씨 전화.”
“어.”
아무래도 어제 출간된 소년점프에 대한 이야기인 모양이다.
칼파나와 손오공의 액션전투신이 주된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지로의 말로는 콘티를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뭐, 그 덕분에 적지 않은 금액이 소년점프에서 보내져 오기도 했었고.
어제 저녁에는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엄청 흥분해 있었는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아들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자 그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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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