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07화 (207/425)

콜라보 (4)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던 지로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 네, 화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카기입니다.”

- 어머, 안녕하세요, 아카기 씨.

상대방이 음성에 반가움이 느껴진다.

“이윤환 선생님 부탁드리겠습니다.”

- 네, 잠시 만요.

잠시 후 윤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카기입니다.”

- 네, 안녕하세요.

“오늘 소년점프가 발매되었습니다. 40페이지짜리 센터컬러였습니다. 방금 저도 읽었고요.”

- 센터 컬러요? 와, 이번에 정말 무리하셨네.

“재밌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칼파나와 손오공의 대결이 예상되는 장면에서 끝났는데, 다음편이 너무 궁금했을 정도입니다.”

- 거기까지 진행했구나.

이윤환도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의외라는 듯 말한다.

“그런 것 같긴 하던데, 혹시 써니 선생님께서 직접 네임을 만든 건가요?”

- 아니요. 거기 부분은 원래 토리야마 선생님이 구상한 이야기에요.

“그런가요? 이상하네.”

- 왜요?

“칼파나의 특징이 너무 잘 살아있어서, 분명히 써니 선생님이 네임작업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 특징요? 어떤 거요?

“뒷굽을 툭 치는 버릇이요, 거기다 손가락 모양이라든가, 특유의 행동도 너무 비슷해서.”

- 아, 그러고 보니, 그 부분도 의견을 넣긴 했는데, 적용이 된 모양이네요.

“그렇죠? 역시.”

- 그나저나 아카기 씨는 다르군요. 용케도 그런 걸 잘 찾아냈네요.

이윤환이 감탄한 음성으로 말하자 지로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뇨, 담당이면 당연한 일이죠.”

- 아무나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하며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사실 삼사라연구회 모임에 가면 각종 분석자료들이 있는데, 그곳에는 칼파나의 버릇이라는 항목도 있다.

그중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이 뒷굽을 툭툭 치는 행위다.

팬들 사이에선 ‘도로시 액션’이라고도 하는 행위인데, 그런 세세한 행동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그거 말고도 사소하지만 특징적인 동작들이 몇 더 있었는데, 그것도 잘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써니가 네임을 만든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온다.

- 흐음, 그럼 앞으로 나메크 폭발····· 생기···· 허······에서 사용······까?

전화기 너머에서 이윤환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린다. 수화기를 막고 있는지 잘 들리지는 않는다.

“네? 잘 안 들리는데, 나메크가 뭡니까?”

- 앗!

지로의 말에 이윤환이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뭔가 당황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냥 혼잣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아, 네. 아참 그리고 오늘 중으로 카와다가 찾아갈 겁니다. 미리 작업된 원고가 있으면 카와다에게 주시면 됩니다.”

- 그래요? 그럼 원고랑 이번에 드래곤볼에 보냈던 네임도 같이 드리죠. 솔직히 진짜 원고에서 쓰일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습니까? 그거 기대가 되네요.”

실은 지로가 전화를 건 진짜 목적도 이거였다.

- 그럼, 다음에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지로의 표정이 밝아졌다.

미치코가 오면 가장 먼저 네임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소년점프의 가장 뒷부분인 작가후기를 펼쳤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다음편의 전투신이 더 재밌어요. 기대해 주세요.]

토리야마 선생의 후기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럼 써니 선생님의 콘티가 그대로 적용되는 건가?”

* * *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큰일 날 뻔 했네.”

설마 나메크라는 말을 들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마도 어설프게 수화기를 막았던 모양이다.

실은 아까 지로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내용은 바로 프리저의 공격으로 나메크성이 폭발하던 시점의 이야기라 결코 흘려서는 안 되는 스포였으니까.

지금 칼파나와의 인연이라면 그 장면에서 조금 더 납득이 되는 탈출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일종의 기대감 때문에 생각한 거였다.

아무튼 앞으로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한다.

만약 중간에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지지 않는다면.

어?

그렇다면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그렇게 고민하는데 그때였다.

“내거 사용된 거야?”

“응? 뭐?”

선희의 물음에 깜짝 놀랐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시작부분에 등장하는 칼파나의 버릇 같은 건 받아들인 모양인데, 아직 전투가 시작된 건 아니라서 정확한 건 모르겠다.”

“아.”

머리를 끄덕인 선희가 곧장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장면이긴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 * *

“선생님 이거 보셨어요?!”

키도의 어시 중 한명이 허겁지겁 화실에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그때 네임을 확인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키도가 책상에서 머리를 들어올린다.

“음, 다나카냐? 오늘은 오후 늦게 출근하면 되는데 왜 벌써 왔어. 나 아직 데생 준비 안됐는데.”

키도의 말대로 화실엔 아직 키도 말고는 아무도 없다.

모두 새벽까지 작업을 한 관계로 오늘은 늦게 출근하기로 되어 있었던 탓이다.

“선생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무슨 일인데.”

“이거요.”

그렇게 말하며 두꺼운 만화잡지를 내밀었다.

“뭐야, 또 소년점프냐?”

최근의 소년점프는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었다.

판매량에서부터 다른 잡지들을 압도하고 있었으니, 키도의 입장에서는 별로 반가운 잡지는 아니었다.

그런 걸 어시가 들고 들어와 자신에게 내밀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키도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시는 여전히 흥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드래곤볼요, 드래곤볼.”

“아, 그거. 요즘 잘나간다며? 그런데 그게 왜?”

“여기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표지를 보여준다.

그러자 시큰둥한 표정을 짓던 키도의 표정이 확 변했다.

“어? 뭐야? 그림자 그거, 설마 내가 아는 그거 맞아?”

“맞아요. 켄.”

“엥? 진짜? 갑자기 드래곤볼에 그게 왜 나와?”

“이거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보여준다.

“젠장, 센터컬러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한번 읽어보세요.”

다나카가 내민 책을 받아서는 드래곤볼을 읽던 키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리고는 곧장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왜 이렇게 끝나는 거야? 아 진짜! 궁금하게.”

“선생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지금! 안 그래도 삼사라와 격차가 자꾸 벌어져서 큰일인데.”

“응?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저희도 써니 선생님처럼 유명 작가의 만화와 협업하는 게 어때요? 그래서 이참에 다시 1위를 탈환하는 건 어떤가해서요.”

그 말에 키도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리고는 곧장 다나카를 쳐다본다.

그런데 그 표정이 좀 심상치 않다.

긴장한 다나카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선생님.”

“협업? 그러니까 자네 말은, 다른 인기 만화의 힘을 빌려서라도 1위를 다시 차지해야 한다는 건가?”

키도의 질문에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뭐 그렇죠.”

“자네는 지금 써니 쪽에서 이걸 부탁했다고 생각하는 거군.”

“아무래도 토리야마 선생님과 친분도 있으니까요, 그러지 않았을까요?”

“한심하군.”

“네?”

“자네의 입에서 그런 바보 같은 말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실망이야.”

그 말에 다나카가 흠칫하며 놀란다.

키도의 호통 때문인지 몰라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 억지스러운 말이라는 건 금방 느껴졌다.

삼사라가 다른 만화에게 빌붙는다는 건 결코 생각하기 힘들었으니까. 다만, 지금 진심의 남자가 삼사라와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린 거였다.

곧바로 다나카가 키도에게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니야, 괜찮아. 이건 다 내 탓이야. 2위에 머물러만 있으니까, 모두 그렇게 조급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겠지. 내가 할 말이 없구만.”

“아닙니다, 선생님.”

“아니, 내 탓일세.”

“선생님.”

그때였다.

“그런 신파는 그만하시고 이젠 키도 선생님도 뭔가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예상하지 못한 불청객의 등장이었다.

“에스퍼 존의 니시다 유키 씨에요.”

언제 왔는지 키도의 부인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저기, 사모님. 그렇게 너무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아, 네. 오랜만에 등장하셔서 이름을 잊어버렸을까봐서요.”

“저기, 여보. 난 잊어먹지 않았소.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저도요.”

“호호, 죄송해요. 혹시나 해서요. 어쨌거나 그럼 전 이만 자리를 비켜 드릴 테니 말씀들 나누세요.”

그렇게 말하며 거실 쪽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가볍게 웃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모님은 참 재미있으시군요.”

“자네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거북하군.”

“······네?”

“그나저나 방금 했던 말은 또 뭐야? 현실적인 방법이라니?”

“······.”

잠시 한숨을 푹 쉬던 니시다가 곧 입을 열었다.

“키도 선생님은 1위를 원하시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누가 정해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싸우는 것만이 정정당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당연한 거 아닌가? 내 만화니까 내 힘으로 그리는 게 맞지.”

키도의 말에 니시다가 콧방귀를 뀐다.

“만화를 혼자 그리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죠. 영화도 그렇고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그 작품이 한사람에게서 만들어져야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굳이 작품을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우리도 힘을 합쳐보자는 말입니다.”

“뭐? 설마 드래곤볼처럼 하자는 건가?”

그렇게 말하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도가 니시다를 쳐다본다.

“애초에 자네랑 난 세계관 자체가 양립하기 어려운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같은 장소에 자네 캐릭터랑 내 캐릭터가 있다면 이질감이 너무 크다고.”

“아뇨, 그게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뭘 하자는 거야?”

“한편 정도는 이벤트로 서로 상대편의 만화를 그려보자는 겁니다.”

그 말에 키도가 황당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갑자기 왜 그래, 소름끼치게.”

평소 자신의 만화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니시다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저는 진심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삼사라를 이길 수 없어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눈을 크게 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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