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 (3)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선배인 야지마가 한참 식자작업에 정신없던 지로에게 갑자기 달려들어서는 소리쳤다.
“그거 정말이야?!”
그 때문에 지로가 화들짝 놀랐다.
“아, 깜짝이야!”
그러더니 손가락에 붙은 식자들을 조심스럽게 다시 떼고는 인상을 팍 썼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어? 이거, 이거 잡아떼는 거 좀 봐? 지금 내 앞에서 모른다고 하는 거냐?”
“······?”
무슨 소린지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지로가 돌아본다. 그 때문에 더 화가 난 야지마가 지로를 째려보며 이내 묵직한 만화잡지를 툭 내밀었다.
“이거 말이야! 이거! 이걸 보고도 진짜 모른 척 할래?”
“······?”
야지마가 불쑥 내민 건 소년점프였다.
그것을 본 지로가 흠칫 하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피한다.
“이, 이게 왜요?”
지로의 반응에 야지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된다.
“이거 봐, 이거 봐. 이미 알고 있었구만.”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바보냐? 이 정도쯤은 금방 눈치 챈다고. 내가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그래요? 방금 아까 전화 받고나서 튀어나가신 것 같더니.”
그 말에 야지마가 흠칫하더니, 헛웃음을 짓는다.
“그래 맞다, 이 자식아. 다른 출판사 친구 놈 전화로 알았다. 이제 됐냐?”
그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지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은 야지마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너도 참 너무하다.”
“왜요?”
“왜요라니, 너는 이런 엄청난 것이 진행 중이었는데 내게는 어째 한마디도 하지 않았냐?”
그 말에 지로가 콧방귀를 뀐다.
“제가 담당이에요, 담당. 아무에게나 중요한 얘기 막 하지 않습니다.”
“아무에게 라고? 내가 아무냐? 거기다 나 얼마 전에 팀장으로 승진한 거 몰라? 그런데 이런 대접이야? 이 친구가 팀장을 뭐로 보고.”
저놈의 승진 타령을 듣는 것도 벌써 보름이 넘었다.
“선배는 우리 팀도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저희 쪽 팀장님은 이런 거 일일이 보고 하지 않아도 별소리 안하세요.”
“그 선배야 원래 매사가 무관심이고.”
그때 뒤쪽에서 살벌한 음성이 들여왔다.
“매사가 무관심이라서 미안하게 되었어.”
깜짝 놀란 야지마가 돌아서자 살벌한 기운을 뿜으며 다가오는 팀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구나, 그래서 너는 내 관심을 무척이나 받고 싶은 모양이라는 거지?”
팀장이 다가오며 살기를 풀풀 풍기자 야지마가 단번에 태세 전환한다.
“으이그, 농담이잖아요. 팀장님은 매사가 왜 그렇게 심각해요?”
야지마의 말에 팀장이 자신의 가슴 툭툭 치며 말했다.
“농담? 내 가슴에 남은 이 거는 어쩌고?”
“그게 뭔데요?”
“후배 놈이 할퀸 상처.”
“오, 그 표현 좋다.”
“그, 그래? 괜찮았어?”
야지마의 칭찬에 팀장이 표정이 급 밝아진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야지마 특유의 아첨이 발동했다.
“요즘 선배 담당한 걔가 그렇게 재능이 있다면서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럼요. 나 엄청 욕심나더라니까. 처음엔 별 볼일 없어 보이던데, 재능이 대단하더라고요.”
야지마의 계속되는 칭찬에 팀장의 코가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내가 걔 발굴한다고 엄청 힘들었잖냐.”
“자자, 그럼 휴게실로 가서 커피한잔 하면서 대화를. 어때요?”
“그거 좋지.”
갑자기 급 친해지며 두 사람이 휴게실로 같이 향한다. 어깨동무까지 하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로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툭 던진다.
“나 참, 두 사람 인연이네, 인연이야. 정말 딱딱 맞는다니까.”
그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식자작업을 하려다 멈칫했다. 곁에 야지마가 두고 간 소년점프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자 주변을 슬쩍 돌아보던 지로가 서둘러 그것을 집어 들었다.
대충 이야기는 전해 듣긴 했다. 하지만 그다지 구체적이지는 않아서 계속 궁금해 하고 있었다.
우선 소년점프의 표지를 살펴보았다.
표지에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꼬마 손오공이 키 큰 남자의 검은 형상을 올려다보고 있는 게 보인다.
특유의 머리스타일과 날렵한 체형.
바로 실루엣만으로도 삼사라의 주인공인 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물론,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애매한 느낌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표지 속 손오공이 비장한 눈빛으로 그림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뭔가 호기심이 잔뜩 동하게 만드는 표지.
그리고 그림의 곁에 [드래곤볼, 삼사라 Collaboration!]이라고 큼직하게 적혀있다.
“와, 생각보다 거창하게 했네.”
들은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와 닿는 그림이다.
소년점프에서 제대로 지원사격하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삼사라, 드래곤볼 팬 모두에게 큰 관심을 받기 충분해 보인다.
표지를 보고 있으니 얼마 전에 이윤환과 했던 통화를 떠올랐다.
- 네임을 보고 나름 의견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토리야마 선생님이 우리 쪽 의견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것을 써보고 싶다해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이 선생님의 의견요?”
- 아뇨, 선희의 의견입니다.
“써니 선생님의 의견요?”
- 네.
“궁금하네요. 써니 선생님의 의견. 켄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 하하, 켄은 뭐 별거 없어요. 나름 의견을 내긴 했는데, 솔직히 너무 큰 기대는 안하려고요. 괜히 실망할 수도 있고.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드래곤볼 담당인 토리시마에게서 따로 연락이 왔었다.
써니 선생님의 의견을 대부분 반영하고 싶다고.
그런데 구체적인 건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작품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외부에 알려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궁금증이 더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소년점프가 발매되는 날.
사실, 지로도 그것이 궁금해 식자작업을 마무리하고 난 뒤, 인쇄소로 넘어갈 때 서점에 들러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야지마가 이렇게 들고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야지마 앞에서는 별거 아닌 듯 태연한 척 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궁금한 건 담당인 본인이었다.
삼사라와 드래곤볼은 전혀 분위기가 다른 작품이다.
그런 삼사라의 주인공 켄이 드래곤볼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긴장된다.
지로는 그렇게 표지를 바라보다 곧장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갔다. 그리고 드래곤볼 장면 앞에서 딱 멈췄다. 표지에 칼라로 등장했던 그 그림이 속표지에도 등장했다. 당연히 흑백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센터컬러다.
생각보다 이번 화에 더 힘을 실어주려는 모양이다 싶어 곧장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리고 시작되는 장면.
우승결정이 되고 난 뒤 곧장 켄이 등장했는데 그 모습에 기침이 튀어나왔다.
콜록, 콜록.
특유의 강렬한 스타일과 달리 순해 보이는 외모의 켄이라니.
“켄의 카리스마는 어디가고 이 개그캐릭터는 뭐야?”
당황한 지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볼의 팬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삼사라의 담당으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 별거도 아닌 일로 딱딱하게 군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사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그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원작자가 허락한 상황에서 그것을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일.
솔직히 이정도면 담당인 자신뿐만이 아니라 원작 그림의 주인인 써니도 실망할지 모른다. 물론 팬이라면 더더욱 그럴지도.
지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머리를 흔들고는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이내 더 허망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개그캐릭터 화 된 켄을 보는 것도 불편한데, 켄의 등장만큼이나 허망하게 마무리가 된 것이다.
사라진 잭키춘 덕분에 이벤트는 무산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켄과 손오공이 대결하나?”
표지에서는 분명 그런 뉘앙스를 풍겼으니까 당연한 기대다.
그런데 잠시 후 실망한 켄이 경기장을 떠나버린다.
“······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표지와는 내용이 다른 전개다.
손오공과 켄의 대결.
표지에서 그렇게 커다란 기대감을 던져주더니 이렇게 허망하게 마무리하는 건가싶어 기분이 다운되었다.
이런 식으로 삼사라의 캐릭터를 소모시키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인지도의 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삼사라의 홍보엔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역시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묘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는데, 이번 편은 센터컬러이면서도 생각보다 페이지가 길다.
20페이지 안팎으로 연재한다는 토리야마 선생이 이번엔 좀 무리를 한 모양이다.
이정도면 드래곤볼의 팬들에겐 엄청난 선물이 될 것이다.
그들만의 축제일지도 모른다는 게 또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리시마 선생의 제안을 자신의 선에서 차단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리야마 선생이랑 이윤환과의 친분을 생각하면 또 그러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진 얼굴이 되어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페이지에서 새로운 이벤트가 열린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운 이벤트라니, 무슨 상황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또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형태의 부츠가 보인다.
“······어?”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다크 프린세스의 칼파나다.
물론, 그보다 삼사라에서도 등장하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설마, 칼파나가 드래곤볼에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칼파나의 외모는 켄과 달리 원작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니, 토리야마 선생 특유의 색기스러운 느낌까지 더해져 묘한 매력을 풍긴다.
어쩌면 이런 느낌을 좋아할 팬들도 많을 거라는 느낌이다.
지로도 이런 칼파나의 느낌이 나쁘지 않다.
한편으로는 켄과 너무 대조적으로 묘사한 칼파나를 보며 떠오른 게 있다.
평소에 다크 프린세스의 열렬한 팬이라더니, 대놓고 차별을 한 것이다.
어쩐지 작가후기가 기대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만화에 집중했다.
느닷없이 등장한 칼파나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긴 속눈썹의 눈을 깜빡이다 무대 위의 손오공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 그녀가 물었다.
[귀여운 꼬마네. 여기 켄이 오지 않았니?]
[켄이 누군데?]
[음,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생긴 사람.]
이해할 수 없는 동작으로 남자를 표현한다.
누구라도 쉽게 알기 어려운 묘사다.
하지만 손오공은 용케 알아챈 모양인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아까 그 사람, 돌아갔어. 저쪽으로.]
[뭐? 이런······, 한발 늦었나?]
칼파나가 붉을 입술을 삐죽거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게 그녀가 고민하는 데 손오공이 천진난만한 음성으로 묻는다.
[당신도 강해?]
그 말에 칼파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는 거야, 꼬맹이가.]
[아까 그 남자 강해보였어.]
[음, 좀 그렇긴 하지.]
[당신은 그 남자보다 약해?
손오공이 여전히 천진난만한 음성으로 물었지만, 칼파나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헛소리! 내가 훨씬, 더 강해. 훠얼씬!]
[정말?]
[정말이야!]
[그럼, 나와 대결해!]
[뭐?]
그렇게 페이지가 끝이나 버린다.
“······어? 뭐야? 정말 전투 이벤트가 열리나?”
지로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