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05화 (205/425)

콜라보 (2)

현지 드래곤볼의 인기가 슬슬 폭주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당연히 그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지금 진행 중인 천하제일무도회 편이고.

지금 토리야마 아키라가 한참 삘을 받아 있을 시기인 건 잘 알겠는데, 느닷없이 우정출연이라니.

당황스러운 일이다.

- 이미 아시겠지만, 지금 드래곤볼의 인기가 엄청납니다. 다시 예전이 닥터슬럼프의 인기를 다시 찾았다고 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최근 엄청난 인기에 부담을 느끼고 계신모양입니다.

“토리야마 선생님께서요?”

- 네. 그런데 최근 담당이신 토리시마 씨와 스토리 미팅을 하다가 저희 삼사라가 떠올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구요.

“······.”

한참 인기가 높아질 시기라면 부담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히트작을 냈다면 더욱 더 그럴 테고.

하지만, 설마 이 상황에서 삼사라가 떠올랐다는 건 정말 의외의 일이다.

원래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을 텐데.

‘토리야마 선생님, 당신은 해결할 수 있어요. 원래 그렇거든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보다 원래 드래곤볼에서는 애당초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라서 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원래의 이야기와 다르다고 거절하자니 그것도 그렇고.

받아들인다면 내 기억 속의 드래곤볼과 다른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덕후로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단 가장 먼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지금 천하제일무도회 출전 캐릭터 명단이 나와 있고, 한참 이야기가 진행 중인데 괜찮을까요?”

- 선생님도 읽고 계셨던 모양이시군요. 네, 저도 사실 그 문제에 대해 똑같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상중인 건 스페셜 이벤트 형식으로 경기 후에 우승자와의 시합을 생각하고 계신다 하시더군요.

“우승자요?”

- 네.

우승자는 무천도사인데?

그럼 무천도사랑 붙는 건가?

아직은 이야기에서 우승자가 나온 상황이 아니니까, 대놓고 이 부분을 물어보긴 그렇다.

그리지도 않은 이야기의 결론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니까.

바보짓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어쨌거나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는 토리야마가 결정할 문제니까 그건 내가 생각할 건 아니다.

- 일단 저쪽에선 삼사라의 켄이랑, 가능하다면 다크 프린세스의 칼파나도 꼭 좀 등장시켜보고 싶어 하는 눈치긴 한데.

“둘 다요?”

- 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로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제가 그리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인기 만화에 등장하면 홍보효과도 클 테니,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죠.”

당연히 OK지.

내 말에 지로의 음성이 밝아진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저쪽에 연락해서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네.”

-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묘한 기분이다.

삼사라를 연재하는 중이고, 이미 인기 만화의 대열에 들어서긴 했지만, 드래곤볼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드래곤볼에 삼사라의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기대가 엄청 되고 있다.

덕후인 내게는 전설과도 같은 만화인 드래곤볼에 내가 만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정 출연한다는 건,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다.

“야, 이것들아. 그만 좀 먹어! 벌써 반이 넘게 사라졌어!”

이대봉이 버럭 하는 소리였다.

돌아보니 화실 식구들이 죄다 테이블 앞에 모여서 행복한 표정으로 쩝쩝거리고 있다.

“······아.”

전화 때문에 잊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려하다가 잠시 보류한 상황이었다는 걸.

그 순간 들뜬 마음이 밀려나고 지로에 대한 원망이 생긴다.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가지고선. 다른 시간도 많은데.

“오빠도 어서 먹어. 얼마 안 남았어.”

경희가 맛있게 씹으며 내 쪽으로 손을 아래위로 까닥거린다. 경희 곁에 쪼그리고 앉아 정신없이 흡입하고 있는 선희도 보인다.

머뭇거리다간 한 조각 얻어먹기도 힘들겠다싶어 서둘러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

며칠 후, 일본에서 화실로 소포가 날아왔다.

도쿄에서가 아니라 나고야에서 온 거다.

나고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름을 확인했더니, 익숙한 이름이다.

토리야마 아키라.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서 서둘러 소포를 뜯었다.

역시, 안에는 복사된 콘티가 있다.

거기에 자그마한 쪽지도 끼워져 있다.

[허락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토리야마의 오너캐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대화할 때는 못 느끼겠는데,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유쾌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놀라운 일이다.

“와, 콘티라니. 대단한데.”

내가 복사된 종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로 말하자, 근처에 있던 박상식이 날 이상하다는 표정을 쳐다본다.

“그런 말은 읽어보고 나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내가 놀란 건 내용 때문이 아닌데.”

“······그럼 뭔데?”

“토리야마 선생님은 미리 이야기를 만들어두는 타입이 아니라서.”

“뭐? 그럼 어떻게 하는데?”

“원고 마감직전에서야 스토리를 만드는 타입이야. 그러니까 자신도 어떤 얘기로 흘러갈지 모르고 만든다는 거지.”

“그때그때 떠오르는 데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거야?”

“어. 내가 알기로는 그래.”

“그런데도 인기가 그렇게 많다고?”

“어.”

“설마, 닥터슬럼프도?”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 닥터슬럼프에 자동차 경주 장면에서 누가 우승할지 와이프랑 후배와 내기를 했는데, 본인이 졌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지.”

“그게 말이 되냐? 본인이 만든 이야기의 결론으로 내기를 해서 졌다고.”

“뭐, 들리는 소문엔 그렇다고.”

내 말에 박상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초판 200만부를 넘겼다니, 정말 대단하네.”

“그냥 말 그대로 천재지 뭐.”

그리고 노력천재이기도 하고.

아무튼 내 말에 박상식이 피식 웃었다.

“네가 천재라고 말할 정도면, 그건 진짜 천재가 맞지.”

“완전 천재지. 아무튼 그런 양반이 미리 콘티를 만들어 보냈으니, 대단하다는 거야.”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것까지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 직접 만난 적도 없다며? 그리고 가끔 전화통화에서도 그 정도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면서.”

어떻게는, 당연히 인터넷 때문이지.

뭐, 지금 시절에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뭐라고 대답할까 살짝 고민했는데, 늘 그렇듯 평소처럼 박상식은 그냥 스스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야, 네가 가진 지식의 출처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냐. 이제까지 네가 만든 이야기를 콘티로 만들면서 놀라는 것도 너무 많아서 이젠 그것도 식상할 지경인데.”

박상식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내가 들고 있는 콘티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아무래도 내 말 때문에 콘티의 내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긴, 이 실내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고 궁금해 하겠지만.

그리고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그 무엇도 아닌 드래곤볼의 콘티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곧 드래곤볼의 콘티를 조심스럽게 펼친다.

“······?”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손이 조금씩 떨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지내던 미래세계의 만화 팬이라면 공감하는 건 당연한 일.

결코 알 수 없는 미공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

심호흡을 하면서 그림을 넘겨갔다.

내가 알고 있는 장면, 그리고 미세하게 다른 장면이 뒤섞여있다.

솔직히 이미 진행 중인 내용도 내가 기억하는 장면과 다른 것이 조금 있긴 하다.

아마도 중간에 나와 친분이 생기면서 작품에도 조금 영향을 준 탓이리라.

그래도 전체적인 이야기에 변화는 없다.

이건, 팬으로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큰 줄기만 다르지 않다면야,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도 볼 수 있으니 속된말로 개이득인거지.

아무튼 넘겨가다 보니 원래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나타난다.

우승자가 잭키춘으로 결정이 된 이후 갑자기 스페셜 이벤트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삼사라의 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상식이 켄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윤환아, 이거 켄이야?”

“그런가보네.”

“와, 이 양반이 그리니까 이렇게 또 느낌이 다르네.”

박상식이 재밌다며 웃는다.

나도 켄을 보자마자 웃음이 절로 나온다.

토리야마 특유의 그림체 때문에 켄의 캐릭터가 약간은 둥글둥글하고 단순화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반쯤은 개그 캐릭터화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름 특징을 잘 살려서 표현한 덕분에 특유의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이상하다.

잭키춘이 우승이후, 무천도사로 돌아간 뒤라 행방불명 처리가 되어버렸다.

무천도사 본인은 손오공과의 싸움 때문에 체력적 부담을 느낀 탓에 경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이 참가한 이유가 제자들 때문이었으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째 맥이 빠지긴 하네.

이렇게 켄이 단순한 카메오 정도로 끝나버리니까,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우정출연에서 이 이상 큰 것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거기다 이 작품은 드래곤볼이다.

드래곤이라고.

한편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등장만으로도 충격적인 사건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이게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켄은 실망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는데, 곧이어 나타난 것은 바로 다크 프린세스, 칼파나였다.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준우승자인 손오공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나저나 칼파나의 캐릭터는······, 켄과는 달리 꽤나 원작과 거의 다르지 않은 느낌과 퀄리티다.

아니, 오히려 선희가 표현한 칼파나보다 더 섹시하게 표현되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오, 내 취향엔 이게 더 맞······.”

그렇게 말하던 박상식이 멈칫하더니 선희 쪽을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는 다시 조용하게 말했다.

“아무튼, 이쪽 칼파나가 괜찮아 보인다. 너도 그렇게 생각 안 해?”

“어. 괜찮네. 이런 느낌도.”

“그렇지?”

내가 동조하자 조금 안심한 표정이 된다.

아무튼 칼파나와 손오공의 싸움이라니, 나도 솔직히 이게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다음페이지가 비워져 있다.

[정확한 전투능력을 제가 잘 몰라서······.]

토리야마 아키라의 오너캐 그림만 중앙에 덩그러니 그려져있다.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는 모습으로.

이마엔 커다란 땀방울 하나가 떠 있고.

“풋, 이게 뭐야? 뭐라고 쓴 건데?”

“아, 칼파나의 전투력에 대한 제원이 필요한 모양이야.”

“뭐? 전투력?”

그 말에 박상식이 크게 웃었다.

“하긴,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려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하긴 하겠지. 그래, 따로 전화를 걸어서 알려줄 거야?”

“일단 선희랑 이야기를 좀 해보고.”

그렇게 말하며 선희를 돌아보자 어느새 내 근처까지 다가와 있다.

대화를 들으며 호기심이 동해 온 모양이다.

“그거 봐도 돼?”

“그래,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며 드래곤볼의 복사 콘티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선희가 한 장씩 빠르게 넘겨보더니 이내 종이를 내려놓는다.

“의견 있어?”

내 질문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새 노트 하나를 꺼내서는 연필로 빠르게 그려나간다.

아마도 의견을 직접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모양이다.

하기야, 선희도 드래곤볼을 좋아하고 있으니, 손오공에 대한 전투력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토리야마 역시 우리만화를 보고 있었다고는 해도, 삼사라나 다크 프린세스의 세계관 속 전투능력은 드래곤볼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다 이쪽은 템빨이 전투력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편이라 더더욱 그럴 것이고.

아무튼 대충 30분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선희가 노트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노트를 내밀었다.

“내 생각.”

“오케이.”

선희가 내민 노트를 받아들고는 곧장 그것을 펼쳤다.

펼치자마자 콘티의 다음 장면이 그대로 이어진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희가 생각한 이야기의 전개라는 것을 인식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손오공의 액션도 진짜 드래곤볼이랑 별로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칼파나가 손오공의 능력에 깜짝 놀라 당황하며 대응하는 모습도 나름 재밌다. 대사는 없지만 어떤 대사를 넣어야 할 것이지 막 떠오를 정도다.

곧장 내가 상황을 보며 대사를 집어넣어본다.

그리고 장면이 이이질 때마다 빠진 대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며 쓰기를 반복하는데 어느새 그림이 끝이 났다.

대략 15페이지 정도의 액션장면을 표현했는데, 아마도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함인지 아니면 결론을 내는 것이 원작자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쉬운 장면에서 끝이 나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뭐, 더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아무튼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곧장 서둘러 복사를 하고는 토리야마 선생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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