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98화 (198/425)
  • 스파이? (3)

    미치코가 멍한 얼굴로 이대봉을 정신없이 바라보자, 지로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눈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뭔가에 홀렸다가 정신을 차린 느낌?

    아무튼 그런 미치코가 곧 이대봉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저, 중원요리왕 엄청 좋아해요. 주인공이 만드는 요리가 너무 궁금해서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걸요.”

    그때 지로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요리 못하는 거 같던데.”

    그 말에 미치코가 급 당황하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아, 뭐. 그렇기는 해도. 아시는 분 도움으로.”

    “아시는 분? 설마 어머니?”

    “그건 아니고요······. 요리사하시는 분.”

    그 말에 이번엔 이대봉이 관심을 보인다.

    “요리사가 제 중원요리왕에 등장하는 음식을 만들었다고요? 와, 그거 맛보고 싶네. 그런데 그거 맛있던가요?”

    “아, 네. 원작을 그대로 음식으로 옮기려다가, 재료가 부족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맛을 냈는데. 그래도 괜찮았어요.”

    “하긴, 원작에 등장하는 대부분 요리가 구하기 쉬운 재료는 아니니까. 그런데 어떤 걸 먹었어요?”

    그 말에 미치코가 턱을 손가락으로 몇 번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곧 입을 연다.

    “대충 열 가지 정도 먹어봤는데, 그중에서 천상우육사가 최고였던 거 같아요.”

    “열 가지나? 그보다 천상우육사는 그냥 생각만으로 만든 환상의 요린데······.”

    “안 그래도 요리사분이 그거 60퍼센트 정도밖에 재연할 수 없어서, 나머진 추측으로 만드셨어요.”

    그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나도 마찬가지.

    왜 그런가하면, 요리의 왕에 나오는 요리 중 일반적인 게 거의 없을 정도니까. 그나마, 평범한 건 객잔에 등장하는 만두나 소면정도가 거의 다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요리를 열 가지나 만들어 먹었고, 특히 만화 속에서 가장 궁극의 음식으로 묘사된 천상우육사는 솔직히 무슨 맛인지 이대봉도 모르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도대체 저 여자 정체가 뭐지?

    그렇게 생각하며 여자를 쳐다보는데, 이대봉은 그런 사실 따위는 관계없는지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와, 그거 나도 먹어보고 싶네. 무슨 맛이던가요?”

    “만화 속처럼, 천상의 맛, 뭐 그런 건 아니고요.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물론 재료비가 살짝 많이 들어가서 요리사분이 효율이 없는 요리라고 하시긴 하던데.”

    “맞아요. 그거 60퍼센트 정도 재연했다고 해도 재료가 엄청날 텐데.”

    이대본이 그렇게 말하며 감탄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제임스 작가님께 한번 대접할게요. 혹시 일본에 오시면 그때 연락주세요.”

    “할게요! 당연히 해야지. 언제 갈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왜요? 가까운데.”

    일본에서야 쉽게 올수 있지만 한국의 사정은 좀 다르다. 그런 것을 잘 모르니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뭐, 어려보이니까 아직 모르는 게 많겠지, 뭐.

    그렇게 말한 미치코가 다시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작가님도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건가요?”

    “나는 그랬으면 좋겠는데, 우리 윤환이가 허락을 안 해주니까.”

    이대봉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본다.

    원망의 눈길로.

    그러자, 미치코도 이대봉이 말한 윤환이 나라는 걸 알아채고는 내 쪽을 쳐다본다.

    그런데 그 표정이 좀 묘하다.

    그리고는 곧장 나와 이대봉을 번갈아 쳐다본다.

    잠시 후 표정이 좀 우울해진다.

    뭐야?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민폐 덩어리 같은 놈, 멍청한 너 때문에 오해가 생기잖아.”

    갑작스런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눈을 흘긴다.

    “오해라니, 뭐가?”

    “몰라서 물어?”“모르겠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말싸움이 시작되자 우울하던 미치코가 깜짝 놀란다. 그러더니 눈을 데굴거리며 지로를 슬쩍 바라본다.

    그러자 지로가 쓴 웃음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하는 게 보인다.

    두 인간들이 한국어로 다투고 있으니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저 혼란스러울 거다.

    하지만 미치코는 이내 두 사람에게서 관심을 끊고 선희 근처로 다가간다.

    “써니 선생님?”

    “······네?”

    “작업 구경해도 돼요?”

    “상관없는데.”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본격적으로 구경하겠다는 건지 의자 하나를 가져다가 선희책상 옆에 가져다놓고는 거기에 앉아 구경하기 시작한다.

    완전 본격적이네.

    그때 지로가 화들짝 놀라더니 미치코를 일으켜 세운다.

    “너 뭐하는 거야?”

    “네? 써니 선생님 작업을 구경······.”

    “아니 그러니까, 그걸 허락하셨다고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떡해?”

    “네? 왜요?”

    미치코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지로가 조용한 목소리로 뭔가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는 곧장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작업을 멈춘 선희가 머리를 들고는 중얼거린다.

    “난 괜찮은데.”

    그나저나 미치코, 저 여자 분명 신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저렇게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지?

    아까 요리사 얘기도 그렇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냥 아는 요리사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아무튼 묘한 느낌의 여자다.

    허당기가 많은 것도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치코 씨,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어떻게 중원요리왕이 나오는 요리를 도전했을까?”

    “네가 만든 이야기 속 요리 따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선 대단한건 맞지.”

    실버가 그렇게 불쑥 끼어들자 이대봉이 인상을 팍 썼다.

    “넌, 천상우육사 먹을 생각 하지 마!”

    “놀고 있네. 줘도 안 먹어. 그딴 거.”

    “······.”

    * * *

    지로가 미치코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온 뒤 주변을 슬쩍 돌아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한국에 볼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지로가 강압적인 느낌으로 물어보자 주눅이 들었는지 미치코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 네. 그거요? 천천히 가도 되는데.”

    “천천히 가도 돼?”

    “네. 천천히요.”

    “일을 하러 왔다면서 그렇게 대충대충 해도 되는 거야?”

    “그······런 일이라 서요.”

    그 대답에 지로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너, 바른대로 말해.”

    “네? 뭘요?”

    “사실은, 너 한국에 볼일 없지?”

    “······네?”

    깜짝 놀란 미치코가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고는 마당에 있는 하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는 듯 말했다.

    “와, 예쁜 고양이네요.”

    “엉뚱한 얘기로 말 돌리지 말고.”

    지로의 눈치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뇨, 사실이에요.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누가 지금 아니래? 그리고 지금 고양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 내 말이 맞지?”

    “······아뇨. 저 정말로 다른 일 있어요.”

    하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 그럼 어딘데.”

    “그건 제 일이라······.”

    “네 일? 신입인 주제에 한국에, 그것도 비밀스런 일을 맡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되는 건가요?”

    “뭐라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군요. 난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미치코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로는 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신입이라 사회생활 경험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질감만 커진다.

    “야, 네가 말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너 편집부에다 뭐라고 얘기하고 온 거야? 이거 편집장님 알고 계신 일이야?”

    “그건······.”

    “설마, 네 마음대로 말도 없이 따라온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야?”

    “네. 이거 편집장님도 알고 계신 일이에요.”

    “······알고 계신다고? 진짜?”

    “······네.”

    그 말에 지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더니 곧 자신을 진정시키며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자, 그럼, 말해봐. 편집장님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여기까지 온 거야?”

    “실은······, 제가 부사장님께 부탁을 한 거예요.”

    “뭐? 부······ 사장님?”

    “네.”

    순간 지로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미치코를 쳐다봤다.

    편집장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부사장이라니.

    이야기의 대상, 등급이 확 뛴 건 둘째 치고 갑자기 튀어나온 부사장이라는 얘기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야기 대상이 부사장님이니 조심스럽다.

    지로가 경계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물었다.

    “너, 부사장님이랑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아는 아저씨 정도?”

    “아는 아저씨? 그게 뭐야?”

    “그러니까, 아는 아저씨요.”

    아는 아저씨가 부사장이라니.

    너무 뜬금없어서 웃음이 나오려한다. 하지만 뭔가가 머릿속을 스치자 눈을 가늘게 뜬다.

    “설마······ 너, 부사장님이랑······.”

    “······네?”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던 미치코가 곧 뭔가를 떠올렸는지 화들짝 놀란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저씨랑은 어릴 때부터 친삼촌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지.”

    양손을 휘적거리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미치코를 지로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정말 아니지?”

    “아니라니까요! 와, 생각만 해도 소름이 쫙 돋네.”

    “······.”

    “진짜에요!”

    자신의 몸에서 닭살이 돋는다는 듯 행동하는 미치코를 여전히 가는 눈으로 바라본다.

    일단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거야 알 수 없다. 아니, 그런 사정이 있다고 해도 지로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이미 성인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니까.

    하지만, 이곳은 자신의 담당이다.

    어찌되었건, 사정은 정확하게 알아야 할 일이었다.

    “그럼, 뭔 대. 정확하게 설명해봐. 빠짐없이.”

    “······.”

    “어서!”

    “넵!”

    지로의 다그침에 몸을 움찔거리며 놀란 미치코가 이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리고는 힘없이 말했다.

    “저기, 말씀드리기 전에 꼭 부탁드릴 게 있어요.”

    “뭔데?”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좀 해주세요.”

    “비밀?”

    “네. 중요하거든요.”

    “그건 일단······, 들어보고 판단하지.”

    “제발요.”

    미치코가 손바닥까지 딱 붙이며 사정하자 지로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는 곧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하지만, 비밀의 정도가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거라면 그땐 어쩔 수 없어.”

    그 말에 미치코가 입을 앙다물며 눈썹에 힘을 팍 준다.

    “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남자가 한번 약속을 했으면 그대로 지켜야지.”

    “그게 지금 네가 할 소리냐?!”

    지로가 버럭 하자 다시 찌그러진다.

    “죄송합니다.”

    “자, 말해봐, 얼른.”

    “······네.”

    그렇게 말하며 눈을 좌우로 몇 번 굴리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입에서 생각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은 사장님이 제 외삼촌이거든요.”

    “······뭐?”

    지로가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마치 범죄를 발각당한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네. 맞아요, 저······, 아마쿠다리 天下り(낙하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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