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2)
화실로 들어오던 성준희가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윤환아, 밖에 좀 나가 봐.”
“응? 갑자기 밖에는 왜?”
“입구에 아카기 씨 온 것 같은데······.”
성준희가 말끝을 줄인다.
“그런데?”
“그런데, 어떤 여자랑 지금 한참 옥신각신 중이야.”
지로가 여자랑 옥신각신?
이건 전혀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인데.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는데 그때 성준희의 말을 들은 경희가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경희도 지로가 옥신각신 한다는 여자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서둘러 경희 뒤를 따가 밖으로 나갔다.
대문 근처에 다가갔더니, 대문 밖에서 일본말이 들려온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건 아니지만 성준희 말대로 약간 옥신각신한다는 느낌은 있다.
먼저 나갔던 경희가 대문을 살짝 열고는 밖을 내다본다.
나도 경희 곁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자 두 남녀가 문 앞에서 눈에 들어온다.
지로가 대문 방향으로 등을 보인 채 여자랑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저도 같이 들어가면 안돼요?”
“넌 안 돼, 아니 애초에 이곳까지 왜 따라온 거야? 너, 분명히 비행기 타고 공항에 내릴 때까지 한국에 다른 일로 온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그런데 이게 뭐야? 거짓말 이었어?”
“거짓말 아니에요. 오늘 저녁쯤에 가봐야 할 곳이 있어요.”
“그럼, 그쪽으로 갈 것이지. 여긴 왜 따라와?”
“따라올 수도 있죠.”
“뭐라는 거야? 담당 왜엔 안 된다는 거 편집장님께 못 들었어?”
“에이, 우리끼리 뭐 어때요?”
“우리끼리? 도대체 선배를 뭐로 보는 거야?”
여자는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 같고, 지로는 그런 그녀를 막아선 모양이다.
대화를 대충 들어보니, 출판사 직원은 맞는 모양인데.
아마도 출판사 방침에는 담당자 외엔 못 만나게끔 하는 모양이다.
뭐, 아무래도 조금 더 비밀을 오래가져가려면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그나저나 두 사람이 저렇게 일본말로 떠들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두 사람 근처로 모여든다. 그리고는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평소엔 보기 힘든 외국인들이라 그런 모양일 테지.
그런데 그런 주변 상황이 신경 쓰이는지 지로는 여자에게 좀 조용히 말하라며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인상을 쓴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상황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때 빠끔히 바깥을 내다보던 우리와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머, 안녕하세요!”
우리를 보며 여자가 머리를 푹 숙이더니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러자 눈을 데굴거리던 경희가 얼떨결에 같이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일본 아저씨 동료 분?”
“아, 저기·······.”
지로의 말을 끊은 여자가 서둘러 대답한다.
“네, 맞아요. 그런데······, 일본어 잘하시네요.”
여자의 칭찬에 경희가 헤벌쭉 웃었다.
“뭘요, 아직 모르는 단어도 많은데요.”
“어머, 그냥 들어서는 일본인과 구분도 안될 만큼 능숙한데요?”
“아, 뭐. 그런 얘기는 좀 듣는 편이긴 한데.”
아무튼 두 여자가 문 앞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하자, 지로가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런 두 사람에게 내가 말했다.
“자, 문 앞에서 이러지 말고 일단 두 분 모두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니, 그게······.”
“어머, 선배 왜 그러세요. 집주인분들이 들어오라시는데.”
그렇게 말하면 여자가 지로의 팔을 이끌고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온다.
“······.”
주변에 모여 있는 동네 사람들을 의식하던 지로가 어어 하는 사이 안으로 들어왔고, 그 타이밍에 맞춰 경희가 대문을 닫았다.
마당으로 들어오자마자 여자가 건물을 보며 감탄한다.
“와, 건물이 일본 옛날 건물이랑 굉장히 비슷해요. 저희 시골에도 이런 집 있는데.”
“이 건물을 오래전에 일본인이 살던 집이에요.”
경희의 설명에 ‘아’하며 여자가 머리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나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데리고 올 생각은 없었는데.”
“뭐, 괜찮아요. 동료 분이신 것 같은데.”
그런데 경희를 따가 들어가던 여자가 우리 쪽으로 홱 돌아서더니 놀란 표정이 된다. 그리고는 곧장 내게 물었다.
“선생님이세요? 설마, 써니 선생님? 하지만 써니 선생님은 여자 분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아, 네. 써니는 제 동생이고 전 스토리를 맡고 있어요.”
“네? 스토리요? 삼사라 스토리를 직접 쓰신 분이세요?”
“네.”
내 대답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냥 얼어붙은 듯 서서 날 바라보고만 있다. 그러더니 다시 내게 넙죽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 얼마 전에 입사한 편집부의 카와다 미치코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자기 큰 소리로 인사한다.
그러자 지로가 다시 당황하며 그녀를 말린다.
“이봐, 좀 적당히 해. 민폐잖아.”
“아,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네가 다른 사람들을 놀래키고 있잖아.”
“······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내 말에 금방 또 표정이 밝아지며 대답한다. 그리고는 다시 경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뭔가, 경희랑 비슷한 느낌의 아가씨네.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화실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소리친다.
“아년하시무니까! 이르본에서 온 카와다 미치코이무니다!”
난데없이 한국어로 소리치자 일하던 어시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그런 그들에게 경희가 대신 설명했다.
“일본 아저씨, 출판사 후배래요. 이름은 카와다 미······.”
“미치코요.”
“아, 카와다 미치코.”
그제야 일하던 어시들이 그녀에게 가볍게 목 인사를 하며 웃는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사람들이 반기자 미치코가 사람들이게 인사를 하며 주변을 살핀다. 이 중에 누가 선생인가 궁금한 모양이다.
그때 선희가 머리를 슬쩍 들어 올리자, 그걸 본 미치코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곧장 곁에 있던 경희를 돌아본다.
머리스타일도 얼굴도 같은 두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경희에게 말했다.
“어? 얼굴이 똑같네요. 쌍둥이 자매?”
“네. 맞아요.”
“아, 같이 여기서 일하시는 구나.”
그렇게 말하더니 곧장 선희에게 다가가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일 돕는구나, 일은 재밌어요?”
그 순간 지로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그리고는 곧장 미치코에게 다가가서는 팔을 당기며 말했다.
“이봐 카와다. 뭐하는 거야?”
갑자기 급하게 당겨진 탓에 미치코가 휘청하더니 곧장 지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인사하고 있는데.”
“그쪽은 선생님이라고, 선생님.”
“네?”
“써니 선생님!”
“·······!”
그 순간 경희를 돌아본다. 그러자 경희가 싱긋 웃더니 머리를 끄덕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시들이 피식거리고 있다.
그리고 나도 돌아본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곧 미치코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아, 아 어떻게······.”
그러면서 써니 쪽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린다.
선희는 그런 미치코를 멀뚱거리며 쳐다보다가 곧 자리에 앉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힐끔 돌아보던 미치코가 곧바로 선희를 향해 머리를 푹 숙인다.
“죄송합니다!”
“······?”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멀뚱거리며 보는 선희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때 곁에 있던 경희가 연신 머리를 숙이는 미치코를 말렸다.
“괜찮아요. 선희도 괜찮다는 모양이고. 너 괜찮지?”
“······상관없는데.”
한국말로 대답하자, 이내 경희가 ‘괜찮데요.’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서야 몸을 반듯하게 세운 미치코가 언제 그랬냐는 듯 히죽거리며 웃는다.
“설마, 써니 선생님이 저렇게 어리신 분일 줄을 몰랐어요.”
“처음 보면 다 그런 반응이에요. 우리 써니가 좀 천재거든요.”
경희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코를 바짝 세우며 말하자, 미치코가 머리를 여러 번 끄덕거린다.
“그럼요. 써니 선생님이야 만화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신 분인데.”
“제 동생이에요.”
“아, 그렇구나.”
“······아닌데.”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크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자 선희가 일본어로 다시 말한다.
“내가 언니.”
“너 진짜.”
“어머, 써니 선생님도 일본어 잘하시네요.”
“아, 네. 헤헤. 저보다도 더 잘해요.”
“그러시구나.”
그런 미치코의 모습에 지로는 머리를 한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 쥔다.
마치 두통이 일고 있다는 듯.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어갈 무렵 화실에 엄마 찾아왔다.
“어머, 일본분이시네. 저 편집자님 동료 분?”
“어. 후배래.”
“아, 그렇구나. 참 참하게 생기셨네.”
엄마가 미치코를 보며 말하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꼈는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어설픈 한국어로 다시 인사한다.
그러자 그 모습이 재밌는지 엄마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 잘 왔어요. 밥 안 먹었죠? 같이 먹어요.”
곁에서 지로가 작은 말로 통역하자 미치코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가무사하무니다.”
“호호. 그래요.”
그런데 미치코는 애교가 많은지 금방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서는 계속 뭔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다른 어시들과 함께 식사준비를 시작한다.
엄마가 손님이니까 괜찮다고 해도 팔까지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이 꽤나 재밌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부엌일은 허당이라 민폐를 끼치자 결국 지로가 부엌에서 끌고 나온다.
“뭐하는 거야. 적당히 해, 적당히. 민폐 그만 끼치고.”
“네? 저 민폐에요?”
“스스로는 몰라?”
“······아, 죄송해요. 그래도 엄마는 저 요리 잘한다고 해줘서.”
“뭔 헛소리야?”
“끄응.”
자세히 보니 경희한테 나사 한두 개 빠지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여자네.
아무튼 모처럼 낯선 여자의 등장에 화실이 좀 왁자지껄해지는 느낌이다.
경희도 그런 미치코가 좋은지 곁에 붙어서 수다를 떤다.
그렇게 곧 식사가 시작되고 나서도 미치코의 수다는 멈추지 않는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희가 실시간으로 통역까지 하면서 아주 적극적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이대봉이 찾아왔다.
“여어, 아카기 씨 오셨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요. 어? 그런데 그쪽 아가씬 누구?”
“······.”
그런데 미치코가 말이 없다.
그보다······, 저 표정은 뭐지?
좀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 후배입니다.”
“아, 출판사분이시구나.”
그렇게 말하더니 곧장 미치코에게 일본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미치코가 머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그런데 어? 미치코가 부끄러워하네.
오랜 본 건 아닌데, 여기서 부끄러워 하니까 뭔가 아까랑 다른 느낌이라 적응이 안 된다.
하기야, 이대봉이 좀 잘생기긴 했으니까.
저 정도 얼굴이면 거의 탤런트 급이긴 하지.
그런 미치코의 행동에 주변 여자들이 큭큭 거리며 웃는다.
이대봉이랑 같이 있다 보면 아주 익숙한 시선이긴 하니까.
“제 이름은 카와다 미치코에요.”
“저는 제임스랍니다. 잘 부탁해요.”
그 말에 여자가 멈칫하더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 제임스? 혹시 중원요리왕의 그 제임스는 아니겠죠?”
“오, 잘 아시네. 맞아요. 제가 그 제임스랍니다.”
“아······.”
혼이 빠져나간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