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1)
소년 히어로 편집부.
점심시간 편집부 직원들이 식사 후, 휴게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그게 사실이야? 삼사라가 정말 초판이 30만부라고?"
직원 한명이 경악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소년 히어로 최초라던데."
"내가 알기로도 소년 히어로에 연재한 만화 중 초판 30만 부를 넘긴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
"그것도 편집장님이 더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출판부장님이 또 반대하는 바람에 그 정도래요."
"과연, 삼사라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잡지 연재만화들보면 초판 10만부 넘기는 작품이 많아졌네?"
"잡지 판매부수도 이젠 40만부를 넘어서니까요. 듣기론 조만간 50만부 고지까지 오를 거라던데."
"지금 10만부 넘는 게 몇 개지?"
"5작품이라고 들었어요. 삼사라, 진심의 남자, 에스퍼 존, 파시엔시아, 그리고 중원 요리왕."
"중원요리왕이 벌써 10만부야?"
"네. 얼마 전에 나온 2권이 10만부를 살짝 넘겼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에 모두 부럽다는 표정이 된다.
현재 소년 히어로를 이끌어가는 다섯작품과 다른 작품들과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추세였다.
물론 최근 들어 5만부 이상의 초판을 찍는 만화들도 점점 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성장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젠 우리 주간소년 히어로도 매이저급 잡지가 되어가는 모양이군."
"그러게요. 삼사라 이후로 발전을 엄청나게 했어요."
"작년 초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성장할거라 누가 생각했겠어?"
"다른 잡지사에서 이쪽으로 이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던데."
"직원뿐만이 아니야. 현역 작가들도 최근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니까.
며칠 전엔 소년점프 출신 만화가도 찾아왔었어."
"아, 그 얘기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기로 했대요?"
"5편 짜리로 테스트를 다음 달부터 한다나봐."
"와, 그냥 연재 바로 안하고요?"
"그렇다고 하더라."
"와, 우리잡지 쎄네."
"그러게."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나저나 우리 카미야마 선생님도 분발하셔야 할 텐데, 벌써 순위가 너무 떨어져서 위태위태하다니까."
"우리 하야시다 선생님은 어떻고, 원고 하기 싫다고 툭하면 잠적하니까 내가 미치지 않겠냐?"
"그래도 하야시다 선생님은 재능이 있으니, 잘리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야야, 그러니까 더 속 터지지. 재능이 있는데 쓰려고 하지를 않으니까."
그때 다른 직원 하나가 휴게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이거, 봤어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온 잡지를 흔들어 보인다.
그때 잡지에서 삐져나온 커다란 수영복브로마이드를 보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야, 넌 눈치 없게 그런 걸 들고 다니면 어떡해? 우리 잡지도 아니구만."
"맞아. 넌 짜식이 전에도 부편집장님한테 그렇게 욕먹고도 정신을 못 차렸냐?"
그러자 수영복 브로마이드를 잡지에 다시 접어 넣으며 말했다.
"아이참, 이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쓸 만한 건 하나도 없구만."
"이번엔 진짜에요."
"진짜 좋아하네."
평소에도 허풍이 심한 직원이다 보니, 그를 양치기소년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그런 시큰둥한 시선에 페이지를 잽싸게 넘기더니 곧장 그것을 불쑥 들이밀고는 쫙 펼쳤다.
"이거요, 이거!"
페이지를 펼쳐보이자, 그곳엔 커다란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 사인을 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그것을 확인한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이거. 전에 지로 씨랑 오오타게 씨가 참석했다던 그 사인회 사진이네?"
"맞네. 이게 잡지에 난 거야?"
"네. 맞아요. 이걸 이 잡지사에서 기사화 시킨 거예요."
"이거 어디 잡지야?"
"주간 평범 펀치에요."
"어? 그거 아이돌잡지 아니야?"
"아니요. 잡다한 거 다 다뤄요."
"와, 이 녀석들 발 빠르네. 언제 이런 걸 찍었대?"
직원들이 잡지를 가운데 두고 사진을 바라본다.
사실, 써니의 사인회장 출현이 한동안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직원이라고 해봐야 담당 편집자들뿐이었으니 이곳에 있는 누구도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오, 이야기로만 들었을 땐 좀 웃기는 것 같았는데, 의외로 어울린다."
"그러게요. 써니 선생님 의외로 체격이 조그마해서 귀여운 느낌도 있고."
"하지만, 얼굴은 못생겼다는 소문이 있어. 그러니까 너무 기대하면 안 돼."
"어? 그래요?"
"어. 얼굴이 너무 흉측해서 얼굴을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정말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숨기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니 호동을 친다.
"흉측하긴 누가 흉측해? 편집부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지금 몇 신데 아직도 여기서 어슬렁어슬렁 거려? 일 안 할 거야?"
갑자기 등장한 부편집장의 호통에 모두 움찔하고 놀라더니 곧장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끄고는 휴게실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 무리를 따라 나가던 사람 중 한명을 부편집장이 불러 세웠다.
"어이, 고바야시."
"네?"
"그거 나한테 주고 가."
"이건……."
"타 회사 잡지, 압수."
"……네."
고바야시라 불린 직원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잡지를 부편집장에게 주고는 서둘러 휴게실을 나간다.
그 모습을 보던 부편집장이 한숨을 푹쉬고는 곧장 잡지를 펼쳐본다. 그리고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핥는다.
"아깝네. 나도 갔어야 했는데."
의외로 고양이 탈을 쓴 모습이 깜찍해서 빙그레 웃었다.
"써니 선생님도 이렇게 보니까, 귀엽네,"
그렇게 말하고는 잡지사진을 들여다보다 곧 휴게실을 나간다.
그때 휴게실 근처를 지나치던 지로가 보이자 그를 불러 세웠다.
"이봐, 아카기."
"네?"
"다음엔 나도 꼭 불러. 알겠지?"
"부르다니, 뭘요?"
"저번 사인회 같은 행사 말이야. 그런 거 있으면 부르라고."
"아, 그거요? 그땐 예정에 없이 일본에 오신데다가 갑자기 결정된 사인회라 저도 뒤늦게 알게 됐어요."
"어찌됐건, 꼭 불러."
"네, 알겠습니다."
"꼭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휴게실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곧 어깨를 으쓱하고는 서둘러 편집부로 돌아갔다.
자신의 자리로 간, 지로가 식자 작업이 끝난 삼사라와 파시엔시아의 원고를 마지막으로 살핀다. 잠시 후면 인쇄소에 넘겨야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혹시 모를 오타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드르렁.
"……?"
갑자기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근처 자리에 있던 테고시를 보니 자리에 엎어진 채로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점심 식사 때도 보이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아마 어제 담당인 키도 선생과 늦게까지 미팅이 있었던 모양이라 피곤에 지쳐 밥도 거른 모양이다.
숙직실로 가서 자라고 깨울까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여기서 이렇게 잠든걸 보면 편하게 잘 시간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다시 시선을 거두려는데, 그가 엎어진 머리 사이로 살짝 삐져나온 원고가 보인다.
"어?"
그 때문에 깜짝 놀란 지로가 테고시를 흔들어 깨웠다.
"테고시 씨, 잠깐만요. 일어나 보세요."
"끄응."
"이거 지금 밑에 깔려 있는 거 키도 선생님 원고 아니에요?"
"……허억!"
눈을 살짝 뜬 테고시가 놀란 눈으로 머리를 바짝 세운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래에 있던 것이 만화원고라는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란다.
"으악!"
내려다보니, 원고에 얼룩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침 때문에 생긴 얼룩이라는 걸 깨닫고는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큰일이다!"
그런 테고시의 얼굴을 쳐다보던 지로도 덩달아 놀랐다.
"얼굴에 그거……."
"……네?"
"얼굴에 붙은 그거 스크린 톤 아니에요?"
그 말에 테고시가 손으로 얼굴을 더듬거리더니 거기에서 몇 장의 비닐조각을 떼 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잠깐만요."
지로가 테고시의 얼굴에서 스크린톤 조각을 떼어 내더니 그것을 원고에 붙여본다.
하지만, 이미 찢어진 것도 있고, 접착력이 떨어져 붙지 않는 것도 있다.
"이거, 안 붙는데요."
"……이, 이거 어쩌죠?"
"여기 편집부 내에 스크린톤이 있긴 한데, 문제는……."
지로가 말끝을 흐르며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톤의 정확한 번호를 모르니까, 일단 키도 선생님께 연락을 해 보는 게……."
"저, 그렇게 되면 담당에서 잘릴지 몰라요."
"네?"
"예전에 키도 선생님 담당하던 선배가 원고 관리 똑바로 못했다고 곧장 담당에서 물러났거든요. 그때 키도 선생님, 엄청 화가 나셔서 편집부로 직접 찾아오셨어요. 그때 선생님 진정 시키느라 편집장님 이랑 부편집장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데요."
"아."
만화가들에게 원고란 생명과도 같은 거니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당이 바뀔 정도라니.
그러나 생각해보니 키도 선생이라면 충분히 그럴 사람이라는 것도 예상되긴 한다.
"조금 있다가 이거 식자 마무리하고 인쇄소로 넘겨야 하는데……. 어쩌자고 식자작업 중에 졸아가지고서는, 내가 정말 미쳤나봐."
테고시가 자신을 나무라며 머리를 쥐어 뜯는 자해까지 한다.
그런 그를 지로가 말리며 말했다.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죠."
"……네."
그렇게 말하고는 스크린톤이 있는 캐비닛 쪽으로 가려던 그때였다.
"그거 제가 좀 봐도 되요?"
갑자기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로와 테고시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들어온 여자는 얼마 전에 편집부에 입사한 신입여사원이었다.
올해 단기 대학교를 졸업했다더니,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신입이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릴 적부터 만화연구회를 오래해서, 스크린톤에 익숙하거든요."
"그, 그래? 그럼 이거 톤 번호 알아?"
테고시가 톤 조각을 내밀자 그것을 보더니 받아서는 하얀 종이에 대본다. 그리고는 금방 머리를 끄덕인다.
"점톤 이네요. 이거야 뭐 수없이 써본 거라 잘 알죠."
"그래? 그럼 다른 것도?"
"네. 톤 번호를 불러드릴 테니까, 가져다 주시겠어요?"
그녀의 말에 테고시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 그래."
"이건 번호가……."
번호를 메모지에 적은 테고시랑 지로가 서둘러 톤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찾은 톤을 테고시가 가져다주자 여사원은 커터칼을 이용해 잘라 붙이기 시작한다.
떨어진 톤 중에 깎아야 하는 부분도 능숙하게 작업해 낸다.
그리고 톤을 다 준비하자 빠진 부분까지 모조리 빠른 손놀림을 이용해 마무리한다. 그리고는 얼룩이 생긴 부분을 화이트로 깔끔하게 처리해 버리자 두 남자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했다.
"와, 정말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그 말에 신입이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뭘요.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야. 자네에게 큰 신세를 졌어. 뭐로 보답하지?"
"그렇다면 뭐, 밥 한번 사시던가요."
"알았어. 비싼 걸로 사줄게."
"비싼 건 됐구요. 저기……."
말꼬리를 흐리며 이번엔 지로 쪽을 바라본다.
"아카기 선배도 사주실거죠?"
"아, 그래. 뭐. 그러지."
그 말에 신입의 표정이 환해진다.
"아카기 선배."
"……응?"
"제 이름, 모르시죠?"
"아, 미안. 그래 이름이 뭐지?"
"카와다. 카와다 미치코입니다."
"그래 카와다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에이, 이정도 일이라면 언제든지 절 찾아주세요."
"아니, 이런 일은 되도록 없어야지."
"아, 그렇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미치코가 크게 웃었다.
그런 미치코를 보던 테고시와 지로를 번갈아 보던 테고시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그러자 곧장 지로가 헛기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