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90화 (190/425)

요란법석 코미케 (5)

아, 맞구나.

앞에 있는 젊은 남자가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미묘한 감정이 든다.

미래엔 추앙과 비판을 동시에 듣게 될 천재 만화가.

그 유명한 '일해라, 토가시!'라는 말을 유행시킨 만화가.

바로 '유유백서'와 '헌터X헌터'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의 젊은 시절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까.

원고도 얼핏 보긴 했지만, 유유백서의 느낌을 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초기엔 개그물을 그리던 습성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 개그풍의 묘사도 본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내년인 1986년에 WJ 증간 소년점프 1987 년 Winter Special에 '터무니없는 생일선물'이 데뷔작이 되지만, 그 전에도 세 번이나 작품을 잡지에 낸 적이 있다.

다만, 잡지에 미게재 된 작품이라 그렇내가 알기론 첫 번째 작품이 '선생님은 연하'라는 단편 15페이지짜리 개그만화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뭐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 그가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아래 위로 훑어보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절 아시는 데요?"

뭐라고 핑계를 대지?

그렇게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다 곧 떠오른 것이 있어 대답했다.

"아, 네. 제가 야마가타 대학에 개인적인 용무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적이 있어서요."

그제야 경계하는 표정을 지우더니 머리를 끄덕인다.

"아, 그러세요?"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당연하지. 애초에 난 야마가타 현에도 간 적이 없으니까.

현재 토가시는 야마가타 대학에 교육학부 미술학과에 재학 중인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기억을 떠올려 말했는데, 대충 받아들인 모양이다.

아무튼 뭔가 생각을 길게 하면 내 거짓말이 들통 날 수 있으니 바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혹시 만화가가 되려고요?"

그런 것도 알고 있냐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곧 고개를 흔든다.

"아뇨, 그것만 목적은 아니고, 그냥 코미케 보는 김에 겸사겸사요. 사실 크게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아."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곧 토가시가 시선을 소년매거진 쪽으로 돌린다.

아무래도 몰려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물었다.

"혹시 괜찮으면 그거 좀 봐도 될까요?"

"이거요?"

"네. 그거 완성된 원고죠?"

"그렇긴 한데. 좀, 미숙해서."

"뭐, 어때요. 그냥 좀 보기만 할 텐데."

"네. 그럼."

곧장 머리를 끄덕인 토가시가 서류봉투에서 다시 원고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알고 있을까?

지금 내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억지로 추스르며 곧장 원고를 받아 천천히 살펴봤다.

과연, 초창기 토가시의 그림이라 그런지 자잘한 선도 많고, 그림도 부실하다.

하지만, 묘하게 발휘되는 센스가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물론 전체적인 이야기만으로 판단하면 아직 초짜를 벗어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아까 본 느낌대로 개그물의 느낌이 강하다. 거기다 소재도 이 시대에 유행 중이던 오컬트고, 아이디어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에 문제가 많아서 결국 퇴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직은 특별한 징조가 보이는 수준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내가 지금 토가시 아마추어 시절의 그림을 보고 있다고.

부탁해서 이거 따로 복사해 둘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혹시 어떠세요?"

토가시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음, 센스는 좋은데, 뭐랄까 이야기 전개가 좀 어색하고 캐릭터가 불안정하네요."

반사적으로 너무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뭐, 거짓말은 아니지만 앞으로 대박 작을 만들게 될 거물급 작가에게 실망을 줘도 되는 걸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말에 크게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의외란 표정이다.

"어? 혹시 출판사 분이세요?"

"출판사는 아니고, 스토리를 쓰고 있어요."

"그럼, 스토리 작가세요?"

"네. 뭐 유명한 건 아니고요."

"어떤 작품……."

그때 우리모습을 근처에서 지켜보던 스미레가 다가왔다.

"저기, 오빠. 아는 분이세요?"

"어? 응, 안면이 좀 있어서."

"……?"

토가시가 스미레를 보며 궁금해 하는 눈다.

"아, 이쪽은 고토 스미레, 전에 점프에서 단편 '그랜드 크라운'을 게재했고, 이번엔 짧은 이야기를 증간점프에서 연재중이에요. 제목은 '레벨 업'이고."

내 말에 토가시의 눈이 커진다.

"네? 정말요? 그랜드 크라운 만화가세요?"

"알아요?"

내 질문에 토가시가 머리를 격하게 아래위로 끄덕인다.

"그럼요. 저, 그거 엄청 인상 깊게 봤는데. 그런데 이렇게 젊으신 분 인건 상상도 못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네? 진짜요?"

토가시의 반응에 스미레가 어색하게 웃었다.

"고토 스미레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토가시 요시히로……이지만, 그냥 일반인입니다."

그냥 일반인이라니.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한지 두 사람이 날 빤히 본다.

크음.

"와, 이렇게 현역 작가 분들을 직접 보다니, 과연 도쿄는 다르네요."

"아뇨. 제가 야마가타 출신이라."

"아, 네. 어쩐지 익숙한 방언이라 생각했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거기에 계시거든요."

"아, 네."

"스미레, 너 이 원고 한 번 볼래?"

내 말에 토가시가 화들짝 놀란다.

"우왓, 그거는……."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스미레는 바로 내가 내민 원고를 살펴본다.

그리고는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조금은 열중해서 원고를 살펴보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는지 안절부절 못하던 토가 시가 그녀의 반응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원고를 다 본 스미레가 입을 열었다.

"재밌어요. 그런데 아직 데뷔는 안하신 거죠?"

"아, 네. 맞아요. 아직은 실력이 부족해서……."

"센스는 좋아 보여요."

"그렇습니까?"

"네. 오빠는 어떻게 보셨어요?"

"뭐, 비슷해."

그때 스미레가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모리 씨!"

그러자 남자 한명이 곧장 이곳으로 다가온다. 아까 스미레와 함께 있던 담당편집자다. 신입이라고 했었지?

모리라는 담당자가 다가오자 스미레가 토가시에게 작게 말했다.

"제 담당편집자예요."

"네?"

"고토 선생님, 부르셨어요?"

"바쁘지 않으시면 이 원고 한번 봐주실 수 있어요?"

"아뇨, 바빠도 그런 건 해야죠. 제 일인데."

그렇게 반기며 원고를 받아든다.

이번에도 토가시는 긴장한 얼굴로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원고를 자세히 살펴본 모리가 눈을 빛내더니 토가시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쪽 빈자리에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당연하죠."

"그럼 같이 가서 이야기 해볼까요?"

"네."

그렇게 토가시가 모리를 따라가려고 할 때 내가 슬쩍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만화가가 되면 열심히 원고해요. 게임에 너무 빠지지 말고."

"네."

"자자."

"아, 네."

토가시가 눈을 데굴거리며 날 바라보다 곧바로 모리에게 끌려가듯 사라진다.

토가시는 원래대로라면 내년에 잡지에게재를 시작하게 되지만, 무슨 인연인지 드래곤 퀘스트도 내년에 발매를 한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지 모르지만, 후에 게임 '드래곤 퀘스트'가 발매되면 토가시가 연재를 쉰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광팬으로 알려졌으니.

물론, 실은 연재의 고통 때문에 쉬는 거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드래곤 퀘스트를 한다는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읽긴 했지 뭐, 게임에 빠지면 연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

토가시가 걸어간 방향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런 날 보며 스미레가 입을 열었다.

"좀 놀랐어요."

"왜?"

"오빠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는 거요."

"그래?"

"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 사람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신 건지."

하기야, 지금의 스미레에 비해 별다른 장점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토가시의 능력은 좀 평범하긴 하지.

신인으로서 데뷔가 가능할지 어떨지도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애매한 실력이니 저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이해는 간다.

"아직은 그렇지만, 앞으로 재능이 나올것 같은 사람이라……."

아, 이거 너무 예언자적 발언인가?

곧 입을 다물자 그런 날 보며 스미레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도 보이세요?"

"아니, 뭐. 그런 거 있잖아. 설명할 수는 없는데, 느낌이 슉 하고 오는 그런 거."

설명이 좀 조악하긴 하지만, 스미레는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알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라면, 그리고 실버 스승님 같은 분도 어시로 들이신 오빠라면 뭔가를 봤다는 것도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에요."

"야야, 그렇게 사람을 무작정 믿는 건 좋지 않아. 그런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를 만드는 거니까."

"사이비 교주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가리고 웃는다.

그때 불쑥 익숙한 음성이 끼어들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나도 알려줘, 궁금해."

"나도 궁금해."

쌍둥이들이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는지 아직 상기 된 얼굴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둘이서 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건데?"

경희가 자꾸 조르자 할 수 없다는 듯 스미레가 말했다.

"사이비 교주."

"뭐? 사이비 교주?"

그렇게 말한 경희가 날 획하니 돌아본다.

"오빠, 무슨 이상한 종교 믿어?"

"뭐?"

"저기, 인간시장에도 나오던데, 그런 거 믿으면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그런 거 믿지 마."

"얘가 뭐라는 거야? 믿긴 누가 믿는다고 그래?"

그런데 그때 스미레는 누군가 부른다.

"미안, 친구가 와서요."

그렇게 우리에게 말하더니 곧장 그곳으로 간다.

어? 쟤가 이렇게 가면 난 어쩌라는 거야?

"오빠, 사이비 종교는 위험한 거야."

지금 경희가 계속 내게 잔소리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런데 그때 여고생들로 보이는 여자애무리가 스쳐지나간다.

뭔가 이곳 분위기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소녀가 가운데 있다.

옷도 상당히 고급스러워서, 눈에 확 뜨는데 한눈에 봐도 부잣집 아가씨라는 그런 분위기다.

그런 여자애에게 시선을 주다 그녀가 들고 있는 그림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뭔가 익숙한 그림체.

"어? 다케우치 나오코?"

"네?"

가운데 있던 여자애가 깜짝 놀라며 날 바라본다.

그러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묻는다.

"누구세요? 절 아세요?"

"……."

이거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그런데 그때 경희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하, 죄송해요. 우리 오빠가 사람을 잘 못 본 모양이에요."

"……?"

여자애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본다. 그런데 같이 있던 여자애들이 그런 그녀의 팔을 끌어당긴다.

"가자, 나오코, 이상한 사람 같아."

"그래. 빨리 가자."

"으, 으응."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걸어간다.

아, 뭐야?

나 지금 뭐, 스토커. 그런 걸로 보여진 건가?

"오빠도 참. 아무나 막 부르고 그래. 쟤얼굴 보니까, 오빠 전혀 모르는 사람 같던데."

"……."

"설마 사이비 종교에서 본……."

"……."

경희의 헛소리에도 난 방금 만났던 여자애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케우치 나오코.

미래엔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그리게 되고, 아까 만났던 토가시와 1999년에 결혼을 하게 될 여류만화가.

와, 이런 인연도 있구나.

"응?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굉장히 신기한 체험을 한 기분이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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